크리스챤 문화선교

초대교회

금요기도회

영혼육의 성장을 위한 주님의 방법.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47회 작성일 26-05-15 15:14

본문

영혼육의 성장을 위한 주님의 방법.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보호하려 하지만, 때로는 그 보호가 아이의 성장 자체를 막아버리는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넘어지지 않게만키우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넘어짐 속에서 분별과 지혜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담과 하와 이후의 인간 역사 전체가 그렇고, 탕자도 그렇고,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특히 시몬 베드로는 자기 확신으로 주와 함께 죽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결국 세 번 부인하고 통곡한 뒤에야 진짜 목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를 완벽히 보호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2:31-32)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넘어짐 자체를 완전히 막기보다 넘어짐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믿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오늘날 교육 현장의 문제도 비슷합니다. 과거에는 체벌과 권위주의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반대로 지나친 보호와 간섭, 절대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문화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가 뛰다가 넘어지는 것까지 교사의 책임이 되면 교사는 더 이상 교육자가 아니라 민원 회피 관리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자연히 모험, 책임, 훈련, 인내를 가르치기 어려워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잠언 22:6) 아이를 마땅히 행할 길로 가르치라여기서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 보호가 아닙니다. 훈련, 경계, 실패, 책임까지 포함됩니다. 또 히브리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11)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도 인간을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지 않으셨습니다. 광야를 지나게 하셨고, 기다리게 하셨고, 실패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다치든 말든 알아서 커라는 것도 아닙니다. 방임 역시 사랑이 아닙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 같습니다. 보호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과보호는 성장을 멈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훈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폭력은 안 된다. 자유는 필요하다. 그러나 책임 없는 자유는 파괴가 된다.

 

지금 시대 부모들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내 아이가 손해 볼까 봐입니다.

그래서 아이 대신 싸워주고, 대신 해결해주고, 대신 항의해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자란 아이는 나중에 사회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상처를 이겨본 아이는 큰 시련도 견디지만, 작은 상처조차 허락되지 않은 아이는 현실 앞에서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독수리도 새끼를 결국 둥지 밖으로 밀어냅니다. 그래야 날개를 쓰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평생 품에만 안고 계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광야로 보내시고, 실패하게 하시고, 기다리게 하시고, 부딪히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설명으로만 자라지 않고, 경험 속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조건 보호하는 부모도 아니고 무조건 방임하는 사회도 아니라, 사랑 안에서 훈련시키고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는 지혜로운 어른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사도 단순 서비스직처럼 취급받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아이를 세워가는 동역자로 존중받아야 건강한 교육이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고난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신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이끄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분명히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예수님은 시험을 없애 주옵소서가 아니라, “악에 삼켜지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서 직접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것도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셨습니다(마태복음 4).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무균실에 넣어 키우시는 분이 아니라, 시험 가운데서도 말씀과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도 이렇게 말하지요. (야고보서 1:2)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세상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문제가 없으면 축복이라고 여기지만, 성경은 오히려 시험 속에서 믿음이 연단되고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나 심지어 지도자들까지도 점점 하나님 중심보다 상황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하십니다.

* 경제가 어려우면 믿음도 흔들리고, * 건강이 흔들리면 평안도 사라지고, * 사람 반응이 안 좋으면 낙심하고, *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면 실패라고 느끼고, 결국 보이는 것이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믿음은 정반대입니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또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찬양했고, 욥은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붙들었으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앞에서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상황이 좋아서 믿은 것이 아니라,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알았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시험은 단순히 괴롭게 하려고 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늘 기도하는 기도 제목인 하나님을 보고 싶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고 기적과 표적을 보고 싶다고 하는 그 기도 제목을 통해서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실제로 체험하게 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것도 폭풍 가운데였고, 홍해가 갈라진 것도 절망 앞이었고, 광야에서 만나가 내린 것도 아무것도 없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성도들이 문제가 없어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라고 배우는 순간,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진짜 복음은? 상황 제거의 복음이 아니라 임재의 복음이며, 고난 회피의 복음이 아니라 함께 지나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복음입니다. * 다윗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 골짜기가 없어지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함께하심이 핵심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느끼시는 아픔은 아마 성도들이 하나님 자체보다 문제 해결 수단으로서의 하나님만 찾는 현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시대마다 환경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보는 사람들을 세우셨고,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이어오셨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신학교
CCS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대한민국전자정부
행복발전소
Prayer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