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45과.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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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45과. 39.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1~15)
가인과 아벨은 죄의 자녀의 모습 속에서 최초로 살인사건을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본문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가인은 자기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음을 알고 화가 났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흥분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들에 있던 아우를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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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인의 죄를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 9절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가인의 잘못을 회개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가인의 죄는 무엇일까요?
(1) 불신앙의 죄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 11:4)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고 했습니다.
(2) 악한 자에게 속한 죄입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요일 3:12)고 했습니다.
(3) 강퍅한 죄입니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 4:5)라고 했습니다.
(4) 살인죄입니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창 4:8)고 했습니다. 성경은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 1:11)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 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롬 14:23)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말합시다. 믿음으로 행동합시다. 믿음으로 계획합시다. 믿음으로 찬양합시다.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말씀을 받읍시다. 믿음으로 봉사합시다. 믿음으로 섬깁시다.
2. 가인의 사명을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 9절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에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이 질문은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는 질문과 거의 비슷한 것입니다. 이에 아담은 내가 옷을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 (창 3:10)라고 했는데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9절)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변명하고 죄를 감추려 하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 순간에 하나님께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였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아벨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할 줄을 몰랐습니다.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실상 우리가 하나님께 변명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인생들은 그렇게 우둔합니까? 그리고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구하고 그 말씀의 눈으로 하나님의 우릴 향하신 뜻을 보기 바랍니다.
아담과 여자(하와)를 보세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두신 후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창 2:16~17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뱀(마귀)이 여자에게 접근해서 미혹합니다. 거짓말로 헷갈리게 만듭니다. 동산 모든 나무 열매를 먹지 말하고 하더냐고 묻습니다. 그때 여자가 뱀에게 뭐라고 대답하죠? 창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전혀 다릅니다. 비슷한 것 같은데 아주 다른 겁니다. 만지지 말라는 말씀은 하지도 않았고,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인이 계속하여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하자 하나님은 가인을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준엄한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0~11절). 이 얼마나 무서운 저주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준엄한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께서 왜 그랬냐고 지적하시자 아담이 뭐라고 하죠? 또 여자는요? 창 3:12~13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인류의 시조 때부터 핑계를 대고 책임을 전가하는 습성이 생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의 특성은 남의 탓을 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겁니다. “누구, 누구 때문에” “무엇,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로 바뀌어야 합니다. 핑계를 대는 습관을 고쳐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당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인생의 성패는 모두 ‘내 탓’입니다. 스스로 책임지는 습관을 가져야 비로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거나 남의 탓을 하고 환경 탓만 하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지지리도 가난했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올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결국 승리합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가난한 것도 축복이었습니다. 가난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 못생겼다고 놀림을 당했기에 「미운 오리새끼」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함으로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바르게 받고, 그 말씀대로 정직하게 사는 성도야 말로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불순종과 불신앙과 의심하는 기독교 인이라면 가인 같은 죄를 범하게 됩니다.
여기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의 말씀은 당연히 형에게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먼저 된 자에게 던지는 말씀입니다. 먼저 믿는 우리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먼저 믿는 OOO야! 네 사랑하는 가족이 어디 있느냐? 네 사랑하는 형제들이 어디 있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죽어가는 세상 백성들과 내 형제 자매를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린 간접적으로 살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인처럼 아벨을 죽이지는 않았어도 반대로 가인의 죽음을 당연히 여기고 그냥 방치하는 것과 저주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살인죄를 범하게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원수라도 사랑하는 선한 그리스도인 다 되시길 ...
바보는 염려하지 않는다.
바보란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지능이 부족한 이유는 '뇌'와 관련이 있습니다. 뇌수(腦髓)의 병을 앓는 과정에서 또는 앓고 난 뒤에 지능 저하됩니다. 뇌혈관 질환, 노인 치매, 그밖에 뇌수 기질성 질환에도 뇌기능이 저하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보들은 근심, 걱정,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지하는 능력이 높을수록, 그러니까 똑똑할수록 걱정이 많고, 좀 둔할수록 천하태평입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근심, 걱정, 염려라는 그 일은 똑똑한 사람이나 바보에게나 똑같이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똑같은 일을 어떤 사람은 근심, 걱정, 염려하면서 안절부절하고, 어떤 사람은 뭐, 그까짓 것 별것 아니야... 하면서 신경도 안 쓴다는 것이지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6:25)
주님! 저는 그동안 바보들도 안 하는 '염려'로 가득 찬 삶을 살았군요! 염려, 근심, 걱정한다고 해서 한다고 그 일이 더 나아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시 37:5) 이제부터 나의 길을 여호와께 맡깁니다.
포로와 프로
점 하나에 많은 차이가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남’에서 점 하나를 빼면 내가 존중하는 ‘님’이 됩니다. 이렇게 점 하나에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또 하나의 단어가 바로 ‘포로’와 ‘프로’입니다. 포로는 무엇인가에 매여 있고 부자유한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프로는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자유가 있습니다. 점 하나가 구원입니다. 믿음입니다.
믿음 아니면 의심입니다. 말씀 아니면 미혹입니다. 가인 아니면 아벨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 쾌락, 세상적 성취의 포로가 돼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소유, 즐거움, 성취를 위해 열심히 뛰지만 결국 그것이 자신을 포로삼아 지배합니다. 마침내 자아를 망가뜨립니다.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프로가 됐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정 리더로 멋지게 쓰임 받았습니다. 어떻게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 프로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든 제약을 이겨냈습니다. 둘째, 그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라이벌들이 그를 제거하려고 흠을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셋째, 그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전문성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여러분이 영성 도덕성 전문성을 갖춘다면 어떤 ‘포로’의 상황일지라도 ‘프로’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은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고 끊임없이 묻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예, 내 아우는 바로 여기 나와 손을 꼭 붙잡고 함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합시다. 주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중한 영혼들을 보는 눈들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생명 다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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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다운로드 | DATE : 2018-09-11 04: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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