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없는 Q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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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감신대서 ‘Q복음서’ 대토론회
내주 화요일(27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 부근 냉천동 감리교신학대학 백주년기념관 강당에서 “Q복음서와 한국 교회”라는 제목으로 정예로운 신학자들과 전국의 청년 신학도들이 모여 대토론회를 연다.
중앙일보의 일요판 신문인 ‘중앙SUNDAY’에 1년 넘도록 연재된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에서 제기된 많은 신학적 주제들을 검증하고, 도마복음의 발견으로 그 역사적 실체성이 확실해졌으며 20세기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탐구의 새로운 근간을 형성한 Q복음서가 던지는 메시지가 과연 한국 교회를 어떻게 새롭게 할 수 있는가를 논의한다.
도마복음서는 나일강변 사막에서 발굴된(1945년 12월경) 원시기독교의 모습을 전하는 새로운 복음서이지만, Q복음서는 19세기 초부터 150년의 세월을 거쳐 신학자들이 공관복음서의 엄밀한 문헌비평을 통하여 공관복음서의 여러 갈래의 자료더미 속에서 발견해 낸 새로운 복음서다. 이 Q복음서는 보수신학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4복음서 외의 외경이 아니라, 4복음서 특히 마태와 누가 속에 들어 있는 현존하는 정경의 일부이기 때문에 백안시하거나 부정하거나 소외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문헌이라는 데 그 특이성과 문제성이 있다. 신약성서 정경의 권위 속에 내장되어 있는 하나의 파격이기 때문에 공포스럽기조차 한 것이다.
이 Q복음서는 역사적 예수의 말씀만을 모은 어록복음서인데 이 복음서 속에는 십자가와 부활이 명시되지 않는다. 미국의 클레어몬트신학대학의 저명한 신학자 버튼 맥(Burton L. Mack) 교수 아래서 도마복음서와 Q복음서 등 기독교의 기원에 관하여 학문을 연마한 유태엽(감신대 성서신학) 교수는 Q복음서의 의의를 전반적으로 소개할 것이다. 한국 신학의 석학 안병무 선생의 제자이며, 독일의 함부르크대학에서 Q복음서를 만들어낸 Q공동체의 사회사를 연구한 김명수(경성대 성서신학) 교수는 복음서의 출발은 마가가 아니라 Q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2000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가 바울의 부활체험 하나에 매달려 왔다고 비판하며, 기독교가 바울의 다메섹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면 그것은 가현론(假現論·도케티즘)의 허환(虛幻)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확언한다. 기독교는 환상이 아니며, 역사적 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반인의 상식과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선교학과 에큐메니칼신학을 공부한 채수일(한신대 선교신학) 교수는 바울-어거스틴-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 전통에서 밀려난 비주류의 전통도 기독교의 이해를 위하여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학문으로서 복원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없이도 기독교가 종교로서 성립 가능한지에 관한 논의가 허심탄회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 예수를 한국 선교의 새로운 가능성으로서 심화시키지 않으면 한국 교회에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출처:중앙일보 칼럼 글=김용옥, 전지은 기도자 제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고린도후서6:14-16)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요한계시록6:2)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립보서3:7-9)
살아계신 하나님, 이 땅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의의 옷을 입고서 불법과 함께 섞이며 믿지 않는 자와 사귀는 거짓된 도모를 드러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율법에 매이게 하고 진리를 불의로 대적하는 너 사단아,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 외에 주목케하는 모든 속임을 가지고 이 땅 가운데서 묶임을 받고 떠나갈지어다! 주님, 주님이 주신 이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더이상 사람의 헛된 지식과 교리로 더하거나 감할 것이 없는 완전한 진리임을 선포합니다. 감리교신학대학과 이 모임을 주체하는 모든 자들이 이 시간 가운데 오히려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 부활을 깨닫고 인정하며 진리로 결론내리도록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바울의 고백처럼 십자가 외에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복음만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로 회복하여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말세에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더욱 깨어 있어 진리위에 견고히 세워진 성도들이 되도록 말씀하시고 쉬지 않으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십자가 복음만 이 땅 가운데에서 영화롭게 하실 주님을 높여 드립니다.
기사제공 : 전지은 (기도정보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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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도마 복음서의 도마는 과연 어떤 자인가?
그는 늘 비판적 시각과 의심으로 일관된 자이었다.
그가 과연 온전한 주님을 보았을까?
사랑을 의심하던자.
부활을 의심하던자.
그가 과연 주님의 일하심을 온전한 시각으로 보았을까?
더욱이 가롯 유다가 본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
보통 우린 자신의 직업이나 의식 구조에 따라서 상대방을 보고 판단하려 든다.
사기꾼은 모든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한다.
의사는 모든 사람을 환자로 본다.
판사는 모든 사람들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볼 것이다.
목사는 만나는 사람들을 영적인 부분을 통해 중심을 보려고 할것이다.
마음이 착한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믿고 바보 소릴 듣는다.
우리는 구원의 이름으로 오직 예수 밖에는 듣지 못했고, 부활을 믿기에 그분을 따를것이다.
믿지 못하는 자들은 보기를 원한다.
누구나 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린 믿음이 적은 자들일 뿐이다.
그리고 주께 기도 드릴 뿐인것이다.
믿음을 풍성히 달라고 말이다.
믿음이란 신뢰이고 그분을 신뢰하고 행할 때에 그분이 역사하신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부활 하신 예수님은 도마에게 보이시며 확인하라고 하신다.
너무나 사랑하시게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러나 말씀하신다.
"보는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그 말씀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잘 보이시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하면 그분의 일하심을 볼 수 있게된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게 하리라...."
믿지 않는 자들과 멍애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
그들의 행하는 것의 모양이라도 따라하지 마십시오.
(시01:0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롬0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히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의인은 부지런히 일하며 사랑을 전하고 나누기에 바뻐서 논쟁을 할 시간이 없는 자이며, 악인은 말하며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듯 하나 분쟁과 자신의 이익을 위하는 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