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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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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1,698회 작성일 07-11-28 10:48

본문

*말틴 루터의 기독교적 신앙관과 개혁!
믿음만으로! sola fide 은총만으로! sola gratia 성서만으로! sola scriptura

루터의 종교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었다. 그의 개혁 작업의 핵심은 하나님을 인간의 눈으로 판단하고 그 위에 자신의 종교를 쌓아가려는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중세 카톨릭 교회라고해서 성경의 권위와 영감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또한 선행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믿음의 중요성에 무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급진적이었던 것은 이 말들 앞에 붙은 한 작은 단어, “오직”(sola) 이었다. 루터는 카톨릭 교회가 이것들을 말하면서도 실은 그 밑바닥에는 인간중심의 종교가 사로잡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그럼으로 해서 저들은 성경의 권위를 말하면서도 그 성경을 해석하는 교황의 권위를 그 위에 세웠으며, 은혜를 하나님이 주신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인간이 율법의 의를 쌓는 데 도움을 주는 하나의 ‘능력’으로만 이해하였고,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처음에는 시작하다가 어느덧 ‘선행으로 형성된 믿음’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성경은 그 문자가 자명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서 자신 이외의 다른 어떤 해석자도 중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성서만으로!), 은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을 보시는 ‘호의’로 이해하였고(은혜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은 단번에 모든 율법을 성취하며 인간을 의롭게 한다고 하였다(믿음만으로!).

Three Solas

하나님 중심의 원칙 하에서 나온 이 세 가지 종교개혁의 케치프레이즈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만으로’의 원칙이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다. 곧, 신구약을 통털어 성경의 본문 안에서 말씀하시는 이는 그리스도로서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빼보라. 그리하면 성경에서 무엇을 더 찾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며, ‘은혜만으로’는 대속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의 절대적 중요함과 또한 충분함을 주장하였고, ‘믿음만으로’는 율법의 종결자로 오시며 그 요구를 ‘텅 비게’ 하시는 신인(神人)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전제로하는 것이다.“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은 교리뿐만 아니라 윤리, 문화, 정치에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루터는 이 조항 위에 교회가 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고 그 중요성을 강변하였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더 이상 의롭게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행위를 드릴 필요가 없다. 대신 그는 그의 행위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베푼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 안에서 충실할 때 누구보다도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며, 율법의 완성인 이웃 사랑(갈 5:14)을 실천하는 것이다.

*크리스쳔의 자유의 삶!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선행을 한다. 루터는 선행이 선한 사람을 만든다는 스콜라주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선한 사람이 선행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믿음이 없을 때 사람은 어쩔수 없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는데, 율법에 의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선행으로 자기 의를 쌓으려고 하거나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이제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 율법이 뭐라고 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선행을 하게 된다. 그는 이제 자신의 율법을 스스로 쓰면서 사랑의 행위를 한다. 그는 자신의 선행을 믿음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데 사용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시 1:3)“오, 이것은 의로운 크리스찬의 자유를 확정시켜주는 황금같고 사랑스러운 말입니다. 악인은 저들이 너무나도 확고히 속박되어 있는 정한 날들, 정한 시간, 어떤 일들의 종류, 어떤 장소들이 있어서 저들의 이웃이 굶어 죽어 간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정한 것들로 부터 속박을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복있는 사람은 어느 때나, 어느 일이나, 어느 장소나, 어느 사람에게 이건간에 자유롭습니다. 어느 상황이나 그는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그의 손이 무엇을 찾아 일하든 그는 그것을 할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방인도 아니고, 희랍인도 아니며, 야만인도 아닙니다. 그는 정확히 말해 뭐라고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나 인간이 그의 일을 중요로 할 때마다 자신의 열매를 시절을 좇아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그의 열매는 이름도 없고, 그는 이름을 드러내지도 않고, 그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며, 그가 물을 먹어 열매를 맺은 사실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는 한 개인으로서 한 사람을, 한 번에, 한 장소에서, 한 일로 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이를, 모든 장소에서, 그리고 언제나 섬깁니다. 그는 진실로 모든 계절, 모든 일들,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모습을 따라서 모든 이들 속에 모든 이이며 모든 이들 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시냇가의 좋은 나무 -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7). 루터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의 삶에 대한 이미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즐겨 사용하였다.


*교육자 루터!
종교영역에 있어서의 개혁은 다른 영역, 특히 교육의 영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경에 대한 루터의 강조는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성경 읽기를 의무화 시켰다. 이는 바로 노소를 불문한 모든 사람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했으며, 또한 학생들이 성경 연구를 위한 준비를 일찌감치 갖추도록 했다.

개혁자의 ‘만인제사장설’도 몇 가지 면에서 교육의 개념을 바꾸었다. 성당학교와 수도원 학교에서의 교육은 무엇보다 성직자의 양성을 목표로 하였으나 이제로부터는 교육이 교회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도 섬길 것이었다. 또한 성직자들이 교육을 책임진다는 생각도 뒤로 물러났다. 교육은 우선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지워주신 책임이었으며, 다음으로 교회가 주선하는 교사의 책임이 되었다.

루터는 보편적이고 의무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본 사람이었다. 그것은 공교육의 시작을 의미한다. 교과 과정에 대해서도 그는 폭넓은 이해를 가졌다. 이전에는 주로 읽기, 쓰기, 기독교학을 공부했으나 루터는 일단 모국어와 소교리 문답서를 충분히 익힌 다음에는 성경 언어, 외국어, 문법, 수사학, 논리, 문학, 시, 역사, 음악, 수학, 체육, 심지어 자연과학까지 교과 과정에 넣을 것을 주장하였다. 루터 자신은 역사, 음악, 자연과학을 좋아하였다.

그는 또한 어린이 심리에 대한 창의적 접근을 하였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저들의 주인이나 상전처럼 굴 것이 아니라 저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저들과 같이 일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을 움직이려 했을 때, 먼저 인간이 되셔야 했다.” 한편 루터는 교사의 지위를 높여 줌으로써 근대 교육의 발전에 기여하였는데 그 자신도 만일 설교의 임무를 그만두게 된다면 무엇보다도 학교 교사의 임무를 맡고 싶을 것이라고 하였다.

루터는 교육에 관한 많은 저술을 하였으며 교육에 대한 질문을 보내오는 제후들과 그들의 궁정 비서들, 및 각 지역 의회 의원들과의 서신 왕래를 통하여 자신의 교육 이념을 퍼뜨렸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비텐베르크 대학 도서관의 장서를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 쉬지 않고 힘썼다.

학생에게 체벌을 하는 선생님.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안에 들어있는 한스 홀바인 2세의 그림. 루터는 어릴 적에 심한 체벌을 받은 적이 있지만, 체벌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다만 교사는 학생의 게으름과 능력 부족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사의 학습 방법은 어린이의 필요에 맞게 이루어져 아이들이 ‘즐겁고 쾌활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일찍부터 주장하였다.루터는 교육의 목표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경외를 배우는 것, 이웃과 사회·국가를 섬기는 것, 인성계발, 기도의 생활화를 꼽았다.


*루터와 음악!
루터는 음악이 신학 다음으로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하였다. 음악은 신학과 닮은 점이 많은데 특히 영혼을 고치고 영들을 소생시키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음악이 없으면 인간은 목석과 마찬가지이지만 음악이 있으면 마귀를 멀리 보낼 수 있다. 루터는 이것을 영적인 고통 가운데에서 직접 경험하였다. “음악은 나를 자주 소생시켜 주고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러나 음악을 멸시하는 ‘열광주의자들’은 음악의 이 유익을 몰랐다. 그들은 오르간을 마귀의 유산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루터는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이다. 음악은 또한 마귀를 몰아내주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음악은 사람의 모든 분노, 음란, 교만, 그리고 모든 악을 잊게 해준다. 나는 음악을 신학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며 무한히 아낀다.”고 하였다.

한편 루터는 카톨릭교회에서 한정된 이들에 의해서만 사용되오던 찬송을 만인의 소유물로 돌려주었다. 이전의 그레고리안 찬트에서는 예배시 회중은 잠잠히 있고 성가대의 전문가들만이 송영을 번갈아 불렀다.

그러나 루터는 일반 회중도 찬송을 부를 수 있게 예배 의식을 개혁하였으며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비롯하여 많은 찬송곡을 작사, 작곡 하였다. 그의 곡들은 ‘코랄’이라는 장르로 자리 잡는다. 그는 자신의 ‘작고 못생긴 목소리’를 불평했지만 플루트와 류트를 연주하는 능수능란한 음악가였다.

루터는 사람을 움직이는 찬송의 능력을 믿었다. 찬송은 보통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운 이들에게도 성경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가장이 가족에게 찬송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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