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학-현대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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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학(현대교회사) - (1) 신앙과 신학
종교개혁 시대를 ‘근세’로 보고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부터 1910년-1920년까지를 ‘근대’라고 한다면, 현대교회사는 분리파 운동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역사 과정에 대한 모든 내용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역사신학 안에서의 현대교회사는 교회의 시작에서부터 종교개혁 시까지의 교회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던 동,서의 개념, 동로마와 서로마,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란 개념에서 벗어나 개신교의 내용으로만 집중되어지며, 그 출발점은 루터와 칼빈 이후, 그들의 사상을 교리화, 제도화 시킨 소위, 개신교 정통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루터주의 및 칼빈주의에서부터 이루어진다.
현대교회사는 근세와 근대 및 현대철학의 내용, 인간의 합리적 사고와 그것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 및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로서의 보수주의 신학의 상관성 안에서 연구하는 것이 효과적인 접근방법이 된다. 현대교회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루어진 경건주의에서부터 복음주의, 대각성 운동, 근본주의 운동의 내용과 합리주의, 계몽주의, 로망주의에 의한 철학적 사고와 관련되어서 나타나는 자연신론,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을 이해하고 여기에 대한 수많은 신학자들의 독특한 신학적 사고들을 연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예루살렘교회에서 시작되어진 최초의 교회가 2000여 년의 역사 과정을 거치고 현대에 와서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볼 수 있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조직신학 안에서도 설명되어지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아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개신교 정통주의자로 알려지고 있는 루터주의자, 칼빈주의자들은 개혁자들의 사상을 교리화, 제도화 시켰는데, 그 체계의 방법이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과 유사하다고 하여 스콜라주의로 불리어지고도 있다. 그들은 개혁자들의 체험적인 신앙보다는 지적인 요소들을 너무 강조, 기독교 신앙을 문자적, 수동적인 상황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이와 같은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경건주의가 등장하였다. 스페너(Philipp Jacob Spener, 1635-1705)와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63 -1727)의 주도 하에서 이루어진 경건주의 운동은, 형식적으로 교회에만 참석하여 신앙적인 안주를 얻으려는 스콜라주의적 신앙에 대해서, 중생과 영적체험을 강조하고 성서 연구 및 전도에 대한 적극성 및 신앙인의 삶으로서 부적절한 모든 욕망이나 욕구 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건의 삶을 나타내었다.
영국의 복음주의는 감리교회의 선구자인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가 중심에 있는데, 그도 루터처럼 회심하기 이전에 갈등 기간이 있었다. 신앙적인 삶으로 금식, 성서 연구, 전도, 감옥 방문, 구제 활동 등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 1735년 선교지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만난 풍랑은 웨슬레로 하여금 두려움으로 떨게 하였으나 모라비아교도들의 평화에 찬 신앙적 태도를 보면서 자신의 신앙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에서의 선교를 단념하고 영국에 돌아온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런던의 올더스게이트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듣는 중에 뜨거운 체험을 한 이후로 신앙의 불확실성을 벗어 던져 버리고 본격적인 감리교 운동을 시작하였다. 신앙체험 이후의 웨슬레의 사고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는 루터의 신앙 의인화에서 출발되어진다. 그러나 웨슬레는 루터의 의인화 즉 법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함을 받는다는 ‘칭의론’에 머무르지 않고 법적인 인정만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으로서의 삶, 성화의 삶을 강조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선행 은총(선재적 은총)과 자유의지 안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아르미니우스의 보편 속죄설 및 자유의지의 사상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서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서 개신교 신학에서 새로운 획을 긋는 신학적 사고가 되는 것이다. 루터, 칼빈, 웨슬레의 신학에서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 등은 고대교회의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의 범주 속에 들어 있지만 인간, 죄, 구원의 문제는 원죄를 인정한다는 것에서는 공통적이고 예정론과 보편 속죄설,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라는 신학적 사고 안에서는 구별된 표현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20년 청교도들의 미국 개척에서부터 시작되어져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트랜드, 독일, 네델란드 등지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진 미국의 개신교는 성공회, 회중교회, 퀘이커파, 장로교, 그리고 대각성 운동에서부터는 감리교회 등의 확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1차 대각성 운동은 1726년 홀랜드 개혁교회 성직자였던 화이젠(Theodore J. Frelinghuysen, 1691-1748)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나 기억해야 할 인물로는 휱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와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가 있다. 웨슬레와 함께 감리교 운동을 하였으나 신학적 사고로 인하여 결별하게 되었던 칼빈주의적 감리교도, 휱필드의 미국 부흥회는 대각성 운동 기간 중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에드워즈는 대각성 운동의 중심인물로서 미국 교회의 신학에 특별한 공헌을 했는데 그의 신학적 사고는 청교도 신앙 안에서 칼빈의 예정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775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다음해, 1776년에는 독립선언이 선포되어지면서 1783년까지 독립 전쟁, 그리고 1789년 미합중국의 건국 이후, 종교 자유의 허락은 미국 안에서의 모든 종교적 활동에서 개신교의 활발한 움직임을 독려한 것이 되었다. 독립 전쟁으로 인하여 주춤했던 2차 대각성 운동(1800년경)이 일어났고 그 지도자로는 드와잇(Timothy Dwight, 1752-1817)이 있으나 부흥운동에서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는 피니(Charles Grandson Finney, 1792-1875)를 들 수 있다. 이때 표현된 예배의 특징으로는 야외 집회를 통하여 은혜 받는 것을 들 수 있겠는데, 이와 같은 예배의 형태는 자연스럽게 부흥회적인 성격을 띄우게 되었다. 이 부흥운동의 영향은 선교운동(선교회 조직, 성서 및 복음지 발행)과 더불어 교육운동(대학과 신학교 설립) 및 자선사업 운동(봉사 및 구제활동), 도덕적 개혁 운동(구제, 노예 폐지운동)으로 나타났고 그 결과로 교회와 교인의 숫자적 증가를 가져 왔으며 미국 전 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기독교 정신이 세계에 전하여지게 되었다.
미국의 부흥운동 기간 중에 영국 비국교도들의 확장 안에서 나타난 새로운 운동들은 어빙(Edward Irving, 1792-1834)에 의한 성령의 은사 강조,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한 ‘플리머드 형제단’의 모임 및 부스(William Booth, 1829-1912)의 구세군 운동을 들 수 있다. 이 운동들은 미국의 2차 대각성 운동과 관련해서 생각되어지는 영국 비국교도들의 특수한 내용으로 평가되어진다. 또한 미국 내에서의 비기독교적인 종파들, 안식교(William Miller, 1782-1849), 여호와 증인(Charles Taze Russell, 1852- 1916), 몰몬교(Joseph Smith, 1805-1844) 등도 미국의 종교 자유 정책 안에서 등장, 현재는 세계적인 분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본주의 운동의 지도자 무디(Dwzight L. Moody, 1837-1899)는 보수 신앙에 대한 위협적인 세력들에 맞서 ‘근본주의 5조’(성서의 무오류, 예수의 신성, 동정녀 탄생, 대속적인 속죄, 예수의 육신부활과 재림)를 채택하고 그 내용을 성서학원, 부흥사들의 순회 활동 등으로 강화시켰다. 근본주의의 등장으로 현대교회는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주의 신학에 대한 구분점 들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에 대한 신학적 사고가 현대교회 안에서 더욱더 광범위한 내용으로 확산되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현대교회의 유형에서 서방과 동방교회가 아닌 개신교만의 상황을 보아도 루터주의와 칼빈주의, 영국 성공회, 그리고 분리파 교회들의 다양성 안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다양성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주의라는 신학적 사고에 대한 현대교회의 위치가 어느 곳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언급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교파 안에서도 칼빈주의적, 아르미니우스적 사고가 있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 사상이 연관되어 혼합된 신학 사고로 표현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건주의가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소위, 자연신론은 교회 안에서 경건주의와는 다른 또 하나의 신학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철학적 사고, 즉 합리주의와의 상관성 속에 나타난다. 영국의 감리교 운동, 미국의 대각성 운동, 근본주의 운동을 합리주의 사고와는 상대적 개념으로 보고 경건주의에서부터 근본주의까지의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다른 것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보편적인 신학의 흐름은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현대신학을 이해하는데서 도움이 된다.
합리주의는 근세와 근대의 과학 및 철학이 시작되면서 태동되었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와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주장, 우주 중심에 있던 지구의 흔들림, 그것은 곧 신앙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의 문을 열어 놓게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합리주의는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에 대한 철학적 사고에서부터 시작되어진다. 신앙과 지식을 분리하고 실험을 지식의 유일한 원천으로 하여 경험과 사실에 대한 개별적인 관찰을 중요시하였던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이성적 증명 없이는 신의 존재와 묵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로크(John Locke, 1632-1704), 모든 개념은 증명될 때까지 의심해야 하고 적절한 증명은 수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5-1650), 모든 사물에 신이 내재되어 있다는 범신론적 사고 안에서 인격적인 신과 영혼 불멸을 믿지 않은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의 사상 등은 자연신론을 등장시키도록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영국의 첫 자연신론자, 할버트(Edward Herbert, 1583-1648)는 하나님의 실재를 인정하고 덕, 실천 등을 강조하여 온전한 편이었으나, 기독교의 신비성은 교직이 만든 것이라고 한 톨랜드(John Toland, 1670-1722),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미신이라는 틴달(Matthew Tindal, 1657-1753)의 사상 등은 합리주의와의 상관성 안에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신론에 대한 내용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 또는 계시와 이성이라는 신학적 사고와도 무관치 않고 기독교 신앙의 자연계시, 보편계시에 대한 교리적인 해석에서도 그 내용들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경건주의와는 상대적 개념이면서 자유주의 신학의 전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합리주의의 사고, 즉 영국의 경험론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대륙의 합리론은 계몽주의로 진전되어졌고 이 운동은 영국, 프랑스, 독일의 세 주류로 형성되어졌는데, 교회사적인 관점에서는 영국의 경험론과 자연신론, 독일의 계몽운동 및 관렴론과 자유주의 신학이란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계몽주의의 사상은 이성의 힘과 인간의 가능성 및 진보를 믿는, 인간 중심적 확신과 바탕 안에서 비판 및 회의와 부정의 정신이 함께하고 있으며 계몽주의의 중요한 인물로는 영국의 로크, 흄(David Hume, 1711-1776), 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 1694-1778), 그리고 독일의 볼프(Christian Wolf, 1679-1754), 레씽(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 등이 있다. 수학 같이 논리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참이 아니라는 볼프, 성서에 대한 내용을 도덕적 가르침으로 나타내고 있는 레씽의 사고는 성서의 기적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의문,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종교 안에 나타나는 기독론의 문제들을 갖고 있었다.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사상의 공존 속에 있던 독일 지식인들이 사회 변혁이 아닌 인간의 내면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소위 로망주의(낭만주의)가 진전하게 되었다. 로망주의는 계몽주의의 이상과 현실과의 간격을 발견, 계몽사상을 비판하고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반성으로 원시 상태, 즉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불란서의 룻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에 의해서 유럽에 전하여 진 것으로 보지만, 그 특색은 독일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칸트(Immanuel Cant, 1724-1804)는 이성의 힘을 과신해 온 계몽주의를 비판하고 경험론과 합리론을 동시에 비판, 수용함으로서 독일의 관렴론에 대한 체계를 세웠는데, 그것은 종합적으로 이루어진 사고 안에는 항상 긍정과 부정의 내용이 표출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된다. 칸트의 유신론적 윤리 안에서 나타나는 도덕 종교의 내용은 기독교 신앙의 은총이나 기도와 같은 모든 요소가 부정되어짐으로서 성서의 역사성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고로 표현되어지기도 한다.
쉴라이에르마허(Friedrich Daniel Ernest Schleiermacher, 1768 -1834)는 경건주의의 운동과 관련되어 있는 모라비아 교육을 받았고 계몽주의 및 낭만주의에 속한다. 이와 같은 전제 아래서 그의 사고는 경건성과 철학, 계시와 이성의 종합이라는 의미 안에서 파악되어진다. 그러나 쉴라이에르마허의 감정으로서의 종교, 종교는 인간의 감정에 기초하여 신을 절대로 의존하는 생활이라고 하는 내용 안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의 의미는 그리스도 중심 속에 있지만, 그가 신조, 기적, 계시, 영감 등을 배제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유의해야 한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변증법은 칸트에서부터 쉴라이에르마허로 이어졌던 종합적 사고의 결정판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 범신론자라고 할 수 있는 헤켈은 역사를 절대 정신에 변증법적 발전으로 보고 있는데 그에 절대 정신이란 구체적으로 유한과 무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개념의 역사인 동시에 사실의 역사이다. 신은 절대 정신으로서 무한 정신이고 인간은 신에 대한 상대적 정신으로서 유한 정신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한과 유한은 세계 속에서 병립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 정신으로서의 신은 유한 정신의 근거로서, 유한 정신은 그 근거 위에서, 근거를 향하여 존재한다. 세계 속에서 신과 인간 사이에 일치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한이 무한 속으로’라는 개념 안에서 종교가 성립되고 모든 종교에는 이와 같은 시도들이 있지만 기독교는 그것을 완전히 실현한 종교가 된다. 그는 이런 개념 안에서 인간은 자연과 관념의 합, 성부와 성자의 합은 성령, 예수는 신과 인간의 합으로 표현하고 있다.
개신교 정통주의 이후, 합리주의 사고를 자연신론과의 상관성 안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합리주의에 의한 계몽운동이나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 독일의 관념론의 사고들은 자유주의 신학과의 상관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칸트, 쉴라이에르마허, 헤겔의 종합 사상들이 기독교 신학 안에서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사고는 보수주의 신학적 입장에서는 절충점을 만들기가 힘들다. 따라서 계몽주의 및 낭만주의, 특히, 독일의 관념론에 대한 종합적 사고들이 성서비평 및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 비평과 자유주의 신학의 출발은 창세기에서 나타나는 신명의 차이와 기사의 중복 등을 문제시 한 아스트럭(Jean Astruc, 1684-1766), 구약 비판의 안내자가 된 아이히호른(Johann Gottfried Eichorn, 1752-1827) 등도 언급되어지지만, 예수의 생애에 관한 내용을 문제 삼아 역사적 비평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기독교를 설명하려 했던 바우르(Ferdinand Christian Baur, 1792-1860)와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 1808-1874)에서 찾게 된다. 신약을 연구했던 바우르는 튜빙겐 학파를 세우고 고전적 성서 해석들을 반대하여 성서의 기록이 어떤 역사적인 과정에서 이루어졌는가를 보여 주려고 했으며, 슈트라우스는 ‘예수전’에서 예수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인정 하였으나 삶의 자리는 인간 안에서 볼 것을 주장하였다. 예수는 물론 사셨지만, 신약의 그리스도의 초인적인 특색들은 모두 신화의 조작으로 되어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위, 문서설의 주창자인 아이히호른 이후, 모세오경 안에서 J. E. D. P의 순서를 정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스라엘 종교가 근동 종교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생겼다고 주장한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 성서의 성립된 사회적 배경과 상황을 중요시 한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 궁켈의 비평 방법을 신약에 적용, 예수의 모든 선포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 등을 바르게 아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보고 여기에 근거해서 6경에 접근하는 라드(Gerhard von Rad, 1901-1971), 출애굽에서 가나안 입성까지의 모든 경험들은 독립적 주제인데 이것 이후에, 이스라엘 전체의 경험과 사건으로 결합되어졌다는 노트(Martin Noth, 1902-1968) 등도 성서 비평에서의 한 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현대교회에서의 성서 비평의 내용을 문서 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으로, 또는 종교사학파, 양식사학파, 전승사학파로 구별하여 그 시작과 중심 사상에는 벨하우젠, 궁켈, 불트만, 라드, 노트 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세분화되어지고 있는 현대교회의 성서 비평에 대한 방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교회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리출(Albrecht Ritschl, 1822-1889)에서부터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까지로 알려지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의 내용은 보수주의 신학과의 상대성, 즉 성서비평, 탈교리화, 역사에 대한 재해석 및 인간의 도덕적 삶에 기초한 기독교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신학에서의 성서비평에 대한 내용은 성서신학과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과는 구별하려는 입장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성서비평의 내용을 보편화 하여 강조하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신학적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요소는 성서 신학을 포함하여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의 모든 내용 속에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학의 유기적인 상관성 이라는 의미 안에서 성서 비평 학자들의 교리 해석, 역사관 또는 실천신학의 문제도 자유주의 신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신학의 기본적인 내용은 성서 본문에서부터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사 안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하르낙까지로 규정하고 있지만 하르낙과 같은 신학적 사고는 현대교회의 신학적 사고들 안에서도 계속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주의력이 필요하다.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했다는, 그래서 소위, 신정통주의로 불리어진 신학자들, 또는 현대교회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던 신학자들의 사고가 신학일반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졌는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교회 역사 과정에서 나타난 모든 신학적인 내용들의 이해, 나아가서는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의 올바른 이해 안에서 이루어진다.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브루너(Emil Brunner, 1889 -1966),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 등을 현대교회에서의 대표적인 신정통주의자들로 말한다면, 그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학적 사고는 성서 비평이나, 자유주의 신학이 아닌 다른 내용이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성서 비평 및 자유주의 신학적인 요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대교회에서의 신정통주의는 옛 정통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이 보수주의 신학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신정통주의자들의 신학적 사고는 자유주의 신학도 보수주의 신학도 아닌 것 같이 설명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표현에 있어서 주의력이 필요하다.
칼빈이 어거스틴 사상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바르트도 칼빈의 사상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바르트의 사고는 칼빈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러나 성서의 영감설을 부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서 비평을 긍정하고 있는 것에서는 보수주의의 신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있다. 브루너의 자연 신학 변호의 내용도 타종교와의 대화 가능성에 대한 문이 열려져 있고, 니버의 성서 및 원죄에 대한 해석에서도 고전적인 해석에서는 벗어나는 내용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교회사 안에 나타나는 모든 신학적 사고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정통주의자들의 신학적 사고도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라는 내용에서 생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것은 계시와 이성,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등의 신앙적인 내용들이 어떻게 표현되어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별되어지는 두 가지의 사고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가? 아니면,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는가? 나아가서는 한쪽만 강조되어지고 다른 한쪽은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는가? 두 사고의 조화에 있어서도 출발점이 어느 쪽에서 시작되어지고 있는가? 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되어질 수 있는 ‘구별되면서 하나’라는 신학적 사고, 그와 같은 신학적 방법은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sch, 1861-1918) 및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부버(Martin Buber, 1878-1965), 고가르텐(Friedrich Gogarten, 1887-1967),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쿨만(Oscar Cullmann, 1902-1999),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 ), 판넨베르그(Wolfhard Pannenberg, 1928- ), 콕스(Harvey Cox, 1929 - )... , 등 현대교회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의 신학적 사고를 연구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교회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용은 개신교 정통주의에서부터 시작, 경건주의―감리교 운동―대각성 운동―근본주의 및 그리고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로망주의와의 상관성 안에서 나타나는 자연신론―자유주의 신학―신정통주의로 하여 현대교회의 역사적 과정과 신학의 큰 흐름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교회사 안에서 근본주의와 거의 동시에 나타났고 신정통주의 와도 같은 시기에 공존하고 있는 오순절주의는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 즉 성령체험을 강조함으로서 현대교회의 신학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1800년 중반, 영국에서부터 오순절주의에 대한 표출이 있었고 미국 아주사 거리의 부흥 집회(시무어에 의해서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이루어진 집회)에서부터 시작되어진 오순절주의는 약 100여 년간의 짧은 기간에 세계교회의 성령운동, 부흥운동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일반(성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의 정립에서 미흡한 부분을 지적 받고도 있는데, 그것은 오순절주의가 시작되어진 무렵의 현대교회의 상황,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개혁주의, 경건주의, 복음주의, 근본주의의 난립과 여기에 따른 신학의 다양성 및 혼합적 사고로 이루어진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 외에도, 초교파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오순절주의의 신학적 위치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시대를 ‘근세’로 보고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부터 1910년-1920년까지를 ‘근대’라고 한다면, 현대교회사는 분리파 운동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역사 과정에 대한 모든 내용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역사신학 안에서의 현대교회사는 교회의 시작에서부터 종교개혁 시까지의 교회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던 동,서의 개념, 동로마와 서로마,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란 개념에서 벗어나 개신교의 내용으로만 집중되어지며, 그 출발점은 루터와 칼빈 이후, 그들의 사상을 교리화, 제도화 시킨 소위, 개신교 정통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루터주의 및 칼빈주의에서부터 이루어진다.
현대교회사는 근세와 근대 및 현대철학의 내용, 인간의 합리적 사고와 그것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 및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로서의 보수주의 신학의 상관성 안에서 연구하는 것이 효과적인 접근방법이 된다. 현대교회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루어진 경건주의에서부터 복음주의, 대각성 운동, 근본주의 운동의 내용과 합리주의, 계몽주의, 로망주의에 의한 철학적 사고와 관련되어서 나타나는 자연신론,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을 이해하고 여기에 대한 수많은 신학자들의 독특한 신학적 사고들을 연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예루살렘교회에서 시작되어진 최초의 교회가 2000여 년의 역사 과정을 거치고 현대에 와서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볼 수 있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조직신학 안에서도 설명되어지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아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개신교 정통주의자로 알려지고 있는 루터주의자, 칼빈주의자들은 개혁자들의 사상을 교리화, 제도화 시켰는데, 그 체계의 방법이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과 유사하다고 하여 스콜라주의로 불리어지고도 있다. 그들은 개혁자들의 체험적인 신앙보다는 지적인 요소들을 너무 강조, 기독교 신앙을 문자적, 수동적인 상황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이와 같은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경건주의가 등장하였다. 스페너(Philipp Jacob Spener, 1635-1705)와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63 -1727)의 주도 하에서 이루어진 경건주의 운동은, 형식적으로 교회에만 참석하여 신앙적인 안주를 얻으려는 스콜라주의적 신앙에 대해서, 중생과 영적체험을 강조하고 성서 연구 및 전도에 대한 적극성 및 신앙인의 삶으로서 부적절한 모든 욕망이나 욕구 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건의 삶을 나타내었다.
영국의 복음주의는 감리교회의 선구자인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가 중심에 있는데, 그도 루터처럼 회심하기 이전에 갈등 기간이 있었다. 신앙적인 삶으로 금식, 성서 연구, 전도, 감옥 방문, 구제 활동 등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 1735년 선교지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만난 풍랑은 웨슬레로 하여금 두려움으로 떨게 하였으나 모라비아교도들의 평화에 찬 신앙적 태도를 보면서 자신의 신앙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에서의 선교를 단념하고 영국에 돌아온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런던의 올더스게이트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듣는 중에 뜨거운 체험을 한 이후로 신앙의 불확실성을 벗어 던져 버리고 본격적인 감리교 운동을 시작하였다. 신앙체험 이후의 웨슬레의 사고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는 루터의 신앙 의인화에서 출발되어진다. 그러나 웨슬레는 루터의 의인화 즉 법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함을 받는다는 ‘칭의론’에 머무르지 않고 법적인 인정만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으로서의 삶, 성화의 삶을 강조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선행 은총(선재적 은총)과 자유의지 안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아르미니우스의 보편 속죄설 및 자유의지의 사상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서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서 개신교 신학에서 새로운 획을 긋는 신학적 사고가 되는 것이다. 루터, 칼빈, 웨슬레의 신학에서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 등은 고대교회의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의 범주 속에 들어 있지만 인간, 죄, 구원의 문제는 원죄를 인정한다는 것에서는 공통적이고 예정론과 보편 속죄설,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라는 신학적 사고 안에서는 구별된 표현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20년 청교도들의 미국 개척에서부터 시작되어져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트랜드, 독일, 네델란드 등지에서 이민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진 미국의 개신교는 성공회, 회중교회, 퀘이커파, 장로교, 그리고 대각성 운동에서부터는 감리교회 등의 확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1차 대각성 운동은 1726년 홀랜드 개혁교회 성직자였던 화이젠(Theodore J. Frelinghuysen, 1691-1748)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나 기억해야 할 인물로는 휱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와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가 있다. 웨슬레와 함께 감리교 운동을 하였으나 신학적 사고로 인하여 결별하게 되었던 칼빈주의적 감리교도, 휱필드의 미국 부흥회는 대각성 운동 기간 중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에드워즈는 대각성 운동의 중심인물로서 미국 교회의 신학에 특별한 공헌을 했는데 그의 신학적 사고는 청교도 신앙 안에서 칼빈의 예정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775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다음해, 1776년에는 독립선언이 선포되어지면서 1783년까지 독립 전쟁, 그리고 1789년 미합중국의 건국 이후, 종교 자유의 허락은 미국 안에서의 모든 종교적 활동에서 개신교의 활발한 움직임을 독려한 것이 되었다. 독립 전쟁으로 인하여 주춤했던 2차 대각성 운동(1800년경)이 일어났고 그 지도자로는 드와잇(Timothy Dwight, 1752-1817)이 있으나 부흥운동에서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는 피니(Charles Grandson Finney, 1792-1875)를 들 수 있다. 이때 표현된 예배의 특징으로는 야외 집회를 통하여 은혜 받는 것을 들 수 있겠는데, 이와 같은 예배의 형태는 자연스럽게 부흥회적인 성격을 띄우게 되었다. 이 부흥운동의 영향은 선교운동(선교회 조직, 성서 및 복음지 발행)과 더불어 교육운동(대학과 신학교 설립) 및 자선사업 운동(봉사 및 구제활동), 도덕적 개혁 운동(구제, 노예 폐지운동)으로 나타났고 그 결과로 교회와 교인의 숫자적 증가를 가져 왔으며 미국 전 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기독교 정신이 세계에 전하여지게 되었다.
미국의 부흥운동 기간 중에 영국 비국교도들의 확장 안에서 나타난 새로운 운동들은 어빙(Edward Irving, 1792-1834)에 의한 성령의 은사 강조,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한 ‘플리머드 형제단’의 모임 및 부스(William Booth, 1829-1912)의 구세군 운동을 들 수 있다. 이 운동들은 미국의 2차 대각성 운동과 관련해서 생각되어지는 영국 비국교도들의 특수한 내용으로 평가되어진다. 또한 미국 내에서의 비기독교적인 종파들, 안식교(William Miller, 1782-1849), 여호와 증인(Charles Taze Russell, 1852- 1916), 몰몬교(Joseph Smith, 1805-1844) 등도 미국의 종교 자유 정책 안에서 등장, 현재는 세계적인 분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본주의 운동의 지도자 무디(Dwzight L. Moody, 1837-1899)는 보수 신앙에 대한 위협적인 세력들에 맞서 ‘근본주의 5조’(성서의 무오류, 예수의 신성, 동정녀 탄생, 대속적인 속죄, 예수의 육신부활과 재림)를 채택하고 그 내용을 성서학원, 부흥사들의 순회 활동 등으로 강화시켰다. 근본주의의 등장으로 현대교회는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주의 신학에 대한 구분점 들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에 대한 신학적 사고가 현대교회 안에서 더욱더 광범위한 내용으로 확산되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현대교회의 유형에서 서방과 동방교회가 아닌 개신교만의 상황을 보아도 루터주의와 칼빈주의, 영국 성공회, 그리고 분리파 교회들의 다양성 안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다양성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주의라는 신학적 사고에 대한 현대교회의 위치가 어느 곳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언급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교파 안에서도 칼빈주의적, 아르미니우스적 사고가 있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 사상이 연관되어 혼합된 신학 사고로 표현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건주의가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소위, 자연신론은 교회 안에서 경건주의와는 다른 또 하나의 신학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철학적 사고, 즉 합리주의와의 상관성 속에 나타난다. 영국의 감리교 운동, 미국의 대각성 운동, 근본주의 운동을 합리주의 사고와는 상대적 개념으로 보고 경건주의에서부터 근본주의까지의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다른 것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보편적인 신학의 흐름은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현대신학을 이해하는데서 도움이 된다.
합리주의는 근세와 근대의 과학 및 철학이 시작되면서 태동되었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와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주장, 우주 중심에 있던 지구의 흔들림, 그것은 곧 신앙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의 문을 열어 놓게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합리주의는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에 대한 철학적 사고에서부터 시작되어진다. 신앙과 지식을 분리하고 실험을 지식의 유일한 원천으로 하여 경험과 사실에 대한 개별적인 관찰을 중요시하였던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이성적 증명 없이는 신의 존재와 묵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로크(John Locke, 1632-1704), 모든 개념은 증명될 때까지 의심해야 하고 적절한 증명은 수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5-1650), 모든 사물에 신이 내재되어 있다는 범신론적 사고 안에서 인격적인 신과 영혼 불멸을 믿지 않은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의 사상 등은 자연신론을 등장시키도록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영국의 첫 자연신론자, 할버트(Edward Herbert, 1583-1648)는 하나님의 실재를 인정하고 덕, 실천 등을 강조하여 온전한 편이었으나, 기독교의 신비성은 교직이 만든 것이라고 한 톨랜드(John Toland, 1670-1722),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미신이라는 틴달(Matthew Tindal, 1657-1753)의 사상 등은 합리주의와의 상관성 안에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신론에 대한 내용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 또는 계시와 이성이라는 신학적 사고와도 무관치 않고 기독교 신앙의 자연계시, 보편계시에 대한 교리적인 해석에서도 그 내용들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경건주의와는 상대적 개념이면서 자유주의 신학의 전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합리주의의 사고, 즉 영국의 경험론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대륙의 합리론은 계몽주의로 진전되어졌고 이 운동은 영국, 프랑스, 독일의 세 주류로 형성되어졌는데, 교회사적인 관점에서는 영국의 경험론과 자연신론, 독일의 계몽운동 및 관렴론과 자유주의 신학이란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계몽주의의 사상은 이성의 힘과 인간의 가능성 및 진보를 믿는, 인간 중심적 확신과 바탕 안에서 비판 및 회의와 부정의 정신이 함께하고 있으며 계몽주의의 중요한 인물로는 영국의 로크, 흄(David Hume, 1711-1776), 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 1694-1778), 그리고 독일의 볼프(Christian Wolf, 1679-1754), 레씽(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 등이 있다. 수학 같이 논리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참이 아니라는 볼프, 성서에 대한 내용을 도덕적 가르침으로 나타내고 있는 레씽의 사고는 성서의 기적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의문,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종교 안에 나타나는 기독론의 문제들을 갖고 있었다.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사상의 공존 속에 있던 독일 지식인들이 사회 변혁이 아닌 인간의 내면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소위 로망주의(낭만주의)가 진전하게 되었다. 로망주의는 계몽주의의 이상과 현실과의 간격을 발견, 계몽사상을 비판하고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반성으로 원시 상태, 즉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불란서의 룻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에 의해서 유럽에 전하여 진 것으로 보지만, 그 특색은 독일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칸트(Immanuel Cant, 1724-1804)는 이성의 힘을 과신해 온 계몽주의를 비판하고 경험론과 합리론을 동시에 비판, 수용함으로서 독일의 관렴론에 대한 체계를 세웠는데, 그것은 종합적으로 이루어진 사고 안에는 항상 긍정과 부정의 내용이 표출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된다. 칸트의 유신론적 윤리 안에서 나타나는 도덕 종교의 내용은 기독교 신앙의 은총이나 기도와 같은 모든 요소가 부정되어짐으로서 성서의 역사성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고로 표현되어지기도 한다.
쉴라이에르마허(Friedrich Daniel Ernest Schleiermacher, 1768 -1834)는 경건주의의 운동과 관련되어 있는 모라비아 교육을 받았고 계몽주의 및 낭만주의에 속한다. 이와 같은 전제 아래서 그의 사고는 경건성과 철학, 계시와 이성의 종합이라는 의미 안에서 파악되어진다. 그러나 쉴라이에르마허의 감정으로서의 종교, 종교는 인간의 감정에 기초하여 신을 절대로 의존하는 생활이라고 하는 내용 안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의 의미는 그리스도 중심 속에 있지만, 그가 신조, 기적, 계시, 영감 등을 배제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유의해야 한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변증법은 칸트에서부터 쉴라이에르마허로 이어졌던 종합적 사고의 결정판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 범신론자라고 할 수 있는 헤켈은 역사를 절대 정신에 변증법적 발전으로 보고 있는데 그에 절대 정신이란 구체적으로 유한과 무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개념의 역사인 동시에 사실의 역사이다. 신은 절대 정신으로서 무한 정신이고 인간은 신에 대한 상대적 정신으로서 유한 정신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한과 유한은 세계 속에서 병립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 정신으로서의 신은 유한 정신의 근거로서, 유한 정신은 그 근거 위에서, 근거를 향하여 존재한다. 세계 속에서 신과 인간 사이에 일치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한이 무한 속으로’라는 개념 안에서 종교가 성립되고 모든 종교에는 이와 같은 시도들이 있지만 기독교는 그것을 완전히 실현한 종교가 된다. 그는 이런 개념 안에서 인간은 자연과 관념의 합, 성부와 성자의 합은 성령, 예수는 신과 인간의 합으로 표현하고 있다.
개신교 정통주의 이후, 합리주의 사고를 자연신론과의 상관성 안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합리주의에 의한 계몽운동이나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 독일의 관념론의 사고들은 자유주의 신학과의 상관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칸트, 쉴라이에르마허, 헤겔의 종합 사상들이 기독교 신학 안에서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사고는 보수주의 신학적 입장에서는 절충점을 만들기가 힘들다. 따라서 계몽주의 및 낭만주의, 특히, 독일의 관념론에 대한 종합적 사고들이 성서비평 및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 비평과 자유주의 신학의 출발은 창세기에서 나타나는 신명의 차이와 기사의 중복 등을 문제시 한 아스트럭(Jean Astruc, 1684-1766), 구약 비판의 안내자가 된 아이히호른(Johann Gottfried Eichorn, 1752-1827) 등도 언급되어지지만, 예수의 생애에 관한 내용을 문제 삼아 역사적 비평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기독교를 설명하려 했던 바우르(Ferdinand Christian Baur, 1792-1860)와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 1808-1874)에서 찾게 된다. 신약을 연구했던 바우르는 튜빙겐 학파를 세우고 고전적 성서 해석들을 반대하여 성서의 기록이 어떤 역사적인 과정에서 이루어졌는가를 보여 주려고 했으며, 슈트라우스는 ‘예수전’에서 예수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인정 하였으나 삶의 자리는 인간 안에서 볼 것을 주장하였다. 예수는 물론 사셨지만, 신약의 그리스도의 초인적인 특색들은 모두 신화의 조작으로 되어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위, 문서설의 주창자인 아이히호른 이후, 모세오경 안에서 J. E. D. P의 순서를 정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스라엘 종교가 근동 종교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생겼다고 주장한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 성서의 성립된 사회적 배경과 상황을 중요시 한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 궁켈의 비평 방법을 신약에 적용, 예수의 모든 선포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 등을 바르게 아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보고 여기에 근거해서 6경에 접근하는 라드(Gerhard von Rad, 1901-1971), 출애굽에서 가나안 입성까지의 모든 경험들은 독립적 주제인데 이것 이후에, 이스라엘 전체의 경험과 사건으로 결합되어졌다는 노트(Martin Noth, 1902-1968) 등도 성서 비평에서의 한 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현대교회에서의 성서 비평의 내용을 문서 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으로, 또는 종교사학파, 양식사학파, 전승사학파로 구별하여 그 시작과 중심 사상에는 벨하우젠, 궁켈, 불트만, 라드, 노트 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세분화되어지고 있는 현대교회의 성서 비평에 대한 방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교회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리출(Albrecht Ritschl, 1822-1889)에서부터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까지로 알려지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의 내용은 보수주의 신학과의 상대성, 즉 성서비평, 탈교리화, 역사에 대한 재해석 및 인간의 도덕적 삶에 기초한 기독교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신학에서의 성서비평에 대한 내용은 성서신학과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과는 구별하려는 입장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성서비평의 내용을 보편화 하여 강조하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신학적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요소는 성서 신학을 포함하여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의 모든 내용 속에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학의 유기적인 상관성 이라는 의미 안에서 성서 비평 학자들의 교리 해석, 역사관 또는 실천신학의 문제도 자유주의 신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신학의 기본적인 내용은 성서 본문에서부터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사 안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하르낙까지로 규정하고 있지만 하르낙과 같은 신학적 사고는 현대교회의 신학적 사고들 안에서도 계속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주의력이 필요하다.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했다는, 그래서 소위, 신정통주의로 불리어진 신학자들, 또는 현대교회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던 신학자들의 사고가 신학일반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졌는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교회 역사 과정에서 나타난 모든 신학적인 내용들의 이해, 나아가서는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의 올바른 이해 안에서 이루어진다.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브루너(Emil Brunner, 1889 -1966),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 등을 현대교회에서의 대표적인 신정통주의자들로 말한다면, 그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학적 사고는 성서 비평이나, 자유주의 신학이 아닌 다른 내용이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성서 비평 및 자유주의 신학적인 요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대교회에서의 신정통주의는 옛 정통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이 보수주의 신학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신정통주의자들의 신학적 사고는 자유주의 신학도 보수주의 신학도 아닌 것 같이 설명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표현에 있어서 주의력이 필요하다.
칼빈이 어거스틴 사상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바르트도 칼빈의 사상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바르트의 사고는 칼빈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러나 성서의 영감설을 부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서 비평을 긍정하고 있는 것에서는 보수주의의 신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있다. 브루너의 자연 신학 변호의 내용도 타종교와의 대화 가능성에 대한 문이 열려져 있고, 니버의 성서 및 원죄에 대한 해석에서도 고전적인 해석에서는 벗어나는 내용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교회사 안에 나타나는 모든 신학적 사고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정통주의자들의 신학적 사고도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라는 내용에서 생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것은 계시와 이성,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등의 신앙적인 내용들이 어떻게 표현되어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별되어지는 두 가지의 사고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가? 아니면,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는가? 나아가서는 한쪽만 강조되어지고 다른 한쪽은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는가? 두 사고의 조화에 있어서도 출발점이 어느 쪽에서 시작되어지고 있는가? 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되어질 수 있는 ‘구별되면서 하나’라는 신학적 사고, 그와 같은 신학적 방법은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sch, 1861-1918) 및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부버(Martin Buber, 1878-1965), 고가르텐(Friedrich Gogarten, 1887-1967),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쿨만(Oscar Cullmann, 1902-1999),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 ), 판넨베르그(Wolfhard Pannenberg, 1928- ), 콕스(Harvey Cox, 1929 - )... , 등 현대교회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의 신학적 사고를 연구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교회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용은 개신교 정통주의에서부터 시작, 경건주의―감리교 운동―대각성 운동―근본주의 및 그리고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로망주의와의 상관성 안에서 나타나는 자연신론―자유주의 신학―신정통주의로 하여 현대교회의 역사적 과정과 신학의 큰 흐름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교회사 안에서 근본주의와 거의 동시에 나타났고 신정통주의 와도 같은 시기에 공존하고 있는 오순절주의는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 즉 성령체험을 강조함으로서 현대교회의 신학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1800년 중반, 영국에서부터 오순절주의에 대한 표출이 있었고 미국 아주사 거리의 부흥 집회(시무어에 의해서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이루어진 집회)에서부터 시작되어진 오순절주의는 약 100여 년간의 짧은 기간에 세계교회의 성령운동, 부흥운동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일반(성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의 정립에서 미흡한 부분을 지적 받고도 있는데, 그것은 오순절주의가 시작되어진 무렵의 현대교회의 상황,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개혁주의, 경건주의, 복음주의, 근본주의의 난립과 여기에 따른 신학의 다양성 및 혼합적 사고로 이루어진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 외에도, 초교파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오순절주의의 신학적 위치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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