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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바스찬 바하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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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1,975회 작성일 07-11-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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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제나하에 있는 바하의 동상. 루터의 동상 바로 옆에 서 있는데, 그는 루터의 아이제나하 학교의 200년 후배이다, 그는 오라토리오와 칸타타로인해 ‘제5복음서 저자’라고 불린다.

노래하는 신학자였던 루터를 닮은 그의 후예들 중에는 많은 음악가들이 태어나 불후의 곡들을 후대에 남겼다. 이들은 복음의 소식을 하나님께서 주신 음악으로 해석하면서 그의 영광을 찬양하였다.

우리는 루터의 음악적 동료였던 요한 발터를 기억해야 한다. 그는 종교개혁 당시 루터 진영의 음악을 가다듬으며 첫번째 찬송가집을 편집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200년 동안의 유럽 음악의 역사는 루터교 음악의 역사라고 말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작곡가와 오르간 연주가들이 루터교회에서 배출된다.즉, 수난곡의 대가 하인리히 쉬츠와 함께 3S로 불리는 샤인, 샤이트를 비롯하여, 북스테후데, 파헬벨 등의 오르간 음악가, 크뤼거, 네안더 같은 찬송가 작가들이 그들이다.

특히 루터교 음악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로 요한 세바스찬 바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서양 음악의 역사를 BC, AD로 나누었다고 표현되는 그는 루터교 집안 출신의 헨델과 함께 바로크를 대표하는 음악가이면서, 오페라를 제외한 모텟, 오라토리오, 수난곡, 오르간곡, 칸타타 등 모든 음악 장르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다. ‘마태수난곡’과 ‘b단조 미사’ 등 그의 곡들은 후대 모든 작곡자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의 천재성은 유태인이면서 루터교인이었던 펠릭스 멘델스존에 의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 그가 묻혀있던 바하의 ‘마태수난곡’을 1829년 베를린에서 초연함으로써 바하는 서양 음악계에서 복권 되었고 1850년에는 바하협회가 창립된다.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 교회당. 바하는 27년 동안 이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일하면서 300여 곡의 예배용 칸타타 등 많은 교회 음악을 작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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