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의 증거 - 벧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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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듭남의 증거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믿음 소망....의 사람
♥ [벧전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거듭났느냐는 것은 신앙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항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거듭나는 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은 볼 수 없지만 바람 분 흔적은 남듯이, 거듭남 자체는 인식할 수 없어도 거듭남의 증거는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거듭난 사람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의 증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천국을 향한 산 소망(3,4,5)
거듭난 사람은 “내가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에 간다!”는 삶의 우월한 자신감이 내 안에 있는 것으로 천국 간다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소망이 있다는 것으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본문 3-5절에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땅의 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았더라도, 거듭나면 천국을 향한 산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의 네로황제의 대 박해 기간에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당하며 죽어가던 성도들을 위해 기록한 서신입니다. 그들이 죽더라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죽더라도 다시 사는 길이 있고, 죽으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영광스러운 상급이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핍박이 온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승리할 수 있을까요? 핍박은커녕 교회에 나오기만 해줘도 환영해주고 반갑게 맞아 주고 위해서 기도해 줘도 나오기 힘들다고 한다면, 그런 핍박이 올 때 과연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신앙을 지킬 수 있을지 두렵기만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말세가 되면 네로의 핍박은 예고편이고, 네로 핍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환란의 시대가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또한 지금 당장도 육신적인 박해는 없을지 몰라도,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고자 원하는 성도들이라면 많은 영적인 박해를 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악해져만 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거듭난 자로서 더욱 확실한 천국의 소망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로서의 삶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참고 : 박요한 목사님.
2. 우리가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아는 믿음이 생긴다. (5,6,7)
거듭남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이 세상에는 부자지간이라고 반드시 사랑의 관계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그 자녀의 관계는 전적으로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든지 오직 사랑의 동기로 행하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대속의 죽음을 당케 하신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을 보여준 것입니다.
● 이에 대하여 로마서 5장 5절 이하에는 이 같이 말씀합니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고 요한일서 4장 9절 이하에는 이 같이 말씀합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주신 파격적인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그 때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사실인즉,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놀랍고 기이해서 우리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을 우리가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에 받아들이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 예를 들자면,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튜브를 타고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갔다가 그만 튜브를 놓치는 바람에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데, 누군가가 헤엄쳐 와서 그를 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구해준 사람은 너무 힘을 소진한 나머지 쓰러져 죽고 말았다고 합시다. 자, 구출 받은 사람의 입장이라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요? “나 때문에 저 사람이 죽었구나, 나를 죽음에서 구해 내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렸구나.” 그러면서 그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평생 잊지 아니할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구해 주는 것도 귀하지만,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구해 주신 것은 더욱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되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냥 지식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과 뜻과 계획을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 전파에 어찌나 열정적이었던지, 사람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고후 5:13~14)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복음 전파에 열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사랑을 알려면 먼저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뿐 아니라, 거듭난 성도들은 그 사랑을 더 깊이 깨닫는 만큼 믿음도 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 내라 권면해도 마이동풍인 사람이라도 한번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만 하면 누가 권면하지 않아도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강제로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있는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보아서 거듭난 사람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됩니다.(8,9)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습니다. 그는 아직 육에 속한 사람으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욕심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소원이 전혀 없고, 오로지 자신을 기쁘게 하려는 욕망으로 가득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행위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 5절 이하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그 사람 속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생각과 언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거듭난 성도는 자기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해 주실 때, 기쁨으로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그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의 생각을 복종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그 마음에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마음에 고통을 느낍니다. 바로 이 점이 거듭난 사람의 특징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순종해도 아무런 가책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영이 죽은 상태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 요 13장 34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보아서 내가 거듭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부족한 인간인지라 때로 형제를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는 곧 회개하고 다시금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 삶 속에 사랑의 열매를 맺히느냐 맺지 못하느냐를 보아서 그 사람이 거듭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만나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서 먹고 살아갑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벧전 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난 성도는 처음에 영적 갓난아이와 같습니다. 갓난아기는 제 발로 걷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합니다. 혼자서 음식을 찾아 먹지도 못하고, 혼자서 옷도 입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갓난아기가 마냥 무능한 것은 아닙니다.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젖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갓난아기는 젖이 먹고 싶으면 즉시로 울음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마냥 참고 기다리는 아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갓난아기는 젖을 먹는 대로 하루가 몰라보게 자라납니다. 이는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난 지 오래 되지 않은 성도는 영적 갓난아기와 같습니다. 교회생활도 서툴고, 성경 지식도 적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다 이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설교를 들어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왠지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자주 설교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자라고 말씀을 깨닫는 능력이 향상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막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면 여린 싹이 나오고 그 다음 자라서 이삭이 되고 그 다음에 결실을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무엇보다도 거듭남의 증거는 생활 속에서 선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니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거듭난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방금 소개한 열매를 생활 속에 맺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기도하지 않는 삶은 기도하지 않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사무엘상 12장 23절"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기도하지 않는 삶은 믿음의 첫 단추를 꿰지 않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일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 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며,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을 붙잡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입니다. 짧게 보이는 하루의 삶도 일의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무엇을 먼저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해야 합니다. 누구나 기도합니다. 지금보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외에는 귀신을 쫓을 수가 없습니다. 막 9장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근신하고 깨어 있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베드로가 기도해야 할 순간에 잠을 잤을 때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누구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며 도망치게 됩니다. 내가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로 지금이 기도할 때임을 깨닫고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여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삶을 삽시다. 성도가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은 성도의 대적 마귀가 성도를 삼키려고 찿아 다니기 때문입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서 승리하는 영적 인생이 됩시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찿나니."
● 전도
삶 가운데 전도하지 않는 삶은 전도하지 않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행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롬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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