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문화선교

초대교회

금요기도회

명령과 약속 (수 1:1-9)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620회 작성일 20-12-28 15:56

본문

2021. 금요 첫 기도회. 명령과 약속 (수 1:1-9)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순간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해의 첫 순간을 마지 하였습니다. 마치 처음 온 눈길을 해치며 걸어가야 할 이 한해의 미지의 길을 우리는 지금 출발 선상에 서 있습니다.

새해를 맞는 기대와 함께 현실의 불안이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밝지만은 못하게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태양처럼 빛나던 모세를 잃고 불안해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기분인 것 같습니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되는 그러한 한해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임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잃고 불안해하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리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내린 명령이 곧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의 하나님은 곧 우리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일어나 요단을 건너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금요 기도회에 하나님의 신년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출애굽과 광야 생활은 우리 구원의 여정(旅程)과 같습니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출애굽 시킨 것처럼, 우리는 죄의 세상으로부터 천국으로 구출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지금 훈련인 광야 40년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광야 40년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여러 번 저들의 신앙생활에서 시행착오를 범하였습니다. 먼저는 자기들을 애굽의 바로의 손에서 구출해 낸 위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망각했습니다. 애굽에 내렸던 10가지 재앙들, 더욱이 애굽의 전역에서 처음난 생축이 다 죽는 그런 가운데서 자기들을 살려낸 그 하나님의 능력을 불평으로 응수했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광야에서 물이 없어, 목말라 죽게 되었다고 그러했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광야 생활에서 만나만 먹어 정력이 쇠해졌다고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고기와 부추와 마늘을 먹게 해 달라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 위에서 군림하고 독재한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들과만 같이하는 하나님이냐? 우리들의 하나님이기도 하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저들은 광야 생활에서 감사할 줄 모르는 우(愚)를 범하였습니다.

이것이 광야 생활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있던 저들에게 이제 모세까지 죽어 없어졌으니 얼마나 더 크게 방황 할 수 있는 그러한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는 일어나라고...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 이 명령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방 후 오늘까지 근 반세기 동안 우리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일제의 손아귀에서 해방을 시킨 하나님의 그 큰손의 권능을 잊어버리고, 서로가 반목하고 원망하면서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교단이 갈라졌고, 그 결과로 6.25의 동족상잔의 처절한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열국들을 통하여 <만나가루>로 먹였듯이 우리 민족을 유엔을 통하여 먹이고 입혀 주어 생존할 수 있도록 하여 주었습니다. 그 후 6.25로 폐허가 되었던 땅에 복구의 바람을 일으켜 재건하도록 기회와 힘을 주었고, 그래서 불과 정전 후 30여 년 만에 경제적으로 먹고 살 만큼 되었을 때,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감사 생활보다는 도리어 더 큰 불평을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만 먹어 정력이 모자란다고 하면서 도리어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이 민족이 먹고 살만하니 좀 더 높은 가치의 세계와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삶을 살기보다는 사회 풍조가 먹고, 자구 노는 향락 산업으로 온통 산천을 오염시키게 되었고, 러브호텔의 성업이 극에 달할 즈음에 IMF 라는 한파를 맞게 되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IMF는 우리에게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 하나님의 징치(懲治)의 수단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한파 속에서 너무나 큰 어려움 들을 감내 해 내야 하였고,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19라는 염병의 두려움을 주려하고 이것은 우리의 미래를 더욱 불행하게 전망케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번에도 정신 차리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큰 시련이 닥칠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입니까? “너는 일어나 요단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낙심과 자랑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불안해하는 걱정의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간과 비판과 불신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거짓과 부정직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운동이 믿는 청년대학부원들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너라고 했습니다. 요단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벽입니다. 아무도 감히 해결될 수 없다고 자인하고 있는 그런 난관들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무지 뚫고 들어갈 수 없다고 낙심해 있는 그런 문제들입니다.

그런 요단을 건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단을 건너기 위해서는,

2.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는 것은 너는 나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마음먹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 시간은 값이 이미 지불된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한 해 동안 처음순간부터 약한 마음을 가지고 출발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면 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에 대하여 마음을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까?

인간적인 신념의 마음을? 전문적인 지식의 마음을?

삶의 경험에서 얻은 경륜의 마음을? 사나이다운 배짱의 마음을?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을 굳게 먹고 강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가 이 시점에서 경청해야 할 말씀이라고 봅니다. 이 순간, 우리는 마음을 굳게 다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강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처음이 중요합니다. 첫 단추가 잘 채워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금년 2021년 한 해 동안 마음을 강하게 하여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과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먹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마음을 강하게 먹는 사람에게 힘을 주십니다.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낼 수 있는 담력도 주십니다. 두려움도 물리쳐 주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약속의 보증의 말씀을 주십니다.

뭐라고 했습니까?이제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여 나의 명하는 말씀을 실천하라. 그리하면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고,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을 것이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이상 더 확실한 보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일, 하나님이 동행하는 길, 하나님이 같이한다면 무슨 일인들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 우리가 불안해하고 두렵고, 낙심하고, 또 절망스러운 것은 그 일을 나 혼자서 해야 할 일일 때 그렇습니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야곱도 광야에서 노숙할 때 하나님의 보증의 약속을 들었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꿈에 나타난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그때부터 그 약속을 붙잡고 20년의 타향살이에서도 낙심치 아니했습니다. 결국 빈손으로 도망치듯 나갔던 길에서 돌아올 때는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대학부 여러분!

이 한해가 여러분에게 어떤 한해가 되기를 바라보십니까?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하나님께 구하려 나왔습니까?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문제는 하나님의 보증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리라”는 바로 그 약속입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여 나의 명령을 굳게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 이상 더 확실한 미래의 보증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연약함을 아시오니 나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더 이상 방황치 않도록 나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말씀의 명령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내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주여! 당신의 능하신 팔로 나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이 한해 동안 온갖 유혹을 물리쳐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욕되지 않도록 영육간의 필요한 것으로 채워 주옵소서......밟는 땅이 내 것이 되듯 만나는 사람에게 온전한 천국복음을 심어 거룩한 구원을 보게 하소서...” 이렇게 구하는 성도들에게 독생자까지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지 않겠습니까?

일어나 마음을 강하게 합시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번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있는 것을 흩으시고, 없는데서 모으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망을 생명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실패의 자리에서 도리어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미련한 자들을 들어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지켜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체험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국이란 곳을 향해 누군가 함께 가면서 그 누구보다 천국을 잘 아시는 분, 또한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잘 알고, 게다가 산속의 길을 잘 아시는 예수님과 같이 동행하게 된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할까요? 그런데 그렇게 좋은 분과 함께 걷다가 자신들에 좋아 하는 것에 유혹되고 현혹되어 잠시 산속의 길을 잃은 자녀들이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 예수님을 잊고 산에서 사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엇인가? 부족함이 느껴질 때 마다 외롭고, 고독한데 그럴 때 천국소망이 있다면? 사랑하는 예수님을 찾게 되고, 결국은 구하여 만나는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계속 움직이거나 한곳에 머물러 있어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우린 오늘날 이와 같은 때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신학교
CCS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대한민국전자정부
행복발전소
Prayer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