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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 받은 자답게 살기 위하여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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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12회 작성일 20-03-20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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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 받은 자답게 살기 위하여 기도하자.

(마 5:38-48)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이 구약의 보상법의 정신은 하나님의 자비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계명의 밑바탕, 배후에는 사랑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보상법의 근본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보상법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보상법의 정신은 한 마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보상법이 세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출 21:24입니다. 둘째, 레 24:20입니다. 셋째, 신 19:21입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출애굽기 21장의 말씀을 찾아봅니다. 출 21:22-25의 말씀입니다. "22)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 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1. 우리는 여기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몇 가지로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을 본래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출 21:22절 끝 부분에 보면,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보상법은 우리 개개인이 이 원리를 적용하도록 주신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본래는 재판장의 판결 원리로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특히 악한 자들은 눈은 더 큰 눈으로 보상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창 4:23-24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인의 자손 중에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뽐내면서 했던 말입니다.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무슨 뜻으로 스스로 이 말을 했습니까? 누구든지 자기를 해하면 자기는 그에게 칠십 칠배로 되갚아주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복수심이 바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한 마디 욕을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마디만 해주면 직성이 풀립니까? 두 마디, 세 마디 해야지 갚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본심입니다. 만일 내가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데, 그 사람이 내게 두 배, 세 배로 보복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도록 허용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잔인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보상이 가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 재판장은 판결을 내릴 때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합니까? 반드시"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그 이상도 안 되고 그 이하도 안 됩니다. 예컨대 내가 가해자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실수로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러면 재판장은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되겠습니까? "이는 이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이는 눈으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리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너무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다른 사람이 내 눈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재판장은 "은 눈으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려야 내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눈은 이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린다면, 내가 얼마나 큰 손해를 보겠습니까? 이처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갚으라."는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 이법을 주신 것입니다.

셋째, 이 법을 통해서 우리는 상대의 아픔을 배우고, 이웃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컨대 내가 다른 사람의 눈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그 즉시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내 눈도 저렇게 상하게 되겠구나!" 이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러면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내 이도 저렇게 부러지겠구나!" 그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법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몸을 내 몸처럼 귀히 여기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원리입니다.

이와 같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의 근본정신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그 당시 사람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 38절 말씀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수님은 이 말씀의 끝 부분에서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은 무엇이었습니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 자체가 잘못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살펴본 대로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보상법을 있는 그대로 압축을 해놓은 것입니다. 말씀 자체는 전혀 잘못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 39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밝히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 39절 말씀을 보십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고 말씀하시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르쳤겠습니까? 그들은 악한 자를 대적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들은 보상법의 정신도 완전히 무시해 버렸습니다. 우선 그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본시 보상법은 재판장의 판결의 원리로 주신 말씀입니다. 개인은 사사로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 권한이 없습니다. 반드시 정당한 재판을 통해서만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을 개인에게 적용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악한 자를 사사로이 대적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의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 당시의 열심당에 속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 하더라도 유대인들은 얼마나 원통하게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로마는 유대인들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헤롯을 그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헤롯은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인 헤롯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으니까 유대인들이 얼마나 분개했겠습니까?

급기야 유대인들 가운데는 로마인들에게 당연히 복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에 의해서 조직된 것이 바로 열심당이었습니다. 그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의 영향을 받아서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고, 폭력은 폭력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군인들에 대해서 폭력과 살인을 일삼았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당하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로마 군인들은 즉시 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증오심이 조장되었던 것입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보상법의 정신을 망각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보상법의 근본정신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 바로 보상법이었습니다.

*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악한 자를 대적하라"고 가르침으로서, 개인이 복수하는 것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들은 복수심을 조장시켰습니다.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원수를 갚으라고 하신 말씀도 없습니다. 오히려 신 32:35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보복하리라."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입니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선대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책임입니다. 레 19:18에 있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또 잠 25:21에 있는 말씀입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악한 자를 대적하라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원수까지 바리새인들은 보상법의 정신을 완전히 망각해 버리고, 원수라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사랑 대신 미움을 심어주었습니다. 용서 대신에 복수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그 세대를 가리켜서 여러 번씩이나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여!"라고 탄식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잘못은 잘못으로 갚고, 복과 열매는 30배, 60배, 100배를 받게 하심.

* 저는 오늘 이 말씀에 깊이가 눈물 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말씀을 하시고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거짓을 말하시지 못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율법이라면? 그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이신 당신도 말씀을 지키시려고 당신도 그대로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것이고, 아울러 이 말씀에는 큰 희생의 사랑이 깊이 깔려 있습니다. 성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것을 여러분 모두 아시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대의 뺀 눈을 주께서 대신 갚아 주신다는 뜻이며, 너희의 죄로 이익으로 인해 범죄한 일들에 대하여 단순히 양이나 가축을 그렇게 속죄물이나 속건 제물로 해결하는 것을 넘어 올리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구원을 위하신 크신 은혜를 몇 번이고 다짐하신다는 의미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기도로 이 시간 선하신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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