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따르는 자의 마음자세 /요 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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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기도회 - 주를 따르는 자의 마음자세 /요 21:20-22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운동선수와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가르쳐주시는 교훈이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를 든다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단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때로는 수백, 수천 번의 넘어짐이 있은 후에 이룰 수 있는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때문에 나의 삶이 잘 못되었다고 말하지 말고 나 자신의 믿음이 견고해지는 계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기도해도 바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출애굽의 축복은 바로가 바뀌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의 강퍅함으로 기회를 얻은 모세가 믿음으로 견고해져서 얻은 것입니다. 내가 바뀌면 저주가 축복이 되고, 원수가 친구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능력이 있어도 마음이 바르게 변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으로 변하면 “그 삶이 부럽다. 존경스럽다.”고 하면서 보는 사람도 믿음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보이는 현상인 능력보다 보이지 않는 견고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가장 큰 과제는 자기를 극복하고 자기 마음의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대부분은 넘어졌다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 아브라함도 수없이 넘어집니다. * 야곱도 그렇습니다. * 요셉도 형제들로 넘어집니다. * 다니엘도 포로로 끌려간 신세입니다. 다니엘은 타국에서 오직 기쁨이 하나님을 구할 때이므로 자신 스스로를 기도로 위로합니다. 작정기도가 자기 위로입니다. *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에게 좋은 일만 있었습니까? 하지만 그 처절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합니까? 기도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겁니다. 기도로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18-19절 말씀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데 뒤를 돌아보니까 사도 요한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께 “이 사람은 어떻게 되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베드로의 이 질문을 보면 사도 요한의 앞날에 대한 궁금함보다 평소에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던 사도 요한이 자기보다 더 잘되지는 않을까 하는 시기심도 있었던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거의 면박하듯이 베드로를 질책하셨습니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너를 나를 따르라!” 이 말씀에서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의 말씀일까요?
1. 첫째로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겁니다.
주님은 성도가 서로 비교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참으로 싫어하십니다. 영적 전투에서 형제가 서로 협력해도 쉽지 않은 싸움인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면 사단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시기는 인간 타락의 가장 뚜렷한 표시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시기와 질투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비교해가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은 요한대로 주님을 따르고, 베드로는 베드로대로 주님을 따르고, 나는 나대로 주님을 따르면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를 ‘삼각관계의 상대적인 관계’로 하지 말고 ‘일대일 관계의 절대적인 관계’로 보며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고 나에 대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 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특징이 있고, 나만의 성공 길이 있습니다. 기죽을 필요도 없고, 우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나답게 살면 됩니다. 노래를 해도 테너는 테너를 해야 합니다. 바리톤은 바리톤을 해야 합니다. 피아노 반주자가 맨 날 앉아서 ‘노래 참 잘한다.’그러면 어찌 반주를 합니까? 반주자는 반주자로 만족을 하는 겁니다. 설교자는 설교하는 겁니다. 어떤 이는 성경공부 전문가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세미나 전문가가 있습니다. 설교도 자기에게 주어진 대로 하는 겁니다. 강해설교 전문가가 있고, 주제설교 전문가가 있고, 이야기 설교 전문가가 있습니다. 흉내 내려면 어색해집니다. 나는 나대로 하는 겁니다. 내가 배운 대로, 하는 겁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하는 겁니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물으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야?” “네 가진 것이 무엇이냐?”
삼손이 나귀턱뼈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전쟁터에 나가라고 하십니다.”
다윗이 물맷돌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전쟁터에 나가라고 하십니다.”
사르밧 과부가 가루 한 웅큼과 기름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나를 섬기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이냐?” “아들입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트려서 주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으니 유다가 뭐라고 합니까? “세상에 그 아까운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 얼마나 할텐데........”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너는 너 할일이나 하고 놔둬라! 너는 나를 파는 게 할 일이고, 이 여인은 가장 귀한 것으로 나의 장사를 준비하는 것이 사명이니라.”
마르다가 주님께 뭐라고 합니까? “주여 나만 죽도록 밥하고, 국 끓이고, 갈비재고, 아이, 언니도 돔 도우라고 하셔요.” “놔둬라! 마리아는 마리아대로 자기 할 일 다하는 것이란다. 너는 너 할 일이나 해라. 그리고 누가 너 더라 바쁘라더냐? 너는 너 좋은 일을 하고 마리아는 마리아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라. 그렇게 불평으로 할 것 같으면 하지 말아라, 정 하고 싶으면 한 가지만 하고.......” 우리는 남의 운명에는 초연해야 하고, 나의 사명에는 집중해야 합니다. 잘 나가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시기할 필요도 없고, 흉내 낼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누가 어떻게 되든지 나의 사명에 충실한 것이 중요합니다. 내 사명에 충실하면 나에게도 그 사람 이상으로 성공하는 길이 반드시 있게 될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남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22절에서 주님은 “요한을 다른 방식으로 그의 길을 가게 해도 너는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즉 나의 사명도 인식해야 하지만, 남의 사명도 인정해주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모든 사람을 그 뜻에 맞게 창조한 존재입니다.
그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남을 인정해줄 때,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열등감에 사로잡히지도 말아야 하지만, 우월감에 사로잡히지도 말아야 합니다. 나를 남처럼 만들 필요도 없고, 남을 나처럼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내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되, 남의 것까지 내 구미에 맞춰 뜯어고치고야 말겠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이 소리 내어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리 내어 기도하는 사람이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고치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리를 안 지르는 것은 기도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소리를 안 질러도, 요란을 안 떨어도 깊이, 뜨겁게 기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미국사람들은 주여 삼창을 모릅니다. 통성기도를 잘 안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우리보다 훨씬 깊은 기도를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교회는 조용한 사람도 필요하고, 요란한 사람도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헌신하는 것도 그렇고, 목사님을 섬기는 것도 그렇습니다.
부흥회를 가 봐도 그렇습니다. 어떤 분은 강사 접대를 하는데 떠들썩하게 합니다. 몇 주 전부터 강사대접 한다고 신청하고, 주문하고, 설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통성기도 하는데 주머니에 봉투를 하나 넣어줍니다. 끝나고 보니까 100만원 들었습니다. 그런다고 왜 떠들썩하게 하느냐고 할 것도, 없고, 왜 소리 없이 하느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너는 너대로 이고, 나는 나대로입니다.
성격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현재 사는 환경과 방식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남을 나의 기준에 맞추려고 합니다. 안됩니다. 나는 나이고, 남은 남입니다.
우리는, 내가 남처럼 될 필요도 없고, 남을 나처럼 만들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의 부족한 점이 보이면 내가 그 점을 메워주면 됩니다.
● 한 부부가 바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넓은 바다를 보니 마음이 확 트이고 연애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넓은 모래사장에서 부부는 서로 업어 주자고 했습니다.
먼저 남편이 아내를 업자 아내가 감격하고 미안해서 “여보, 나 너무 무겁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머리는 돌이고, 심장은 강심장이고, 몸은 요크셔니까 당연히 무겁지!”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그 말에 아내가 삐쳐서 남편을 업어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그래도 업어달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할 수 없이 업어주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미안해서 “여보, 나 가볍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머리는 비었고, 입은 가볍고, 손까지 빈손이니 당연히 가볍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일로 그 부부는 후유증이 몇 달이나 갔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현대인들의 진 모습을 보여주는 얘기 같습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누군가의 지적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안 듣습니다. “나처럼 하세요.”그러면 “너나 잘하세요.” 그럽니다. 그냥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3. 세 번째는 주님만 바라보고 살라는 겁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를 때 곁눈질하지 말고, 세상과 물질을 따라가지 말고, 사람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닙니다. 기댈 대상이 아닙니다. 믿고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사랑으로 믿어주어야 할 존재입니다. 사람의 일이 얼마나 변화가 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이 압니다. 찾으라는 말씀과 구하라는 말씀과 두들기라는 말씀은 많은 교제를 하고 듣고 또 듣고 전하면서 내가 할 일과 갈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내 기쁨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인맥을 위해 신맥을 쓰라는 것이 아니고, 신맥을 이루기 위해 인맥을 찾아 이어 가라는 것입니다. 인맥보다 신맥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예배와 기도가 중요합니다. 먹을 것을 위해 하나님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을 알기 위해 헌신과 세상일과 먹고 마시는 것도 누리라는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를 인정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너무 교만해도 안 되지만 가지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참소하는 사람은 절대로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은사도, 재능도, 우리에게는 나만이 가진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나만의 아름다움도 있고, 가능성도 있습니다.
꽃밭에는 소박한 민들레도 있고, 아름다운 장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아마 장미가 민들레의 생명력을 더 부러워할지도 모릅니다.
어찌 보면 성경이 끊임없이 주시는 성경의 메시지는 “네 자신을 인정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 증거가 주님은 대부분 사람을 부르실 때 보면, 한창 성공했을 때보다는 실패하고,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한 가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포기 하지 말라는 겁니다. 주님이 쓰시는 사람들을 보면 현재는 실패한 것 같지만, 그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언젠가 설교 때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쓰시는 사람들을 잘 보면 성공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뭔가를 시작하면 반드시 하겠다는 성공에 대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한 가지는 열심히 있다는 겁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겁니다.
기도를 해도 반드시 응답을 받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매달린 사람들이 응답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가르친 기도를 보십시오. 한마디로 말하라면 끈기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똑같습니다.
기도를 하다 만 사람이 응답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바디매오도, 수로보니게 여인도, 중풍병자도, 한 가지 응답받은 이유를 들라면 반드시 응답받겠다는 기질입니다.
왜 기도 응답을 못 받습니까? 하다 말아서입니다. 그게 강청하는 친구의 기도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다닌 과부의 기도입니다. 병원에서 의사 말 안듣고 자신이 결정하고 병도 안 낫는데 나오면 그는 평생 그 병원의 진가를 모르고 살게 됩니다.
왜 전도를 못합니까? 하다 말아서입니다. 전도의 결과는 그것을 가르치신 분이 기뻐하도록 하늘에서 보아야 합니다. 왜 축복을 못 받습니까? 헌신을 하다맙니다. 사실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니 안 되더라는 교훈을 얻어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니 책망을 들어도 포기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자들은 잘하다가도 쓴 소리 한마디에 팽그르르 하고 쓰러집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을 보십시오. 불러도, 불러도 대답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개 같은 자들에게는 주실 은혜가 없다는 데도 매달립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주님이 십자가 지신다는 말에 “주여 그리마옵소서!” 했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는 책망을 받습니다. 그 말씀하실 때 주님이 웃으시면서 했겠습니까? 정색을 하셨을 겁니다. 아마 그런 책망을 듣고 “목사님 죄송합니다.”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여, 모두가 다 주를 버려도 나는 죽는데라도 따라가겠나이다.” 그러자 뭐라고 하십니까?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그러십니다. 얼마나 얼굴이 뜨거운 말씀입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주께서 재판 받는 데 까지 따라갑니다. 결국은 말씀대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합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다시 주님의 부르심에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베드로는 제자들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습니다. 보여지는 육신으로 볼 때에 주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았지만, 언제든지 대표적으로 욕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넉넉한 마음으로 주님을 끝까지 붙잡았을 때 주님은 베드로를 역사상 가장 복된 존재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낮아짐의 미학과 인내하는 자들의 미학은 결국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영생의 길을 누리게 되는 천국인인 것입니다. 오늘도 최상의 컨디션을 주시는 주님의 구원의 은사를 생각하며, 이 땅에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해 집중하여 기도하겠습니다.
● KWMA, ‘해외 선교사 80%, 코로나 사태 선교사역 위축’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교 동력 재정비, 새로운 선교전략 수립하는 계기 삼아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지난달 24일부터 5월 7일까지 회원선교단체 소속 470명의 선교사를 대상으로 ‘Covid-19로 인한 선교사의 필요 조사’를 실시했다.
선교사 대부분은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선교 현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470명의 선교사 중 79.1%는 변함없이 선교지를 지키고 있었으며 2.8%는 제3의 지역에, 18.1%는 임시 귀국해 한국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가 이동 통제 등 강력한 조처를 하면서 많은 선교사가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교지에 머물고 있는 선교사(385명)를 대상으로 코로나 사태가 선교사역에 미친 영향을 묻자 80%가 선교사역이 위축됐다고 답했다.
● 이집트, 70개 교회 건물 정식 허가…4년 동안 총 1,687개. 국제기독연대, 이집트 행정부… 신앙 자유를 위한 사회적 태도·관습 전환 촉구
기독교 인권단체인 국제기독연대(CSW)는 21일(이하 현지시각) 이집트 당국이 예배 목적으로 지어진 70개의 교회 건물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교회 건물의 승인을 관장하는 정부위원회(Government Committee)는 19일 회의를 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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