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받게 될 복 - 계 14:13
페이지 정보

본문
내일이 (현충일) 이다 보니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받게 될 복.”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길..
*생명의 양식인 말씀:<계 14:13 >
*기도* (사 40:3,5)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나님의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우리 심령위에 뿌리사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나라와 민족의 아름다운 믿음과 구원과 사랑의 열매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의 바른 삶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며, 형제, 자매의 구원을 위해 내가 먼저 죽어지는 밀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받게 된 복」
이 말씀은 꿀송이 보다 더 달고 정금보다 더 귀한 말씀입니다. 특히 무서운 사망에서 어두운 분묘 속을 광명으로 밝히고 초상집에서 참된 소망과 승리를 우리에게 약속해 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산 강아지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라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주안에 있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결단코 들어 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통해「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어떤 복을 받게 되는지」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째, 주안에서 죽는 것은 소망 있는 죽음이다.
마 9:24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자는 죽음을 슬픔으로 대하지 않고 부활할 소망과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는 소망으로 대합니다. 행 6:15보면 스데반 집사가 죽을 때「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행 7:55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라고 하였습니다. 눅 12:20에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히 사람이 죽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있음을 확증하였습니다. 히 11:5에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 34:6과 유 1:9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시체를 간섭하여 감추신 것을 보아도 그 개인의 죽음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조만식 선생
한국의 민족 지도자, 독립운동가 조만식(曹晩植 ; 1882~1950) 선생님은 16세까지 친구들과 술 마시고 도박하고 싸움을 하는 길거리의 불량배였습니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고, 서당에 가서 한문도 공부했지만, 친구들만 만나기만 하면 비행청소년이 되고 불량소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가 술에 취해 길을 걷고 있는데 미국 선교사가 그를 보고 이 사람아,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 일본이 이 나라를 속국으로 만들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있는 데, 젊은 사람이 술 마시고 방탕하면 되겠나?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말은 그의 귀에 맴돌며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자신을 책망했던 선교사의 집을 찾아가내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어라 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과 의로는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없습니다. 도박을 끊을 수 없습니다. 건달 생활을 그만 둘 수 없습니다. 잠시 노력한 흔적은 보일 지라도 결국 안 됩니다. 오직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께서 성령을 은혜로 부어 주심으로, 그 사람에게 능력과 권능을 베풀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제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을 마시지 않고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자신과 계속 친구가 되려면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는 교회에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을 읽고, 그 당시에 기독교정신으로 세워진 숭실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한 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어 오산학교에서 젊은 학생들을 가르쳐 지도자를 배출하고 3․1운동을 주도하여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들은 인생을 허비하나 하늘의 소망을 받은 자들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간절히 이 시간에도 구하고 찾으시기 바랍니다.
● 둘째, 성도는 죽은 후에 복된 세상에 들어간다.
지구상에 많은 사람들은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반드시 두려워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뭇솔리는 사형장에 끌려가면서 잠시 동안 머물러 달라고 세 번이나 애원했으며, 스탈린 역시도 임종 시에 두려워 떨며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죽는 자들을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확고한 신뢰와 보호 속에서 영원히 평안한 안식과 기쁜 생명 상태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이 땅에서 진리를 위한 삶은 괴롭고 힘이 들어 세상의 소득은 적을지 몰라도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은 삶이됩니다.
13절에서「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쉰다는 말은 죄악으로 오는 세상의 고통과 근심에 쉰다는 말」입니다. 시 116:15에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다. 는 것은 천사들이 영광중에 성도를 수종 들기 때문에 죽음후의 세계는 상상 그 이상으로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주님 모신 곳인 하늘나라가 죽음 후의 우리가 사는 영원한 세계인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도 죽음 후에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해 천국에 보화를 쌓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 죽을 각오
6.25 당시 공산군과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때 맥아더 장군은 모험을 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참모들은 10미터 이상 되는 간만의 차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륙작전을 감행한 결과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어느 날 맥아더는 흑석동에 와서 쳐들어오는 공산군의 전황을 한 40분 동안 쳐다보고 다시 수원 비행장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려고 했답니다. 그 비행기를 지키고 있던 한 국군 사병이 빈약한 카빈총을 메고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당신 사기는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사병은 〈나는 내 민족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맥아더는 그 사병의 말과 눈동자를 바라보고 증원을 보낼 것이니 염려 말고 계속 싸우라고 격려하고 떠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과 나라와 주님의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지원병을 붙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순교의 상황이 된다면? 그 영광과 상급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성도는 행위에 따르는 상급을 받게 된다.
사도바울은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실 상급이었습니다. 이 상급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생이며, 그 다음에는 각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 7:23)는 저주를 받는 불행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수고를 그치고 쉬는 복과 함께 행위에 따르는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열심히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 애국자는 어디로 갔느냐?
보트피플... 살기 좋은 이 세상에서 아직도 나라를 잃거나 나라를 떠나서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안타깝게 헤매는 백성들의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참 많은 시련과 아픔과 전쟁으로 인한 고통이 있었고 수많은 애국 선배들의 노력과 열정에 힘입어 하나님의 긍휼을 맛보아 압니다. 한참 전 나라를 잃고 발들일 곳도 얻지 못하고 헤매던 월남의 민중들 그리고 그 정든 땅을 떠나면서 한 여대생이 애처롭게 부르짖는 소리는 우리의 귓전에서 살아지지 않는다.
〈그렇게도 많던 애국자는 다 어디로 갔는가?〉〈아버지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시나?〉라고 목메어 외치던 그 음성을 이 민족은 어찌 남의 일로만 생각 할 수 있겠는가?
나라가 평화로운 때는 너도나도 애국지사 같이 보이고 떠들어대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민족이 죽어질 때는 애국자는 어디 있으며, 애국지사는 어디 있는가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결국 이 땅에 남는 것은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명예로운가? 아님, 매국노인가?
그리고 이생에서의 실제와 실체는 어떨 것인지? 아는 사람은 기뻐할 것이요, 모르는 사람은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제목: 충성과 전도
몇 해 전에 국제 예수전도단의 몇몇 형제들이 홍콩에 세워진 베트남 난민촌에서 사역을 시작한 적이 있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난민촌에 들어가기 위해 허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요청하자 마침내 난민촌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난민촌의 감독관은 다른 단체와 마찬가지로 .잠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거니 생각하고 전도에 관한 것이라면 어떠한 것이든 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습니다. 그 대신 막혀서 넘쳐흐르는 분뇨시설을 복구하는 일거리를 맡겼습니다. 며칠 동안 그 팀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더러운 구정물 속에서 일했습니다. 분뇨시설이 완전히 제 모습을 찾게 될 때까지 깨지고 막힌 화장실 하수관을 벗겨내고 뜯어고치고 깨끗이 청소하였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다음 할 일을 받으러 감독관을 찾아가자 그 사람이 실토하기를 이들이 처음 맡은 일을 완전히 해내리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감독관은 자발적으로 일하는 이들의 태도에 감명을 받고 베트남 난민들을 위하여 전도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난민촌을 개방하였습니다. 그 전도팀이 곧 깨닫게 된 것은 다 망가진 분뇨시설을 복구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베트남 사람들은 자기들이 본 것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전도팀이 나누는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좋은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열매 맺는 성도가 주안에서 죽은 자의 반열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지고 하늘의 상급 받는 생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의 명인*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는 이유는 사단의 유혹과 핍박과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첨부파일
-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받게 될 복.hwp (48.0K)
0회 다운로드 | DATE : 2020-06-05 00:02:46
- 이전글초대교회의 시작/행 2장42절 - 47절 20.06.12
- 다음글주를 따르는 자의 마음자세 /요 21:20-22 20.05.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