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방주의 교훈<Ⅱ>
페이지 정보

본문
노아 방주의 교훈<Ⅱ>
창세기 8장 13~22절. 찬 송 : 369장. 273. 325. 436장.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벌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 반드시 사람은 죽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 그것을 어떻게 알까요? 죽는 사람들을 봤고, 결국 이래도 저래도 죽으니까요!
그런데 낙원에 있던 아담처럼 영적인 사람들은 원래 죽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면 죽지 않고 사니까요~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떠나는 순간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보통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법으로도 사형에 처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나 판결이 나야되는데? 이 놀라운 퀄리티의 직분인 첫 아담! 그는 이 땅에 죄를 범하고 내려 와서는 몇 살을 사나요? (창 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0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0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 그럼 보통 세상 사람들의 수명은 얼마나 길까요? 120년입니다.
● (창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 (GEN 6:3) Then the LORD said, "My Spirit will not contend with man forever, for he is mortal; his days wi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mortal: 죽어야 할 운명의(a), 육체, 인간 (n) contend with: ~와 싸우다(다투다), 경쟁하다.
● 구글 번역: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 영은 사람과 영원히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날은 백 이십년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초청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하늘의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구약의 사람 노아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 가족과 함께 홍수심판 전에 그 방주로 요청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의 자애로운 초대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오라 come’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초청은 그 이후로 계속 하여 600여 번이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확실히 노아의 방주는 구원선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 초청을 받은 노아는 지체하지 않고 그와 그 가족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정된 모든 동물을 이끌고 그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진실로 최고 최대의 영광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믿음으로 휘장 가운데로 열려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표본입니다.
Ⅰ. 방주는 예수님 십자가 부활의 상징입니다.
창세기 7장 17절에 “홍수가 땅에 사십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경은 노아 방주가 이륙하게 된 사실을 상세히 네 가지 단계로 진술했습니다.
①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다”라고 하였습니다(창 7:17). 이륙 사실을 말합니다.
②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으며”라고 하였습니다(창 7:18). 이는 방주가 수면에서 움직인 사실을 말합니다.
③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창 7:19)라고 하였습니다. 천하의 높은 산이 덮였다고 함은 천하가 물 천지가 되어버렸음을 말합니다. 천하가 물 천지가 되어 버린 것은 방주가 쉬임없이 움직이게 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방주는 이 홍수에 의해 떴고, 떠 다녔습니다. 거침없이 떠다닐 수 있었습니다.
④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창 7:20)고 하였습니다. 온 세계는 물바다로 화하고 말았습니다.
부활이란 다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식물이 죽음의 동면에서 다시 움트는 것을 자연계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정치적인 부활, 경제적인 부활, 사상적인 부활이란 말을 씁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사는 것을 가리켜 영계의 부활, 육체적인 부활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노아의 방주는 부활의 상징입니다. 홍수가 시작된 날부터 150일 동안 창일한 사망의 물속에서 노아와 그의 가족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부활의 운동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방주는 떠야 합니다. 육지에서 떠나 물 위에 떠야 합니다. 방주는 믿음의 노아 가족들을 싣고 사망선 위를 떠다녀야 합니다. 이 방주의 선장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황해, 생명의 항해를 해야 합니다.
교회는 온갖 죄악의 탁류 속에 빠져 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물을 밟고 서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렇게도 세상에서 승리의 항해를 하는 부활선, 구원선, 생명선이요 승리의 표시입니다. 언젠가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마침내 완전 이륙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노아: 육지에서 떠서 물(물 심판)위에 뜸, 주님 재림: 땅에서 떠서 하늘(불 심판)위에 뜸>
Ⅱ. 방주 밖에 남은 자는 다 죽었습니다.
우리 성경은 불신자와 불신 세상을 멸하는 불의 위력을 이렇게 세 가지 각도에서 표현하였습니다.
1. 땅에 육체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7장 21절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2. 코로 숨 쉬는 모든 것, 육체의 있는 모든 것이 죽었다고 합니다. 창세기 7장 22절에서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무슨 심판입니다.
3. 모든 생물이 쓸어버림을 당했습니다.
창세기 7장 23절에서 다시 방법을 강조하기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방주 밖에 남은 자는 예외 없이 모두 멸망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결국 멸망을 당합니다.
요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요 5장 39~40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였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일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의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홍수의 목적은 죄악의 인류를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창 6:7, 13, 17, 7:4~23, 8:21). 그러나 방주에 들어간 자는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거기엔 하나님이 예정하여 명하신 모든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것은 그가 방주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주 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노아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곳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방주 외의 모든 세계에는 하나님의 진노로 홍수 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주 속에서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 했습니다.
Ⅲ. 노아는 방주에서 다시 나오도록 명령 받았습니다.
본문 15~17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땅 위에 창일한 것이 150일간입니다. 즉 비가 그친 다음에 110이 되는 날입니다(창 7:24).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 노아가 육지에 나올 수 있도록 물이 감하여 지는 일곱 가지 단계를 시행하였습니다.
1. 물이 물러가도록 땅 위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는 마치 애굽에서 나오던 이스라엘의 앞길에 가로막힌 홍해를 바람으로 밀어버린 것을 연상케 합니다.
2. 홍수의 근원이 걷히고 방주가 아라랏 산에 착륙 하도록 하였습니다.
창세기 8장 2~4절에 “깊음의 샘과 하늘에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줄어들고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먼저 비를 그치게 하고 배가 아라랏산에 착륙하도록 그 배를 운행하였습니다.
3. 산봉우리를 노아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창세기 8장 5절에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라랏산에 방주가 닿은 지 73일째입니다.
4. 하나님은 노아에게 까마귀를 통하여 육지에 대한 소식을 아는 지혜를 주었습니다(창 8: 6~9).
배가 아라랏산에 도착한 지 40일을 지난 후에 일입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육지에 대한 소식을 노아에게 가져다주지 못 하였습니다.
5. 그로부터 7일 후에 육지에 대한 증거물을 얻었습니다.
비둘기는 육지에 대한 소식을 노아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돌아오고 두 번째는 감림 새잎을 가져왔습니다. 비둘기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형입니다.
6. 7일 후에 다시 비둘기를 보냈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육지에 대한 완전 정착의 여부를 알려 주는 확실한 소식이었습니다.
7. 노아가 601세 되든 1월 1일에 홍수가 끝났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3~14절에 “육백일 년 첫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땅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재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히더니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2월 17일 비가 지면에서 내린 때로부터(창 7:11) 1년 10일을 지나서야 비로소 땅이 말랐습니다(창 8:14). 이때 하늘의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령하시기를 그 방주에서 나오라고 한 것입니다(8:14~17). 마치 아브람에게 이삭을 데리고 다시 하산하도록 명하듯이, 요나를 삼킨 고기로 하여금 다시 그를 니느웨 성 토하라고 명이시듯이 그렇게 명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장면입니다. 왜 방주에서 나왔을까요?
① 새로운 번성을 위하여서입니다(창 8:17, 9:1).
② 새로운 경배를 받으시기 위함입니다(창 8:20).
③ 새로운 언약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언약은 무지개 언약입니다(창 9:13~19). 새 역사 창조를 위하여 노아는 방주 속에서 나와야만 했습니다.
● 결론 : 오늘의 교회가 노아의 방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간 노아가 하나님께 받은 중대한 3대 명령을 기억했습니다.
그것은 방주를 시작하는 명령입니다. 이는 노아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으라는 명령과 꼭 같습니다. 다음에는 그 방주에 들어오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 중에서 언제는 구원을 위함입니다. 노아는 그 방주 속에서 물 위에 떠 있어야만 했습니다. 마지막에 주어진 명령은 그 방주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 받은 자에게 새로운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의 예표인 방주를 통해서 오늘의 교회는 세상과 죄악의 물결 위해서 분명히 떠 있어야 합니다. 또 그 승자들에게는 반드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일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방주 속에서 나온 노아를 통하여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새 피조물들을 통하여 새로운 일을 하시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늘의 이런 방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방주는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비행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수많은 후손들을 수용하며 산출시키는 방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전파되는 교회, 곧 방주는 그 민족, 국가, 그 역사의 양심이요 동력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새 역사에 산실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늘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의 처소를 짓는 교회, 그 처소 안으로 들어가는 교회(모이는 교회), 그 처소에서 힘을 얻어 나가는 교회(어지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첨부파일
-
노아 방주의 교훈<Ⅱ>.hwp (48.0K)
1회 다운로드 | DATE : 2020-12-18 20:30:37
- 이전글노아 방주의 교훈<1> 20.12.17
- 다음글제3절 성령은 어디(Where)에서 나타나는가? 20.12.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