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풀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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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즉 일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다양한 것이 있겠지만 오늘은 한 가지만 나누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때엔가 스스로 깨닫고 모두 놀라서 지혜로운 말에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모두 비슷하게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 쓰는 이들의 많은 글과 인터넷 과 메스컴의 많은 자료를 통해서 얻고 듣고 보는 것에서 다 비슷하게 소리들을 하는구나? 그런데 그 소리가 마치 유행처럼 그 시대를 반영하고 부족한 부분과 넘치는 문제들을 논하게 되는 구나? 를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오늘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내용은 세상 말이 아닌, 하늘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만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바로 모든 상황 가운데 가장 두려운 적은 바로 나라는 점을 나누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적이 부모가 아니고, 기성세대가 아니며, 정치인들의 적이 다른 당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적은 바로 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적이 되도록 가르친 분들이 바로 우리의 가까이 계신 분들과 부모라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부모의 행동을 주시하고 눈치를 배우는 아이들과 부모의 말에 자신이 확정지어 지는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매들이 모여서 즐겁게 대화를 하면서 깔깔거립니다. 그 후에 이 자매들이 흩어져서 다른 무리들과 만나면? 어떤 이들은 조금 전의 일들을 다시 신나게 말하며 함께 즐거워하는 가하면? 다른 사람은 전혀 그런 말을 나누지 않고 묵묵히 있게 되고 분위기를 오히려 쌩뚱맡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소곤거리는 비밀 말을 듣는 아이는 그대로 언젠가 소곤거립니다. 소통이 안 되는 사람들은 보통 남의 말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통이 되는데 좀 많이 오버 하는 경우는 지나치게 과장해서 자신에 있었던 일들을 모든 사람에게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상대의 말과 묵언수행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틀을 가지고 누르는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나를 똑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에도 부르짖는 기도와 묵상하는 기도가 있지만 오늘은 관상기도에 대하여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관상 즉 항상 주를 생각하라.
관상이란?
먼저 관상에 대한 논의를 해보겠습니다. 관상(觀想)이란 한자말은 ‘마음의 상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곧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을 가라앉히며 있노라면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 영상· 정서들이 흘러들어오는 것들을 글자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상은 영어로 ‘contemplation’입니다. 영어 앞 단어인 ‘con’은 ‘함께’, ‘강하게’라는 뜻이고, 뒤의 ‘temple’은 ‘관찰하기로 표시된 특별한 장소’, ‘성전’ 등의 뜻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주의를 기울여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관조하기 위한 구별된 지역이나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관상을 통해 그 대상과 일치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상의 상태는 교회 역사상 여러 영성 전통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크게는 긍정(kataphatic) 전통과 부정(apopathic) 전통을 통해서 관상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긍정 전통에서는 언어와 이미지와 논리를 통해서 주님과의 일치된 상태를 지향합니다. 이 전통은 기독교 역사에서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요. 이에 비해 부정 전통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나 이미지들을 하나님과 일치를 지향하기보다는, 이런 것 없이 가슴으로 수동적인 상태에서 직관적으로 주님과의 일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 전통은 역사적으로 제도권 교회에서 그리 유력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깊은 신앙심을 갖고 주님과의 일치와 헌신을 지향하는 신자, 수도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영성 생활의 방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헤지키즘, 관상기도 등이 있습니다.
이 관상기도의 상태에서 좀 더 깊이 속에서 울어 나와서 부르짖는 소리 즉, 믿음의 소리를 주께서 들으십니다.
●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기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부를 때에 응답하십니다.
★ 시 4: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 사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9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여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함부로 판단하는 잘못
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졸업장을 받고 있었습니다.
순서가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던 한 축하객에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는 총장과 악수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혀를 차며, “참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다 있으니. 이 학교는 4년 동안 무얼 가르쳤던 거지?”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그게 아닙니다.
저 분은 사고로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수를 하고서 4년 동안 훌륭하게 학교를 다닌 학생입니다”
그러자 축하객은 얼굴을 붉히며 함부로 말한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우리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우리의 판단은 빗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가장 높은 지식은 바로 영적인 지식임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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