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행 13: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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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행 13:16~27, 그 중에서 포인트 21~23)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A. W. 토저라는 목사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믿는 주님이 당신을 구원하고 당신을 부르고 당신을 선택하고 당신의 삶을 인도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면, 그분은 있는 그대로의 주님이 아니시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말은 하지만, 주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도록, 통제하시도록 내어드리지 않는다면 더 이상 주님은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주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의 놀라운 계획을 세우시고 당신이 마음껏 함께 할 수 있는 자, 즉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찾으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비디시아 안디옥에서 전한 설교의 일부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 구절을 포함하면 창세기부터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기간이 단 17절~23절 까지 일곱 절로 요약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에서 40년간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참아 주셔야 할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아니 불신하는 단계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입성했지만, 그 땅을 누리기까지는 45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왜 그렇다고요? 그들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순종 없이는 그 어떠한 하나님의 역사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1절에 보면 사울이 나오는데 그가 40년간 왕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사울은 주님이 그를 쓰시도록 내어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조차도 그의 삶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들의 요청에 더 귀를 기울였고, 점쟁이의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거절했을 때, 하나님도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버려졌다는 말은 하나님이 더 이상 쓰실 수 없는 종이었다는 뜻입니다. 사울이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셨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사무엘상 13장 2절에 의하면 그가 왕이 된지 2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이후로 그가 38년을 더 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사실상 그는 하나님에 의해 버려진 왕, 하나님이 더 이상 쓰실 수 없는 종이었던 겁니다.
여러분, 무엇이 두려운지 아십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포지션, 직책, 직함, 심지어 내가 누리고 있는 어떤 것 자체가 내가 현재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가 목사요, 전도사요, 간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라 해도, 그것이 현재 주님께 대한 나의 순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버림받고도 무려 38년이나 더 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 자리는 껍데기였을 뿐입니다. 순종은 매일이어야 합니다. 매순간이어야 합니다. 어제의 순종이 오늘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항상 귀 기울이는 겸손의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원 할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지는 왕과 스타, 그리고 사람이 원해서 세워지는 왕과, 사람들이 기뻐하는 왕과, 인기 있는 왕은 결국 영원한 보장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순종하는 겸손한 지혜 자들이 참으로 영원한 보장을 받게 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폐하여지고, 22절에 보니 다윗이 왕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자신의 마음과 뜻에 전혀 합하려는 마음이 없음을 알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이를 찾으셨습니다. 개역개정에는 이 부분을 “다윗을 만나니”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번역보다 표준새번역 본에는 22절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은 표준새번역이 더 나은 번역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윗을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다윗을 의도적으로 찾아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찾아내다”라는 단어의 헬라어 동사 “휴리스코”는 마태복음 2장 8절에서도 쓰였습니다. 헤롯대왕이 동방박사에게 말하기를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즉 자세히 주의 깊게 찾으라는 겁니다. 이것이 휴리스코라는 동사의 뜻입니다. 베들레헴에 가서 모든 집을 샅샅이 뒤져서 아기를 찾아내라는 겁니다. 즉 22절 말씀은, 하나님이 내 마음에 맞는 이를 찾기 위해 어떻게 하셨다는 겁니까? 한 집, 한 집 다 보셨다는 거에요. 한 사람씩 세밀하게 보셨다는 겁니다. 이 말씀이 암시하는 것은 이겁니다. 다윗은 본래 왕이 될 사람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다윗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 우리 같은 성도들은 즉 나와는 달라?…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계획은 이미 창세전에 계획되어 있던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누구의 후손을 통해서 올 것인가는 마치 기계적인 운명론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구원 계획의 도구로 누구의 후손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낼 것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뜻을 추구하는 자를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에 맞는다. 라는 표현을 영어로 직역하면 “a man after my own heart.” 즉 하나님의 마음 바로 뒤를 쫓아가는 자라는 뜻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분들만 앉아 계신 줄 믿습니다. 주님은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들은 그저 이렇게 휙 둘러보지만, 주님의 눈에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해서 보십니다. 그 중에서도 주님은 누가 내 마음에 합한 말을 하고, 나의 뜻을 말하며 행하는가? 즉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에 합한 자인가? 누가 내 마음과 같은가? 주님은 그 지혜로운 성도를 찾으십니다. 이 백성이 내 마음과 뜻에 맞는 자인가? 이 백성이 내가 보는 그곳을 함께 보는 자인가? 이 백성이 내가 느끼는 그 영혼에 대한 아픔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자인가? 이 백성이 내가 말하면 그대로 순종하는 자인가? 우리 모두의 마음과 주님의 마음이 꼭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만나니” 이 얼마나 찾던 자인가? 하나님이 만나 주셨습니다. “다윗을 찾아내셨다.” 라는 오늘 본문의 표현이 사무엘상 16장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한 왕을 보았느니라.” 그 당시 다윗은 아직 왕이 아니었습니다.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인데 그는 그 때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왕을 보았다는 겁니다. 분명히 다윗은 겉으로 보면 어리고 경험도 없고 볼품도 없는 자였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기름을 부으러 이새의 집에 갔습니다. 그 때 만일 사무엘이 다윗을 먼저 보았다 할지라도 그는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만큼 다윗은 인간적으로는 내세울만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소통이 있는 사무엘조차도 이새의 첫째 아들 엘리압을 보며 “왕이 내 앞에 있도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외모와 학력, 학벌, 능력, 겉으로 보여지는 요소들에 의해 쉽게 현혹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 이러한 외적인 요소들에 매달리고 에너지를 쏟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 중심(레바브)을 보십니다. 마음은 레바브라는 히브리어 단어인데, 인간의 가장 깊은 중심입니다. 여기에는 그 사람의 의지와 뜻, 동기가 다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는지 그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내가 잘 살거야, 부자가 될거야, 그가 나를 위험에서 보호해 주실거야…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되십니다. 인도자 되십니다. 공급자 되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업그레이드 된 은혜 받은 천국 인들에겐 이런 것들이 없어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그 마음을 보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 그 분 자체를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지 무엇을 얻기 위해서 사랑하거나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사울 왕은 왕위에 올라 40년을 다스렸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사실은 이새의 아들 다윗도 사울과 같이 40년을 왕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상 29:26) 이새의 아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27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다스렸더라. 28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가? 아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사는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의 중심이 하나님과 맞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현재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지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십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아무도 원치 않는 자, 사람들에 의해 잊혀진 그런 사람을 쓰십니다. 다윗은 소위 남자 신데렐라와 같은 자였습니다. 집안일을 하느라 왕의 후보를 보는 자리에 조차도 부름 받지 못한 자. 사울이나 엘리아처럼 키가 훤칠하지도 않습니다. 그에게 무슨 선한 것이 있겠냐며 당연히 자격이 안 된다고 여겨졌던 자.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주목해 보셨습니다. 그를 찾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의 뜻을 다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된 겁니다. 결국 다윗 덕분에 그의 아버지 이새와 그의 후손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영광을 봅니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0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렇다면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다윗의 무엇을 보셨을까요? 그의 어떠한 점이 자신의 마음에 합하다고 여기신 걸까요? 다윗은 그 당시에 양을 돌보는 일로 집안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골리앗과의 대결을 앞두고 사울에게 하는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면 양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으며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4절에 보면,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35 저는 곧바로 뒤 쫓아가서 그 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그가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그가 어떻게 했다고요? 가만 두었습니까? 도망갔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윗을 해하고자 하면 그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답니다. 잠깐, 누구 수염이요? 염소수염? 사자의 수염..어떻게 이럴 수 있지요? 다윗이 무슨 삼손입니까? 그가 힘이 쎄서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다윗의 이 고백은 과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가능한 일이 있어요. 예전에 이런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차에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차를 들어 올렸다는 뉴스였습니다. 어디서 이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것일까요? 아버지가 내게 주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단지 의무가 아니라 중심에서 그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겁니다. 그가 “살려 내곤 하였다”라는 표현에서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다윗이 그 양들을 사자나 곰에서 건져내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이 자가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보신 겁니다. 내가 어떠한 상황을 맞이하든 상관이 없이, 손해를 보든지 상관없이, “그저 주님 말씀 하시면 이 종이 가겠나이다! 말씀만 하옵소서!” 즉각 순종하는 자, 그 자가 다윗이었고,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겁니다.
저는 이러한 다윗이 참으로 멋있었습니다. 비록 그는 나중에 간음과 살인과 거짓말과 같은 추악한 죄도 많이 지은 연약한 죄인이었지만, 동시에 죄를 깨달으면 회개하고 뉘우치는 자였습니다. 저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를 늘 원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눈치 보지 않고 담대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도들도 신속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선포하고 부족하지만 담대히 움직이는 하나님과 합한 분들이 많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내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이 일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중심을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분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사울은 외적으로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딱 하나,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외적으로 갖춘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딱 하나,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순종하는 자였습니다.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순종하는 주님의 백성,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통해 주님의 영원한 통치와 회복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이 편히 쓰실 수 있는 종, 주님께 신실하게 쓰임 받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함께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마음을 찾고 묻기보다, 내가 편한 데로 내가 느끼는데로 살았습니다. 내가 힘들다. 라고 판단이 되어지면 아무리 주님의 말씀이라 해도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고 핑계를 대었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그렇게 비겁하게 살았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찾으시지만, 제가 주님의 마음과 너무나 멀었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아직도 내가 주인이었던 것을 회개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순종하고자 합니다. 물론 아직 저의 힘으로는 주님의 마음에 합할 수 없으니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 자신과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주인되시고 인도자 되시며, 날 친히 찾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철저하게 믿음으로 구하고, 소망으로 달려가며, 사랑으로 선한 일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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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비시디아 안디옥
행 13:17~41.
이곳은 갈라디아 지방의 군사 및 민간 요충지로써, 바울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로마의 식민지였던 곳입니다. 이곳에는 유대인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회당이 있었습니다. 헬라문화의 정신적 분위기와 로마의 통치권이 미치고 있는 그 중심에 히브리 종교의 회당이 자리 잡고 있는 도시에서 어떻게 복음전파가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바울과 바나바는 회당에서 전도하였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안식일에 모여서 성경을 읽고 회중 가운데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이 나가서 설교를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회당장의 요청에 따라 설교단에 나아가 회중에게 설교했습니다. 그의 청중들은 두 부류였는데 한 부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었고 한 부류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이르는 곳마다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가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에서 한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그들을 양육하였으며,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또한 국가적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사사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세상에 오아들처럼 자신들에게도 따를 왕을 달라고 왕을 구하므로 사울을 세우셨고, 뒤를 이어 다윗을 이스라엘의 치리자로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리더들을 세우고 그들을 통해 작은 구원과 더 큰 구원을 가르치시며, 하나님의 전 인류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설교하였습니다.
[3].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서 인간은 계속 실패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실패를 뛰어넘어 온전한 구원의 목적을 성취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구주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는 극에 달했고, 약속하신 구원의 계획이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천국 복음을 통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실체를 들어 내심으로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제목: 선행의 결과
영국 웨일즈 지방의 아주 깊은 산골에 사는 한 소년이 병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기에 그 어머니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집 부근에는 병원도 없었습니다. 걱정을 하다가 용기를 내어 5마일_약 8km)이나 되는 거리를 빗속을 뚫고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를 붙들고 사정했습니다. 의사는 괴로웠습니다. 의사 된 것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돈만 보고 의사 노릇을 할 수 없지 않은가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마지못해 빗속을 달려가 그 아이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치료에 큰 효험이 있었습니다. 그 후 의사는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로이드 존 경이라는 영국이 낳은 유명한 정치가가 재무상으로 등단하여 축하를 받게 되었습니다. 축하연이 벌어진 자리에 그 의사도 참석을 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 재무상은 그 옛날 자기가 치료해 주었던 바로 그 소년이 아니겠습니까? 의사는 정말 놀랐습니다. 그 당시 억지로 치료해 준 그 선한 일이 오늘날 이렇게 엄청난 결과로 나타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우리의 작은 선행이 뜻밖의 결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바라는 바가 없이 베푸는 일에는 후에 엄청난 열매가 맺히는 것을 봅니다. 누군가의 잠잠히 충성을 다하면? 시골이나, 도시 어디 부물하고, 또 상대가 꼭 대성해서 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귀한 자리에서 높은 신임을 받기에 더 할 나위 없이 감사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