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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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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84회 작성일 19-09-2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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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세일즈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 지라드(Joe Girad)는 세계 최고의 판매왕으로, 하루 평균 여섯 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면서 12년 연속 기네스북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의 자리를 지킨 사람입니다. 그는 1928년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성품이 포악한 아버지 밑에서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 자랐고,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칠 수가 없었습니다. 40여 곳의 직장에서 쫓겨난 설움을 맛보아야 했고, 미군에 입대했지만 불과 97일 만에 자동차 사고로 의병제대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도둑질을 하다가 소년원의 신세를 진적도 있었습니다. 35살이 될 때까지 그는 낙오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사업마저 파산하고 자동차까지 차압이 되자, 어린 자식들에게 먹일 것이 없어 시작한 것이 자동차 세일즈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일즈맨으로 대 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그가 세일즈맨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고의 전환 때문입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전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한 회사의 인사부 담당자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혹시 조수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담당자는 공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회사에 조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라드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일반직 직원은 필요하지 않으세요?” 담당자는 지라드를 쳐다보며 대답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이미 직원이 넘쳐나고 있어요. 곧 감원을 할지도 모릅니다. 유감스럽게도 일자리는 다른 곳에서 알아보셔야 할 것 같네요.”

지라드가 끈질기게 물었습니다. “육체노동이라도 좋아요. 짐꾼이나 청소부는 안 필요하세요?

짜증이 치밀어 오른 인사부 담당자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사람이 전혀 필요 없어요.” “아 그렇군요. 정망 유감이네요.”

지라드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지금 딱 필요하실 것 같은 물건이 하나 있어요.” 그리고는 서류가방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작은 팻말 하나를 꺼내들었습니다.

그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직원 채용 계획 없음

인사부 담당자는 팻말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특이한 재주를 가지셨군요. 혹 원하신다면 우리 회사 마케팅부나 영업부에서 일해보지 않으실래요?전혀 새로운 접근방법! 지라드가 처음부터 팻말을 팔러 왔다고 말했다면 아마 그 회사에서 그는 금방 쫓겨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라드는 접근 방법이 달랐습니다. “나 자신을 팔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그의 세일즈철학이 보여주듯이, 그는 단순히 물건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게 사람들에게 먹혀들어갔고, 그는 세일즈에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복음의 세일즈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번쯤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반복음주의 문화가 팽배한 우리 시대에 우리 신앙인들과 교회가 전통적인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세상은 복음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갈수록 복음을 행해 철옹성과도 같은 벽을 쌓고 있고는 사람들의 마음을 허물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허물 때의 방법(여호수아 6장)과 다윗이 시온산성을 빼앗을 때(사무엘하 5장)의 방법이 달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언제나 여리고성을 허물 때문의 방법만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여리고성을 허무는 방법은 그 때 단 한 번밖에 쓰지 않는 방법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는 데 모범답안과 같은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이나 심리적 특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같고 복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데,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이나 사람, 복음을 받아야 할 사람의 상황은 제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열정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열정은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 큰 논란을 가져왔던 ‘봉은사 땅 밟기’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복음의 열정은 누구 못지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법은 옳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가 부족할 때 하나님께 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야고보서 1:5)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거부감이나 적대감이 아닌 감동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지혜를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얼굴에 미소를 담는 것입니다. 즉 자신감, 하나님이 주시는 자존감이 강함, 복음 안에 살고 있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찬 얼굴이라면, 그 얼굴로 전하는 복음을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내 안에 계신 하나님,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알려준 복음이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 자신이 먼저 하늘의 기쁨을 가슴에 가득히 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이 내 마음에서 얼굴로 나타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복음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을 줄 것입니다. 그렇게 기쁘게 사는 이유를 오히려 우리에게 물어올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세상이 접근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얼굴은 전도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새긴 전도지입니다. 우리는 찢어지고 얼룩진 전도지인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전도지인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 교회의 숨은 일꾼들

백만 명 구령운동이 한창이던 1909년 9월, 평북 영변에서는 감리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십일조회’가 조직되었습니다. 돈이 아닌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기로 서약한 부인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들은 1년에 5주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고, 2주 동안 교리와 전도법에 관한 교육을 받은 후 3주 동안 ‘둘씩 둘씩 짝지어’(막 6:7) 농촌으로 들어가 전도했습니다. 경제력이 없는 부인들이기에 여행 경비만큼은 선교사들이 지원했습니다. 전도 부인들의 열기는 선교사들을 감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1910년 영변에서 활동하던 감리교 여선교사 에스티(E. M. Estey)의 보고입니다. 아마도 십일조회라는 명칭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자기 시간의 10분의 1이 아니라 5분의 1까지도 기꺼이 바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영변에 있는 어떤 부인은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주님이 제게 이 같은 기쁨을 주셨는데 이 정도밖에 드리지 못한다! 면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매 3개월 중에 한 달은 집안일을 하고 나머지 날들은 주님께 바치기로 했어요.’ 이 부인은 실제로 지난해 약속한 날 이상을 바쳤습니다. 여행 경비를 제외하곤 한 푼도 받지 않은 채 말입니다.

영변에서 시작된 십일조회는 해주, 인천, 서울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십일조회 부인들을 통해 남성이 들어갈 수 없는 안방 깊숙한 곳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십일조회는 물질보다 소중한 시간을 바친 초대 교인들의 헌신을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교회는 무보수 자원 전도 전통을 수립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드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허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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