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그리스도인의 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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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표징
구 절 : 살전 5:16. 묵상 : 시편 73:28(구약854쪽)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1. 성경 말씀에는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엔 항상 슬퍼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울고 항상 우울하며 얼굴에 검은 그림자를 지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서 뭐합니까? 믿지 않는 사람은 웃을 이유가 없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웃을 이유가 충분히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시므로 웃을 수가 있고, 예수님께서 내 구주가 되시므로 웃을 수가 있고, 성령님께서 내 보혜사가 되시므로 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사역자는 더 기뻐합니다.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해방되기 전, 함경북도 나남에 한 여자 거지가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인데, 살이 보이는 남루한 옷을 입고 이집 저집 다니며 구걸행각을 하였습니다. 젊은 것이 무엇을 못해 거지가 됐느냐, 멀쩡한 여자가 일하기 싫어서 그 모양이냐 하며 남들이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으나 한번도 화를 내는 일 없이 그저 싱글벙글 웃어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친 여자로 돌려놓고 제대로 상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8.25해방이 되고 나남에 소련군이 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거지가 소련군의 장교 옷을 입고 중위의 견장을 달고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거지가 아니라 소련군으로부터 밀파된 여자 간첩이었습니다. 이 거지가 그를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 앞에 서 태연하고 여유 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그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소련 장교인 그는 자기의 사명에 대하여 긍지가 있었고 자기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멸시할 자격이 없다고 믿었으므로 주위가 자기만 거지로 알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조금도 괴롭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됨을 자랑하는 우리들이 핏대를 올려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만한 일이 세상에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는 배신을 당하고, 무지한 로마 병정들에게는 매를 맞고, 얼굴에 침을 받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빗발치는 욕설 속에 못 박혀 죽으신 일, 살인강도들과 똑 같은 대우를 받았으나 한마디의 불평도 아니 하신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지나치게 호강하는 셈이며 앞으로 어떠한 부당한 욕을 먹어도 기쁘게 참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기뻐하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고 말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사항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표징은 바로 (기쁨)인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길거리에 가다가도 (저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다. 저 사람 예수 안 믿는 사람이다)하는 것은 그 얼굴에 나타나는 광채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감정적으로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도록 마음의 자세를 열어 놓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또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7). 기도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와의 교통이 끊어지고 맙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시간 내어 수요예배에도 나와 기도하고, 가정예배에서도 기도하고, 그리고 금요기도와 금식기도를 드려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 21:36) 얼핏보면 모순된 말인 것 같습니다. 깨 있어야 기도할 수 있지, 잠을 자면서 기도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하나마나 한 당연한 이야기를 성경이 말하고, 그걸 읽는 사람도 '맞는 말이야'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은 이 말에는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기도를 하면서 생각으로는 딴 생각, 몸으로는 딴 짓을 하는 것은 깨어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또한 입으로는 기도하면서 삶으로는 기도대로 살지 않는 것도 깨어있는 기도하고 할 수 없습니다. 스님들은 밥을 먹을 때 침묵하며 밥을 먹는 일에만 집중을 합니다. 아주 정성껏 밥알 하나도 남김없이 먹고, 맨 마지막에는 한 조각남은 김치로 밥그릇을 닦아 먹고, 물을 부어 그릇을 헹구어 마시는 것으로 설거지를 대신합니다. 밥 먹는 일 자체가 수행이고 기도이기 때문입니다.(비위가 좋지 않은 사람은 스님이 되기도 힘들겠죠?) '항상 기도로 깨어있는 기도하라는' 것은 이렇듯 먹고 싸고 일하고 쉬는 일상 안에서 전심전력으로 표현되어지는 기도를 말합니다. 일상의 모든 일에 온 정성을 다하고 애쓰며 사는 것, 삶 자체가 기도요, 노래요, 예배요 전도가 되는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기도"입니다.
● 기도는 호흡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럼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살겠다고 호흡은 하려고 합니다. 특히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려고 애를 씁니다. 요즘처럼 황사나 미세먼지, 더 아나가서 초 미세먼지를 두려워합니다. 전국적으로 큰일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환경오염이 극도로 심한 서울지역과 경기권에 사람들이 더 들어가려하고, 오히려 살던 사람도 말만 이사 가고 싶다고 하지 실제로 이사 가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집니다. 왜 이렇게 호흡을 중요시 하면서도 자신들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 말하는 데러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의 감동으로 기도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소망과 사랑을 이루시길 축원합니다.
3. 성경은 또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불평을 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타락한 성품이 있어서 불평하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두세 사람만 모이면 감사하는 이야기는 하지 아니하고, 모두 다 남을 흠잡고 불평하는 소리만 합니다. 우리 삶에 세상의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삶의 모든 것들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소소한 기쁨에서 본질적인 기쁨으로 끊임없이 나가야 됩니다. 소소한 기쁨이 무엇일까요? 가장 기초적이며 기본적인 기쁨, 즉 ‘소유’에 대한 기쁨입니다. ‘성취’에 대한 기쁨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최고의 기쁨을 찾지만, 아닙니다. 이것은 시작하는 기쁨이지 궁극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이 소소한 기쁨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려야 합니다. 기쁨을 감사로 바꾸는 일일 바로 은혜입니다. 즉 기쁨은 상황이나 소유나 잃어 비림에 따라 사라질 지도 모르지만, 감사는 지난일과 지금과 미래를 보는 믿음의 눈이 있을 때에 들어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그 표현이 바로 찬양입니다.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고, 먹고 마시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을 먹든지 먹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내게 주신 축복임을 알고 감사할 줄 알면, 기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이 소유의 기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작은 차를 사서 감사했습니다.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옆을 보니 남도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차보다 저 사람 차가 더 크네.’ 어디 차뿐이겠습니까? 모든 소유가 다 비교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비교의식은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라면이나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기뻐하고 있는데, 더 좋은 것을 먹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면 처음의 기쁨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소유의 기쁨을 갖기 시작할 때는 비교를 멈춰야 합니다. 그냥 먹는 것이 감사하고, 가진 것이 감사하고, 내 삶의 환경에 감사할 줄 알아야 기쁨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만족감이 사라지는 불만족의 세계, 불평과 불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은 육신을 누리는 유한한 복이고, 감사는 영혼의 영원한 복을 저금하는 복음이다.”
우리 선교초대교회 가족은 이런 부정적인 정서를 물리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정서를 갖고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 가족과 함께 하십니다.
사랑의 주님. 저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늘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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