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믿음 이상적인 믿음/막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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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믿음 이상적인 믿음/막 6:1-6. 하나님의 나라는 기적의 말씀은 신비롭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시간 몇 가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친구를 사귈 때 이상한 사람을 찾습니까? 이상적인 사람을 찾습니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 이상한 사람이라고 합니까?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합니까? 거동이 수상하고 의심스런 사람을 볼 때 이상하다고 합니까? 이상적이다 라고 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상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이상적인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어떤 사람이 어딘가 기대하던 바와 다르게 되어 가거나? 무언가 예전같이 않을 때 ‘그 사람 요즘, 이상해졌어!’, ‘그 사람 이상해!’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름대로 기대에 만족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사람이야, 그 사람은 이상적인 모델이야!’ 라고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신앙생활도 은혜를 받으면 이상적인 일꾼이 됩니다. 창조적인 일꾼, 바람직하고 유능한 일꾼이 됩니다. 반면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성령을 받지 못한 신앙생활이 계속되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신앙생활을 내 힘과 내 열정으로만 하게 되면 이상한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의 능력을 받아 살겠다는 자세가 이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컨대 12년 동안 가진 돈을 병원비로 다 허비하고 괴로움만 중하던 혈류병 든 여인이 주님을 만나 고침 받은 이야기가 막 5:25-34에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주님을 만나려 했으나 수많은 군중들 때문에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주님의 옷에 손만 대도 낫겠다는 이 믿음이 그 마음에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을 만나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나 자기의 체면이 방해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군중 속에 계신 주님께 가까이 나갔습니다. 주님의 옷에 손만 댔는데도 불구하고 12년 동안 혈루병이 사라지고 고침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고침 받을 수 있게 된 종합적인 결론을 막 15:34절에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34절) 이 여인이 자신이 바라는 병에서 회복되기를 원하는 건강을 믿음으로 주님 앞에 보인 것입니다. 히 11:1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 기자는 약 2:18에서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합니다.
●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 무화고 나무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길가에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마 21:19-20)
아무리 주님의 말씀이라도 믿지 못하면 이상하고 믿으면 이상적인 신앙경험을 하게 됩니다.
신앙(하나님의 법)생활(행동으로 옮김)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위로부터 주시는 성신의 능력을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슥 4:6)
주님을 마치 나의 들러리처럼 아쉽고 필요할 때만 찾는 그런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면 주님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속히 기나긴 그 어둠의 동굴에서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롬 2:24에서 율법을 의지하면서 율법을 어기는 이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 저와 여러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전락하게 되고, 바로 나타나는 현상은 이상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즉 매사에 부정적이 되고요, 조금만 약점을 지적해도 인상이 일그러지고 거부적인 자세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구실삼아 남에게 수군수군한 사람이 되는 천박한 신앙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먼저 말씀을 받을 때 그 수준이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는데도 한낱 마리아의 아들 목수의 수준낮은 말로 여겼습니다. 또 그들이 대단치 않게 여기던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형제정도로 밖에는 예수님을 대하지 않았습니다.(1-3절) 사람들은 이처럼 대개 자신이 만나는 사람을 평가할 때 맨 처음 만나는 그 때의 외모나 보이는 첫인상이나 선의감 아니면 평소 알고 있는 상식등, 대개는 자기 관점에서 사람을 보려는 잘못을 범합니다. 그 사람의 전부를 규정지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의 정말 숨어 있는 가능성과 귀한 측면과 강점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상적인 믿음생활을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즉 사람의 말로 들으면 불편해서 들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여러분이 옷을 입었는데 전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신발을 샀는데 전혀 발에 맞지 않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장에서 짜 맞추지 말고 주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이렇듯 바울이 선포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대로 받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울서신중 하나인 데살로니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살전 2:13) 그런 이들의 믿음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등 곳곳으로까지 퍼져 나갈 만큼 세계적이었습니다.(살전 1:8)
이 점에서 여러분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되고 우리교회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바뀔 수 있는 비결중의 하나가 이 말씀 한절에서 해답을 주고 있는데요. 이 시간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이 지금 주시는 말씀을 여러분 인생의 최고의 수준의 자리에 올려놓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면 기억하십시오. 사람 앞에 여러분이 무시당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하찮게 여기면 여러분이 사람 앞에 천대 받게 됩니다. 그 예가 이미 삼상 2:27-34에서 엘리에게 찾아와 경고한 하나님의 사자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엘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한날, 한시에 잃은 불행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종살이하고 있을 때 "바로의 신하들 중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우박이 잇을 경고를 받은 신하들은 종들과 생축을 집으로 미리 피난시켜 보호 받았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자는 그 종들과 생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출 9:20-21)이들은 우박으로 사람 짐승 밭의 채소 나무 등이 꺾여지고 말았지만 말씀을 마음에 두었던 고센 땅에서 만큼은 우박이 내리지 않아 보호 받았습니다.(26절)
이상적인 믿음의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들러리가 되면 곤란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들러리가 되면 믿음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종종 성도들에게서 듣는 이야기 가운데 기쁨이 되고 감사한 이야기는 목사님이 이러이러한 말을 했을 때 상황은 좋지 않은데 그 말을 듣고 믿고 그대로 하고 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재정적으로 종 어려운 경우에 고추 값이 바로 전날까지 헐값이었는데 여러 배로 값이 올라 문제가 해결되는 일이 있고, 말씀에 이끌려져서 적지 않은 물질을 기쁨으로 드리는 분들을 보면서 생각하기를 사람과도 하나 되면 주님이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물며 주님과 하나 되면 말할 나위도 없지요. 그것이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요 순종하면 필요한 것을 주님이 채워 주시고요 순종하면 말씀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한편 오늘본문에서와 같이 배척하고 믿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리 고향일지라도 이상하게도 권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3.5절)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너무 인간적인 정으로 얽매 있는 곳은 주님이 역사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즉 너무 전통적인 옛 것을 고수하고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지역이나 지나칠 만큼 씨족사회나 정으로 끈끈하게 뭉쳐 있는 곳은 자기들끼리 좋고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으니까 새로운 사람이나 문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는 세대간에, 계층 간에, 지역 간에, 신분 간에 민족 간에 담이 허물어지는 곳입니다. 이상적인 믿음의 사람은 주님을 늘 환영하고, 자신의 가장 귀한 자리에 모셔 들이는 사람임
결론적으로 교회는 이상한 교회가 되서는 안 되고 이상적인 교회가 되도록 마 16:18의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니 라는 말씀처럼 교회의 창시자이신 주님의 몸을 세워 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이상한 성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날마다 초대교회가 핍박 속에서도 든든히 서갔던 것처럼 말씀을 상고하고 기도하기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항상 성령님을 갈망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딤후 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은혜속에서 강하여지고”라고 한 것처럼 은혜 안에 살아야 이상한 성도되지 않고 이상적인 성도, 바람직한 성도, 사회에 빛이 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좋은 것을 배운 여러분의 자녀도 이상한 자녀가 아니라 이상적인 자녀가 되어 사회에 기여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데도 권능을 행하지 않은 이유를 주목하십시오. 오늘 본문 6절입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우리의 불신과 믿음 없음이 주님이 우리교회에 행하실 일들과 여러분에게 예비하신 놀라운 계획들이 축소되거나 제한되지 않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선포합니다. 소수의 병자들이 아닌, 모든 이들의 병들이 치료받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소서. 가벼운 병에서 치명적인 병에 이르기까지 제한 없이 고침 받는 교회되게 하소서.
뇌성마비 아이의 간증
나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의 상담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부탁을 수락했다.
그 캠프에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빌리��라는 어린 소년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빌리를 괴롭혔다. 빌리가 균형을 잃은 몸으로 운동장을 걸어갈 때 그들은 줄지어 서서 빌리의 몸동작을 흉내 내기도 했다. 어느 날 나는 빌리가 그들에게 “작업실로…가려면…어디로…가야…하니?”라고 길을 묻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빌리의 어설프고 더듬거리는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면서 “어…저…쪽으로…가야 돼” 하며 웃어대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빌리네 방아이들이 아침 묵상을 발표하기로 한 목요일 아침, 내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 방아이들이 빌리를 발표자로 선정한 것이었다. 그들이 빌리를 앞에 세워 놓고 놀리려 한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빌리가 힘겹게 앞으로 나가는 동안 아이들의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빌리가 여덟 단어를 말하는 데는 거의 5분이 걸렸다.
“예수님이…절…사랑…하세요. 그리고…저도…예수님을…사랑합니다.” 그가 말을 마쳤을 때 킬킬거리며 웃던 아이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빌리의 짧은 간증이 있은 후 그 캠프장에는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절 기억하시겠어요? 전 그 중학생 캠프 때 회심했어요.” 라고 말하는 많은 선교사들과 설교자들을 만났다. 그 캠프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관심을 예수님께 돌리려고 야구 선수들을 초대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교만한 영혼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은 슈퍼스타들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뇌성마비를 앓는 어린아이를 선택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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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1. 굠나하고 수상한 사람.... 의심 많은 사람.... 착각에 빠진 사람....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람... 부정적인 사람...
2. 겸손함 느껴지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 감사와 감격이 많은 사람...순진하여 긍정적인 사람...
과연 당신 이라면 어떤 사람과 교제하고 십습니까? 동업하고 싶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원하은 사람이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