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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물리치는 신앙(대상 21: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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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29회 작성일 19-02-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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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물리치는 신앙(대상 21:18-27)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은 바로 염려 때문입니다. 염려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믿음이 없다는 것이며 기도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근심과 걱정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우리 성도들까지 그렇게 살아가면 되겠습니까? 염려하면 기도가 안 되고 세상 방법이 앞서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이 염려에 빠져서 기도보다는 인간의 생각이 앞서서 곤경에 처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1. 염려는 불신앙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은 사단의 시험과 유혹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방심하는 사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던 다윗,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했던 성군 다윗마저 사단의 공격으로 넘어가는 것을 봅니다.

대상 21:1절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왕은 장군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를 파악하여 보고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 때 요압장군이 왕에게 충언을 올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백배나 더해주기를 원하니, 왕은 백성을 계수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이 인구조사는 다윗이 자기의 군대를 모집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갈 만한 사람을 조사하여 유사시에 활용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군대를 더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상 21: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떠나서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인구조사를 한 결과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만한 자가 일백 십만, 유다 중에 사십 칠 만이었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켜주심보다 사람의 숫자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신앙보다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왕권을 지키고, 나라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판단착오입니다. 우리가 자칫하면 이런 세상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재물이나 인구수에 빠져 그것으로 자기만족을 삼거나 성공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기름 부은 받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왕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왕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대상 21:7절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그리고 하나님은 선견자 갓을 보내 세 가지 재앙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게 합니다. 다윗의 어리석음이 이스라엘에 재앙을 불러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세상과 인간의 힘을 의지하여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을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온역을 내리시매 죽은 사람이 칠 만이나 되었습니다.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서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보다 사람의 숫자를 의지할 결과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권세나 사람의 숫자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 해 주지 못합니다. 다윗이 눈을 들어 보니 하나님의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편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란의 현장에서 다윗은 자기의 죄악을 깨닫고 돌이킵니다. 즉시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빕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훌륭한 점입니다. 죄를 지은 것은 자기이니 백성들을 더 이상 재앙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대상 21: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2. 회개는 재앙을 멈추게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천사가 선견자 갓을 시켜서 다윗에게 명령합니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대상 21:19절 “다윗이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올라 가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로 순종하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지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다윗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만약, 다윗이 하나님보다 자기의 권세를 더 의지했더라면, 결코 자신을 낮추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겸손과 아름다운 신앙을 보게 됩니다. 비록, 돈 많고 권세가 높은 왕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런 변명이나 이유 없이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봅니다.

대상 21: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사자를 보내셨더니 사자가 멸하러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사자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 곁에 선지라.

오르난이라고 하는 사람은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하마터면 기절 할 뻔 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자기 집 마당에 섰는데, 시퍼런 칼을 들고 예루살렘을 노려보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땅에 온역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천사 때문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한 것입니다. 너무나 두려워서 오르난은 네 아들과 함께 숨어 있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 왕이 왔습니다. 오르난은 다윗 왕이 오는 것을 보고 나가서 영접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가운데 있었는데, 다윗 왕을 보게 되니 힘이 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다윗왕은 오르난에게 타작마당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에게 창궐하고 있는 온역이 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권세나 세상의 숫자를 의지할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재앙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혼란과 죄악이 난무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게 될 때에, 재앙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대상 21:16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편을 가리켰는지라 다윗이 장로들로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다윗의 위대한 점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천사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즉시 엎드려 겸손히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을 멸망에서 건져낸 것입니다.

대상 21:17 하나님께 아뢰되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이 땅이 형통하고 번성하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는다는 것은 자기의 욕심이나 인간적인 계산을 버리고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왕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겸손히 회개하는 것을 아름답습니다. 자기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지 말게 기도하는 회개의 신앙이 아름답습니다.

3. 신앙은 희생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자기희생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 26절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리시고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제사로 표현 받고 표현 하십니다) 희생 없는 사랑은 가짜입니다.

현대인의 7대 죄악 가운데 하나가 ‘희생 없는 종교’라고 합니다. 종교에서 희생, 즉 사랑이 빠지면 죄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에 빠지고 자기만 복 받고 잘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이익보다 다른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먼저 살피시고 도우셨습니다. 참된 신앙은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 잘 되는 것은 부모님의 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잘되는 것도 성도님들의 헌신과 희생의 결과입니다. 이 사회가 잘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오르난은 다윗 왕에게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바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을 목격한 오르난은 아낌없이 드리고자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며, 이렇게 욕심이 없어져 버립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임을 인정하고 감사함으로 그분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는데, 값없이는 번제로 드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오르난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다윗의 마음도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단을 쌓되 자기의 정성과 헌신 없이는 드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대상 21:24절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다윗은 그 땅과 짐승들의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지불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도 희생해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 자신을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성과 땀이 어우러져 드려져야 합니다. 다윗은 엄청난 재앙을 목격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온전한 마음으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응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된 것입니다.

대상 21:27절 “사자를 명하시매 저가 칼을 집에 꽂았더라.” 드디어 재앙이 해결 되었습니다. 헌신된 예배, 희생적인 사랑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재앙을 물리쳤습니다.

◈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대한 결단을 기도로 선포합시다.

지나온 걸음들을 돌아보라.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셔서 이기게 하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음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내 삶의 영역 중에서 복음의 놀라운 은혜의 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부분이 있는가?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죄의 열매들, 아직도 끊지 못한 습관들, 아직도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여서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태도나 생각들,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관계들-부부, 자녀, 믿음의 지체들, 직장동료들 등등...) 이렇듯 아직 복음으로 정복되지 못한 영역들을 믿음으로 돌파하는 기도로 나아가자.

(이사야 33:16)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신명기 3:21-22)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 눈으로 보았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야고보서 4:7-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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