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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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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803회 작성일 17-09-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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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
에스라 8 : 31-34

약 2500여년전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셨던 하나님의 손이 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을 도우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의 들어 간 것을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벨론(바사왕 고레스에 의해 점령당해 바사 대제국이 됨)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을 포로 귀환이라고 합니다.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와 포로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역사적인 사건들입니다. 바벨론(바사)에서 귀환하는 것을 출바벨론(출바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이란, 쿠웨이트, 요르단, 터키, 이집트까지 당시 바사 대제국이였습니다.

출바사는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출바사와 출애굽과 다른 점은 출애굽은 백성들이 많은 고통 가운데 애굽을 떠났지만, 출바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별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자원하여 귀환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고 출애굽을 하였다면 출바사는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원하는 자들만이 귀환하였습니다. 출애굽은 애굽의 바로 왕은 반대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다면, 출바사는 바사 왕의 허락으로 백성들은 자원으로 되어졌습니다. 제 1차 귀환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42,360명이 귀환했습니다(4:64,65). 이때의 귀환 목적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것 이였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치고 성전 귀물들을 가져왔던 것을 다시 가져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5,400개의 금과 은그릇들을 다시 가지고 귀환하게 된 것입니다(1:8-11).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약 3개월간 재건하고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하는 일을 중단하였다가(4:4, 24) 16년 정도가 지나 다리오 왕으로부터 중단되었던 성전공사를 완공할 수 있도록 하므로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들이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식 한 것이 제 2성전입니다(6:16, 제 1성전을 솔로몬 성전, 제 3성전은 예수님 당시 헤롯 왕이 재건함).

제 1차포로 귀환 이후 제 2차 귀환이 있을 때까지는 약 58년간의 기록 없는 공백 기간입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하만의 계략으로 유대인을 전멸하려고 했지만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에스라를 통해 제 2차포 귀환을 하도록 하였으며 제 3차 귀환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십육대손으로 율법에 익숙한 학자요 제사장이였습니다(7:12).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왕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았습니다(7:6).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가리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7:13).

아닥사스다 왕은 이방 사람이지만 에스라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위하여 드릴 예물을 궁중 창고에서 다 내다가라고 하였습니다(7:20).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까지도 받지 말도록 하였습니다(7:24, 우리나라의 성직자들에게 면세 혜택은 이 말씀에 의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왕은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라고도 했습니다(7:25).

에스라는 왕으로부터 이러한 배려를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사람 바사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도록 하신 것 입니다. 이방나라의 왕으로부터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게 된 것은 포로로 잡혀갔지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비롯해서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이며 더구나 모르드개와 에스더로 인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같은 선지자들도 포로이지만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겼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7:28).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제 에스라는 귀환 할 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이 1,773명이였습니다. 제 1차 귀환 숫자에 비교하면 매우 적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귀환하지 않고 바사에 머물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열망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없는 자들은 자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귀환을 자원한 백성들은 투철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민의식을 지닌 자들이였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자원한 자들은 바벨론에서의 안정된 삶과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성전을 사모하는 신앙심을 가진 자들입니다.


에스라 역시 왕의 총애를 받는 학자로서 바벨론에 남는다면 어려움 없이 살수있겠지만 하나님을 섬김과 성전을 사랑하는 신앙심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였습니다. 대적들이 매복하는 위험과 고난의 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한 길이였습니다(31).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는 길입니다.


실패하고 병들고 어려울 때 교회를 찾고 예수를 믿고자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공하고 건강하고 모든 일이 잘 되는 사람이 교회를 찾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실패한 사람이나 찾고, 병든 사람이나 다니고,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 말합니다.


애굽의 기름진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를 누리며 살았다면 출애굽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남았을 것입니다. 바로 왕의 학대로 죽기보다 더 힘들었기 때문에 모세를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마다 애굽이 더 좋았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를 비롯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 남아 있어도 얼마든지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이 더 고생이고 죽을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여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눅5:11).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했을 때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란 쉬울 수 있지만 두 배를 가득 채울 정도의 많은 고기를 잡았을 때 고기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길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그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렇게 세상적인 모든 것을 버려두고 고난의 길을 택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손으로 도와주십니다. 에스라는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여 돌아갈 자들과 함께 출발하여 아하와 강까지 왔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에는 위험한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적들이 길을 막고 매복한 것을 알았습니다. 귀환자들에게 은금보화가 많은 것을 알고 빼앗고 죽이려고 하는 악당들이 길에 숨어 있었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성도들 앞에도 평탄한 것이 아닙니다. 대적들과 길을 막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금년에는 열심히 맡은 일을 할 것이라고 결심하였지만 방해하는 대적들이 매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방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해물이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이러한 대적들과 매복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에스라는 자신들을 도와 줄 보병과 마병을 왕께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8:22,23). 에스라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21).


이것을 우리는 배워야합니다. 우리에게도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을 막는 대적들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매복하였다는 것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게 숨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 어디서 툭 튀어 나올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앞에도 보이지 않는 대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탄한 길을 구하여야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시는 은혜를 간구하여야 합니다. 평탄함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라와 함께 한 귀환자들에게는 받은 엄청난 은금을 가졌습니다. 그 양이 얼마만큼이나 되는가를 26,2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많은 은금은 하나님께 바칠 예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예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은금보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28)라는 말씀입니다. 귀환자들에 대한 신분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하고 귀환하는 자들이 어떤 존재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해도 올라가기를 싫어하는 남은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자들을 보고 한 말씀입니다. 대적이 길에 매복하고 있다는 것도 두렵게 여기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고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자’란 오늘의 ‘성도’라는 말입니다. 바벨론에 남은 자들에게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를 즐겨하지 않고 세상적인 안락을 원하는 자들을 ‘성도’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전을 사모하고 예배하기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여호와께 거룩한 자’,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 ‘여호와께 거룩한 자’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거룩한 자들이 가진 금은보화는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라고 했습니다(28).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이 소유한 것은 단순한 물질이 아닌 예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대적자들과 매복자들은 ‘여호와의 거룩한 자’로, 하나님께 드릴 예물로 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적자가 많이 있고, 속이는 매복한 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 할 것은 없습니다. 에스라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기도하였던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손으로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 주십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자’,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손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지켜 주실 때는 그 어떤 해도 받지 않게 됩니다.


에스라와 귀환자들은 하나님의 손으로 도우심을 받아 대적자들과 매복한 자들에게 어떤 어려움도 당하거나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자들과 매복자들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탄하게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매복자들의 눈을 어둡게 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쳐서 죽였는지 하여튼 귀환자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호와께 거룩한 자’, 거룩한 무리 ‘성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 앞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손해를 끼치려고 하고 빼앗으려고 하는 악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이 도우사 대적과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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