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면 눅 5 :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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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면 눅 5 : 1-11
우리는 흔히 "...맛을 알면" 이라는 말을 잘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또는 "사람이 돈맛을 알면..." 이런 말들은 우리들의 인생에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맛을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맛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맛을 알면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냥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술 마시는 맛을 알면 드디어 술이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이런 분들은 절대 술을 끊을 수 없습니다.
믿음생활의 맛을 아십니까?
우리의 신앙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관념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의 삶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교양과목을 수강 신청하듯이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바꿀 만큼 너무 중요한 진리에 대한 체험입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철학자들도 압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지식으로 아는 것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재성, 하나님의 현재성, 하나님의 구체성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맛을 아십니까?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맛보셨습니까?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34:8) 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실 목회자가 되고 나서도 전도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불신자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저의 가슴속에 전도의 불을 붙게 한 것은 전도를 통해 한 영혼,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체험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 성도들의 가슴에 전도의 불을 붙게 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량리역 찬양전도집회를 통해 불신자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할 때 성도들의 가슴은 불이 탔습니다. 전도의 맛을 본 것이지요. 어떤 집사님은 전도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분은 전도지를 들고 옆에 사람을 세워두고 그냥 전도지에 있는 복음의 내용을 읽기만 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서 말해야 되는데 자신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분의 전도를 받은 아저씨가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그리고 영접기도를 했습니다. 놀란 것은 전도하던 집사님입니다. 그 때부터 이 집사님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맛을 본다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맛, 기도하고 응답 받는 맛을 오늘 우리가 체험한다면 오늘 우리는 우리의 생의 변화를 체험할 것입니다.
빈 그물을 씻고 있는 시몬 베드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의하면 동생 안드레를 통해서 이미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제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그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에 별로 흥미를 못느낀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에겐 현실적인 문제가 더 크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 배에서 빈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해변가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배에서 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계속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베드로에겐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저 빈 그물만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듣기는 듣지만 그 말씀이 나의 생을 변화시킬 만큼 충격적으로 들려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좋은데 말씀이 마음에 남아있지를 않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베드로는 여전히 빈 그물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을 잘 들어야 합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
혹시 당신은 베드로와 같은 말을 하지는 않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우면서 수고의 떡을 먹는데도 여전히 인생이 빈 그물입니까? 불만스러운 피곤함만 쌓여가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에 의미를 찾지 못할 때는 끝없는 불만과 피곤함 속에 빠지게 됩니다. "헛 살았구나!" "지금까지 내 인생이 빈 그물이구나"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런 것을 "빈 그물의 인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빈그물입니다. 노래방도 가보고, 이것 저것 해보지만 여전히 빈 그물입니다. 혹시 당신의 인생은 빈 그물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의미 있고 좋은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다면 그 일은 정말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빈 그물이 아닙니까? 성경에 나오는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주님 앞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었습니다. 저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주님과 관계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 이 불법을 행한 자들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저는 오늘 중대한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아는가 라는 질문보다 휠씬 더 심각한 질문은 바로 "정말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아는가?" 입니다. 오늘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중요한 힌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후로 주신 주님의 말씀은 모두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마7:21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또 마7:23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마7: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베드로 본문에 의하면 베드로에게 인생이 변화된 너무 중요한 기회가 왔습니다.
빈 그물이 아니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기적을 체험할 기회가 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기회가 왔다는 말입니다. 언제 입니까?
첫째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자기 배에 타라고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일방적인 배려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삭개오에게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눅19장에 보면 삭개오와 예수님의 만남이 소개되어 집니다. 삭개오는 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나무 아래 오신 예수님이 삭개오를 향하여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너의 집에 유해야 하겠다"라고 말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누가 누구를 기다립니까? 그런데 누가 누구를 부릅니까? 보십시오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난 것, 그의 집에 들어온 것은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롬5:8)
두 번째는 배에 오르신 주님께서 많은 무리들을 가르치시다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물을 씻으면서 듣기는 들었지만 그 말씀을 자기에게 주는 직접적인 말씀으로 듣지를 못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말씀을 해도 베드로의 영혼을 바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기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은 베드로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설교를 평가하면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나에게, 직접적으로 들려지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직접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여러분들은 빈 그물일 것입니다. 직접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흔히 "레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어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마디라도 상관없습니다. 말씀이 나에게 직접 증거되면 이 때부터 나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이여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말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리한즉"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될 정도였습니다. 기적입니다.
베드로는 평생 그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런 일이 그냥 일어날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드디어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말씀대로 하다가 어마어마한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 한번의 체험이 베드로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삶이란 그런 의미에서 레마로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현장에 성취되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빈 그물로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이 성취되어서 가득찬 그물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생의 목적이 바뀐 베드로 계속해서 본문을 보십시다.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다가 어마어마한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그때부터 그의 생이 변합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이 말씀앞에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나타난 베드로의 변화는 세 가지 부분에서 드러났습니다. 첫째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의 변화입니다. "선생이여"라는 호칭에서 "주여"라는 호칭으로 바뀌어졌습니다. 호칭의 변화는 중요합니다. 오빠에서 여보로 호칭이 바뀌어집니다. 호칭은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냥 "선생이여, 랍비여"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여"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관계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십니까? 주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변화는 자신의 죄성에 대한 고백입니다. 기적을 본 베드로가 기뻐한 것이 아니고 드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변화는 자신의 죄성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래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장모를 부양하는 사람, 한 가족을 위해 자기 인생을 헌신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나자 베드로는 자신의 죄성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 있을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보는 것입니다.
누가 은혜 받은 사람입니까? 은혜 받은 기준은 분명합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세 번째 변화는 생의 목적의 변화입니다.
이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가 달라졌습니다. 물고기를 좇는 인생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 사람을 낚는 일에 헌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변화의 모습은 목적의 변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입니까? 무엇에 당신의 삶을 헌신합니까? 여전히 돈버는 것, 여전히 자기 이름 드러내는 것, 여전히 어떤 세속적인 힘을 추구한다면 당신은 변화된 사람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맛을 잃어가지 않습니까? 음식 맛을 잃어가는 것은 병에 걸린 신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잃어간다면 지금 우리는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빈 그물을 씻고 있는 중이겠지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붙잡고 이 말씀을 삶의 현장에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영혼을 터치하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나타난 기적은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리한즉 일어난 일입니다.===== 기적을 체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흔히 "...맛을 알면" 이라는 말을 잘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중이 고기 맛을 알면..." 또는 "사람이 돈맛을 알면..." 이런 말들은 우리들의 인생에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맛을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맛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맛을 알면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냥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술 마시는 맛을 알면 드디어 술이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이런 분들은 절대 술을 끊을 수 없습니다.
믿음생활의 맛을 아십니까?
우리의 신앙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관념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의 삶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교양과목을 수강 신청하듯이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바꿀 만큼 너무 중요한 진리에 대한 체험입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철학자들도 압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지식으로 아는 것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재성, 하나님의 현재성, 하나님의 구체성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맛을 아십니까?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맛보셨습니까?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34:8) 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실 목회자가 되고 나서도 전도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불신자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저의 가슴속에 전도의 불을 붙게 한 것은 전도를 통해 한 영혼,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체험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 성도들의 가슴에 전도의 불을 붙게 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량리역 찬양전도집회를 통해 불신자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할 때 성도들의 가슴은 불이 탔습니다. 전도의 맛을 본 것이지요. 어떤 집사님은 전도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분은 전도지를 들고 옆에 사람을 세워두고 그냥 전도지에 있는 복음의 내용을 읽기만 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서 말해야 되는데 자신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분의 전도를 받은 아저씨가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그리고 영접기도를 했습니다. 놀란 것은 전도하던 집사님입니다. 그 때부터 이 집사님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맛을 본다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맛, 기도하고 응답 받는 맛을 오늘 우리가 체험한다면 오늘 우리는 우리의 생의 변화를 체험할 것입니다.
빈 그물을 씻고 있는 시몬 베드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의하면 동생 안드레를 통해서 이미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제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그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에 별로 흥미를 못느낀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에겐 현실적인 문제가 더 크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 배에서 빈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해변가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배에서 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계속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베드로에겐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저 빈 그물만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듣기는 듣지만 그 말씀이 나의 생을 변화시킬 만큼 충격적으로 들려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좋은데 말씀이 마음에 남아있지를 않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베드로는 여전히 빈 그물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을 잘 들어야 합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
혹시 당신은 베드로와 같은 말을 하지는 않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우면서 수고의 떡을 먹는데도 여전히 인생이 빈 그물입니까? 불만스러운 피곤함만 쌓여가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에 의미를 찾지 못할 때는 끝없는 불만과 피곤함 속에 빠지게 됩니다. "헛 살았구나!" "지금까지 내 인생이 빈 그물이구나"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런 것을 "빈 그물의 인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빈그물입니다. 노래방도 가보고, 이것 저것 해보지만 여전히 빈 그물입니다. 혹시 당신의 인생은 빈 그물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의미 있고 좋은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다면 그 일은 정말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빈 그물이 아닙니까? 성경에 나오는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주님 앞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었습니다. 저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주님과 관계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 이 불법을 행한 자들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저는 오늘 중대한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아는가 라는 질문보다 휠씬 더 심각한 질문은 바로 "정말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아는가?" 입니다. 오늘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중요한 힌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후로 주신 주님의 말씀은 모두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마7:21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또 마7:23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마7: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베드로 본문에 의하면 베드로에게 인생이 변화된 너무 중요한 기회가 왔습니다.
빈 그물이 아니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기적을 체험할 기회가 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기회가 왔다는 말입니다. 언제 입니까?
첫째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자기 배에 타라고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일방적인 배려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삭개오에게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눅19장에 보면 삭개오와 예수님의 만남이 소개되어 집니다. 삭개오는 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나무 아래 오신 예수님이 삭개오를 향하여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너의 집에 유해야 하겠다"라고 말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누가 누구를 기다립니까? 그런데 누가 누구를 부릅니까? 보십시오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난 것, 그의 집에 들어온 것은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롬5:8)
두 번째는 배에 오르신 주님께서 많은 무리들을 가르치시다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물을 씻으면서 듣기는 들었지만 그 말씀을 자기에게 주는 직접적인 말씀으로 듣지를 못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말씀을 해도 베드로의 영혼을 바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기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은 베드로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설교를 평가하면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나에게, 직접적으로 들려지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직접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여러분들은 빈 그물일 것입니다. 직접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흔히 "레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어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마디라도 상관없습니다. 말씀이 나에게 직접 증거되면 이 때부터 나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이여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말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리한즉"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될 정도였습니다. 기적입니다.
베드로는 평생 그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런 일이 그냥 일어날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드디어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말씀대로 하다가 어마어마한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 한번의 체험이 베드로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삶이란 그런 의미에서 레마로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현장에 성취되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빈 그물로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이 성취되어서 가득찬 그물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생의 목적이 바뀐 베드로 계속해서 본문을 보십시다.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다가 어마어마한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그때부터 그의 생이 변합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이 말씀앞에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나타난 베드로의 변화는 세 가지 부분에서 드러났습니다. 첫째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의 변화입니다. "선생이여"라는 호칭에서 "주여"라는 호칭으로 바뀌어졌습니다. 호칭의 변화는 중요합니다. 오빠에서 여보로 호칭이 바뀌어집니다. 호칭은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냥 "선생이여, 랍비여"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여"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관계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십니까? 주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변화는 자신의 죄성에 대한 고백입니다. 기적을 본 베드로가 기뻐한 것이 아니고 드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변화는 자신의 죄성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래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장모를 부양하는 사람, 한 가족을 위해 자기 인생을 헌신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나자 베드로는 자신의 죄성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 있을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보는 것입니다.
누가 은혜 받은 사람입니까? 은혜 받은 기준은 분명합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세 번째 변화는 생의 목적의 변화입니다.
이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가 달라졌습니다. 물고기를 좇는 인생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 사람을 낚는 일에 헌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변화의 모습은 목적의 변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입니까? 무엇에 당신의 삶을 헌신합니까? 여전히 돈버는 것, 여전히 자기 이름 드러내는 것, 여전히 어떤 세속적인 힘을 추구한다면 당신은 변화된 사람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맛을 잃어가지 않습니까? 음식 맛을 잃어가는 것은 병에 걸린 신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잃어간다면 지금 우리는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빈 그물을 씻고 있는 중이겠지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붙잡고 이 말씀을 삶의 현장에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영혼을 터치하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나타난 기적은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리한즉 일어난 일입니다.===== 기적을 체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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