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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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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371회 작성일 24-01-0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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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주체

기도는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드리는 요구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알려주시는 일종의 대화입니다. 따라서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이며 그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 과정을 통해 인간의 것이 하나님에게로 흘러들어 가기보다는 하나님의 생각과 그 능력이 인간에게로 흘러들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 기도의 주체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주체임과 동시에 대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노크하실 때 우리는 문을 열어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 뜻을 알려주실 때 우리는 기도를 통해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기도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언급을 성경 말씀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창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영생하시는 하나님 - 창 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전능하신 하나님 - 창 28:3.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스스로 계신 하나님-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능하신 자, 만왕의 왕 -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딤전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불멸하신 하나님 - 민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이러한 구절들이 의미하는 바를 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하나님은 그의 계획에 따라 그 일을 이루시며,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좌우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계획과 일을 아시고 인간을 앞서 가는 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요구가 있어야 비로소 깨닫거나 행동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조종이라도 하듯이 하나님께 이런 저런 주문을 입력시키는 식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권면을 듣곤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를 합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기도를 열심히 하자는 데 있을 것입니다만 그 말이 확대되면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서 얼마든지 마음을 바꾸시는, 변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작용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단호히 배격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께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하나님께 명령할 수도 없고 요구하거나 조를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려고 하시는 것을 거부하든지, 깨닫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인간이 드리는 기도는 바로 하나님께서 주려고 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고 손을 내미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기도 응답의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지 인간 편에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대상

그러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대상인 인간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여기서 인간을 기도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까닭인간이 기도를 듣고 응답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것(하나님의 뜻과 은총 등……)이 인간에게로 전해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실패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대전제가 성립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나 인간은 불완전하다.” 이것은 동시에 우리 신앙의 대전제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미래의 일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존재요, 자기 자신의 이해의 범위를 결코 넘어서지 못하는 편협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신 일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요한복음 21:15~19절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 함께 조반을 잡수신 다음에 베드로와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결코 과신하지도 않고 과대망상에 빠져 있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는 예수님이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더 폭넓고 정확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그것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께서 아시나이다.”를 세 번씩이나 되뇌었던 것입니다.

또한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그들이 서로 갈라서기로 작정한 후 아브라함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제안하자, 롯은 소돔과 고모라 지방을 선택하였습니다. 그의 생각에 그 선택은 후회의 여지가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실로 심판이 임하기 전만해도 그곳은 “여호와의 동산” 같았습니다.(창 13:10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나 얼마 후 그곳은 멸망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구함대로 주십니다. 따라서 인간의 요구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요구를 완전한 것처럼 여기고 구할 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이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 결코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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