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기도회: 참 아름다운 마감(눅 1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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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기도회: 참 아름다운 마감(눅 17:5-10)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어느새 세월이 화살같이 흘러서 올해 마지막 주일이 코앞에 왔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어떠셨습니까? 행복하셨습니까 아니면 불행하셨습니까? 즐거우셨습니까 아니면 괴로우셨습니까? 시작을 아름답게 했던 것처럼, 마감 역시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마감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몇 해 전에 나온 책 중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동안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내 창고에 얼마나 많이 채워놓았느냐> 많이 채웠으면, 그것이 아름다운 마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마감은 내가 원하는 것으로 <얼마나 많이 채웠느냐>보다는 <얼마나 많이 비웠느냐>에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병 안에 찬 것을 비움을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무엇인가 들어가게 됩니다. 물속에서 병을 비우면 그 병 안에 있는 것이 나온 만큼 물로 채워지겠지요. 또한 담배 연기가 가득한 곳에서 그 병에 들어 있는 물건을 빼면 당연히 담대 연기가 들어 갈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외부에 있더라도 병 속이 딱딱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면 좋은 것이 들어 갈 수 없듯이 우리 속부터 녹아야 합니다. 기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은혜 받는 자리에 즉 환경이 중요합니다. 산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물속에서 맑은 샘물을.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믿음에 관한 질문을 할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 어느 종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7절 이후에 보면, 어떤 제자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 종에게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하는 주인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와서 먹으라고 명하는커녕, 정반대로 그 종에게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고 말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은 마땅히 종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일을 해서 피곤하고 지쳐있을지라도 종은 주인을 위해서 봉사해야 하고 주인이 그때그때 시키는 일을 다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주인이 명한 대로 종이 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즉 종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시면서, 제자들에게 가장 아름답게 일을 마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10절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제자들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대해서 그대로 다 행하고, 그렇게 다 행한 다음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NIV 성경에서는 ‘우리는 무가치한 종이다’라고 번역되어 있음)는 말은 한 마디로 비움의 종이 되라는 뜻입니다. 비움의 종... 여러분, 나는 과연 진정으로 비움의 종입니까?
내가 종이라면 그 종이 책임져야 할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으로서 사는 것이 힘든 이유는 내가 주인처럼 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주인이 주인행세 하면서 실제로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결국 신이 아닌데 신인척 영광을 받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일을 했으니 돈을 주세요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종이라고 하고 제자라고 하는데 내 속 사람이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기적을 못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의 주인 된 세상 종의 거짓 멍에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종의 멍에를 매면 주께서 일하시니 우리의 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을 받드는 귀한 종의 사역으로 세상이 움직여진다는 것입니다.
(주객을 알라)
1. 우선 비움의 종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에는 그 일의 공적에 대해서 잊어버립니다. 시키신 이가 하나님 아버지이시니까요. 결국 믿음은 하나님의 주인 됨.
종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마땅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약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종에 대해서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5:26-30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악하고 게으른 종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겸손히 충성된 순종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서, 저 역시 악하고 게으른 종이 아니었나, 스스로 반성하고 또 회개합니다.
● 충성된 종은 자기의 뒤 놓인 영광이나 실수에 메이지 않습니다. 억울하지도, 우쭐대지도..X
종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야 종다운 종입니다. 그런데 비움의 종은 그렇게 최선을 다한 다음부터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비움의 종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놓고도 그 일의 공적에 대해서 곧 잊어버립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 <나 때문에 이렇게 결과가 좋다>, <내가 많이 수고했기 때문에 이렇게 잘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공적을 기억한다면, 이런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가 아니라 <우리는 대단한 종이라>... 조금이라도 자신의 공적을 기억한다면, 비움의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그 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 바일 뿐 굿이 나의 공력은 없는 것입니다. 주인의 일에 참여 한 은혜만 있을 뿐.
2. 비움의 종은 어떤 인간적인 유익, 대우, 명예, 자리로부터 자유합니다. (나를 알라)
일을 하다보면 누구든지 욕심이란 것이 생겨납니다. 욕심이란 것이 참 무섭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생겨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을 통해서 어떤 인간적인 유익을 얻으려고 합니다. 현재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으려고 합니다. 더 큰 명예를 추구합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종들에게서도 간혹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말은 주님만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데,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데, 마음속에는 세상적인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떤 인간적인 유익, 대우, 명예, 자리를 기대합니다. 그런 것들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그런 것들이 자신 안에 채워지지 않으면 낙담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결국 욕심은 죄를 낳게 되고, 그로 인해서 불행한 결과를 자초합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 역시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역시도 그런 욕심을 다 비우고 종으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빌 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름은 나라고 합니다. 나답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물론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 때 더욱 그렇겠지요. 우린 의인이 아니고 죄인이며, 신이 아닌 육신을 입은 종일뿐입니다. 이제 나의 욕심과 나를 들어내는 교만과 비정상적인 타락한 죄수의 옷을 벗고 겸손히 나를 만드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때를 남은 때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비움의 종은 다 놓고 떠납니다. (신을 알라-내가 갈 곳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사에서 비움의 종이라고하면 떠오른 몇 분이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임택진 목사님입니다. 청량리중앙교회를 섬기시다가 은퇴하시고 몇 년 전, 91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 분은 정말 종 같은 종이었습니다. 목회할 때 한번은 다른 큰 교회에서 사례비를 더 많이 준다고 청빙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섬기고 있던 교회 장로님들이 우리는 더 많이 올려 드릴테니 가시지 말라고 하니까, <나는 소가 아닙니다>하면서 청빙요청을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그 분이 청량리중앙교회를 23년간 목회하시고 나서, 은퇴식 때 은퇴소감과 함께 교인들에게 권면의 말을 부탁받았을 때, 오늘 본문의 말씀, 눅 17:10 말씀, <나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의 인용과 함께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단 한 마디 말을 남기고 단을 내려왔습니다. 걸린 시간은 단 10초... 우리 한국교회를 빛낸 목사님의 그 모습에 장내는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때까지 살고 계셨던 교회사택을 도로 반환하고, 시신은 약속대로 기증하셨습니다. 정말 다 놓고 떠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움의 종의 모습입니다. 비움의 종은 자기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다 놓고 떠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우리가 진정 주님을 본받는 종이 되려면, 다 놓고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도 내것, 저것도 내 것... 구차하게 가지고 있으려고 하지 말고, 더 많이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모두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다 내려놓고... 예수님이 종으로서의 사역을 마칠 때 다 놓고 떠나가신 것처럼...다 놓고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자세가 없기 때문에 비움의 종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마감.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고 내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오늘의 잠자리에 드는 그 마지막 순간에 나를 보는 나는 얼마나 평안을 누리고 있을까요.
2023년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새해 첫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성도 여러분의 수고로 우리 교회가 주님이 주신 사명을 능력 있게 수행하고 은혜 중에 마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올 한해만이 아니라 평생토록 예수님처럼, 사도 요한과 바울처럼 비움의 종으로 사역하셔서 인생의 참 아름다운 마감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와 주의 직분자와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며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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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마감.hwp (44.5K)
2회 다운로드 | DATE : 2023-12-29 09: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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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곰님의 댓글
마른곰 작성일
갑각류에겐 껍질이 속입니다. 우린 척추동물입니다. 우리의 속은 우리 안의 마음입니다.
갑각류는 딱딱한 껍질이 자라지 못하기에 껍질을 벗고 더 성장하며 커집니다. 그런데 그 껍질을 벗을 때 가장 연약해서 많은 동물들로 부터 위협을 받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이 가장 많이 성장 할 때는 바로 많이 연약할 때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