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Who Am I ?) / 벧전 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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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Who Am I ?) / 벧전 2:4-10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늘의 복음을 전달 할 자로 부르심과 천국 복음에 동참 할 사람임>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영원한 존재일까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잠시 어머니 뱃속에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 나는 없었고, 내가 죽고 난 후에도 잠시 무덤에 있지만 이 땅에는 내가 없을 것입니다. 길어야 100년 동안 잠시 여행객으로 사는 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다가 사라지고 소멸하는데 여전히 나와 우리란 존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과 나 자신의 정욕과 체면으로 소중한 수명을 낭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일단 저는 한 가정의 가장이며, 누구에게는 아빠이고, 누구에겐 남편이고 누구에겐 자녀이며 누구에겐 형제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이며, 성직자이며 직분자입니다. 기도원에서는 원장이요, 세상에서는 많은 친구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좋은 친구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려지는 것이 과연 나일까? 나의 존재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쓰임과 다양한 환경에서의 불려 짐을 통해 나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리 고민을 한다고 해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내 부모도 내가 태어 날 때 어떻게 태어날지도 모르고, 어떤 자녀로 살게 될지도 모른체 출산하여 기뻐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즉 나를 나 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나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나를 분명히 아시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부르시는가? 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아들아, 딸아, 나의 종들아." 결국 우리가 말하는 박사나 의사나 아빠나 엄마나 선생이나 다양한 호칭과 명칭으로 즉 우리가 만든 호칭으로 부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만드신 그분의 의도와 그분이 나를 부르심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다양한 족보나 직업에서 불려지는 그런 통용하고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우릴 보시고 부르실 때 기능자나 세상의 관계로 명칭을 불러 주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자녀로 온전히 평등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사랑은 사무엘처럼, 다윗처럼, 주께 가까이 하는 자가 받는 복은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주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함께 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이 말씀에 보면 "그러나" 라고 말씀하심을 보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즉 자기들의 부름의 직분과 자기들의 소통을 위함이 아닌,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 즉 따로 하나님은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오늘은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바로 <왕 같은 제사장> 다시 표현하면 우리가 <영적 권위를 받은 제사장>이라는 말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4-9절을 에도 <영적인 제사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본문 5절에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하고 있습니다.
이 영적인 제사장을 교리적으로 말할 때에는 <만인제사장>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종교개혁으로 얻은 개혁교회의 중요교리 중에 하나가 <만인제사장설>이 아닙니까?
만인이 스스로 제사장이라 말하는가? 아님, 만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인가?
<문제는 우리 모두가 영적인 제사장>이라고 할 때,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를 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제 우리 모두가 영적인 제사장이 되었으니 우리가 스스로 직분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혹은 ... 우리도 제사장이기에 서로 간에 목사처럼 축도를 해도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혼자 교회라고 말하는 교만이지요. 반대로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자신만 제사장이라고 말하는 이단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보단 하나님의 말에만 자기 뜻을 부여해서 결국 세상적인 자기 부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무지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누구나 다 축복한다고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를 당신의 자녀들과 종들을 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받아들이는 신앙고백서나, 헌법에는 거기에 대한 분명한 명시를 하고 있습니다.
● 1566년 결의된 스위스 신앙고백서에 보면 “제사장직은 모든 크리스천이 공유하고 있으나, 교역자 직을 모두 공유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교단 헌법에 보면 즉 정관에 의하여 직분에 따라 해야 할 직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일예로 목사의 직무로는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며, 성례를 거행하고, 교인을 축복하며, 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한다.” 라고 해 놓고 있습니다. 만인제사장이라고 해서 내가 목사의 직무를, 내가 장로의 직무를 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 그렇다면 영적인 제사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영적인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듯이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 영적인 자유함입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사건만 깊이 생각해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 금요일 예수님은 오전 9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정오부터는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해가 빛을 잃으니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오후 3시 예수님은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신 그 시간 ........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막았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서 둘이 되었습니다.
땅이 진동했습니다. 바위들이 터졌습니다. 무덤들이 열려서 죽은 성도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 중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사건>이 바로 우리가 영적인 제사장이 되었다는 의미를 보여줍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하나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만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순간,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렇게 길이 열려졌기에 우리가 <영적인 제사장>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제사장이 되는 데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으면 됩니다.
● 오늘 본문에도 영적인 제사장이야기를 하면서, 모퉁이 돌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영적인 제사장은 결국 육의 정욕을 치고 오직 하늘의 영적인 일에 쓰임 받는 자들을 말하며 이런 자들은 6절에 “..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7절에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영적인 제사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홀어머니와 외아들 둘이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에 아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면서 병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합니다. 하루는 아픈 아들이 어머니에게 <어머니 포도가 먹고 싶네요. 포도를 먹으면 기운을 차릴 것 같네요> 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한 겨울에도 마트에 가면 포도를 구할 수 있지만 100년 전에는 어디에서 포도를 구합니까?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따뜻한 남쪽으로 가면> 포도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짐을 꾸려서 포도를 구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남쪽으로 내려오다 큰 마을을 지나는데, 그 마을 중앙에 큰 집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 성주의 집이었습니다. 마당 중앙에 온실이 있었고, 온실 안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포도가 열려있는 것입니다.
【T.V 를 보면 2001년 발견 된<산가요록>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온실이 서양보다 170년 앞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임금은 한 겨울에도 갓 수확한 채소를 먹었고, 아름다운 꽃을 보았다고 합니다.】* <산가요록>은 조선왕조 전기인 1459년경에 어의 전순의가 지은 요리책이자 농업책으로 가장 오래되었다.
어쨌든, 온실 속에 포도를 발견한 어머니는 그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집을 지키던 문지기가 가로 막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머리에 있던 은비녀를 문지기에게 주면서 부탁을 합니다. <저 포도 한 송이를 사고 싶은데 비녀를 받고 팔라고 했습니다.> 문지기가 대답합니다. <저 포도는 파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돈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고, 집으로 돌아와 돈이 될 만한 것을 다 팔아서 돈으로 바꿔 다시 그 집으로 갔습니다. <문지기에게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왔으니 팔라고 합니다.> 문지기는 역시 거절을 합니다. <파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팔라고, 파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대문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소리를 듣고, 그 집 주인의 딸이 나왔습니다.
그 딸은 그 성의 성주의 딸이었습니다. 딸에게 어머니는 더욱 간곡하게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한참 어머니의 말을 듣던 딸이 말합니다. “아주머니, 우리 아버지는 파시는 분이 아니라, 그냥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면서 돈을 받지 않고, 포도를 한 송이를 주더랍니다. 그래서 포도를 받아와서 아들에게 먹였더니 아들이 기운을 차리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딸이 한 말 다시 들어보세요. <우리 아버지는 파는 분이 아니라, 그냥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도 바로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선물로 주시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인 제사장이 되는 것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갔다면,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는 길이 활짝 열렸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둘째, 우리는 여기에서 한 단계 나아가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영적인 제사장>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교회라고 할 때는 한 사람으로서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공동체, 바로 저와 여러분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인 제사장>이라고 했을 때에도 - 개인적인 의미로 그치면 곤란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한 몸이요, 한 백성이요, 한 나라 인 것처럼 “우리가 다 함께 제사장직을 구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제사장으로 섬기는 공동체를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이웃을 섬김
쉽게 말하면, 우리 모두가 영적인 제사장이라고 할 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제사장이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영적인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보여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 주일 오후면 다른 성도들이 다 돌아간 후에 성도들이 버려놓은 쓰레기를 정리하시는 성도님도 계십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분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 주중에 교회에 있어보면 말없이 없이 교회에 와서 교회를 살피는 분도 있습니다. 받은 달란트를 자기고 섬기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 세 번째 <영적인 제사장>의 의미는 그저 교회 내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주신 직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사요 종입니다. 즉 내가 세상에 나가는 것은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국의 제사장 나라가 되었듯이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교회가 세상에 영적인 제사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이 물음에 우리는 <영적인 제사장>임을 알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으시고, 더 나아가서 교회 안에서 제사장이 되시고, 교회 밖에서도 영적인 제사장의 사역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즉 믿음으로 더 나아가서 감사와 성령님의 인도로 사시길 바랍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고전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고후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0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엡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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