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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야이로와 여인. 그 겉옷만 만져도(마 9: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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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627회 작성일 22-07-1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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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야이로와 여인. 그 겉옷만 만져도(마 9:18~26)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 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참고 (막 5: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사람의 역사는 만남의 역사입니다. 치마 끝만 스쳐도 천생연분이면 인연을 맺고 백 년 해로 합니다. 사회라고 하는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한 관리인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죽었습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입니다. 애지중지하던 딸이 죽었으니 체면이고 뭐고 "주님 만나자"라고 결정하고 만사를 제쳐놓고서 주님께 갔습니다. 예수님께 자기 딸 살려달라고 찾아온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본 이유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보았고, 예수님은 내 딸을 살릴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오토가 아닌 스틱 자동차가 출발하는 것도 일단, 신앙생활도 일단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회당장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일단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는 세상의 선입견을 버리고, 자기의 자존심도 버렸습니다. 직접 귀한 일에 주님을 찾아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비서를 보내거나. 하인을 보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예의가 아니거든요. 손수 가서 주님께 "내 딸 살려 주옵소서" 이렇게 함은 자녀를 사랑함이 확실히 보입니다. 그 딸을 사랑하는 놀라운 사랑을 주님은 보시고 큰 믿음으로 바꿔 주사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야이로의 사랑을 통해 믿음을 보시고 영광을 베푸시려고 따라가는데 노상에서 열두 해혈루병으로 고생하던, 냄새나는 웬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스치듯 싹 붙잡았습니다. 여기서 혈루증이라고 하는 병은 만성 자궁 출혈병으로, 얼마나 지저분하고 몹쓸 병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만성 자궁출혈병자는 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계명이 있습니다. 이 모든 계명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붙잡은 겁니다. 이건 "저 분만이 내 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다. 저 분이 나의 피를 멈추어 주실 분이다." 라고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 염치 불구하고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만지니, 붙잡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합토오'라는 말인데,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아닙니다. 어떤 물건과 어떤 물건이 끈으로 꽁꽁 동여매인 상태를 두고 '합토오'라는 말을 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 많이 지은 세상에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여자가 묶이는데, 묶이는 고리가 즉 그 여인의 마지막 수단은 곧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의 생명을 건 최후이며, 최선의 행동을 보이는 간절함입니다. 우리도 나를 다 내려놓고 주님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 진짜 참된 믿음은 내 자신을 부인하고 다 내려놓고 즉 주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믿음은 우리가 아는 구함얻음에 있지 않고, 주님이 주신 주는에 있습니다. `믿는다.`는 영어 believe라는 단어의 의미는 '가볍게 하다', '(부담을) 덜어주다'가 어원입니다. 믿고 의지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약속하다, 다 맡긴다.`라는 영어 commit과 같은 뜻입니다. 결국 “받기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먼저 다 맡기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그 하늘을 향한 믿음을 보시고 주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여러분이 원하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받은 것이 있으십니까?

성도의 바탕은그리스도를 위하겠다.”는 나의 결심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한번 “잘 해보겠습니다, 그러니 힘을 더해 주세요.” 이러한 결심은 자신의 결정에 근거한 것이지, 하나님께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즉 나를 부인하고 주님께 내 모든 짐이든, 병이든, 문제든, 자랑이든, 소중한 것이든, 두려운 것이든, 의심과 불안까지도 다 주님께 맡기는데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깨달음은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주님을 구주로 아는 것입니다. 죄인의 바탕은 나의 결심마저 할 수 없는 불능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붙들 만한 힘도 없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될 능력이 없습니다.' 즉 자기 부인이 올 때 그 때 주님이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위에 뜨는 원리입니다.

믿음은 의심을 버리고 무언가를 지불하는 겁니다. 잘 믿는 것이 뭐냐면? 나의 소중한 시간을 즉 남은 수명을 맡기는 것이며, 나의 삶의 목적이었던 보화까지 맡기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어느 집회에서 설교를 하는데 돈만 아는 부자 농부가 참석했답니다. 웨슬레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합니다. "여러분, 돈을 벌 수 있는 대로 힘껏 버십시오." 그러니까 이 부자 농부가 옆 사람을 쿡쿡 찌르면서 "저 양반 참 설교 잘하신다."고 말합니다. 목사님이 또 말합니다. "돈을 저축할 수 있는 대로 힘껏 저축하십시오." 이 부자 농부가 양손을 비비면서 "아이고 내 생전에 이렇게 좋은 설교는 처음 들어보았다."고 감탄을 하면서 흥분을 하더랍니다. 그 다음에 목사님이 계속해서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번 돈 주님께 감사로 바칠 수 있는 대로 힘껏 바치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여 섬기며 나누십시오."하니까 이 부자 농부가 이빨 빠진 고양이 얼굴에 똥파리 기어가는 인상을 쓰고 나가 버리더랍니다. 웨슬레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믿음이 있고 중생해도 그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보화인 돈주머니가 끌러지지 않았으면 그의 회개는 믿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참된 회개와 거듭남은 하나님 외에 더 소중한 것이 없다는 고백과 행동으로 알 수 있습니다.>

* 잘 믿는 성도는 고통과 고난을 이길 천국의 소망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 시 119:67~71에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오히려 내게 유익이라. 이로써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난을 당하고서야 그 말씀을 지킨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고난을 통해서 눈물을 배우게 되었고, 고난을 통해서 찬송을 배웠고, 고통을 통해서 사랑을 배웠습니다.

● 고전 10:13의 바울은 말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부부간에 가깝다는 게 뭡니까? 많은 세월 동안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면서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얼른 그 얼굴을 읽을 줄 아는 부인이 좋은 부부지요.

이것이 가정에 행복입니다. 이와 같이 신랑 되신 주님의 말과 얼굴을 보면 바로 알아 섬기는 성도 즉 기도하는 거룩한 신부로 잘 믿는 믿음의 승리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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