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어나는 일은.... 고전 1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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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일어나는 일은 내가 살아 있기에 누리는 모두 생명 사건이다. (고전 15:20-26)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 우리가 항상 걱정하는 가장 큰 일은? 바로 죽고 사는 결국의 문제임을 아실 것입니다.
● 천안함 피격사건 - 이명박 대통령 임기 때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경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제2함대 소속의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 | 국방부의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에 의하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였다고 한다.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사건... * 서해안 천안 함 침몰 후 여러 날 동안 실종상태로 있던 해군 장병들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싸늘한 시체로 46명이 돌아오게 됨으로 온 국민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혹시나 실종자 중에 한 사람이라도 생존했었더라면 낙심과 낙담으로부터 기쁨을 다소나마 이야기 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전원 죽음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일어나는 일은 모두 생명 사건입니다. 그 생명사건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의 차이입니다. 생명이 죽으면 영혼이 사라져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지 내 육신의 부패와 소멸이 따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살면서 작든 크든 일어나는 중요한 모든 일은 모두 생명 사건입니다. 사건의 중요성은 생명의 중요성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중요성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것은 모두 사고입니다. 양의 많고 작음과 규모의 큼과 작음과 효과의 높음과 낮음은 사건과 무관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고를 재는 수치일 뿐입니다.
● 세월호 침몰 사고는 그리고 박근헤 대통령 임기 때. *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이다.[5] 세월호는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는 탑승인원 476명을 수용한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으로[6] 4월 16일 오전 8시 58분에 병풍도 북쪽 20km 인근에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7] 2014년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였으며[8],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9] 침몰 사고 생존자 172명 중 절반 이상은 해양경찰보다 약 40분 늦게 도착한 어선 등 민간 선박에 의해 구조되었다.[10] 3년 동안 인양을 미뤄오다가 2017년 3월 10일 제18대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고 12일 후인 2017년 3월 22일부터 인양을 시작했다.[11][12][13][14] 2017년 3월 28일 국회에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선출안이 의결되었다.[15][16] 총 476명의 승선 인원 중 172명이 구조되어 36.1%의 생존율이 기록되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53초에서 55초 세월호는 약 10도 기울었다. 고 전합니다.
<실종,,,, 죽음,,,, 사망처리,,, 그리고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
영국 국교회에 소속한 어느 목사님은 두 인조 다리를 차고 다녔는데 그 당시 인조 다리(Artifical limbs)는 요즈음의 것과 같이 세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미스 위글스워스는 인조 다리를 한 어느 목사님 집에 머무르면서 자신이 경험한 신앙 간증을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그는 목사님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내일 아침에 구둣가게에 가서 새 구두 한 켤레를 맞춰 신으십시오.” 인조 다리를 한 목사님은 혹시 그가 농담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모든 대화를 다 마치고 잠자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후, 목사님도 그의 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의 종이 하라는 대로 하여라” 하나님께서는 스미스 위글스워스를 ‘나의 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명칭인가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그 목사님은 그날 밤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내로 가서 신발가게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주인이 도착해서 영업을 시작하기 위해 가게 문을 열자마자 목사님은 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습니다. 가게 직원이 다가와서는 “안녕하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으니 “구두 한 켤레만 주시겠습니까?” “예 그러시죠. 치수는 얼마나 되시죠? 색깔은 어떤 것으로 할까요?” 이 물음에 목사님은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때에 가게 주인이 그의 발을 보면서 말하기를.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 상태에선 저희들도 어떻게 도와드릴 수가 없다” 고 말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아무튼 됐어요. 내가 여기 온 것은 새 구두 한 켤레를 사러 온 거니까, 치수는 팔 이구요 색깔은 검정색으로 주세요” 직원은 목사님의 요청대로 구두를 찾으러 갔는데 몇 분 뒤에 돌아온 주인은 그가 요구한 구두를 건네주었고. 구두를 받아든 목사님은 오른쪽 인조 발끝을 구두 속에 집어넣자 참으로 꿈에도 상상치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조 발과 다리가 갑자기 진짜 사람의 발과 다리로 되어버린 것이고 똑같은 현상이 다른 쪽 다리에도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도 설명할 수가 없었고 다만 결론을 현실로 알고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그 가게를 실제로 걸어서 나갔다는 사실을! 새 구두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새 두 다리를 가지고 말입니다! 정말인가? 사실이고 역사적인 진실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있기에 그래서 신비의 세계라고 합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창조해 낸다는 개념 자체를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죽음까지도 생명으로 바꾸어 놓으실 수 있는 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라는 말이 신약성경에는 그렇게도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소식을 들은 스미스 위글스워스는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날 줄로 이미 믿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부러진 뼈를 고치시는 것이나 없는 다리를 만드시는 것이나 아무런 차이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가장 큰 이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 (욥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막 3: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0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0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0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0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같은 말씀 - 눅 6:5~10)
눈 먼 자가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고, 귀 벙어리가 생명의 소릴 듣는 기적...
* 스미스 위글스워스(저서: 병고침, 그 능력의 비밀, 승리하는 믿음 등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쓰임 받은 사역자)는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의 맛과 향기를 알고 체험했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육신의 양식보다 영혼의 양식이 더 맛있었고 귀중했습니다. 그는 영혼의 양식을 위해서 믿음을 강하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인격을 세우며, 언제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품성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전력투구했고 그는 무엇보다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체험함으로서 아는 삶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알았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입니다.
● 우리 모두도 하나님이 믿어지고 내게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 나의 나됨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더 큰 그릇으로 만들어 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가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달란트로만 자랑하고 멈춰버리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분의 다가오심을 기대하시기고 기도하시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 19세기 옥스퍼드 대학 종교학 과목 시험에 출제된 주관식 문제 하나를 소개합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논하라” 시험 시작종이 울리자 일제히 답안지에 펜촉 닿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지만, 유독 한 학생만은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답니다.
감독관이 다가가 주의를 주었지만, 여전히 학생은 시험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시험 종료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학생의 멍 때리기는 계속되었습니다. 화가 난 감독 교수가 다가가 백지 제출은 당연히 영점처리고 학사경고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뭐든 써넣어야 한다고 최후통첩을 하게 됩니다. 이 말에 딴청을 피우던 학생이 돌연 시험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정말 단 한 줄만 써놓고 고사장을 유유히 빠져나갔습니다. 달랑 한 줄짜리 답안지. 이 답안지는 옥스포드대학 신학과 창립 이후 전설이 된, 만점 최고의 답안지였습니다. 만점 답안을 쓴 이 사람은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 사람인 조지 고든 바이런(1788~1842)이었습니다. 대학의 모든 신학 교수들을 감동시켜 올 하트 받은 바이런의 한 줄 답안은 이랬습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그의 시적 감흥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출중한 외모로 수많은 여성을 만났던 바이런, 막상 그는 그에게 말씀으로 다가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한 채, 지극히 작은 것인 모기에게 물려 말라리아 열병으로 36세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것에 숨을 거두는 바이런, 보이는 큰 사자에게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 다니엘 우리가 의지하고 믿고 섬겨야 할 이가 과연 누구인지 더 정확해지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 (잠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우리도 미리 맛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 큰 사명,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첫 건축자로 구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희생하기까지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세상에 구원을 이루시고, 하나님을 경험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를 만드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은 나를 더욱 신뢰하실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나에게 더욱 놀라운 사명과 이루게 하시는 능력을 입히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믿음으로 걸어 간만큼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사실입니다.
●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무엇인가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되라는 겁니다.
* 인생이란 적어도 절반은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의 여정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고, 모욕하고, 배반합니다. 나 또한 누군가를 비난하고, 모욕하고, 배반합니다. 누구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반된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인생의 고통과 어둠은 그런 과정과 맞물려 있습니다. 타인이 내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타인의 일입니다. 내 일이 아닙니다. 사고를 당한 것은 사고를 낸 사람이 감옥에 가든지 벌을 받는 것이니 내가 심판 받을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내가 할 일은 남에게 사고나 사건을 일으켜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는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할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상처를 입힌 상대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사랑이라 합니다. 그런 용서의 사랑이 가능하려면, 우선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 합니다.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입었는데 어떻게 평화로운 마음이 될까요? 폭풍우가 몰아치고 간 하늘이 더 맑고 푸릅니다. 그 푸른 평화를 위해 일부러 폭풍우를 선택하였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 부활은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고통에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는데, 그것이 제자들에게도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몸의 부활을 이루셨고, 제자들은 마음의 부활을 이루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닫아걸고 있는 절망과 고통에서, 평화와 사랑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런 모습에 대해 우리는 거듭남의 제자들도 부활하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모르는 자들의 무지와 기적을 바라는 자들의 어리석음이 생명을 소외시키고 생명을 침식하고 있습니다. 생명현상 밖에서 기적을 구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사고입니다. 기적을 초자연적, 초인적 힘의 변증으로 보는 한 인간적 사건의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진실로 위대함은 기적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기적은 오직 사랑의 기적뿐. 사랑의 기적이 구원입니다. 기적은 신의 변증이 아니라 사랑의 당위입니다. 살려냄이 기적입니다. 용암이 분출할 때 그 전에 용암이 땅 속에서 부글거리고 있음을 우리가 알듯이 어느 순간을 기하여 발화되고 폭발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기적을 너무 알려고 하지 말고 기적을 너무 강조하지 말고 인간을 위함의 적극성과 창조성에 기적의 동기를 찾아야합니다. 기적은 나누어진 개개인에게서는 발생할 수 없습니다. 성실한 날들이 모여 서로를 위하고 존중하고 사랑할 때 불가능하다던 새 세계가 드러나는 것이 기적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행복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란 감사할 일이 많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나 자족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물질을 주시고 그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듯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생명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시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오늘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신 생명을 복된 자로 쓰는지 악한 자로 쓰는지 회복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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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다운로드 | DATE : 2021-08-06 00: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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