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힘을 주는 복음(고전 1: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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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힘을 주는 복음(고전 1:28-31)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은퇴를 한 후에 고향인 미주리 주의 인디펜던스에 기념도서관을 짓고 어린이들과 자주 어울렸는데 한 번은 도서관을 찾은 한 어린아이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제 나이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급에서 반장을 하셨겠지요?”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은 소년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고 말합니다. “아니다. 나는 너보다 훨씬 볼품 없는 소년이었단다. 친구들이 소리 지르면 겁이 나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지. 운동도 못했고 안경을 벗으면 책을 읽지 못할 정도로 시력도 좋지 않았단다.” 소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요? 트루먼이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매일 성경을 읽었단다. 나는 하나님이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고 있다고 믿었지.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빌립보서 4:13이 바로 나에게 용기를 준 말씀이었지. 그래서 일단 일을 시작하면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대통령이 된 원동력이란다.” 이처럼 성경말씀은 한 마음이 약하고 쓸모없는 소년을 강력한 지도자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말씀으로 훈련시키셔서 그를 존경받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신앙은 이처럼 위대한 것입니다. 트루먼이 말한 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밀어주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그 힘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이곳저곳을 유리하는 나그네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을 주시고 오늘날도 유대민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인간적으로는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변화시켜서 이방인의 구원을 담당하는 귀한 종인 사도로 쓰셨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본래 방탕한 삶에 젖어 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변화되었을 때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문벌도, 권세도, 능력도, 지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얼마든지 나중에라도 갖추어 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의 삶을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으로 바꾸어 주시고, 왕처럼 자유하며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닌 그 이유는 표적 때문이었습니다. 큰 무리의 특징은 자기만족이었습니다. 이 말은 표적을 볼 때는 예수님을 따르지만 표적이 안 보일 때는 예수님을 떠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무리들의 특징은 지극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무엇인가 이득이 되고, 필요에 의해서 따라 다닌 것입니다. 세상에 100%행복하고 100%만족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지으실 때, 세상 것으로는 다 채워질 수 없도록 사람의 그릇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그릇이 세상에 것으로는 채울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만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좀 자신의 부족한 것을 깨닫고 하늘 아버지의 천국에 영적인 것을 채우려 할 때에 그 곳에서 만족을 얻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인들의 불행은 100%,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을 아무리 추구해 보아도 거기엔 완벽한 만족과 행복이 없습니다. 26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 하도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사역에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12사도는 대부분이 어부였으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당시에 세상의 지혜 있음을, 능력이 있음을, 문벌 좋음을 자랑하는 자를 부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열두 명의 예수님의 제자 중에 적어도 일곱 명은 어부이었고, 한 명은 세리이고, 나머지도 제대로 교육을 받은 문벌 좋은 집의 사람은 없었습니다. 초대 교회에 속한 사람들 중에 혹 문벌 좋은 사람이 있었고, 세상의 학문을 많이 한 사람도 혹 있었겠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자랑을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육체를 따라 지혜 있지 아니하며, 능력이 없으며, 문벌이 좋지 않은 이 사람들을 사용하시어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의 판단대로라면, 세상의 지혜가 많은 사람과 능력이 많은 사람과 문벌이 좋은 사람이 많이 모인 교회가 학문이 없고, 능력이 없으며,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보다 분명히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잘 운영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할 터인데, 우리가 보는 바대로 세상의 교회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칭 지혜가 많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목회자나 성경의 말씀은 힘을 잃고 들려지지 않고 각자가 다 자신의 판단대로 교회의 일을 처리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를 나누는 일을 합니다.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일을 함에도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축복을 받아 거두어들이는 경제법칙을 적용하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찾지 않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몸과 시간과 재물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세상의 지혜가 없기에 더욱 하나님의 지혜를 찾으며, 세상에서 능력이 없기에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세상에서 문벌이 좋지 않아 멸시를 받아왔기에 더욱 하나님께만 부르짖는 사람들과 그들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간구하고 상한 심령을 가진 예배자를 더 찾으십니다.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은 철저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 사람도 사랑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세상 지혜자의 사랑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조롱하는 군중들에 둘러 쌓여서 십자가 위에 죽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않으신 "약하신 하나님"(the weakness of God)께서 당신을 닮은, 세상의 눈으로는 너무나 약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택하시는 것은 세상의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2:9에서 하나님은 바울은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너의)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주님의 약한 것 같이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으셨기 때문이듯이 사도 바울에게도 너의 복음 때문에 약한 척하는 것이 오히려 주께서 일하심을 믿는 복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며 자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미래의 능력을 보이실 가능성이 없으시기에 잠잠하시는데,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여지가 없습니다. 주께서 잠잠하신데 이유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천대와 멸시를 받던 사람들이요 가진 것이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천대와 멸시를 받던, 가진 것이 없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택하시어 있는 것들을 폐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처지가 멸시와 천대 가운데 있더라도, 또 우리가 없는 자라고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에 들어갈 수 있으며 부요하신 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9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형편에 사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바울 자신은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세상적으로 학문이 많은 지혜 있는 사람이요, 능력이 많은 자요, 문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배경을 자랑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배설물 즉 오물만도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미련한 자요, 약한 자요, 천하고 멸시받는 자요, 없는 자로 여기며 철저히 자신을 낮출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신의 귀한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30-31절에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주님을 자랑함은 유익을 주며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실현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고 거룩한 자가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이 온전히 사함 받음을 자랑할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주를 자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9장 23-24절에서 빌려온 것인데,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 26-28/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부르고 계시는데 주님은 사람을 부르는 일에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이 들리는가? 안 듣는가? 못 듣는가? 에 순종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부터 그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많은 우리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어서 부르신 것입니다. 처음 주님 앞에 나올 때에는 누구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부르심에 순종하기만 하면 그때부터 그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과거를 떠나 점점 존귀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28:12-13에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달라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이 넘치는 복을 또 한 번 가득 받아 누리는 성도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방법 30-31/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을 복된 길로 이끌어 가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가 되어서 우리를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령의 인도는 세상 적입니다.
말을 물가로 이끌어가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으나 그 물을 마시는 것은 말이 스스로 해야 할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끌고자 하시지만 그 뜻에 자신을 맡기고 순종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나아질 것이 없지만 순종한다면 우리의 삶은 날마다 좋아져서 결국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복 받은 귀로 늘 듣고, 복 받은 눈으로 늘 인도 받으면 좋으련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경우가 성도들에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항상 새롭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새 자동차를 사서 처음 타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 대신 차에 대해 아주 예민해져서 조금만 흠집이 생겨도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몇 달만 지나면 중고차가 됩니다. 막 결혼을 한 신혼부부도 시간이 조금 흐르면 결혼 생활이 시들해집니다. 직장에 막 들어온 사원을 신입 사원이라고 부르지만 몇 년 지나면 일에 베테랑이 되고 한 십 년만 시간이 흐르면 능글능글한 고참 사원이 됩니다. 한 해가 시작되는 1월에는 새해가 실감이 나지만 2월, 3월로 가면 지난해 나 별 다를 것이 없어집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바로 이런 인간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전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이 말은 우리들의 현실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이긴 해도 우리가 이 말에 묶여 숙명론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자동차를 새로 샀을 때는 기분이 새롭습니다. 이 차를 새것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그런대로 새 기분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결혼하면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신혼 시절의 사랑을 유지하려고 부부가 함께 노력하면 그런대로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처음 하면 기분이 새롭습니다. 그 후로 매일 신입 사원의 기분으로 일하면 직장 생활을 신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이 없는 사람도 새해 첫날, 첫 달에는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후로 계속해서 새로운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일 년 열두 달이 새로울 것입니다.
복음은 이와 같이 우리를 꾸준히 계속해서 새롭게 살도록 하게 하는 변화의 능력이 있음을 믿고 받아드리면서 변화를 누리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참 말을 하며, 참 복음의 신비로움인 새로움에 늘 빠져 사는 감사의 사람들입니다. 그 마음 그대로 쭈~욱! 근심 걱정과 두려움은 마귀에게 주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누립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평생을 이런 식으로 항상 새로운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린도후서 5장 17절이 가르쳐줍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아주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실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주님이 우릴 위해 변화의 힘을 주시는 복음을 주심을 믿고 천국 소망을 받아 더욱 시간을 아끼고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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