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문화선교

초대교회

금요기도회

부활의 복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508회 작성일 21-08-27 10:23

본문

복음이란? 어떤 복음을 말하나? 바로 부활의 복음입니다.

1. 복음이 이 땅에 있는데 그 기쁜 소식이 다 다릅니다.

땅(육신)의 복음영(종교)적인 복음부활(오직예수)의 복음이 있으니 바로 천국 복음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없다면 가짜 복음이며 가증한 썩은 복음일 뿐입니다.

★ 고전 15:12 <죽은 사람의 부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 성경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용서와 그 율법의 완성인 십자가의 사랑이 왜 그렇게 중요하고 필요했던가? 그리고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과의 대화로 미혹되어 죄로 인해 끊어진 것이 무엇일까? 선악과를 먹은 그 과일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주님의 안전한 보호와 사랑과 믿음의 관계였습니다.... 아담은 낙원에서의 삶처럼 살고, 예수님은 천국의 삶을 사는 것처럼 사실 줄 믿습니다.

주님이 이 관계를 주님 스스로 회복시키심으로 우리에게 낙원의 회복이 이뤄집니다.

주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의 죄가 씻기고, 그로인해 낙원의 주님과 동행이 이루어집니다.

낙원에 주님과 함께 한다면? 무엇이 필요 없을까요?

낙원에 절기가 있던가? 낙원에 예배가 있던가?

낙원에 죄가 있던가? 낙원에 십자가가 있던가?

낙원에 자녀가 있던가? 낙원에 부모가 있던가?

낙원에 자유를 증거 할 수 있는 선악과와 생명나무 실과가 있다는 것과 오직 아담 되신 신랑 예수님과 하와 된 신부 성도인 것입니다.

이제 무엇이 중요한지 알겠습니까?

주안에 자유 함... 에덴에 모든 것이 있는데 단 한가지가 없는데 죽고 싶다면?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에덴에 모든 것이 없어도 오직 한가지만 있어도 살 것 같다면? 그것이 나의 사랑

★ 사 61:1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눅 4:17~25.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엡 4:0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0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0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사랑>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 갈 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 갈 4:8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하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청춘, 소년들아 백발노인을 보고 나이 많다고 비웃지마라. 하늘의 이치가 지극히 공평한데, 너희들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늙지 않겠느냐. 우리도 소년시절을 즐기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이렇게 늙었구나!" 라고 조선시대 시인이 노래했고..

"젊은이를 꾸짖지 마라! 내가 온 길이요, 노인을 비웃지 마라! 내가 갈 길이다!!"

병 고침을 믿는 문둥병자

★ 눅 17:11 <나병환자 열 명이 깨끗함을 받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문둥병자 열 명이 병을 고침 받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믿음을 보일 수 있을까요? 간절함입니다.

고통과 좌절과 무시와 따돌림을 당한 설움을 아는 자들의 극도로 한곳에 몰린 간절함입니다.

● 훌륭한 부흥 강사 중에도, 유명한 선교단체에 간사 중에도 간증을 들어 보면? 문둥병자들의 이런 믿음을 자신들의 생활에는 보기 어렵다고 오히려 본인들은 쑥쓰럽고 한편으론 부러워한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병든 이들은 어찌 이런 믿음이 있을꼬?

그리고 그 가운데 구원 받을 믿음을 가진 오직 한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안타깝게도 병만 났고 떠난 9명의 사람들을 보면서도 우린 병도 못 물리치는데 하는 나약한 믿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간절함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표현되나요?

이것 아니면 안되! 오늘 이시간이 아니면 안되! 이 생명의 줄을 놓으면 나는 끝이다! 라는 심정으로 간구하고 부르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일에 창피함도 주변에 눈치 보는 것도 사치요, 부끄러움이나 사람들의 절차적인 예절도 사치일 뿐입니다.

자식을 구하려는 부모의 마음처럼, 애인을 살리려는 사랑의 마음처럼 애절하고 간절한 사람만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그 기적의 현장에서 부러움이 있을텐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한사람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10명 중에 9명은 병 고침만 구하고. 1명만 감사로 주님을 구하여 구원의 영원을 얻게 됩니다.

단지 감사를 했다는 당연한 일에 구원까지....

이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느껴질 때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받은 복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한 일 덕분에 받는 이 복은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가 누리는 모든 것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우연도 없습니다. 단지 누군가 베푸는 자가 있어야 누릴 수 있기에 내가 감사하는 것이 당연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고전 9: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후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 이 시간에도 우리의 감사와 기도와 찬양은 당연한 것이고, 오직 복주시고, 치유하시며, 은혜로 주님을 통해 주시는 구원을 감사하며 더 많은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살리는 귀한 기도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 죄가 큰가? 사람이 큰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지키는 것이 신앙이다.

★ 우리는 원수를 왜 미워할까요? 상대가 내게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죄란 행위로 내 심판을 부르는 것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결국 죄인인 내가 기준이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 기준의 죄를 나든지 상대이든지 심판하는 사람도 내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 나이든 사람이 나의 미래라고 생각해서

우린 죄를 심판할 만할 존재가 못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죄란?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 죄를 짓게 하려고 마귀가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죄가 커보이나요? 아님 그 죄를 지은 사람의 영혼이 커보이나요?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나의 원수인 죄인을 볼 때에 육의 눈으로 보면 죄가 커 보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긍휼로 보면 사람이 크게 보이게 됩니다.

★약 2: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우리는 성경에서처럼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죄인으로 보고 그 여인을 죽이려 들겁니다. 왜냐하면 죄가 그 사람보다 크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시면서 정직한 영을 부으십니다.

그 때에 그 여인의 영혼의 귀함이 죄를 밀어내게 되고 결국 죄로 인하여 여인을 잃을 뻔 했던 상황에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여인을 살리며 죄를 용서하며 죄를 사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곱번씩 일흔 번이라도 사하여 주라..... 말씀하신 주님께서~

내가 너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왜? 죄에 멈춰서 마귀에게 붙잡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기까지 우리 영혼을 사랑하셨는데 왜? 우린 율법으로 죄에 얽매여 사람을 잃고 사람을 죽이려 하는가? 말입니다.

● 예수님은 왜 죽으셨습니까?

힘이 없어서?

돕는 이가 없어서?

온전하지 못해서?

죄가 많으셔서?

아닙니다.

죄보다 더 큰 영혼을 살리기 위해 죄와 사망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사랑의 희생으로 이기신 것입니다.

나를 죽이는 저 간악한 로마 병사의 영혼조차도 살리시고, 그들의 죄로 또 죽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에 원수를 사랑하는 순종을 보이는 것입니다.

죄가 좋아서, 죄인이 좋아서, 원수가 이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너무 고마워 단지 순종하려는 것입니다.

많은 성직자들과 직분자들이 자신의 신앙이라고 지키는 율법과 죄의 사슬에 매여 고집하다가 사랑을 잃고 너무 많은 가족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에 얽혀 떠나 보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용서인데 왜 이렇게 죄를 크게 보는 것일까요?

죄가 무서운 것일까요? 아님 죄를 짓는 것이 무서운 것일까요?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처음에는 욕심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죄가 나를 이끌어 가려합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성령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성령님께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은 나를 가르치십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알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사망을 무엇으로 이기셨지요? 바로 죄를 알게 하는 율법이 아닌,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이기시고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먼저 여러분들이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말을 하기 이전에 내가 주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과 성령을 통해 듣고 있는 내게 유익한 책망의 말씀임을 알기에 내가 먼저 받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사역자의 기본은 바로 내가 선줄로 착각하는 선악과를 먹고 심판자의 자리가 앉은 착각이 아닌,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신학교
CCS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대한민국전자정부
행복발전소
Prayer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