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고후 1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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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고후 13:5-13.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6) 우리가 버림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축도의 시작)
* 스스로를 탁월한 인재요 수재라고 생각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아주 특별한 인물로 알았는데 대학 졸업 후 입사 시험에 거듭 실패를 합니다. ‘나 같은 인재를 몰라보는 이 어리석은 세상에서 살아 무엇 하나?’ 그는 죽기로 결단하고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한 노인이 그것을 보고 뛰어들어 그 청년을 구했습니다. 청년의 사연을 들은 노인이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를 주워서 청년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 손에 있는 그 모래를 이 모래사장에 떨어뜨리게나.”청년이 모래알을 떨어뜨리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방금 떨어뜨린 그 모래알을 주워서 나에게 주게나.” “할아버지, 이 모래사장에서 그 모래를 어떻게 찾아요?”그러자 노인은 자기 호주머니에서 진주 하나를 꺼내어 청년에게 주며 다시 말했습니다. “자, 이번에는 그 진주를 모래사장에 떨어뜨리게나. 그리고 다시 그 진주를 주워서 내게 주게나.” 청년이 진주를 떨어뜨린 다음 금방 다시 주워서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이 사람아,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는 다 똑같아 표가 나지 않지만, 진주는 금방 알아 볼 수 있네. 이처럼 자네가 진짜 수재이고 인재이면 사람들이 왜 자네를 몰라보겠는가? 착각하지 말고 자네를 진주처럼 값지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가꾸어 나가게.”
그리고 이어 말합니다. “겉으로만 평가 받거나 상대의 평가에 불평하며 따르지 말고, 먼저 진주처럼 자네 속사람이 얼마나 위대하고 특별한지를 자네가 먼저 알고 깨닫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네.” 노인의 말에 크게 깨달은 청년은 ‘그래, 내가 착각을 했구나. 나는 그저 모래 알 같은 흔한 사람이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진주는 만들어져 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귀한거나 특별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자신을 볼 줄 아는 낮은 자들이나 병든 자들은 겸손하게 높이십니다.> 낮아짐이란? 나를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서 내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함으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구하고, 얻을 수 있도록 지혜를 누리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 지혜의 담대함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나오는 자존감으로 발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의 보이는 육신은 낮추고, 나의 영혼의 가치는 높여 주시는 분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많은 사람이 ‘회사에서 나를 몰라주네, 가정에서 , 교회에서, 학교에서, 단톡 방에서 여기서는 나를 몰라주네.’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그만한 실력자(겸손과 능력자)가 아니거나 헌신자가(섬김이, 배려자) 아니기 때문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잘 살피는 참된 겸손과 지혜 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38장에 보면, 야곱의 아들 유다가 결혼을 해서 엘, 오난, 셀라,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엘이 장성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악하니 하나님께서 그를 일찍 데려 가셔서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습니다. 유대 관습은 죽은 형에게 자식이 없으면 동생이 형수를 통해 아들을 낳아서 형의 대를 잇게 합니다. 죽은 엘의 대를 잇기 위해 오난이 형수의 방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생명의 씨앗을 형수 몸에 뿌리면 그 자식이 내 이름이 아니라 형님 이름을 갖게 되니 그런 짓은 하지 않아야겠다.’ 오난은 형의 대를 이어주기가 싫어서 생명의 씨앗을 형수의 몸에 뿌리지 않고 밖에 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행위보다 그 악한 마음을 보시고 그도 데려 가셨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유다는 큰아들과 둘째아들이 죽은 것이 며느리 다말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셋째아들 셀라도 며느리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 죽을까 봐 며느리 방에 들이지 않고 오히려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냈습니다. 세월이 지나 유다의 아내가 죽었습니다. 얼마 후, 유다는 친구 히라와 함께 양털을 깎으러 딤나에 갔습니다. 양털 깎는 날은 축제의 날이라 모두 기뻐하며 즐기고 마십니다. 그리고 시가지를 돕니다. 그 정보를 안 다말이 과부 옷 대신 창녀 옷을 입고 변장하여 유다를 유인했습니다. 아내가 없어서 외롭던 유다는 얼큰한 기분에, 유혹에 빠져 여인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주기로 약속하고 그 증표로 그의 지팡이(성령의 인도)와 도장(신랑 에수)과 끈(사랑의 하나님)을 여인에게 맡겼습니다. 다음 날, 유다는 그의 친구를 통해 염소 새끼를 여인에게 보내고 지팡이와 도장과 끈을 찾아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여인을 만나지 못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 마을에는 창녀가 없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그냥 돌아와서 유다에게 사실을 이야기하자 유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만 두게. 하나님을 섬기는 내가 창녀를 찾는다는 것이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나? 세상 사람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는가? 창피를 당하기 전에 그만 두세.” 그런데 몇 달 후 유다는 친정에 가 있는 며느리 다말이 잉태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뭐?” 유다가 사람들에게 며느리 다말을 끌어내어 불에 태워 죽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말을 끌어내어 불에 태워 죽일 준비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남편 없이 아기를 가지면 돌로 때려죽이든지 불로 태워 죽였습니다. 그런데 다말이 끌려 나가면서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여주며 그 물건의 주인으로 말미암아 잉태했다고 했습니다. “유다 어른, 며느리가 이 도장의 주인으로 말미암아 잉태했다고 하더이다.”유다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그가 나보다 옳구나. 내가 내 아들 셀라를 그에게 주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구나.” 그리고 이 여인이 누굴 죽인 것이 아니라, 내 자녀들이 범죄했고 나도 범죄 했던 탓이며 나를 살려 두신 하나님께 회개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다가 자신의 죄를 모르고 처음에 자신을 살피지 않았을 때에는 남편 없이 잉태한 며느리를 죽일 여자로 보았지만, 자신을 살피니 자신이 더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구누구를 비난하지만 자신을 살피면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간음하다 끌려온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돌로 치라.”라고 하시니 돌 던질 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는 변명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격이 없는 사도다.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가 아닌가? 우릴 속이는 사기꾼이다, 예루살렘에 보낼 헌금을 슬쩍 챙긴 나쁜 사람이다.’라는 거짓말로 악담을 하는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인들에게 “아니다. 나는 참 사도다. 지극히 큰 사람보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은사도 많이 받았고, 방언도 많이 하고, 능력도 많이 행했고, 14년 전에 삼천 층까지 갔다 온 사람이다. 나는 참 사도다.”하고 변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공격을 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무슨 말입니까? “내가 비록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 성령님께서 나를 잡아 쓰시는데, 너희가 한 성령을 받았다면 어떻게 나를 비난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받은 영이 악령이 아닌가 한 번 테스트해 보아라.”라는 말입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요, 성령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입니다. 성령을 받은 가슴은 하나입니다. 할렐루야!
교회가 크던 작던 지간에 하나로 나아가는 것은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직분 자들과 여러분은 마음이 다 다르고 생각이 다 다르지만 성령은 한 성령이기에 하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른 말을 한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하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의 비밀을 공개하십니다.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스스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왔고,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 여러분, * 세상 종교의 창시자들은 다 땅에서 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천국의 비밀을 나눌 때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자칭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말씀을 잘 받는다는 바리새인들은 “네가 사람인 주제에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냐? 사람인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하면서 예수님께 도전하고 대항하고 변론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왜 내 말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지 아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함은, 너희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함이다.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서 그렇다.”
*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리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시간에 딴전부리는 사람치고 잘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졸고, 설교 시간에 딴 짓을 하면 여러분의 받을 복은 이미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는 복 있는 자가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너희를 지도하는 나를 왜 비난하겠느냐? 너희가 정말 성령의 사람인지 너희를 스스로 시험해 보아라. 한 번 테스트해 봐라. 너희 자신을 확증해 봐라.” 라고 한 것입니다.
● 점을 치는 점쟁이는 두 종류입니다. 가짜 점쟁이는 배워서 확률로 하지만, 진짜 점쟁이는 배우지 않고도 귀신을 받아서 즉 접신해서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지식적으로 배워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직 성령을 받음으로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결혼한 신혼부부가 아이를 가져서 한 달 반이 되었다면 본인들만 압니다. 이웃 사람들은 모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남들은 몰라도 우리 자신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 우리가 성령 받은 것을 어떻게 압니까? 성경의 기적이 다 믿어지시는 분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은 복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천국 시민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복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십자가를 아무리 보아도 더하기 부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은 십자가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피 흘리신, 내 죄를 대신 지신 십자가’로 믿어집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성령의 사람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즐거울 때 함께 즐겁고 교회가 어려울 때 함께 아프면 성령의 사람입니다. 교회를 사랑하시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 바울의 지도를 잘 따라가야 교회가 화목하고 하나가 되는데, 바울을 비난하니 교회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바울이 “너희가 성령의 사람인가, 마귀에게 쓰이는 사람인가 확인해 보라.” 라고 한 것입니다. 마귀가 쓰는 일꾼에는 세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1. 늘 마귀의 쓰임을 받는 귀신들이 있고, 2.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한테 왔다가 마귀에게 갔다가 하면서 쓰임 받는 사람이 있고, 3. 베드로처럼 잠깐 마귀의 쓰임을 받았다가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루도, 잠시도 마귀에게 쓰임을 받는 일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베드로는 수제자인데 예수님의 길을 막았습니다. 십자가를 못 지시게 막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수제자에게 사탄이라 부르신 것은, 순간적이지만 베드로가 마귀에게 쓰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가 어떤 성도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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