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나안 : 노아의 저주(창 9: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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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통하신 하나님의 임재. 주제1 노아의 저주(창 9:20-25)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1. 저주의 발단
1) 함의 경박한 행동 때문입니다. 족장 시대에 있어서의 가부장의 권위와 명예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족장 시대에는 가부장이 최고 통솔자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 역할도 아울러 가진 대단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아도 가부장으로서 당시 그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함의 결정적 실수는 바로 그러한 아버지의 권위와 명예를 존중하지 않고 경박하게 여겨 아버지의 실수와 수치를 사람들에게 드러냄으로 아버지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킨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삼아 우리의 가장 크신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홀히: 무심하고 소홀하다. 업신여기다. 여기서 '만'(漫)은 '문득 생각나는 대로 함'이란 뜻이다.>
● 간혹! 피해의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잘못 한 것은 위로를 받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똑 같은 잘못을 하면 엄청 책망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의 단점이나 부족함을 들어내는 것은 내가 똑똑한 일이고, 내 잘못이나 단점을 말하는 상대는 사랑이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 함의 경박한 행동.
●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 잠 14: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 잠 24:9“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2) 아비의 실수를 덮어 주지 않고 드러내는 불효와 영적인 권위를 무시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께서는 용서와 관용의 미덕을 매우 강조하셨습니다(참조, 마 6:14-15, 18:21-35). 그만큼 용서와 관용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매우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함은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실수와 수치를 덮어주지 못하고 형제들에게 알림으로써 아버지의 실수와 수치를 드러내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습니다. 잘못을 드러내는 것이 진실인양 까발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고, 서로 관용함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 아비의 실수를 덮어 주지 않고, 또한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맘으로 살지 못하고 자기의 의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만이 결국 상대의 단점과 비밀을 안다는 자기 자랑으로 들어 남을 봅니다.
●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녀나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라면 그렇게 방종하며 떠들고 다닐까요? 결국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 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 서로 용서하라. 엡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2. 사소한 것 같지만 악을 행한 그 범죄의 결과는?
1)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게 됩니다.
함은 아버지의 가부장으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가벼이 여겨 경박하게 행동하고 아버지의 실수와 수치를 덮어 주지 않고 형제들에게 드러냄으로써 그가 아들로서 마땅히 받아야 될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축복은커녕 오히려 형제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지킬 것을 지키지 않고 용서와 관용을 베풀지 않는 행동의 결과는 이와 같이 버림받고 낮아지는 저주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중할 것은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수치를 덮어 주는 하늘의 지혜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 악인은 멸망함
시 145: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 악인의 집에는 저주가 있음
잠 3: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2) 자손에게 누를 끼치게 됩니다.
함의 잘못으로 인해 얻어진 나쁜 결과는 함 자신이 겪는 것으로만 멈추지 않고 함의 후손들에게 까지 미쳤습니다. 예전에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함의 후예들인 흑인들이 겪었고 겪고 있는 고통이 그 사실을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지혜롭지 못한 행동은 그 자손들에게까지 미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범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우상 숭배로 인한 재앙. “왜 신의 자녀가 피조물인 마귀나 우상을 떠받드는가?”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 악한 자의 자녀는 고아가 됨.
시 109: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3) 오명을 남기게 됩니다.
함의 잘못은 자신 및 자신의 자손들에게 불이익을 당하도록 하였음은 물론 더 나아가서 그의 이름이 수대에 걸쳐 어리석은 행동을 한 사람의 전형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만큼 그에게 오명을 남겨 주었습니다. 함의 어리석은 행동은 지을 수 없는 오점을 그에게 안겨 준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저지르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이러한 결과에 빠지지 않도록 결코 어리석은 행동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악인의 이름은 썩음/잠 10:7-8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
●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함/잠 14: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 저주를 피하는 길
1)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함은 사물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함으로 존귀히 여겨야 할 것을 존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여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생각과 신중하지 못한 행동은 이와 같이 진노와 저주를 부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러 그와 같은 저주를 받지 않으려면 성도 된 우리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지혜와 영적 지혜를 깨달아야 할 것이며 둘째, 기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진리 가운데 거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어리석음에서 떠나 모든 것을 밝히 깨달음으로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키고, 낮출 것은 낮추고 높일 것은 높임으로써 의를 행하는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그의 말씀을 바로 행하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백성이 될 것입니다.
●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라/ 잠 2: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 성경은 사람을 온전케 함/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심/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 용서와 관용을 베풂
우리 속담에 가는 정이 고와야 오는 정이 곱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여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참조, 마 6:14-15, 18:23-35). 만일 우리가 우리 형제의 죄를 용서치 않음으로 우리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용서받지 못함으로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우리의 죄값을 우리가 지게 되어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우리도 용서받지 못하므로 우리는 죄의 저주 아래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피하고 사람들과 화목하기 위해 타인의 죄를 용서하고 관용을 베풂으로써 그들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 용서하면 용서를 받음/ 눅 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 서로 용납하라/ 골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림/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아벨은 하나님의 마음과 테스트를 보고, 가인은 아벨과 상황을 봅니다.
●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반성과 자아 성찰.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 주시면 믿음으로 살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몇몇 신앙 좋은 성도들은 먼저 믿음으로 행하면 그 뒤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기에 우리가 구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사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게 우린 또한 배웠습니다. 그런데 실로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는 그 시작과 그 자체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영생이며 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이런 사람들에게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는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바로 소망 아닙니까? 육에 것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 된다면 우리의 소망을 육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다만 이 땅에서의 것이라면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산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이 땅에 육신이라면 이 사람도 역시 소망이 육신인 것입니다.
● 2008년에는 연예인 최진실, 안재환 씨가 자살하고, 2009년에는 장자연, 2010년에는 최진영, 박용하 씨가 자살했습니다.
● 전문계고 출신으로 2010년도인가? KAIST의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입학했으며 수차례 매스컴에 보도될 정도로 지역에서는 유명한 대학생 조 모 군이 있었습니다. 2007년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한국 대회에서는 대상인 과학기술부 장관상을 받았고, 2008년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세계 대회에서는 3등에 오르기도 한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인데 2011년 1월 8일 오후 11시 32분께 수면제 다량 복용으로 자살했습니다. 경찰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조군은 지난 학기 일부 과목에 대해 학사경고를 받은 데다, 최근 여자 친구와 헤어져 괴로워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2011년도 3월 8일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의하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사는 테레사 리기라는 여자(47)가 지난해 8월 전 남편과 자녀 양육권 문제로 다툼이 있은 후 화가 난다는 이유로 쌍둥이 오스틴(8)과 루크, 딸 세실리아(5)를 흉기로 찔러 살해를 하였습니다.
● 각자의 일터에서 최고의 높이에 오른 자들도 목적이 없이 살았다면 허무한 마감을 갖게 됩니다. 죽이고, 또 죽임을 당하는 이런 심각한 현상이 왜 계속 생기는 걸까요? 무엇보다도 현실의 삶과 미래에 대한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고 소망이 없다면?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내가 태어 날 때 어떤 목적을 여러분이 가지고 태어났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 분의 목정에 의해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 주시고 이 땅에 보내신 목적과 비밀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목적의식이 없고 삶의 초점이 없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삶을 팽개치는 포기의식이 나타나 고귀한 생명을 함부로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있는 삶을 살 때에만이 이런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 나는 목적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사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기독교의 신앙관에서 보면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도록 예비하셨습니다(엡 01:03~06). 그러므로 목적 있는 삶이란 이 땅 위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한 삶, 내세의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삶을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묵시: 숨기어 알려진 내용 - 하늘의 숨겨진 계획과 내용을 꿈이라 표현해 봅니다)
하늘의 꿈이 없으면 망한다고 하죠? 꿈이 있으면 일어나거니와 꿈이 없으면 방자해진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잠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꿈이 있는 사람은 즉 세상의 문제가 앞길을 막아도 계속 전진할 것이나, 꿈이 없는 사람은 그 인생의 방향이 수시로 흔들리거나 바뀝니다. 인생의 꿈이란 인생 전체를 움직이는 동력이요, 더 강한 추진력을 이루어 나감을 아십니까? 변치 않는 강한 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늘의 강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나를 만드시고 나를 살리실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에게 소망 즉 모든 구함이 있고, 그분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만 바로 직시한다면? 즉 믿고 따르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신이 허락하신 신의 삶이 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무엇을? 하나님의 사랑과 동행하심과 그분의 임재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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