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신앙인 시편 6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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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신앙인
본문: 시편 62:1~12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1.>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잘 알 수 없을 때 그것을 식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흔히 의사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눈꺼풀을 올리고 동공을 플래쉬로 비춰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공이 움직이면 살아 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은 사람으로 일단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도 아닌 일반인들이 남의 눈알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도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 일반인들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냐 하면 간단하게 코에다 손을 갖다 대 보는 방법입니다. 즉 이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니면 숨을 안 쉬고 있는지 호흡 상태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아직도 코에서 김이 나오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세계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영혼이 죽은 상태인지 살아 있는 상태인지를 쉽게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은 영혼의 호흡인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하고 있는지, 안하고 있는지, 또 한다면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측정해 보면 그 사람의 심령상태가 활발한 상태인지, 아니면 활발치 못한 상태인지, 또는 죽은 상태인지, 아니면 빈사상태인지를 영혼의 호흡인 기도하는 상태를 보아 가히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실로 모두가 잘 알듯이 영혼의 호흡이요, 맥박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생활에 시원치 않은 성도는 살아 있기는 살아 있어도 빈사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기도생활이 풍부한 사람은 살아 있어도 넘치는 기상과 활력을 가지고 씩씩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면하시는 말씀 중에 가장 많은 말씀이 곧 기도하라는 말씀들입니다.
<구약> (왕상 3:5)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사 56:7)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신약> (마태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 6:6)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히 보시는 네 하나님께 기도하라."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런데 환자가 의사한테 가서 처방전을 받아 와서 바로 쉽게 자동적으로 낫는게 아니라 개인이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주변에서도 도와 줘야 합니다. 그래서 바로 되는 것도 있지만 좀 시간이 걸려서 습관까지 바뀌도록 하시는 경우도 있기에 (눅 18:1)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등등.... 이 얼마나 많은 권면과 약속과 격려와 보장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없습니다.
2. 더 재미난 이야기는 눈을 까든지, 청각 테스트를 하든지, 코에 손을 대던지 간에 상대가 장님이면 눈동자가 움직이겠는가? 귀 벙어리면 듣겠는가? 숨을 갑자기 안 쉬면 그러면 그들은 죽은 것인가? 아닙니다. 심장이 멈춰서 정녕 죽었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상대를 살아 있다고 믿고 계속적으로 깨우거나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즉 의사의 전문적 지식과는 다르게 영적인 눈으로 죽은 자들을 깨우는 일을 주께서는 하신 것입니다.
바로 믿음으로 사랑을 나눈 것인가? 믿음으로 소망을 나눌 것인가?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야 할 것이며, 상대도 마찬가지로 거듭나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산 사람이 될 것입니다.
3. 그런데 우리 성도들의 기도 가운데는 크게 나누어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가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기도 가운데는 형식적인 기도(눅 18:11~12)가 있고 또 사람들에게 칭찬 들으려고 외식으로 길게 하는 기도(마 23:14, "막 13:18)가 있으며 또 마음에 죄악을 품은 채 하나님께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하는 뻔뻔한 기도(시 66: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등등이 있는데 이런 기도들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듣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뻔뻔한 기도는 남이 한 말에는 서운하고 자신의 말에 상대가 상처 받는 것에는 “내가 원래 그래 그러니까 피해!” 오 이 담대함.
나는 하나님께, 부모에게, 자녀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이웃에게 많은 것을 잘못 했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나한테 안하거나 실수로 못 한 것, 그 한 가지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이 싫다고, 하나님이 싫다고 그래서 교회 안 간다고 합니다. “나한테 사랑이 없데?” “나한테 믿음이 작데?” 아담과 하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가지고도 하나만 없어서 불편해도 원망하고, 궁금해 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다 좋아도 하나만 싫으면 불평하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그 말이 이미 기도이며 마지막 심판 때에 스스로가 직고하리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꺼이 들으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하면 한마디로 표현해서 감사와 믿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신약성경 약 5장 15절을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떨쳐 일어나 출동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설혹 중병에 걸려 숨이 넘어가는 지경이 되었다 할지라도 만병의 의원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출동을 하여 그 생명을 건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설혹 큰 죄를 범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만 하면 우리 주님께서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곧 응답하여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주께서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하리라.” 하신 이유입니다.
* 눅 23장 42절의 기도문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오 주 예수여 당신이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도는 자신이 지금 낙원에 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기도였습니까? 다름 아닌, 십자가에 못이 박혀서 이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던 우편 강도의 기도였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낙원을 만나게 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었습니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왜 예수님께서는 이 강도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었습니까? 이유는 그의 기도가 믿음의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진실이라는 말로 확약을 하시면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물질과 스펙들이 아무리 쩔어도 자기가 죽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믿음과 놀라우신 증거를 보기 어렵습니다. 믿음만이!
1> 첫째로 믿음의 기도는? 죄 사함도 받아 낼 수가 있는 것이며, 꺼지는 생명도 다시 찾아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38장 1절을 보면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유다 왕 히스기야도 중병을 앓다가 그만 그 생명이 병으로 인하여 꺼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의 나이는 40미만의 중년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였던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이라는 새 생명을 다시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큰 이적을 베푸신 것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가 곧 믿음의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 5장 15절에는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구원해 내며 또 믿음의 기도가 범죄자로 용서를 받게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렇게 볼 때 신앙생활을 하는 * 모든 신앙인 가운데 가장 불행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기도를 못 드리거나, 게을러 미루거나 불평하면서 안 드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모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거기에 해당하는 신앙인들 입니다.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이 또한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한편 제일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가? 하면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었고 믿음의 기도를 드리려고 날마다 힘쓰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고 하였습니다.
2> 둘째로 믿음의 기도는? 어떤 사람이 드릴 수 있는 것이냐 하면 한 마디로 표현해서 사람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크게 생각하는 신앙인들이 드리는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시냐? 사람이 크냐?” 물으면 10중 10, 100중 100이 다 하나님이 크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을 더 의지하고 사람을 더 가까이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재물에 마음을 더 치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러 예수님께 나왔던 청년 부자도 실족하고 돌아간 것이 바로 네 소유를 다 팔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마음이 걸려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모든 율법사,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못된 탓도 모두가 사람 울타리를 더 위하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요 12장 43절을 보면 출교 당할까? 직장에서 짤릴까? 두려워 하는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은 인생에 대하여는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천한 자나 귀한 자나, 낮은 자나 높은 자나, 가난한 자나 부자나 모두 다 입김보다 가볍다는 것입니다.
* 사람은 하나님께 비하면 어떤 존재입니까? 3절에 보면 "넘어지는 담과 같고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시편 146편 3~4절에 기록한 것을 보면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라.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62편 5~6절을 보면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는 나의 반석, 나의 구원, 주는 나의 요새"라고 하였으니 다윗은 하나님을 얼마나 크신 분으로 의지하였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은 크신 분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확신에서만 사람은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셋째로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친히 체험하는데서 지속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8장 4~6절을 보면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을 다윗은 친히 체험하는 속에서 다윗은 믿음의 기도를 지속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4> 넷째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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