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양심과 성도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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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묻은 오물
선주가 친구의 가방을 뒤져 친구의 시계를 훔쳤는데 시계를 가지고 있으면 들킬 것 같아 방과후에 가져갈 생각으로 학교 뒷 뜰에다가 묻었습니다. 교실로 돌아오는데 손에 흙이 묻어 수돗가에 가서 손을 씻었습니다.
교실에 돌아온 선주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먼저 들어와서 선주의 행동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선주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선주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널 용서할 수 있단다. 그렇지만 선주야, 네 손에 묻은 오물은 물로 씻어 내렸지만, 네 양심에 묻은 오물은 어떻게 씻어내지?"
선주는 시계를 다시 친구의 가방에 넣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선주는 그 후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신앙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롬 2:14~15)
사람이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어떤 잘못을 범하였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뛰고 혈압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두려워하게 되며 심리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 같은 현상은 사람의 내부에서 악에 대하여 어떤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그 무엇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심리적인 현상을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이나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습득되어진 것이 아니고 인간이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1. 양심이란 무엇인가? 심리학에서는 양심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여과장치이며 인간 행위의 도덕적 판단기준 그리고 자신의 언행 심사를 검토하는 내적 비판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2. 성경이 말하는 양심. 양심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의 내부에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양심은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을 알 만한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 만한 것 (롬 1:19)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도덕과 윤리의식을 갖고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지만 결국 양심이란 하나님을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양심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고 있으며 이것에 반대되는 인간의 행위가 나타날 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전 3:21)
②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반응하는 기능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양심이 하나님의 목소리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 자체가 심히 부패하고 더러워져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양심에 대해 마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벤 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사실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마음이 찔려 (삼상 24:5)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찔림을 받을 수 있는 기능, 그것이 양심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그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인 가치관에 따라 양심이 반응함으로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3 양심의 종류 성경에는 사람의 양심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 여러 종류의 양심을 열거합니다.
① 범죄한 양심
양심(良心)이란 어질고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의미를 가졌지만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그렇게 어질고 착하지만은 않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은 정당한 일을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또 우상이나 돼지머리 같은 것에 절하고 섬기면서 양심의 거리낌이나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한 양심은 분명 무엇인가 잘못된 양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반영하지 않는 양심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양심은 죄로 인해 그 기능을 상당부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범죄한 양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a. 굳어졌습니다.(엡 4:18)
b. 어두워졌습니다.(롬 1:21)
c. 가책을 받습니다.(요 8:9)
d. 약해졌습니다.(고전 8:7)
e. 더러워졌습니다.(딛 1:15)
f. 화인 맞았습니다.(딤전 4:2)
g. 버렸습니다.(딤전 1:19)
이러한 양심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양심을 갖게 되면 버림받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양심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양심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② 양심 회복의 길
성도들이 범죄한 양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 양심으로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면 양심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 때에 회개가 일어납니다. <행 2:37>절에 의하면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의 양심이 찔려 어찌할꼬!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회개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양심에 찔림이 되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자신의 행위를 말씀에 비춰보며 날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신앙 양심으로 회복되게 하십니다.
③ 회복되어진 양심
말씀과 기도로 회복되어진 양심은 신앙 양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양심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양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a. 깨끗합니다.(딤전 3:9, 딤후 1:3)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입어 죄 사함을 받은 양심이 깨끗해진 양심입니다. 자기를 속이지 않을 뿐 아니라 성령을 속이지 않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b. 선합니다.(벧전 3:16, 딤전 1:5)
선한 행실을 갖게 하는 양심입니다, 회복되어진 양심은 선한 일을 하게 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는 덕을 끼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양심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양심은 이미 죄로 오염되어 그 기준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성령은 그 기준대로 살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를 지도하고 돕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성도는 세상 사람들보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맑은 눈동자의 양심
성경: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11:34-35) 하루는 김구 선생님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셨습니다. 관상학적으로 볼 때 임시정부를 맡을 만한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수상(手相)을 봤고, 그것도 별 볼일 없어서 족상(足相)까지 봤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나라의 중책을 맡을 만한 근거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 김구 선생님이 내리신 결론은 바로 심상(心狀)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창인 눈이 성해야 온몸이 밝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깨끗해야 그 사람의 삶이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몸을 씻는 것도 중요하고 새 옷으로 치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참회의 눈물로 맑은 양심을 유지하는 것이며 혼탁해진 영혼의 눈을 씻는 일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천진난만한 어린이와 같은 맑은 눈동자의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맑은 양심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 인내하고 감사로 믿고 산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당신의 억울함이나, 감사의 제목을 더 풍성히 갚아 주실 것입니다.
선주가 친구의 가방을 뒤져 친구의 시계를 훔쳤는데 시계를 가지고 있으면 들킬 것 같아 방과후에 가져갈 생각으로 학교 뒷 뜰에다가 묻었습니다. 교실로 돌아오는데 손에 흙이 묻어 수돗가에 가서 손을 씻었습니다.
교실에 돌아온 선주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먼저 들어와서 선주의 행동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선주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선주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널 용서할 수 있단다. 그렇지만 선주야, 네 손에 묻은 오물은 물로 씻어 내렸지만, 네 양심에 묻은 오물은 어떻게 씻어내지?"
선주는 시계를 다시 친구의 가방에 넣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선주는 그 후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신앙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롬 2:14~15)
사람이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어떤 잘못을 범하였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뛰고 혈압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두려워하게 되며 심리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 같은 현상은 사람의 내부에서 악에 대하여 어떤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그 무엇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심리적인 현상을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이나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습득되어진 것이 아니고 인간이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1. 양심이란 무엇인가? 심리학에서는 양심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여과장치이며 인간 행위의 도덕적 판단기준 그리고 자신의 언행 심사를 검토하는 내적 비판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2. 성경이 말하는 양심. 양심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의 내부에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양심은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을 알 만한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 만한 것 (롬 1:19)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도덕과 윤리의식을 갖고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지만 결국 양심이란 하나님을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양심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고 있으며 이것에 반대되는 인간의 행위가 나타날 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전 3:21)
②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반응하는 기능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양심이 하나님의 목소리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 자체가 심히 부패하고 더러워져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양심에 대해 마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벤 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사실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마음이 찔려 (삼상 24:5)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찔림을 받을 수 있는 기능, 그것이 양심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그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인 가치관에 따라 양심이 반응함으로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3 양심의 종류 성경에는 사람의 양심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 여러 종류의 양심을 열거합니다.
① 범죄한 양심
양심(良心)이란 어질고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의미를 가졌지만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그렇게 어질고 착하지만은 않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은 정당한 일을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또 우상이나 돼지머리 같은 것에 절하고 섬기면서 양심의 거리낌이나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한 양심은 분명 무엇인가 잘못된 양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반영하지 않는 양심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양심은 죄로 인해 그 기능을 상당부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범죄한 양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a. 굳어졌습니다.(엡 4:18)
b. 어두워졌습니다.(롬 1:21)
c. 가책을 받습니다.(요 8:9)
d. 약해졌습니다.(고전 8:7)
e. 더러워졌습니다.(딛 1:15)
f. 화인 맞았습니다.(딤전 4:2)
g. 버렸습니다.(딤전 1:19)
이러한 양심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양심을 갖게 되면 버림받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양심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양심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② 양심 회복의 길
성도들이 범죄한 양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 양심으로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면 양심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 때에 회개가 일어납니다. <행 2:37>절에 의하면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의 양심이 찔려 어찌할꼬!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회개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양심에 찔림이 되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자신의 행위를 말씀에 비춰보며 날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신앙 양심으로 회복되게 하십니다.
③ 회복되어진 양심
말씀과 기도로 회복되어진 양심은 신앙 양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양심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양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a. 깨끗합니다.(딤전 3:9, 딤후 1:3)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입어 죄 사함을 받은 양심이 깨끗해진 양심입니다. 자기를 속이지 않을 뿐 아니라 성령을 속이지 않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b. 선합니다.(벧전 3:16, 딤전 1:5)
선한 행실을 갖게 하는 양심입니다, 회복되어진 양심은 선한 일을 하게 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는 덕을 끼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양심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양심은 이미 죄로 오염되어 그 기준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성령은 그 기준대로 살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를 지도하고 돕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성도는 세상 사람들보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맑은 눈동자의 양심
성경: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11:34-35) 하루는 김구 선생님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셨습니다. 관상학적으로 볼 때 임시정부를 맡을 만한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수상(手相)을 봤고, 그것도 별 볼일 없어서 족상(足相)까지 봤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나라의 중책을 맡을 만한 근거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 김구 선생님이 내리신 결론은 바로 심상(心狀)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창인 눈이 성해야 온몸이 밝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깨끗해야 그 사람의 삶이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몸을 씻는 것도 중요하고 새 옷으로 치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참회의 눈물로 맑은 양심을 유지하는 것이며 혼탁해진 영혼의 눈을 씻는 일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천진난만한 어린이와 같은 맑은 눈동자의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맑은 양심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 인내하고 감사로 믿고 산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당신의 억울함이나, 감사의 제목을 더 풍성히 갚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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