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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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하십니까?
본문: 시편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현대는 풍성한 시대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전만 못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진 것은 많으나 만족함은 예전보다 덜합니다. 많이 가졌는데도 감사가 없고 만족함이 없습니다. 또 많이 배웠지만 자신이 없는 시대입니다. 현대인들은 성취감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이 일하고 바쁘게 뛰면 무엇인가 성취감이 있어야 하는데 성취감이 없습니다. 이것이 ‘현대병’입니다. 이런 병이 쌓이면 고독을 느끼게 됩니다.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적은 소외감입니다. 소외감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 부터의 소외감입니다. 누가 누구를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람과 식구가 많고 일거리가 많아도 내가 내 자신에 대하여 고독한 것입니다. 내가 보는 내 자신이 불만스럽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기가 자기에게 소외 당하는 골치 아픈 증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를 내줄 만한 상대를 발견하지 못해서 소외감을 느끼며 고독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이든,사람이든 자신이 어떤 희생과 대가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없을 때 사람은 고독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증상을 현대병이라고 합니다. 현대병은 약이 없습니다. 입원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해답은 분명히 한 가지입니다. 영원한 갈증을 해결하여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주님 이외에는 모든 것이 변합니다. 변하는 것에 우리는 헌신하지 않습니다. 헌신된 사람은 고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비전을 가지고 헌신의 마음으로 강하게 달려가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비전과 헌신이 나를 끌고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지점이 바로 헌신의 지점입니다. 내가 쫓고 쫓아가는 지점은 아직 헌신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주저앉을 수 있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께 사로잡혀 내가 아닌 주의 영이 나를 끌고 갈 때 우리에게는 포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삶이 있을 때에 우리의 삶은 즐겁고 기쁘며 활력이 넘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그리스도께 헌신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평안을 항상 갖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혜권 목사(뉴욕 열방교회)
* 고독하다는 것은
날고 싶을 때 날 수 있는 새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피고 싶을 때 필 수 있는 꽃들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고독하다는 것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을 고스란히 비워 당신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그래서 당신이 사무치게 그립고, 어서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그런 뜻입니다.
- 이정하의 <한 사람을 사랑했네> 중에서 -
* 고독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외로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미래의 당신을 위한 기다림을 뜻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고독은 당신만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허무와 고독
무역업을 크게 하는 남편을 둔 어떤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우리 부부는 초년에는 숱한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살 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한 달이면 열흘 이상을 외국에 나가 있고, 집에 돌아오더라도 너무나 바빠서 함께 대화를 나눈다든지 취미 생활을 한다든지 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남편이 외국에만 나가고 나면 마음이 허전해지고 바람기가 일어납니다. 이럴 때면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 오는데, 화투치러 모이자느니 춤추러 가자느니 하고 꾑니다.”
서울 시내에는 외국인 남자 클럽이 있는데, 이 사람들과는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소문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에 수많은 유한 부인들이 마음 놓고 그들과 놀아납니다. 아무리 그들의 행위를 지탄한다 해도,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없는 한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신앙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실상입니다. 믿는 자라 할지라도 뜨거운 신앙으로 주님의 뒤를 좇지 않는다면, 불분명한 신앙 태도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사랑의 대상을 잃었을 때
차가 잘 달리고 있을 때는 자동차의 속력이 시속 60km이건 시속 90km이건, 그 차이가 승차한 사람에게 민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동안 얼마나 빠르고 강하게 주행하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은, 막상 어딘가에 부딪혀 사고가 났을 때이다.
우리의 사랑도 이와 같다.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사랑의 대상을 잃었을 때이다. 사랑하는 것을 잃은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단지, 사랑하는 것을 잃었기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 고통은 우리가 하나님 이외의 것을 사랑하기 시작한 그 순간에 이미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랑의 대상을 상실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그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는지를 알게 하신다.
상실이 주는 고통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본문: 시편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현대는 풍성한 시대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전만 못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진 것은 많으나 만족함은 예전보다 덜합니다. 많이 가졌는데도 감사가 없고 만족함이 없습니다. 또 많이 배웠지만 자신이 없는 시대입니다. 현대인들은 성취감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이 일하고 바쁘게 뛰면 무엇인가 성취감이 있어야 하는데 성취감이 없습니다. 이것이 ‘현대병’입니다. 이런 병이 쌓이면 고독을 느끼게 됩니다.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적은 소외감입니다. 소외감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 부터의 소외감입니다. 누가 누구를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람과 식구가 많고 일거리가 많아도 내가 내 자신에 대하여 고독한 것입니다. 내가 보는 내 자신이 불만스럽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기가 자기에게 소외 당하는 골치 아픈 증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를 내줄 만한 상대를 발견하지 못해서 소외감을 느끼며 고독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이든,사람이든 자신이 어떤 희생과 대가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없을 때 사람은 고독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증상을 현대병이라고 합니다. 현대병은 약이 없습니다. 입원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해답은 분명히 한 가지입니다. 영원한 갈증을 해결하여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주님 이외에는 모든 것이 변합니다. 변하는 것에 우리는 헌신하지 않습니다. 헌신된 사람은 고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비전을 가지고 헌신의 마음으로 강하게 달려가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비전과 헌신이 나를 끌고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지점이 바로 헌신의 지점입니다. 내가 쫓고 쫓아가는 지점은 아직 헌신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주저앉을 수 있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께 사로잡혀 내가 아닌 주의 영이 나를 끌고 갈 때 우리에게는 포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삶이 있을 때에 우리의 삶은 즐겁고 기쁘며 활력이 넘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그리스도께 헌신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평안을 항상 갖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혜권 목사(뉴욕 열방교회)
* 고독하다는 것은
날고 싶을 때 날 수 있는 새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피고 싶을 때 필 수 있는 꽃들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고독하다는 것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을 고스란히 비워 당신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그래서 당신이 사무치게 그립고, 어서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그런 뜻입니다.
- 이정하의 <한 사람을 사랑했네> 중에서 -
* 고독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외로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미래의 당신을 위한 기다림을 뜻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고독은 당신만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허무와 고독
무역업을 크게 하는 남편을 둔 어떤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우리 부부는 초년에는 숱한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살 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한 달이면 열흘 이상을 외국에 나가 있고, 집에 돌아오더라도 너무나 바빠서 함께 대화를 나눈다든지 취미 생활을 한다든지 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남편이 외국에만 나가고 나면 마음이 허전해지고 바람기가 일어납니다. 이럴 때면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 오는데, 화투치러 모이자느니 춤추러 가자느니 하고 꾑니다.”
서울 시내에는 외국인 남자 클럽이 있는데, 이 사람들과는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소문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에 수많은 유한 부인들이 마음 놓고 그들과 놀아납니다. 아무리 그들의 행위를 지탄한다 해도,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없는 한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신앙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실상입니다. 믿는 자라 할지라도 뜨거운 신앙으로 주님의 뒤를 좇지 않는다면, 불분명한 신앙 태도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사랑의 대상을 잃었을 때
차가 잘 달리고 있을 때는 자동차의 속력이 시속 60km이건 시속 90km이건, 그 차이가 승차한 사람에게 민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동안 얼마나 빠르고 강하게 주행하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은, 막상 어딘가에 부딪혀 사고가 났을 때이다.
우리의 사랑도 이와 같다.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사랑의 대상을 잃었을 때이다. 사랑하는 것을 잃은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단지, 사랑하는 것을 잃었기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 고통은 우리가 하나님 이외의 것을 사랑하기 시작한 그 순간에 이미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랑의 대상을 상실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그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는지를 알게 하신다.
상실이 주는 고통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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