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일만 스승과 아비 / 차성도 교수
페이지 정보

본문
교회 안의 일만 스승과 아비 / 차성도 교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5-16)
학교에는 선생은 많지만 참 스승이 없어서 아우성이지만, 교회에는 스승은 많지만 아비가 없어서 문제이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은 있지만 아비가 많지 않다고 경고한다. 이는 교회의 피폐함이 좋은 교사나 설교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영적 아비가 없기 때문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유능한 교사이자 설교자이었음에도 성도들에게 아비가 되었던 이유들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로 선생은 학생들에게 헌신적일 수는 있어도, 부모처럼 자녀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사랑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 2:7-8)처럼 바울에게는 성도들이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이었기에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교사와 설교자들이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으며 감동적인 설교를 할 것인가에 최대의 관심을 두는 사이에 성도들은 관심과 사랑에 굶주려 영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
둘째로 선생은 학생들을 집단으로 가르치지만, 부모처럼 자녀 개개인을 양육하지 않는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살전 2:11-12)처럼 바울은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도록 아비가 자녀에게 하듯이 각 사람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였다. 이 시대의 지도자들은 수많은 청중들이 환호하는 설교에 열중하지만, 바울은 각 개인들에게 아비로 다가가서 타이르고 격려하고 보호하였다.
셋째로 선생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맡은 책무만 다하면 되지만, 부모는 자녀가 온전히 성장하도록 해산하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그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교역자들은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잘하는 좋은 교인(?)이면 흡족하지만, 성경의 목표인 각 성도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려면 해산의 고통이 계속 요구된다.
영적 아비인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딤전 1:2),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딛 1:4), 그리고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 1:10) 외에도 수많은 영적 자녀들을 위해 해산의 고통을 감수했다. 그러했기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21-22)처럼 모두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을 때, 자식이 아비를 섬기듯이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는 영적 자녀가 되었다.
한 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어려움과 고통은 여러 명의 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사의 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 교사나 설교자는 멋지게도 보이고 남들에게 존경도 받지만, 부모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고통만 받는다. 그래서 교사와 설교자에 대한 관심은 교회 안에 넘쳐나지만 누구도 부모가 되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녀들은 부모 없이는 성장은 커녕 생존조차 할 수 없다. 우리 교회에는 영적 아비가 또는 영적 자녀가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5-16)
학교에는 선생은 많지만 참 스승이 없어서 아우성이지만, 교회에는 스승은 많지만 아비가 없어서 문제이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은 있지만 아비가 많지 않다고 경고한다. 이는 교회의 피폐함이 좋은 교사나 설교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영적 아비가 없기 때문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유능한 교사이자 설교자이었음에도 성도들에게 아비가 되었던 이유들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로 선생은 학생들에게 헌신적일 수는 있어도, 부모처럼 자녀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사랑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 2:7-8)처럼 바울에게는 성도들이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이었기에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교사와 설교자들이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으며 감동적인 설교를 할 것인가에 최대의 관심을 두는 사이에 성도들은 관심과 사랑에 굶주려 영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
둘째로 선생은 학생들을 집단으로 가르치지만, 부모처럼 자녀 개개인을 양육하지 않는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살전 2:11-12)처럼 바울은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도록 아비가 자녀에게 하듯이 각 사람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였다. 이 시대의 지도자들은 수많은 청중들이 환호하는 설교에 열중하지만, 바울은 각 개인들에게 아비로 다가가서 타이르고 격려하고 보호하였다.
셋째로 선생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맡은 책무만 다하면 되지만, 부모는 자녀가 온전히 성장하도록 해산하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그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교역자들은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잘하는 좋은 교인(?)이면 흡족하지만, 성경의 목표인 각 성도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려면 해산의 고통이 계속 요구된다.
영적 아비인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딤전 1:2),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딛 1:4), 그리고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몬 1:10) 외에도 수많은 영적 자녀들을 위해 해산의 고통을 감수했다. 그러했기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21-22)처럼 모두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을 때, 자식이 아비를 섬기듯이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는 영적 자녀가 되었다.
한 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어려움과 고통은 여러 명의 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사의 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 교사나 설교자는 멋지게도 보이고 남들에게 존경도 받지만, 부모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고통만 받는다. 그래서 교사와 설교자에 대한 관심은 교회 안에 넘쳐나지만 누구도 부모가 되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녀들은 부모 없이는 성장은 커녕 생존조차 할 수 없다. 우리 교회에는 영적 아비가 또는 영적 자녀가 있는가?
- 이전글가장의 권위를 온전히 가르치라. 09.05.27
- 다음글마지막 때에 교회가 해야 할 세 가지 / 차성도 교수 09.04.12
댓글목록

마른곰님의 댓글
마른곰 작성일
부모와 선생님과 왕의 차이!
진정한 스승은 부모다. 부모에게서 사람됨을 배우니까!
사람을 만드는 것은 부모다.
세상에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스승이다.
그럼 왕은? 있기만 해도 든든하다.
영원히 사는 영혼의 건강은 누가 가르치나?
성령의 사람들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