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리하고 정의를 내리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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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의를 내리길 좋아하는 우리들.
*우린 "사랑이 어떤, 어떤 것이다." , "세상은 요지경이다.", "
라고 정의를 내리길 좋아하며, 원하며 그 내린 말이 멋지면 정말 존경할 사람으로 본다.
사랑은 말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말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사랑은 보여 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안 보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되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모르고 다가와서 지나고 나면 사랑이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당신이 우릴 사랑하시는지도 모르셨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사랑스런 자녀를 만드실 목적과 기업을 물려주려고 하셨을지 모른다. 세월이 가면서 더욱 분노도 생기고, 질투도 생기고, 주고 싶은 마음도 생기며, 눈물도 흘리셨던 것일 수도 있지 않으셨을까?
확률, 역학, 별자리, 혈액형, 성격 테스트 등 이런 모든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것인데, 과연 이것을 정리한 사람은 사랑은 해 봤을까?
가난한 사람들의 고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을 말하고, 거리에 몸을 파는 여인들의 설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마치 경험한 듯 동정하고, 부귀영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마치 많이 누려본 것처럼 말하며 부자들을 경멸하는 행위, 자신이 발명한 것이 아닌데도 자신 있게 가르치는 전공교수, 먹어 보지도 않았으면서도 맛있다고 말하는 장사꾼, 세상 경험이 적으면서도 마치 다 아는 것 같이 성도를 무시하며 가르치려고만 하며 설교하는 초년 목회자!
우리의 삶은, 내 삶 자체에서 굳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려하지 않아도 내 인생은 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길 바랍니다.
누군가 책을 쓰고, 좋은 말을 하면 동감하면서 공감하는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냉철하시군요!" 그런데 아이러니는 바로 이 말이다. 글쓴이가 잘 썼는지 냉철한지를 누가 평가한 것인가? 바로 나이다.
내가 그를 평가한 것이다. 평가는 보통 상대 보다 높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를 알아 본 것이다. 고로 나는 상대 보다 높다? ^^
고로 나는 평가하기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드러나게 된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면서 그를 높인 것이다.
바로 내가.....
우리는 이 부분에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글쓴이의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사람은 감사를 표현한다. 왜냐하면 잊고 지낸 삶을 뒤 돌아 보게 했으니까! 그리고 글 읽는 사람으로 인해 글 쓰는 재미와 사명을 받은 사람은 글쓴이이다.
결국 상부상조한다. 책을 쓴 이와 읽은 이가 모두 하나이다.
공감을 하니까!
한 사람은 삶을 드러내는데 시간을 사용했고, 한 사람은 삶 자체에 시간을 사용했다. 둘 다 멋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난 이제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조금의 차이를 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책을 쓰거나 가르치는 자 보다 배우고 삶을 누리는 자가 우선이란 것을! 알았다.
자녀를 잘 되게 하려고 좋은 교사를 찾듯이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된다.
좋은 학생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 학교들과 학원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느새,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들의 학교나 단체, 건물과 명예에만 신경을 쓰고 잘 가르치겠다는 마음 보다 명문을 고수하기 위해 명문학생을 찾는 시대가 되었으니 거꾸로 세상 아니겠는가?
물론 잘하는 학교도 교회도 학원도 있다. 그러나 몇몇의 대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수 없이 많은 정보가 있다 해도 그것이 나의 근본을 바꾸지는 못한다.
수 없이 많은 물질이 있어도 그것이 나를 영원히 살게 할 수는 없다.
수 없이 많은 인간관계를 구성해도 먹을 것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인생!
흙에 관계된 것을 나누고 먹으며 일해 갈 때에 진정한 인생의 누리는 삶의 풍요로움이 생긴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은 다 모르고 있는 사람이며,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단 한 가지라도 아는 사람이기에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태어나기도 전에 흙으로 돌려보내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영생이 목적이셨기에 우리의 죄로 인한 안타까움을 구원이란 희생과 회개를 통한 영생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
우리가 흙의 모습으로 진실 하게 살 때에, 그리고 세상의 정욕을 버리고 죽을 때, 우리의 위선과 드러냄의 끝이 될 것이며 그 때가 바로 영생인 것이다.
비록 우리가 몸을 입고 있어도 영혼에 대하여 알아가고, 새 옷을 입으며 영생하는 것이다.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하나님의 자녀가 우선이다.
사람에게 보이거나 인정받기 위하여, 혹은 돈 벌 목적으로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확률이나 말씀을 보지 말고, 그분의 사랑의 마음을 알기 위하고 배우기 위하여 성령을 간구하고 깊은 주님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 사랑으로 나의 기회를 삼지 말길 바랍니다.
(롬7: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롬7: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히12: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계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 하는 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파는 가증한 자들이 있다면, 잠시 있다가 썩을 것을 위해 투자하지 말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기도하며, 남은 생을 복되게 살아갑시다.
*우린 "사랑이 어떤, 어떤 것이다." , "세상은 요지경이다.", "
라고 정의를 내리길 좋아하며, 원하며 그 내린 말이 멋지면 정말 존경할 사람으로 본다.
사랑은 말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말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사랑은 보여 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안 보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되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모르고 다가와서 지나고 나면 사랑이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당신이 우릴 사랑하시는지도 모르셨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사랑스런 자녀를 만드실 목적과 기업을 물려주려고 하셨을지 모른다. 세월이 가면서 더욱 분노도 생기고, 질투도 생기고, 주고 싶은 마음도 생기며, 눈물도 흘리셨던 것일 수도 있지 않으셨을까?
확률, 역학, 별자리, 혈액형, 성격 테스트 등 이런 모든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것인데, 과연 이것을 정리한 사람은 사랑은 해 봤을까?
가난한 사람들의 고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을 말하고, 거리에 몸을 파는 여인들의 설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마치 경험한 듯 동정하고, 부귀영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마치 많이 누려본 것처럼 말하며 부자들을 경멸하는 행위, 자신이 발명한 것이 아닌데도 자신 있게 가르치는 전공교수, 먹어 보지도 않았으면서도 맛있다고 말하는 장사꾼, 세상 경험이 적으면서도 마치 다 아는 것 같이 성도를 무시하며 가르치려고만 하며 설교하는 초년 목회자!
우리의 삶은, 내 삶 자체에서 굳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려하지 않아도 내 인생은 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길 바랍니다.
누군가 책을 쓰고, 좋은 말을 하면 동감하면서 공감하는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냉철하시군요!" 그런데 아이러니는 바로 이 말이다. 글쓴이가 잘 썼는지 냉철한지를 누가 평가한 것인가? 바로 나이다.
내가 그를 평가한 것이다. 평가는 보통 상대 보다 높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를 알아 본 것이다. 고로 나는 상대 보다 높다? ^^
고로 나는 평가하기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드러나게 된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면서 그를 높인 것이다.
바로 내가.....
우리는 이 부분에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글쓴이의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사람은 감사를 표현한다. 왜냐하면 잊고 지낸 삶을 뒤 돌아 보게 했으니까! 그리고 글 읽는 사람으로 인해 글 쓰는 재미와 사명을 받은 사람은 글쓴이이다.
결국 상부상조한다. 책을 쓴 이와 읽은 이가 모두 하나이다.
공감을 하니까!
한 사람은 삶을 드러내는데 시간을 사용했고, 한 사람은 삶 자체에 시간을 사용했다. 둘 다 멋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난 이제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조금의 차이를 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책을 쓰거나 가르치는 자 보다 배우고 삶을 누리는 자가 우선이란 것을! 알았다.
자녀를 잘 되게 하려고 좋은 교사를 찾듯이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된다.
좋은 학생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 학교들과 학원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느새,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들의 학교나 단체, 건물과 명예에만 신경을 쓰고 잘 가르치겠다는 마음 보다 명문을 고수하기 위해 명문학생을 찾는 시대가 되었으니 거꾸로 세상 아니겠는가?
물론 잘하는 학교도 교회도 학원도 있다. 그러나 몇몇의 대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수 없이 많은 정보가 있다 해도 그것이 나의 근본을 바꾸지는 못한다.
수 없이 많은 물질이 있어도 그것이 나를 영원히 살게 할 수는 없다.
수 없이 많은 인간관계를 구성해도 먹을 것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인생!
흙에 관계된 것을 나누고 먹으며 일해 갈 때에 진정한 인생의 누리는 삶의 풍요로움이 생긴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은 다 모르고 있는 사람이며,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단 한 가지라도 아는 사람이기에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태어나기도 전에 흙으로 돌려보내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영생이 목적이셨기에 우리의 죄로 인한 안타까움을 구원이란 희생과 회개를 통한 영생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
우리가 흙의 모습으로 진실 하게 살 때에, 그리고 세상의 정욕을 버리고 죽을 때, 우리의 위선과 드러냄의 끝이 될 것이며 그 때가 바로 영생인 것이다.
비록 우리가 몸을 입고 있어도 영혼에 대하여 알아가고, 새 옷을 입으며 영생하는 것이다.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하나님의 자녀가 우선이다.
사람에게 보이거나 인정받기 위하여, 혹은 돈 벌 목적으로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확률이나 말씀을 보지 말고, 그분의 사랑의 마음을 알기 위하고 배우기 위하여 성령을 간구하고 깊은 주님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 사랑으로 나의 기회를 삼지 말길 바랍니다.
(롬7: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롬7: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히12: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계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 하는 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파는 가증한 자들이 있다면, 잠시 있다가 썩을 것을 위해 투자하지 말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기도하며, 남은 생을 복되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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