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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상처/삼상 18: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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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1-02-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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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은 이런경우가 없었습니까?
나 자신도 이해가 안되는 생각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나도 힘들고 내 주변사람들도 힘들게 했던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심리학자들이 사람의 행동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행동이 개인의 성격 혹은 개인의 기질이 달라서 그렇게 행동을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일을 연구한 사람들은 이런 문제는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때문이 아니라 지난날의 어떤 잊지못할 상처 때문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생각으로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도 받고 인정도 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했을 때 상처가 남습니다.
-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 열심을 다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로 끝났을 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 이유도 없이 남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짓밟혔다고 생각이 들 때 우리 마음속에는 상처가 남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처가 그냥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내 습관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그 상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성격의 일부가 되었고 인격의 일부가 되어서 남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사울왕은 과거에는 매우 인격적이었고 예의 바른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삼상9장 2절을 보면 ‘그를 준수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뿐만아니라 21절에서는 사무엘앞에 아주 겸손한 모습으로 서있는 사울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선택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준수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울이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상처로 인해 결국에는 그의 인생이 뜻하지 않는바로 가게 되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어떤지 한번 보십시다.
사울은 왕이 된 이후에 전쟁을 할때마다 승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늘 전쟁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레셋과의 전쟁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는 맹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도저히 싸워 이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늘 전교 1등하던 학생이 갑자기 2,3등만 해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다윗이라는 어린 목동이 나타나서 골리앗을 그것도 물매돌 몇개로 물리치고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실패할 줄 알았던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이스라엘 온 백성들은 사울을 환영하며 찬양을 합니다.

6절을 보십시다.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여인들로 표현되어 있었지만 모든 백성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다윗과 이스라엘 병사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보면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뛰놀며 환영했다고 합니다.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그러니까 노래하며 춤추며 뛰면서 악기를 가지고 온 몸으로 즐기면서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7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십시다.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사울왕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사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6절을 보면 왕 사울을 환영하는 자리였다고 말합니다.
6절입니다.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그런데 왕인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하니 사울왕의 기분이 좋을리가 있었겠습니까?
심지어 사울은 ‘불쾌하고 노하였다’고 말합니다.
8절입니다.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여기서 사울이 ‘불쾌하였다’는 것은 ‘감정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감정이 상하면 감정을 상하게 한사람이 이유없이 미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꼭 꼬투리를 잡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아무 상관없는 행동을 해도 그 사람이 밉게 보이고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울왕이 다윗을 보고 이렇게 감정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또 8절 말씀을 보면 ‘심히 노하였다’고 말합니다. ‘화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화를 내는 것이 꼭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화나 분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감정의 선물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화도 필요하고 분노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노를 내어야 할 사람에게 분노를 내고 분노를 내야할 상황에서 분노을 내야하는데 분노를 내지 않을 사람이나 내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분노를 내면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울왕은 분노를 내야할 상황도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사울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게 된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다투었다고 가정을 하십시다. 그런데 풀면되는데 풀 수가 없을 정도로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고통스럽습니다. 심지어 무엇인가 폭팔하고 싶은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라고 생각하십시다. 그때 마음에 무엇이 남습니까? '상처‘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속에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이날 이후로 상처가 생겼고 결국에는 다윗을 주목하게 됩니다.

9절말씀을 보십시다.
‘그날 후로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여기서 '주목하다'라는 말은 = ‘아완’이란 단업니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의심에 찬 눈으로 관찰하다'란 의미입니다. 즉 사울이 다윗을 경계하고 배타하였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하면 다윗은 그날 이후 시기와 질투의 눈동자로 다윗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이유없이 그 사람이 미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만 미운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가까이 하는 사람조차도 밉게 느껴집니다. 보기도 싫고 상대하기도 싫어집니다.
오늘 사울이 마음에 상처가 생기니까 다윗에 보기도 싫고 밉고 상대하기가 싫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일대학의 심리학 교수 살로비 박사는 미국 범죄의20%가 질투 때문에 생긴 행위라고 말합니다. 또다른 심리학자 화이트 박사에 의하면 이혼한 부부의 30%가 질투 때문에 갈라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와 질투가 언제 나타납니까?
상처를 받았을 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시기심이 나타나고 질투가 생기면 모든 이성이 마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옳고 그름이 분별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시기심과 질투때문이었습니다.
쌍둥이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했던 이유도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고 했던 이유도 시기와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시기와 질투심이 결국 악에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다보면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공동번역에서는 ‘악령이 내리덮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악한 영들이 그 상처를 통해 그 사람을 계속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섭섭한 것만 생각나게 만들고 그래서 남을 원망하게 만듭니다.
자기가 실패한 것만 떠오르게 만듭니다.외로운 것만 생각나게 만듭니다.
나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자꾸 생각나게 합니다.

사울왕에게 악신이 임하니까 자기를 대신해서 나라를 구하고 자기를 지켜줬던 다윗을 죽여야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의 이러한 모습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어느날 아주작은일이 마음에 상처로 남게 됬고 그것이 시기와 질투가 되고 결국 사탄의 조정을 받아 매사가 부정적이고 원망 비판으로 나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상처! 치유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 사울의 상처에 대해서 성경은 몇 가지로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사울이 받았던 상처의 원인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상처가 있다면 이런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해야 하는지 함께 도전받고 문제를 해결받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사울에게 다가왔던 상처의 원인은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표현은 사울이 먼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사울이 먼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이상 사울과 함께 계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떠나신 것입니다.

-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을 취하였습니다.
-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사무엘이 늦게 도착하니까 자기가 제사장을 대신하여 제사를 지내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늘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가 아니라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 판단하며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사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결국 그를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다.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4절입니다.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상처로 말할 것 같으면 다윗이 사울보다 훨씬 더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할 장인 사울로 부터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 장인인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까 10년이 넘는 세월을 피하여 숨어 지내야만 했습니다.
-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 믿었던 신복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상처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상처에 매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처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에 매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늘 자기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 속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 여러분!
혹시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는 상처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시는 분이 이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까?
나도 모르게 남에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상처를 주는 분은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온 결과라는 것을 먼저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도록 삶의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저는 우리 아름다운 덕소가족들이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심으로 상처로부터 치유는 기적의 축복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사울이 상처를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다.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이 말이 비위에 거슬려 몹시 화를 내어 투덜거렸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죽인 공을 돌리고 나에게는 고작 수천 명을 죽인 공밖에 돌리지 않으니 왕의 자리마저 그에게 돌아 가겠구나."

사울은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 내가 어떤 자리에 앉느냐? 그것이 그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울은 자기보다 더 존귀함을 받는 다윗이 나타나니까 불안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걸어가면서 제자들이 서로 다투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다퉜습니까? 누가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 자리에 앉느냐? 즉 누가 크냐? 높으냐? 이것 때문에 다투었습니다. 바로 자리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땅에 오셨고 늘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적을 행하셨고 하나님 뜻에 따라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셨기 때문에 상처를 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에도 상처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배신에도 상처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리에 연연할 때에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여기서 ‘자리’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 즉 ‘정욕’을 말합니다.
그래서 야고보기자는 약4: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말미암아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욕망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다투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자녀가 공부를 안하거나 못하면 기분이 나쁩니까?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왜 기분이 상하고 상처를 받습니까?
사실 자녀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욕심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다보면 가난할 때도 있고 부유할때도 있을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 처할때도 있을것이고 높은 자리 남이 알아주는 자리에 있을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자리가 어떤 자리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그 하나님의 뜻만이 이뤄주기를 기도하고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상처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상처가 내 인생의 주인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덕소가족 여러분!
하나님뜻보다 자리에 관심을 가지지 마십니다.
늘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의 우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울이 상처를 받았던 이유는 ‘자신의 가치와 평가의 기준을 사람의 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다.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이 말에 사울이 불쾌하여 심히 노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이 왕의 자리는 누가 세워주는 것입니까? 왕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9장과 1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왕으로 사울을 세우셨습니다. 무명의 한 소년, 이름없는 산골의 소년인 사울을 지명하여서 네가 왕이 될 것이라고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의 노래에 듣고 무시하면 되는데 그 노래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그들의 노래에 따라서 가치가 높아지고 낮아질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짧은 목회를 했지만 저도 말 때문에 상처를 자주 받곤 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이렇다’ ‘저렇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릴 때면 예전에는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말한사람들 보기도 싫은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상처를 많이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로 기름부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교우들을 보면 ‘아직 어리고 신앙이 부족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라고 잊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덕소 가족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어떤 존재입니까?
세상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피흘려 그 소중한 피값을 대신해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조중한 존재 아닙니까?
이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천하보다 존귀한 존재 아닙니까?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귀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토록 우리는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존재 가치를 환경에 비교하고 사람의 말에 두기 때문에 상처를 받고
괴로워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믿음과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존귀한 자라고 말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고 살아 갑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사울왕도 분명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의 원인이 무엇때문이었습니까?
① 하나님으로 부터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의 뜻보다는 욕망의 자리 정욕의 자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 자신의 가치와 평가의 기준을 환경, 사람의 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아름다운 덕소가족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을 어느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여기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속히 상처에서 회복되시고 늘 감사와 찬양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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