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받은 자가 주의할 일 /고전6: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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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받은 자가 주의할 일 /고전6:15-20
에스더서에 보면, 에스더는 부모도 없는 고아로 사촌 오빠 밑에서 외롭게 자라는 처량한 아가씨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에 들어서 왕비가 되자 그 나라 First lady, 첫째로 귀한 여자가 됩니다.
시골 처녀로 살 때에는 그냥 살았지만 왕비가 된 다음에는 왕을 모시는 몸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살아야 합니다. 자주 목욕하고 향유를 뿌리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또 왕비답게 걸음을 걷고 그리고 말도 왕비처럼 고귀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스더 왕비는 조심해서 살아갑니다. 왕의 마음에 들어 구하는 것을 다 받습니다. 에스더의 민족 이스라엘 백성까지 에스더 때문에 큰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된 다음에도 시골 처녀처럼 코를 풀고 껌을 씹으면서 함부로 살았으면 아마 왕에게 쫓겨났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복이 있지만 성령의 사람들은 에스더보다 천 배 만 배 더 귀한 사람들입니다. 왜입니까? 주님을 모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신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한 몸이란 부부에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부모를 떠나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여자와 남자는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주와 합한 자는 한 영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으면 주님과 하나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부가 같이 먹듯이 같이 마시듯이,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십니다.
본문 15절에도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또 19절에도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에 들어서 왕비가 된 에스더가 귀한 여자가 되고 귀하게 살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과 한 몸이 되어서 귀하게 되었으니 이제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왕비가 되면 그 날부터 왕비로 살아야 됩니다. 전에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서울 한 병원 원장님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아가씨가 그 집 아들, 서울 의대를 나온 그 집 아들의 마음에 들어서 그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이렇게 부탁했답니다. “얘야, 너는 이제 가정부가 아니다. 병원 원장님의 며느리가 되었고 의사의 부인이 되었으니 병원 원장의 며느리답게 의사의 부인답게 살아다오.”초등학교밖에 다니지 않은 가정부가 어떻게 병원 원장의 며느리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여 중학교 과정을 거치고,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고, 그리고 간호대학에 들어가서 대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지금 병원 원장 부인으로서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모신 다음에도 옛날하고 똑같이 살면 손해가 많습니다.
쫓겨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주신 성령을 거두어 가지 않으시지만 탄식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조심해서 살아야 됩니다. 언제나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신 것을, 또 내 몸은 주님의 몸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전에 들어오면 누구나 조심합니다. 누가 성전에서 술을 마십니까? 도박을 합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성전에 들어오면 조심하는데 말입니다. 우리 몸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항상 거하시는 성전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잊으면 안 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신 것을 잊지 않는 일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1997년인가 98년에 미국 시카고 제일교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제 일생에 몇 번밖에 들을 수 없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잭 하일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아마 목사님의 연세가 지금 일흔 셋일 것입니다.
일흔이 넘은 목사님이 낮 예배를 드리는데도 마이크를 잡고 왔다 갔다 하시면서 한 시간 동안 설교를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아주 큰 교회 중의 한 교회인데 교인들이 완전히 말씀에 빠졌습니다. 말씀에 흠뻑 취했습니다. 일흔이 넘은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얼마나 큰 능력이 흐르는지, 교인들이 흥분해서 설교를 듣다가 박수를 치고 어떤 교인은 “할렐루야! 아멘!”하면서 막 뛰었습니다.
저는 미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온전한 사람, 더구나 인텔리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Amen! That's right(옳다)!”하면서 막 뛰었습니다. 신선한 설교를 하시는 잭 하일스 목사님을 위해 제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합니다. 너무 귀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성령에 대해서 몰랐는데, 그렇게 목회를 하게 된 하나의 분기점, 계기가 있습니다. 방송 설교를 하면서 원고에 준비한 대로
“여러분, 성령님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무슨 옷을 입었는지를 성령님은 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성령님은 아십니다. 여러분이 하는 말을 성령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라고
설교를 하는데 갑자기 몸이 떨리면서 두 뺨에 눈물이 막 흘러내렸습니다. 방송 설교를 마친 다음에 거기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성령님, 나를 용서해 주세요. 내가 교리적으로 성령님을 알고 신학적으로 성령님을 알아 교인들에게 성령님을 가르쳤지만 한번도 인격적으로 모신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아시고,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를 아시고, 내가 하는 말을 다 아시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다 아시는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 때부터 그분은 언제나 성령님과 대화했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요?”“어떤 넥타이를 맬까요?”“구두는 새 것을 신을까요? 헌 것을 신을까요?”
그러면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야, 그 집은 가난한 집이니 헌 구두를 신고 가라.” “그 집은 깔끔한 집이니 새 구두를 신고 가라.”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성령님과 대화했습니다. 그 때부터 목회가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전체를 구원하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 300대의 버스가 시카고 전역을 돌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스쿨 버스를 다 활용해서 시카고 전역을 돌게 하고 교회 건물이 부족하니 교사들이 그 버스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시카고에서 영혼 구원의 큰 역사를 이루신 분이 잭 하일스 목사님입니다. 그분이 성령에 대해 몰랐을 때는 영혼 구원의 역사를 이루지 못하고 조그만 교회에서 목회했습니다. 성령님을 알고부터 그렇게 부흥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대구 지역의 한 목사님이 노회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 역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여관에 안경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지금도 안경 하나를 사려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때 안경을 사려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저도 안경을 바꿀 때마다 몇 달간 고민하다가 구입하곤 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7년 만에 안경을 바꾸었는데 아시겠습니까? 전에 한 교인이 제가 끼고 있는 안경이 너무 구식이니 바꾸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는데 얼마 전에 또 어느 교수님이 안경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TV에 나올 때 보니 안경이 너무 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이 뻔한데, 몇 만 원이나 십만 원씩 주고 안경을 새로 사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옛날에 가난한 목사님이 안경을 사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여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내 안경. 내 방에 내 안경.”아주머니가 방으로 뛰어갔습니다.“손님, 없어요.”“있어요. 있어요.”“없는데요. 손님이 들어와서 찾아 보세요.”목사님이 방에 들어가서 아무리 찾아 보아도 없었습니다. 그때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아니, 손님. 손님 눈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 목사님이 안경을 끼고 안경을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웃지만 우리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한 새댁이 하루는 냉장고 문을 열고는 무엇 때문에 열었는지 몰랐답니다. 저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연필을 손에 들고서 연필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안경을 끼고 안경을 찾는 목사님처럼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는데 성령을 받으려고 여기 저기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태복음 24장 26절)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이것을 알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알고 살면서 그 다음으로 언제나 성령님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지금 저의 집에 와 계십니다. 그런데 어제 설교 준비가 바빠서 밤 늦게 집으로 갔습니다. 점심도 어머니와 함께 먹지 못했고 저녁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내가 고향에 있으면 전화 통화라도 하는데 너의 집에 오니 전화도 하지 않고 얼굴도 못 보겠네.”하시며 섭섭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미국에 있는 동생, 어머니의 둘째 아들이 팩스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그것을 읽으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어머니가 계시는 것을 알고 편지도 보내고 전화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저녁에도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새벽에 교회에 와서 아직 집에 가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섭섭해 하실 것 같아 6시쯤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녁 먹으러 가지 못하겠습니다.”“알았다. 밥을 괜히 했구나.”라고 하시더니 아내를 통해 도시락을 싸 보내셨습니다.
어쨌든 어머니가 계시고 아버지가 계시면 자꾸 인사를 드려야 어른이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집에 손님이 왔으면 계속 관심을 갖고 대접해 드려야 합니다. “신문이 필요하세요? 차 한 잔 드시겠습니까?”하고 계속 관심을 갖고 베풀어야 손님이 그 집에 있을 수 있습니다.
손님을 손님 방에 계시게 하고는 방문을 닫아 놓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손님이 견디지 못합니다. 성령님을 모셔 놓고, “성령을 주십시오. 충만히 주십시오.”해 놓고는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성령님을 뒷방에 가두어 버리고 제멋대로 살면 되겠습니까?
그러다 또 주일에 “주여, 성령을 주십시오.”하면 성령께서 답답해 하실 것입니다. 늘 성령님과 대화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에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한 목사님이 쓴 책이 있습니다.
‘Good morning, 성령님’이라는 책인데, 그 책을 쓰신 분에게 얼마나 큰 역사가 나타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신비로움을 느낄 것입니다. 왜입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저같이 못난 목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무식하고 못난 목사이지만, 그러나 제가 성령에 의지하니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해도 저 혼자 하면 여러분은 교회에 왔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변호사 한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도 나에게 득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교회를 돕는 변호사가 계시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습니까? 우리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습니까? 그런데 최고의 변호사는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영어로는 counselor, 상담자입니다. 직장 생활할 때도 성령의 도움을 받고 공부할 때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여러분, 똑똑한 학생은 왜 공부를 잘합니까? 중요한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듣다가 ‘이것은 시험에 나오겠다.’하고 체크해 놓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것이 나옵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모르고 엉뚱한 것을 공부합니다. 그러니 시험칠 때 공부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시험 치기 직전 쉬는 시간에 공부한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꼭 나올 것만 살펴봅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시험 치기 전에 그냥 있습니다. 그 많은 것 중에서 무엇이 나올지를 모르니까 살펴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똑똑한 아이도 공부할 것이 보이고 공부할 것을 아는데, 하물며 성령님께서는 얼마나 멀리 보시고 똑똑하게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사업가를 만나 보세요. 성공하는 사업가는 훤하게 보인답니다.
이 물건을 사서 이렇게 하면 돈을 벌고, 또 저렇게 하면 돈을 벌고, 돈이 훤하게 보인답니다. 여러분도 돈이 훤하게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성공한 사람보다 못하시겠습니까? 성령님의 눈을 여러분이 도움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내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면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까?’에 대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남편을 잘 알아서 사랑 받게 만드십니다. 남편이 피곤해서 집으로 들어오는데 아내가 “이제 오세요?”하고 계속 TV만 본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아이고, 내가 이런 집구석에 들어와야만 하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남편이 피곤하게 회사 일을 하고 돌아올 때 “여보, 힘들었지요?”하면서 양말을 벗어 놓으면 치우고, 시중을 들면 “그래도 내 집이 제일 좋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모르는 소리하지 마세요. 맞벌이인데요. 저도 피곤해요.”하는 아내가 있을지 몰라도, 그래도 아내는 아내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물어 보세요. 매사에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성공하게 됩니다. 마귀의 말을 듣고 점쟁이의 말을 들으면 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점쟁이의 말을 듣고 자기 재산을 아내에게 다 넘겨 주었습니다.
“당신 재산을 당신이 갖고 있으면 망하니 아내에게 넘겨 주시오.”하는 점쟁이 말을 듣고 재혼한 아내에게 전 재산을 넘겨 주었습니다. 이 아내가 남편의 재산이 전처의 아들들에게 갈 것이라 생각하고 점쟁이에게 많은 돈을 주고 그렇게 시켰던 것입니다.
점쟁이가 굿을 하면서 “이 집에는 우환이 온다. 재산 때문에 우환이 온다. 재산을 다 잃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됩니까?”하고 물으니 “재산을 부인 이름으로 바꾸어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아내에게 다 넘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아내가 남편을 멸시하고 짓눌렀습니다. 전 처제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하게 하고, 친척 집에도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아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마귀의 말, 점쟁이의 말을 들으면 망해도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승리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을 모신 사람은 성령님을 화나시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와 합한 자는 주와 하나이듯이 창기와 합하면 창기가 되는데 창기 일을 하겠느냐, 창기를 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죄가 성령을 탄식케 하십니다. 모든 죄가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우리 교인의 능력을 저하시켜서 힘 있는 사람이 꺼벙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죄는 몸 밖에 있습니다.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남을 허는 죄는 몸 밖에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죄는 자기 몸에게 짓는 죄라고 18절에 말씀하십니다. 교회당, 예배당에서 죄를 짓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9절에서 20절)
할렐루야! 에스더가 왕비가 된 다음에도 제비족을 만나고 건달을 만나고 이 남자를 만나고 저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왕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시이저의 부인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있을 때 시이저가 물었습니다. “부인, 무슨 말이오?”“아, 그것은 소문일뿐입니다.”“시이저의 부인은 소문만 나빠도 안 돼요.”하고는 쫓아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존귀한 성령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음행을 하면 몸으로 죄를 짓는 것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견디지 못하십니다. 요즈음에 애인도 많다고 하고 온갖 말도 많지만 그것은 세상의 유혹이고, 우리를 망하게 하고 약하게 하는, 축복을 잃어버리게 하는, 축복의 장마비를 멈추게 하는 마귀의 술책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대로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잘 압니다. 그래서 명예에 약한 고라에게는 명예로 시험하고, 이성에 약한 삼손에게는 이성으로 시험하고, 돈에 약한 아간에게는 금으로 시험했습니다. 위선자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는 속임으로 시험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모든 궤계를 막아야 하지만 또 음행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음행을 피하라.”마귀는 대적해야 하고, 음행은 피해야 됩니다. 우리가 마귀에게는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해야지, 마귀, 사탄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면 약자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음행은 피해야 합니다.
선악과가 있는 곳에는 가지 않아야 되는 것처럼, 성적인 유혹에 빠질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약합니다. “나는 그 곳에 가도 까딱없어.”아닙니다. 사람은 약합니다. 음행을 하게 되는 곳에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소도 한 번 빠진 함정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데, 우리 중에는 한 달 전에 빠진 곳에 또 가고, 작년에 빠진 곳에 또 가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영원히 그렇게 살다가 주님 앞에 부끄럽게 가겠습니까?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음행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음행하면 축복도 끊깁니다. 내가 받은 축복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함으로 기뻐해야 됩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7, 80년대의 범죄형은 몰래형이었답니다.
집을 터는 사람들이 어두운 밤에 복면을 쓰고 들어가서 몰래 털어갔답니다. 지금은 몰래형은 거의 없고 대게, 정면 돌충형인가 무슨 형이 있던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낮에 들어간답니다. 도둑들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 시간이 오전 9시부터 12시랍니다.
그 다음은 오후 12시에서 3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랍니다. 밤에 남의 집에 들어가는 도둑은 거의 없답니다. 특별히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전체 범죄의 7%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도둑들이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일에는 쉰답니다. 보안 연구소에서 범죄 자료를 조사해 보니, 범죄가 일어나는 것이 주일에는 7%이고, 주 중에는 93%였습니다. 현대의 도둑들은 안식할 줄을 아나 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손님이 온 집이랍니다. 손님이 왔다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갈 때 문을 잠그지 않고 잠깐 손님을 배웅하러 간 사이에 들어가서 훔쳐 간답니다. 손님을 배웅할 때 문을 잠그고 가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 때문에 도둑 맞지 않을 집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 놓고 청소할 때 창문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사이에 들어가기도 한답니다. 이것이 제일 높은 확률이랍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들어가는 방법은 베란다에 있는 가스 배선을 타고 들어가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가족끼리 약속을 해 놓고 열쇠를 소화기통이나 우유통에 숨겨 두는데, 도둑들이 이것을 다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숨겨 둔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훔쳐 간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부잣집은 도둑을 막기 위해 담장을 높이고 담장 위에 깨진 병을 꽂아 두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진주, 최고의 진주인 예수님의 성령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죄가 들어오면 초라하게 됩니다. 진주가 술에 들어가면 녹아버립니다. 진주같이 빛나는 사람도 죄를 지으면 녹아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마치 우리 몸에 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심하듯이 조심해야 됩니다.
따라합시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몸으로 범죄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새벽에 어떤 집사님의 기도가 들렸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신데 새벽마다 우리 교회에 오셔서 기도하시는 분입니다.“하나님, 우리 손녀딸이 너무 뚱뚱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안 좋으시지요?
제가 보기에도 답답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답답한데 우리 손녀딸이 너무 뚱뚱하지 않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몸을 날씬하게 해 주세요.”정말 실질적인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음식도 조심하고 운동도 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뚱뚱해서 하나님을 곤란하게 해 드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번에 프랑스에서 너무 많이 걸어다녀서 몸이 말라 허리끈이 늘어져 허리끈을 조금 잘랐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도 음식을 조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몸이 말랐다고 비행기에서 주는 대로 다 먹었습니다.
아내가 남긴 것도 다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빠졌던 살이 다시 다 쪘습니다. 음식도 조심하고 운동도 하고 때로는 살과 전쟁도 해서 자기의 표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살과 전쟁도 하자.”
너무 말라서 폐결핵에 걸리면 안 되지만 표준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래서 몸으로도 영광 돌려야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날씬한 몸으로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많이 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몸으로 죄를 지을 때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고 우리가 몸으로 선한 일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비다가 선한 일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 것처럼 우리가 선한 일을 많이 행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특별히 선한 일 중에 가장 선한 일은 영혼 구원, 복음 전도인 줄로 믿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조심해도 때로는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이구, 내가 잘못했네. 내가 남의 험담을 했네.’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목사님들에게 한 마디 헐었습니다. “아무개 목사님은 목사님들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비판하면서 자기는 성자인 것처럼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더라.” 정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나니 성령님께서 ‘야, 너 어찌 그리 허는 말을 하니?’하고 나무라셨습니다. 그래서 ‘아이구, 주여. 잘못했습니다.’하고 회개했습니다.
제가 금년 1월 1일 아침에 ‘저는 덕담만 하겠습니다. 누가 아무리 잘못해도 잘못한 것은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분의 장점만 말할 거예요.’라고 해 놓고는 저도 모르게 은근히 남을 헐었습니다. 제가 참 괴로웠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아! 예쁘다.’하면 되는데, ‘예쁘구나. 다시 보아도 예쁘구나. 아이구, 예쁘구나.’할 수 있습니다. 하지 않아야 될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빨리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야 됩니다.
잉크, 볼펜의 잉크가 손에 묻었을 때 금방 씻으면 없어집니다. 그러나 3,4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씻으려면 고생하게 됩니다. 우리가 실수했다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품어서는 안 될 생각을 품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사가 된 것이 아니라 천당 갈 때까지 그런 일이 가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빨리 회개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이 찬양에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라는 가사가 있는데, 저는 「이따금씩 주저앉고 싶을 때」로 바꾸어 불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또 매일 죄 짓고 회개하고 매일 죄 짓고 회개하면 안 됩니다.
이따금씩 주저앉고 싶을 때 ‘주여!’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어차피 두 얼굴의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기도 드리거나 예배 드릴 때와 세상에 나가서 살 때는 조금 달라집니다.
약간 달라집니다. 우리는 항상 같기를 원하지만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 주님. 약한 저입니다. 용서해 주세요.”하고 일어나서 점점 거룩하게 되어 귀하게 살다가 마지막 세상 끝날 때에 주님의 품에 안기는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에스더는 부모도 없는 고아로 사촌 오빠 밑에서 외롭게 자라는 처량한 아가씨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에 들어서 왕비가 되자 그 나라 First lady, 첫째로 귀한 여자가 됩니다.
시골 처녀로 살 때에는 그냥 살았지만 왕비가 된 다음에는 왕을 모시는 몸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살아야 합니다. 자주 목욕하고 향유를 뿌리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또 왕비답게 걸음을 걷고 그리고 말도 왕비처럼 고귀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스더 왕비는 조심해서 살아갑니다. 왕의 마음에 들어 구하는 것을 다 받습니다. 에스더의 민족 이스라엘 백성까지 에스더 때문에 큰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된 다음에도 시골 처녀처럼 코를 풀고 껌을 씹으면서 함부로 살았으면 아마 왕에게 쫓겨났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복이 있지만 성령의 사람들은 에스더보다 천 배 만 배 더 귀한 사람들입니다. 왜입니까? 주님을 모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신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한 몸이란 부부에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부모를 떠나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여자와 남자는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주와 합한 자는 한 영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으면 주님과 하나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습니다. 할렐루야!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부가 같이 먹듯이 같이 마시듯이,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십니다.
본문 15절에도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또 19절에도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에 들어서 왕비가 된 에스더가 귀한 여자가 되고 귀하게 살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과 한 몸이 되어서 귀하게 되었으니 이제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왕비가 되면 그 날부터 왕비로 살아야 됩니다. 전에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서울 한 병원 원장님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아가씨가 그 집 아들, 서울 의대를 나온 그 집 아들의 마음에 들어서 그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이렇게 부탁했답니다. “얘야, 너는 이제 가정부가 아니다. 병원 원장님의 며느리가 되었고 의사의 부인이 되었으니 병원 원장의 며느리답게 의사의 부인답게 살아다오.”초등학교밖에 다니지 않은 가정부가 어떻게 병원 원장의 며느리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여 중학교 과정을 거치고,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고, 그리고 간호대학에 들어가서 대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지금 병원 원장 부인으로서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모신 다음에도 옛날하고 똑같이 살면 손해가 많습니다.
쫓겨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주신 성령을 거두어 가지 않으시지만 탄식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조심해서 살아야 됩니다. 언제나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신 것을, 또 내 몸은 주님의 몸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전에 들어오면 누구나 조심합니다. 누가 성전에서 술을 마십니까? 도박을 합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성전에 들어오면 조심하는데 말입니다. 우리 몸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항상 거하시는 성전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잊으면 안 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신 것을 잊지 않는 일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1997년인가 98년에 미국 시카고 제일교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제 일생에 몇 번밖에 들을 수 없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잭 하일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아마 목사님의 연세가 지금 일흔 셋일 것입니다.
일흔이 넘은 목사님이 낮 예배를 드리는데도 마이크를 잡고 왔다 갔다 하시면서 한 시간 동안 설교를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아주 큰 교회 중의 한 교회인데 교인들이 완전히 말씀에 빠졌습니다. 말씀에 흠뻑 취했습니다. 일흔이 넘은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얼마나 큰 능력이 흐르는지, 교인들이 흥분해서 설교를 듣다가 박수를 치고 어떤 교인은 “할렐루야! 아멘!”하면서 막 뛰었습니다.
저는 미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온전한 사람, 더구나 인텔리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Amen! That's right(옳다)!”하면서 막 뛰었습니다. 신선한 설교를 하시는 잭 하일스 목사님을 위해 제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합니다. 너무 귀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성령에 대해서 몰랐는데, 그렇게 목회를 하게 된 하나의 분기점, 계기가 있습니다. 방송 설교를 하면서 원고에 준비한 대로
“여러분, 성령님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무슨 옷을 입었는지를 성령님은 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성령님은 아십니다. 여러분이 하는 말을 성령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라고
설교를 하는데 갑자기 몸이 떨리면서 두 뺨에 눈물이 막 흘러내렸습니다. 방송 설교를 마친 다음에 거기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성령님, 나를 용서해 주세요. 내가 교리적으로 성령님을 알고 신학적으로 성령님을 알아 교인들에게 성령님을 가르쳤지만 한번도 인격적으로 모신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아시고,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를 아시고, 내가 하는 말을 다 아시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다 아시는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 때부터 그분은 언제나 성령님과 대화했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요?”“어떤 넥타이를 맬까요?”“구두는 새 것을 신을까요? 헌 것을 신을까요?”
그러면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야, 그 집은 가난한 집이니 헌 구두를 신고 가라.” “그 집은 깔끔한 집이니 새 구두를 신고 가라.”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성령님과 대화했습니다. 그 때부터 목회가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전체를 구원하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 300대의 버스가 시카고 전역을 돌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스쿨 버스를 다 활용해서 시카고 전역을 돌게 하고 교회 건물이 부족하니 교사들이 그 버스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시카고에서 영혼 구원의 큰 역사를 이루신 분이 잭 하일스 목사님입니다. 그분이 성령에 대해 몰랐을 때는 영혼 구원의 역사를 이루지 못하고 조그만 교회에서 목회했습니다. 성령님을 알고부터 그렇게 부흥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대구 지역의 한 목사님이 노회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 역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여관에 안경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지금도 안경 하나를 사려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때 안경을 사려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저도 안경을 바꿀 때마다 몇 달간 고민하다가 구입하곤 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7년 만에 안경을 바꾸었는데 아시겠습니까? 전에 한 교인이 제가 끼고 있는 안경이 너무 구식이니 바꾸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는데 얼마 전에 또 어느 교수님이 안경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TV에 나올 때 보니 안경이 너무 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이 뻔한데, 몇 만 원이나 십만 원씩 주고 안경을 새로 사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옛날에 가난한 목사님이 안경을 사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여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내 안경. 내 방에 내 안경.”아주머니가 방으로 뛰어갔습니다.“손님, 없어요.”“있어요. 있어요.”“없는데요. 손님이 들어와서 찾아 보세요.”목사님이 방에 들어가서 아무리 찾아 보아도 없었습니다. 그때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아니, 손님. 손님 눈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 목사님이 안경을 끼고 안경을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웃지만 우리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한 새댁이 하루는 냉장고 문을 열고는 무엇 때문에 열었는지 몰랐답니다. 저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연필을 손에 들고서 연필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안경을 끼고 안경을 찾는 목사님처럼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는데 성령을 받으려고 여기 저기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태복음 24장 26절)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이것을 알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알고 살면서 그 다음으로 언제나 성령님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지금 저의 집에 와 계십니다. 그런데 어제 설교 준비가 바빠서 밤 늦게 집으로 갔습니다. 점심도 어머니와 함께 먹지 못했고 저녁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내가 고향에 있으면 전화 통화라도 하는데 너의 집에 오니 전화도 하지 않고 얼굴도 못 보겠네.”하시며 섭섭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미국에 있는 동생, 어머니의 둘째 아들이 팩스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그것을 읽으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어머니가 계시는 것을 알고 편지도 보내고 전화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저녁에도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새벽에 교회에 와서 아직 집에 가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섭섭해 하실 것 같아 6시쯤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녁 먹으러 가지 못하겠습니다.”“알았다. 밥을 괜히 했구나.”라고 하시더니 아내를 통해 도시락을 싸 보내셨습니다.
어쨌든 어머니가 계시고 아버지가 계시면 자꾸 인사를 드려야 어른이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집에 손님이 왔으면 계속 관심을 갖고 대접해 드려야 합니다. “신문이 필요하세요? 차 한 잔 드시겠습니까?”하고 계속 관심을 갖고 베풀어야 손님이 그 집에 있을 수 있습니다.
손님을 손님 방에 계시게 하고는 방문을 닫아 놓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손님이 견디지 못합니다. 성령님을 모셔 놓고, “성령을 주십시오. 충만히 주십시오.”해 놓고는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성령님을 뒷방에 가두어 버리고 제멋대로 살면 되겠습니까?
그러다 또 주일에 “주여, 성령을 주십시오.”하면 성령께서 답답해 하실 것입니다. 늘 성령님과 대화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에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한 목사님이 쓴 책이 있습니다.
‘Good morning, 성령님’이라는 책인데, 그 책을 쓰신 분에게 얼마나 큰 역사가 나타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신비로움을 느낄 것입니다. 왜입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저같이 못난 목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무식하고 못난 목사이지만, 그러나 제가 성령에 의지하니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해도 저 혼자 하면 여러분은 교회에 왔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변호사 한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도 나에게 득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교회를 돕는 변호사가 계시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습니까? 우리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습니까? 그런데 최고의 변호사는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영어로는 counselor, 상담자입니다. 직장 생활할 때도 성령의 도움을 받고 공부할 때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여러분, 똑똑한 학생은 왜 공부를 잘합니까? 중요한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듣다가 ‘이것은 시험에 나오겠다.’하고 체크해 놓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것이 나옵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모르고 엉뚱한 것을 공부합니다. 그러니 시험칠 때 공부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시험 치기 직전 쉬는 시간에 공부한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꼭 나올 것만 살펴봅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시험 치기 전에 그냥 있습니다. 그 많은 것 중에서 무엇이 나올지를 모르니까 살펴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똑똑한 아이도 공부할 것이 보이고 공부할 것을 아는데, 하물며 성령님께서는 얼마나 멀리 보시고 똑똑하게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사업가를 만나 보세요. 성공하는 사업가는 훤하게 보인답니다.
이 물건을 사서 이렇게 하면 돈을 벌고, 또 저렇게 하면 돈을 벌고, 돈이 훤하게 보인답니다. 여러분도 돈이 훤하게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성공한 사람보다 못하시겠습니까? 성령님의 눈을 여러분이 도움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내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면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까?’에 대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남편을 잘 알아서 사랑 받게 만드십니다. 남편이 피곤해서 집으로 들어오는데 아내가 “이제 오세요?”하고 계속 TV만 본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아이고, 내가 이런 집구석에 들어와야만 하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남편이 피곤하게 회사 일을 하고 돌아올 때 “여보, 힘들었지요?”하면서 양말을 벗어 놓으면 치우고, 시중을 들면 “그래도 내 집이 제일 좋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모르는 소리하지 마세요. 맞벌이인데요. 저도 피곤해요.”하는 아내가 있을지 몰라도, 그래도 아내는 아내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물어 보세요. 매사에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성공하게 됩니다. 마귀의 말을 듣고 점쟁이의 말을 들으면 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점쟁이의 말을 듣고 자기 재산을 아내에게 다 넘겨 주었습니다.
“당신 재산을 당신이 갖고 있으면 망하니 아내에게 넘겨 주시오.”하는 점쟁이 말을 듣고 재혼한 아내에게 전 재산을 넘겨 주었습니다. 이 아내가 남편의 재산이 전처의 아들들에게 갈 것이라 생각하고 점쟁이에게 많은 돈을 주고 그렇게 시켰던 것입니다.
점쟁이가 굿을 하면서 “이 집에는 우환이 온다. 재산 때문에 우환이 온다. 재산을 다 잃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됩니까?”하고 물으니 “재산을 부인 이름으로 바꾸어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아내에게 다 넘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아내가 남편을 멸시하고 짓눌렀습니다. 전 처제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하게 하고, 친척 집에도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아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마귀의 말, 점쟁이의 말을 들으면 망해도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승리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을 모신 사람은 성령님을 화나시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와 합한 자는 주와 하나이듯이 창기와 합하면 창기가 되는데 창기 일을 하겠느냐, 창기를 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죄가 성령을 탄식케 하십니다. 모든 죄가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우리 교인의 능력을 저하시켜서 힘 있는 사람이 꺼벙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죄는 몸 밖에 있습니다.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남을 허는 죄는 몸 밖에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죄는 자기 몸에게 짓는 죄라고 18절에 말씀하십니다. 교회당, 예배당에서 죄를 짓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9절에서 20절)
할렐루야! 에스더가 왕비가 된 다음에도 제비족을 만나고 건달을 만나고 이 남자를 만나고 저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왕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시이저의 부인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있을 때 시이저가 물었습니다. “부인, 무슨 말이오?”“아, 그것은 소문일뿐입니다.”“시이저의 부인은 소문만 나빠도 안 돼요.”하고는 쫓아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존귀한 성령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음행을 하면 몸으로 죄를 짓는 것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견디지 못하십니다. 요즈음에 애인도 많다고 하고 온갖 말도 많지만 그것은 세상의 유혹이고, 우리를 망하게 하고 약하게 하는, 축복을 잃어버리게 하는, 축복의 장마비를 멈추게 하는 마귀의 술책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대로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잘 압니다. 그래서 명예에 약한 고라에게는 명예로 시험하고, 이성에 약한 삼손에게는 이성으로 시험하고, 돈에 약한 아간에게는 금으로 시험했습니다. 위선자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는 속임으로 시험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모든 궤계를 막아야 하지만 또 음행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음행을 피하라.”마귀는 대적해야 하고, 음행은 피해야 됩니다. 우리가 마귀에게는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해야지, 마귀, 사탄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면 약자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음행은 피해야 합니다.
선악과가 있는 곳에는 가지 않아야 되는 것처럼, 성적인 유혹에 빠질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약합니다. “나는 그 곳에 가도 까딱없어.”아닙니다. 사람은 약합니다. 음행을 하게 되는 곳에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소도 한 번 빠진 함정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데, 우리 중에는 한 달 전에 빠진 곳에 또 가고, 작년에 빠진 곳에 또 가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영원히 그렇게 살다가 주님 앞에 부끄럽게 가겠습니까?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음행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음행하면 축복도 끊깁니다. 내가 받은 축복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함으로 기뻐해야 됩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7, 80년대의 범죄형은 몰래형이었답니다.
집을 터는 사람들이 어두운 밤에 복면을 쓰고 들어가서 몰래 털어갔답니다. 지금은 몰래형은 거의 없고 대게, 정면 돌충형인가 무슨 형이 있던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낮에 들어간답니다. 도둑들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 시간이 오전 9시부터 12시랍니다.
그 다음은 오후 12시에서 3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랍니다. 밤에 남의 집에 들어가는 도둑은 거의 없답니다. 특별히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전체 범죄의 7%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도둑들이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일에는 쉰답니다. 보안 연구소에서 범죄 자료를 조사해 보니, 범죄가 일어나는 것이 주일에는 7%이고, 주 중에는 93%였습니다. 현대의 도둑들은 안식할 줄을 아나 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손님이 온 집이랍니다. 손님이 왔다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갈 때 문을 잠그지 않고 잠깐 손님을 배웅하러 간 사이에 들어가서 훔쳐 간답니다. 손님을 배웅할 때 문을 잠그고 가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 때문에 도둑 맞지 않을 집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 놓고 청소할 때 창문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사이에 들어가기도 한답니다. 이것이 제일 높은 확률이랍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들어가는 방법은 베란다에 있는 가스 배선을 타고 들어가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가족끼리 약속을 해 놓고 열쇠를 소화기통이나 우유통에 숨겨 두는데, 도둑들이 이것을 다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숨겨 둔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훔쳐 간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부잣집은 도둑을 막기 위해 담장을 높이고 담장 위에 깨진 병을 꽂아 두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진주, 최고의 진주인 예수님의 성령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죄가 들어오면 초라하게 됩니다. 진주가 술에 들어가면 녹아버립니다. 진주같이 빛나는 사람도 죄를 지으면 녹아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마치 우리 몸에 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심하듯이 조심해야 됩니다.
따라합시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몸으로 범죄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새벽에 어떤 집사님의 기도가 들렸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신데 새벽마다 우리 교회에 오셔서 기도하시는 분입니다.“하나님, 우리 손녀딸이 너무 뚱뚱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안 좋으시지요?
제가 보기에도 답답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답답한데 우리 손녀딸이 너무 뚱뚱하지 않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몸을 날씬하게 해 주세요.”정말 실질적인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음식도 조심하고 운동도 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뚱뚱해서 하나님을 곤란하게 해 드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번에 프랑스에서 너무 많이 걸어다녀서 몸이 말라 허리끈이 늘어져 허리끈을 조금 잘랐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도 음식을 조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몸이 말랐다고 비행기에서 주는 대로 다 먹었습니다.
아내가 남긴 것도 다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빠졌던 살이 다시 다 쪘습니다. 음식도 조심하고 운동도 하고 때로는 살과 전쟁도 해서 자기의 표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살과 전쟁도 하자.”
너무 말라서 폐결핵에 걸리면 안 되지만 표준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래서 몸으로도 영광 돌려야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날씬한 몸으로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많이 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몸으로 죄를 지을 때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고 우리가 몸으로 선한 일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비다가 선한 일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 것처럼 우리가 선한 일을 많이 행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특별히 선한 일 중에 가장 선한 일은 영혼 구원, 복음 전도인 줄로 믿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조심해도 때로는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이구, 내가 잘못했네. 내가 남의 험담을 했네.’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목사님들에게 한 마디 헐었습니다. “아무개 목사님은 목사님들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비판하면서 자기는 성자인 것처럼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더라.” 정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나니 성령님께서 ‘야, 너 어찌 그리 허는 말을 하니?’하고 나무라셨습니다. 그래서 ‘아이구, 주여. 잘못했습니다.’하고 회개했습니다.
제가 금년 1월 1일 아침에 ‘저는 덕담만 하겠습니다. 누가 아무리 잘못해도 잘못한 것은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분의 장점만 말할 거예요.’라고 해 놓고는 저도 모르게 은근히 남을 헐었습니다. 제가 참 괴로웠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아! 예쁘다.’하면 되는데, ‘예쁘구나. 다시 보아도 예쁘구나. 아이구, 예쁘구나.’할 수 있습니다. 하지 않아야 될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빨리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야 됩니다.
잉크, 볼펜의 잉크가 손에 묻었을 때 금방 씻으면 없어집니다. 그러나 3,4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씻으려면 고생하게 됩니다. 우리가 실수했다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품어서는 안 될 생각을 품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사가 된 것이 아니라 천당 갈 때까지 그런 일이 가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빨리 회개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이 찬양에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라는 가사가 있는데, 저는 「이따금씩 주저앉고 싶을 때」로 바꾸어 불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또 매일 죄 짓고 회개하고 매일 죄 짓고 회개하면 안 됩니다.
이따금씩 주저앉고 싶을 때 ‘주여!’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어차피 두 얼굴의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기도 드리거나 예배 드릴 때와 세상에 나가서 살 때는 조금 달라집니다.
약간 달라집니다. 우리는 항상 같기를 원하지만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 주님. 약한 저입니다. 용서해 주세요.”하고 일어나서 점점 거룩하게 되어 귀하게 살다가 마지막 세상 끝날 때에 주님의 품에 안기는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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