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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바른 자세 / 창 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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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0-09-0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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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에게는 2명의 아내와 2명의 소실이 있었다. 네 여인의 몸에서 얻은 아들이 열둘이었다. 우리는 흔히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 대하 '열 손가락을 하나씩 깨물어 보라.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는지'라는 말을 하여, '자식을 편애하는 부모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고 싶을 뿐이다. 모든 부모가 자녀들이 많으면 그들 중에 유독 마음이 쓰이고 사랑하는 자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다양할 수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야곱은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편애했다. 요셉에게만 색동 옷을 입힐 정도로, 그리고 그 형제들이 시기할 정도로 편애가 심했다. 베냐민 외에는 모두 형들이다. 야곱은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기까지 편애했다.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가장 먼저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첫 아들이었다. 라헬은 아들 낳기를 오랫동안 원했으나 득남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몸종을 야곱의 소실로 주어 그녀를 통해서라도 아들을 품에 안아보고 싶어했다. 뜻은 이루었으나 여전히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니기에 공허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라헬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녀의 태를 열어 아들을 낳게 하여 낳은 아들이 요셉이었다. 당연히 요셉은 야곱이 금지옥엽으로 여길 만한 아들이었다.


  야곱은 청소년시절에 이상한 꿈을 두번이나 꾸었다. 그것은 징조가 있는 꿈이었다. 이 꿈 이야기를 부형들 앞에서 하게 되면서, 형제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후에는 요셉이 형들에 의해 이스마엘 대상들에게 은 20개를 받고 팔리는, 즉 형들에 의해 인신매매를 당하게 되었다.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요셉의 성품이 몹시 진실하고 올곶았다. 자기 형들의 잘못을 일일히 아버지께 고해 바쳤다. 요셉은 또 아버지에게 성실히 순종했다. 아비 야곱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미지의 땅에 심부름을 보냈다. 그곳에는 야곱의 열 아들들이 양을 치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야곱은 아버지의 명령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순종하여 집을 나섰다.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는 형들이 없었다. 새로운 목초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방황하다 어떤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따라 형들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 형들이 있는 곳에서는 요셉에게 첫 번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들은 '꿈쟁이가 온다'면서 요셉을 죽일 음모를 꾀했다. 르우벤이 요셉을 살리겠다는 의도를 다른 형들에게 감춘채, 물이 없는 웅덩이에 요셉을 쳐 넣었다. 그리고 르우벤이 잠시 없는 사이에 그곳을 지나가는 이스마엘 대상들을 보고 유다의 제안으로 은 20개에 요셉을 팔아 형들에 의해 인신매매를 당했다.





  이스마엘 대상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끌고 가 그곳에서 애굽 왕 바로의 근위대장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았다. 그 때부터 요셉은 10대 후반의 청소년기에 노예가 되어 생활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을 때 아비 야곱의 편애를 받으며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을 요셉이다. 그런 요셉이 어떻게 인격이 박탈되는 노예의 생활을 잘 감당할 수 있었는지 신비스럽기만 하다.


  아무튼 요셉의 적응력은 매우 뛰어났다. 불과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으나 그는 주인에게 매우 성실한 노예였다. 그의 성실함은 주인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는 20대 중반의 청년이 되어 주인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었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의 구차하고 힘든 삶을 벗어난 듯 했다.


  그런 그에게 두 번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20대 중반의 청년 요셉은 매우 준수했다. 여인들이 흠모할 만한 멋진 청년이었다. 그런 요셉에게 이성적인 정욕을 느끼고 요셉을 유혹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보디발의 아내였다. 요셉이 비록 보디발의 재산을 맡은 청지기로 발탁되었지만, 그렇다고 그기 노예의 신분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보디발의 아내도 요셉에게는 여주인이다. 그 여주인이 요셉에게 동침할 것을 요구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팔여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기 시작한지 10여년, 그는 매우 준수한 멋쟁이 청년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성적으로 정욕을 느낀 여인은 보디발의 아내였다. 그러나 요셉은 여주인의 요구를 뿌리쳤다. 그것이 자기에게 어떤 화를 가 져오게 될지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여주인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만 분명하게 알아, 결코 부정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여주인의 요구를 끝까지 뿌리칠 수 있었다.


  이 일은 결국 여인의 모함으로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식 재판의 절차를 밟아 기간이 정해진 옥살이가 아니었다. 무기한이었다. 옥에서 살다 옥에서 죽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도 요셉은 변명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물론 변명한들 자신의 변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셉에게는 아주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셉은 투옥된 감옥에서 잘 적응했다. 잘 적응했을 뿐 아니라 간수장에게 인정을 받아 옥사의 일을 간수장으로부터 위임받아 옥을 관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에는 애굽 왕 바로의 두 대신이 투옥하게 되었다. 한 사람은 술 맡은 관원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떡 맡은 관원장이었다. 이들을 보디발은 요셉에게 섬길 것을 명했다. 그래서 요셉은 그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각각 의미심장한 꿈을 꾸고 고민했다. 이것을 눈치챈 요셉은 그들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게 하고, 그 꿈을 해석해 주었다. 삼일 후면 바로의 생일이었다. 그 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복직되고, 다른 한 사람은 목숨이 처형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서 석방되어 복직될 대신에게, 복직되거든 자 기를 이 감옥에서 빼내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일 후 바로의 생일날에 두 대신은 요셉이 꿈을 해석한 대로 한 사람은 복직했고, 다른 한 사람은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복직한 대신은 요셉의 부탁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석방에 대한 한가닥 기대했던 요셉의 기대는 2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애굽 왕 바로가 신기한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다. 바로는 애굽의 전국에서 모든 현인들과 꿈 해몽사들을 다 동원하여 자기가 꾼 꿈이야기를 들려주며 해몽을 요구했으나, 아무도 그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다. 그 때 2년 전에 투옥됐다가 풀여나 복직한 대신이 감옥에 있을 때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때의 이야기를 바로에게 아뢰었다. 바로는 즉시 보디발에게 요셉을 옥에서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따라서 금하게 옥에서 나와 바로 앞에 선 요셉에게 바로는 자기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해몽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실 것'이라며, 바로의 꿈을 명쾌하게 해석했고,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을 대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까지 자세하게 말했다.


  바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장반지를 빼서 요셉의 손에 끼워주어 자신의 모든 권리를 요셉에게 넘겨주었다. 단지 왕이라는 보좌의 상징적인 최고의 자리를 지킬 뿐, 모든 실무적인 권리는 전적으로 요셉에게 넘겨 나라를 다스리게 했다. 그 때 요셉의 나이 약관 서흔 살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그 나이에 감히 상상도 못할 벼락출세를 하게 되었다.





  요셉이 애굽을 다스리는 일은 승승장구했다. 그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한 그대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만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서, 자기 형제들에게 한 말이다.


  오늘 나누는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바른 자세'라 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바른 자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본문으로 설정한 말씀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씀은 5절이다. 이제 그 5절의 말씀을 우리가 함께 다시 한 번 읽기를 원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오늘은 제가 말씀을 나누면서 서론을 몹시 길게 이야기했다. 그 대신 이제 본론과 결론은 짧게 끝내려 한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모범적으로 보여 준 사람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바른 자세는 곧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바른 자세다.


  첫째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생사하복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칫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위기에 놓여 있다. 현 정부가 현재의 사태를 대응하는 태도가 문득 문득 섬짓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오판을 하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그래서 자칫 아주 중대한 혼란에 빠져 나라가 참으로 위태해질 수 있다고 염려되기도 한다. 그래서 기도한다. 나라가 안정될 수 있기 위하여, 그리고 이 나라에 다시는 67년 전의 한국전쟁과 유사한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권한은 거기까지 곧 기도하는 것이 전부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그 후에 어떤 일이 이 나라에서 일어나든지 그 모든 일을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확신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 그 모든 일들을 순리로 잘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든,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든 말이다. 바로 요셉이 그런 자세로 살았기에 그는 자기에게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될지라도 그 가운데서 최선을 다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섭리 속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항상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말씀을 묵상하여 깨닫는 깨달음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라





  진정한 비폭력 무저항주의란 무엇인가? 예루살렘교회의 스데반 집사가 몸으로 보여준 행동이다. 돌에 맞아 숨이 끊어지면서도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그 고통을 감내하여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환하게 빛난 모습으로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비폭력 무저항이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절대적인 순종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요셉은 자신이 어떤 삶이 처하든 자기를 다스리는 권위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인정을 받을 만큼 철저하게 순종했다. 자기에게 불이익이 닥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불의한 일에는 타협하지 않았다. 이런 순종은 온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품격이다.


  순종은 이유를 따지지 말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들을 온전히 맡길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런 삶을 살려면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음을 유의해야 한다.


  셋째 : 하나님의 주권에 감사하라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범사에, 모든 조건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감사하라는 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모든 조건을 초월하게 한다. 그래서 극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게 한다. 앞서 말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게 되면서도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여유가 바로, 그 마음 감사의 열정이 뿜어 나오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힘들고 어려운 지난 날들을 지냈으나 형들을 만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서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에 순종하며, 그것을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임하든, 그것이 하등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게 엄청난 희생이 강요될 것이 예상될지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소망을 낳고, 그 소망이 있기에 감사할 수 있으며, 감사를 아는 자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능력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일들은 곧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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