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찬송 / 시편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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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신 찬송 / 시편 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오늘 우리는 ‘장애’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이에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국어사전적 의미로서 장애를 설명할 때는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함. 또는 그런 일. 2)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 3) 통신 유선 통신이나 무선 통신에서 유효 신호의 전송을 방해하는 잡음이나 혼신 따위의 물리적 현상.
또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법에는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신체적 장애 못지않게 오늘날 더욱 심각하게 다가와 있는 장애는 정신적 장애, 정서적 장애가 있습니다. 심지어 성격장애도 있고, 대인장애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서술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가장 무섭게 망가뜨리고 있는 주범인 죄의 속성입니다. 죄악의 권세로 말미암은 이 세상은 적지 않은 사회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장애는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부딪히는 일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거부당하는 일도 많습니다. 마치 이 세상은 장애물 경기장과 같은 세상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 23편을 기록한 다윗은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그리고 왕인 사울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질투의 대상으로 고통당하거나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의 배신 등으로 참으로 아픈 삶을 사는 그 때 마다 이런 시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을 치는 목자에서 하나님의 양들인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거부를 거듭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동안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내가 나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기 삶을 돌보고 있는 분이 따로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나의 인생을 이끌고 있는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겁니다.
적어도 이 시편 23편이 기록되어질 때의 다윗의 형편은 결코 평안하고 좋은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믿음을 깨우시는 것입니다. 앞이 캄캄하고 낙심이 될 때일수록 믿음을 깨우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경 중의 가장 아름다운 이 시편이 가장 아름답지 못한 삶의 역경 속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탐심으로 가득한 세상은 마치 불랙 홀과 같습니다.
잠 30: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6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이 세상을 좇는 자는 결코 자족할 수 없습니다.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불만이라는 고통이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많다고 만족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됨을 알 때에 비로소 이 찬송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기독교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척추장애인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일생동안 천국을 갈망하는 오직 한 가지의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이다. 내 죄를 구속해 주시고 내 죄 때문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만나서 참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하나님의 손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을 파송하셨을 때에 물으신 물음이 있습니다.
눅 22:35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에 다녀온 제자들의 대답입니다. “없었나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넘치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부족함을 경험하는 세상입니다.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물로 덮일 때, 그때 가장 귀한 것은 바로 마실 물입니다. 주위가 온통 물이지만 마실 물은 없습니다. 오늘날 사상의 홍수, 지식과 정보의 홍수, 물질의 홍수, 문화의 홍수 등 넘치는 홍수 속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오히려 갈증을 느낍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 이야기 하나 들어보세요. 한 소년이 일제시대 중학교 2학년 때 하숙비를 내지 못해 하숙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고향집 부모의 생활이 어렵다보니 하숙비를 보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숙집 주인의 성화를 견딜 수 없었던 소년은 엄동설한이 몰아치는 12월 어느 날 보따리 두어 개를 들고 길거리로 밀려났습니다. 오갈 때 없는 소년은 학교 교실에서 겨울을 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선뜻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던 소년을 발견한 당직 교사가 그 사정을 듣고는 그를 온실로 데려갔습니다. “교실은 추우니 온실에서 겨울을 지내거라...” 가마니 두어 장 깔고 누우니 하늘의 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밤마다 쏟아지는 별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겨울을 납니다. 이 소년의 가슴에 시와 노래가 흐릅니다. “송아지 망아지 얼룩 고양이 애기양도 얼룩 개 개구락지 닮았네...”
이 시가 바로 이때에 지어진 시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유명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의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어느 날, 그때 그 시절 15살 때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줍니다. “지붕 없는 집에서 살 때, 지붕 있는 집을 부러워하며 살았더라면, 지금쯤은 지붕 있는 집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붕 없는 집에서 살면서도 별을 마음에 담으니 그게 시가 되었고 애비가 시인이 될 수 있었단다...”바로 이 시인이 78년에 작고한 박목월 장로님입니다. (朴木月 1917~78년, 경주출생, 대구계성학교졸업)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이 곧 그의 집이었습니다. 그의 동산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남이 가질 수 없는 부요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찬송 시편 23:1의 가사를 마음에 가득 담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의 목자 되신 주님은 주님의 양인 나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십니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양은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전에는 눕지 않습니다.
양은 배고픔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전에는 눕지 않습니다.
양은 양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결과 긴장이 해소되지 전에는 눕지 않습니다.
두려움, 배고픔, 불안, 대결과 긴장, 바로 목자를 잃은 세상의 장애물들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알고 계신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겔 34: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이를 성취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 바로 양의 목자로 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의 찬송은 계속됩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를 소생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으로든지, 기도로든지, 찬양으로든지, 어떤 사람의 위로의 손길이든지, 그 치유의 손길이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천재로 불리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항상 오르막길이었습니다. 그는 주위의 기대대로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집필한 30여권의 책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오직 성공과 성취로 장식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나는 교수직을 포기한다. 이제 정박아시설에 들어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많은 명예와 보수를 왜 버리려 하는가. 차라리 후학을 양성하라.” 그의 대답입니다. “오르막길 인생은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낮은 곳에서 예수를 만날 것입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을 매사추세츠 정박아시설에서 장애인들의 용변 식사 목욕 등 구질구질한 일을 하는데 보내고 별세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상처 입은 치유자’의 저자 헨리 나우웬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고통과 눈물의 돌 자갈이 깔린 곳에 예수의 미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못자국의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습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장애를 겪고 계신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그 고통의 못 자국을 그대로 갖고 계셨습니다. 부활하신 몸에 지니고 있는 못 자국입니다.
장애도 그와 같습니다. 이미 나는 부활했습니다. 그럼에도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 고통과 눈물의 돌 자갈이 깔린 곳에 예수님의 미소가 있습니다.
그 미소는 주님이 주신 믿음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입니다. 주님이 주신 감사입니다. 주님이 주신 소망입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주님이 주신 기쁨입니다.
이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두렵지 않습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장애라는 그곳에 가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산을 사용합니다. 우산은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산은 나를 비가 내리는 그 한 가운데에 서게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내게 주신 믿음이 성공을 가지고 오지 않을지라도,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도전에도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다윗은 진정한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러분! 다윗은 궁궐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욱 행복한 집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집입니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주께서 머리가 되시는 교회는 영원한 집으로 가는 휴게소입니다.
이 세상은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 사회적 장애 등 갖가지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실로 이 세상은 장애물 경기장과 같은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장애, 이 세상의 장애를 아시고, 친히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장애인과 같이 되셨습니다. 내가 아파할 때 아파하셨고, 내가 어찌할 수 없어 막막해 할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묶이셨습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좌절하고 있을 때, 무덤에 던져지셨습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오늘 우리는 ‘장애’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이에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국어사전적 의미로서 장애를 설명할 때는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함. 또는 그런 일. 2)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 3) 통신 유선 통신이나 무선 통신에서 유효 신호의 전송을 방해하는 잡음이나 혼신 따위의 물리적 현상.
또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법에는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신체적 장애 못지않게 오늘날 더욱 심각하게 다가와 있는 장애는 정신적 장애, 정서적 장애가 있습니다. 심지어 성격장애도 있고, 대인장애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서술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가장 무섭게 망가뜨리고 있는 주범인 죄의 속성입니다. 죄악의 권세로 말미암은 이 세상은 적지 않은 사회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장애는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부딪히는 일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거부당하는 일도 많습니다. 마치 이 세상은 장애물 경기장과 같은 세상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 23편을 기록한 다윗은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그리고 왕인 사울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질투의 대상으로 고통당하거나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의 배신 등으로 참으로 아픈 삶을 사는 그 때 마다 이런 시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을 치는 목자에서 하나님의 양들인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거부를 거듭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동안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내가 나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기 삶을 돌보고 있는 분이 따로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나의 인생을 이끌고 있는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겁니다.
적어도 이 시편 23편이 기록되어질 때의 다윗의 형편은 결코 평안하고 좋은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믿음을 깨우시는 것입니다. 앞이 캄캄하고 낙심이 될 때일수록 믿음을 깨우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경 중의 가장 아름다운 이 시편이 가장 아름답지 못한 삶의 역경 속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탐심으로 가득한 세상은 마치 불랙 홀과 같습니다.
잠 30: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6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이 세상을 좇는 자는 결코 자족할 수 없습니다.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불만이라는 고통이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많다고 만족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됨을 알 때에 비로소 이 찬송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기독교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척추장애인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일생동안 천국을 갈망하는 오직 한 가지의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이다. 내 죄를 구속해 주시고 내 죄 때문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만나서 참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하나님의 손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을 파송하셨을 때에 물으신 물음이 있습니다.
눅 22:35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에 다녀온 제자들의 대답입니다. “없었나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넘치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부족함을 경험하는 세상입니다.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물로 덮일 때, 그때 가장 귀한 것은 바로 마실 물입니다. 주위가 온통 물이지만 마실 물은 없습니다. 오늘날 사상의 홍수, 지식과 정보의 홍수, 물질의 홍수, 문화의 홍수 등 넘치는 홍수 속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오히려 갈증을 느낍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 이야기 하나 들어보세요. 한 소년이 일제시대 중학교 2학년 때 하숙비를 내지 못해 하숙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고향집 부모의 생활이 어렵다보니 하숙비를 보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숙집 주인의 성화를 견딜 수 없었던 소년은 엄동설한이 몰아치는 12월 어느 날 보따리 두어 개를 들고 길거리로 밀려났습니다. 오갈 때 없는 소년은 학교 교실에서 겨울을 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선뜻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던 소년을 발견한 당직 교사가 그 사정을 듣고는 그를 온실로 데려갔습니다. “교실은 추우니 온실에서 겨울을 지내거라...” 가마니 두어 장 깔고 누우니 하늘의 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밤마다 쏟아지는 별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겨울을 납니다. 이 소년의 가슴에 시와 노래가 흐릅니다. “송아지 망아지 얼룩 고양이 애기양도 얼룩 개 개구락지 닮았네...”
이 시가 바로 이때에 지어진 시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유명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의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어느 날, 그때 그 시절 15살 때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줍니다. “지붕 없는 집에서 살 때, 지붕 있는 집을 부러워하며 살았더라면, 지금쯤은 지붕 있는 집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붕 없는 집에서 살면서도 별을 마음에 담으니 그게 시가 되었고 애비가 시인이 될 수 있었단다...”바로 이 시인이 78년에 작고한 박목월 장로님입니다. (朴木月 1917~78년, 경주출생, 대구계성학교졸업)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이 곧 그의 집이었습니다. 그의 동산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남이 가질 수 없는 부요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찬송 시편 23:1의 가사를 마음에 가득 담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의 목자 되신 주님은 주님의 양인 나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십니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양은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전에는 눕지 않습니다.
양은 배고픔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전에는 눕지 않습니다.
양은 양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결과 긴장이 해소되지 전에는 눕지 않습니다.
두려움, 배고픔, 불안, 대결과 긴장, 바로 목자를 잃은 세상의 장애물들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알고 계신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겔 34: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이를 성취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 바로 양의 목자로 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의 찬송은 계속됩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를 소생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으로든지, 기도로든지, 찬양으로든지, 어떤 사람의 위로의 손길이든지, 그 치유의 손길이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천재로 불리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항상 오르막길이었습니다. 그는 주위의 기대대로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집필한 30여권의 책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오직 성공과 성취로 장식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나는 교수직을 포기한다. 이제 정박아시설에 들어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많은 명예와 보수를 왜 버리려 하는가. 차라리 후학을 양성하라.” 그의 대답입니다. “오르막길 인생은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낮은 곳에서 예수를 만날 것입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을 매사추세츠 정박아시설에서 장애인들의 용변 식사 목욕 등 구질구질한 일을 하는데 보내고 별세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상처 입은 치유자’의 저자 헨리 나우웬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고통과 눈물의 돌 자갈이 깔린 곳에 예수의 미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못자국의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습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장애를 겪고 계신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그 고통의 못 자국을 그대로 갖고 계셨습니다. 부활하신 몸에 지니고 있는 못 자국입니다.
장애도 그와 같습니다. 이미 나는 부활했습니다. 그럼에도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 고통과 눈물의 돌 자갈이 깔린 곳에 예수님의 미소가 있습니다.
그 미소는 주님이 주신 믿음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입니다. 주님이 주신 감사입니다. 주님이 주신 소망입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주님이 주신 기쁨입니다.
이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두렵지 않습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장애라는 그곳에 가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산을 사용합니다. 우산은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산은 나를 비가 내리는 그 한 가운데에 서게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내게 주신 믿음이 성공을 가지고 오지 않을지라도,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도전에도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다윗은 진정한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러분! 다윗은 궁궐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욱 행복한 집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집입니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주께서 머리가 되시는 교회는 영원한 집으로 가는 휴게소입니다.
이 세상은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 사회적 장애 등 갖가지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실로 이 세상은 장애물 경기장과 같은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장애, 이 세상의 장애를 아시고, 친히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장애인과 같이 되셨습니다. 내가 아파할 때 아파하셨고, 내가 어찌할 수 없어 막막해 할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묶이셨습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좌절하고 있을 때, 무덤에 던져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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