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로 얻는 자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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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약속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자유를 창조해 낸다는 점이 그 공통점이다. 용서는 과거로부터의 자유를 가져오고, 약속은 미래의 예측 불가능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떠오르는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
그리고 당신의 약속을 다시금 지키도록 노력하라.
-로버트 스트랜드의 ‘용서의 능력’ 중에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당신께 참 많이 했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겠다. 다짐했지만 내 감정에 따라 쉽게 그 약속을 저버리고 당신이 내 전부라 고백했지만, 그 고백이 잊혀 지기도 전에 쉽게 당신을 나의 가치와 바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 내가 당신 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여전히 고백합니다. 신실한 주님의 자녀 되기를 간구합니다.
● 메가마인드 메모리 트레이닝 회사의 대표인 에란 카츠는 기억력 부문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천재입니다. 500자리 숫자를 한 번 보고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사람들의 뇌를 훈련시키는 기억력 증진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과 프로그램을 홍보하러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어디를 가든지 먼저 기억력이 좋은지 시범을 보여 달라고 하며 또 좋은 기억력의 비결에 대해서 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때마다 망각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대답 합니다.
“좋은 기억력은 훌륭한 재산이지만 적절한 망각은 삶을 위한 축복입니다. 그리고 나쁜 기억과 트라우마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입니다. 영어로 용서(forgive)와 잊다(forget)이 비슷한 것은 제 생각에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건 나를 사랑하고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용서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다른 이를 용서하게 하소서!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들을 조금씩 용서해 나가십시오.
용서는 받아 본 감사자들이나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근본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있기에 가능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용서하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당신이 평안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분의 사랑을 받아서 나눕시다.
용서받고 「새옷」 입어야 중생
중생이란 무엇일까요.
중생이란 개혁이 아닙니다. 흔히 『옛 죄를 끊고 새 생활을 시작하라』고 말합니다.좋은 말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거듭나거나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가령 가게에서 10만원 외상을 졌는데 그것은 갚지 않고 앞으로 계속 거래하면서 물건 값을 지불한다고 해도, 그 전에 갚지 않은 빚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죄를 끊고 다시 죄를 범치 않는다고 해도 아직도 과거의 먹장 같은 검은 죄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중생이나 신생은 하나, 하나 개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사함받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낡은 옷을 수선해 입는 것이 아니라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은 중생이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기 때문에 입으로 신앙고백하는 것이 거듭나는데 중요한 방편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마음 중심으로 믿고 영생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입에 발린 말만 가지고는 거듭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중생은 아닙니다.
교회출석이 구원의 한 방편은 되지만 건성으로 교회 다닌다고 다 거듭난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고 세례를 받고 착한 일을 하고 기독교 문화에 산다고 그것이 곧 중생은 아니고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중생은 신적인 변화(Divine change)입니다.
사람은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는 곧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변화입니다. 사람은 설득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신적 변화를 창조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 삶의 변화를 일으켜 주십니다.
중생은 신비로운 변화(Mysterious change)입니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 하니라』(요한복음 3장8절)고 말씀 하셨는데, 그 뜻은 중생이란 신비스러운 것이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중생은 절대적인 변화(Absolute change)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중생은 모든 것이 변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희망, 새로운 기쁨을 갖게 됩니다. 한 때 사랑하던 것을 지금 미워하게 되고, 전에 미워하던 것을 이제 사랑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에는 교회를 가장 멸시했는데 이제는 세상의 어떤 기관보다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됩니다. 한 때는 빈정거리고 욕할 때만 부르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제는 그 어느 것보다 존귀하고 사랑스럽게 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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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용서의 유익
메가마인드 메모리 트레이닝 회사의 대표인 에란 카츠는 기억력 부문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천재입니다.
500자리 숫자를 한 번 보고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사람들의 뇌를 훈련시키는 기억력 증진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과 프로그램을 홍보하러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어디를 가든지 먼저 기억력이 좋은지 시범을 보여 달라고 하며 또 좋은 기억력의 비결에 대해서 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때마다 망각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대답 합니다.
“좋은 기억력은 훌륭한 재산이지만 적절한 망각은 삶을 위한 축복입니다. 그리고 나쁜 기억과 트라우마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입니다. 영어로 용서(forgive)와 잊다(forget)이 비슷한 것은 제 생각에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건 나를 사랑하고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용서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다른 이를 용서하게 하소서!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들을 조금씩 용서해 나가십시오.
용서는 받아 본 감사 자들이나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할 수있는 것이며, 그 근본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있기에 가능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용서하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빼문이며, 또한 당신이 평안하실 수 있는 전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분의 사랑을 받아서 나눕시다.

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용서받고 「새옷」 입어야 중생
중생이란 무엇일까요.
중생이란 개혁이 아닙니다.흔히 『옛 죄를 끊고 새 생활을 시작하라』고 말합니다.좋은 말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거듭나거나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가령 가게에서 10만원 외상을 졌는데 그것은 갚지 않고 앞으로 계속 거래하면서 물건값을 지불한다고 해도,그 전에 갚지 않은 빚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오늘부터 죄를 끊고 다시 죄를 범치 않는다고 해도 아직도 과거의 먹장 같은 검은 죄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중생이나 신생은 하나 하나 개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사함받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낡은 옷을 수선해 입는 것이 아니라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은 중생이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기 때문에 입으로 신앙고백하는 것이 거듭나는데 중요한 방편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마음 중심으로 믿고 영생을 소유해야 합니다.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입에 발린 말만 가지고는 거듭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교회에 다니는 것이 중생은 아닙니다.
교회출석이 구원의 한 방편은 되지만 건성으로 교회 다닌다고 다 거듭난 것은 아닙니다.교회에 다니고 세례를 받고 착한 일을 하고 기독교 문화에 산다고 그것이 곧 중생은 아니고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중생은 신적인 변화(Divine change)입니다.
사람은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이는 곧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사람으로부터 오는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변화입니다.사람은 설득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신적 변화를 창조하실 수가 있습니다.우리는 자신이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 삶의 변화를 일으켜 주십니다.
중생은 신비로운 변화(Mysterious change)입니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한복음 3장8절)고 말씀하셨는데,그 뜻은 중생이란 신비스러운 것이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중생은 절대적인 변화(Absolute change)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중생은 모든 것이 변하는 것입니다.새로운 희망,새로운 기쁨을 갖게 됩니다.한 때 사랑하던 것을 지금 미워하게 되고,전에 미워하던 것을 이제 사랑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전에는 교회를 가장 멸시했는데 이제는 세상의 어떤 기관보다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됩니다.한 때는 빈정거리고 욕할 때만 부르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제는 그 어느 것보다 존귀하고 사랑스럽게 들리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