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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행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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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18-06-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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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5. 행복의 조건 행 5:41
잠 25장.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뛰어난 비평가이자 수필가인 체스터어튼(Gilbert K. Chesterton)은, {행복}에 대해서 이런 내용의 글을 남겼습니다. "행복은, 슬픔보다 진지하고, 슬픔보다 절실하다. 그저 가볍고 재미있는 일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행복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행복은 경박한 웃음이 아니라, 진지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언뜻 어느 수필가의 비논리적인 글처럼 보여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우리가 흔히 경험하게 되는 {인생의 역설(逆說:아이러니)}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팔복을 가르치실 때에도, 이렇게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어지는 6절 말씀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여기 산상수훈에 사용된 {복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말하는 행복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사람과 애통하는 사람,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인 진리의 교훈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 밖에 도와주실 분이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애통해 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자신의 불의를 슬퍼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서는 것을 소망하여, 다른 사람을 돕고 수고하는 "성실한 마음"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며 사십니까? 행복을 소망하며 사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소망하며 사십시오. 위엣 것을 바라는 마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하늘의 일을 소망하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행복의 조건
행복한 삶에도 공식이 있을까? 1930년 하버드대 연구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로 하고 그해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을 무려 72년 동안 추적하기 시작했답니다. 이 프로젝트에 샘플로 선정된 학생 중에는 나중에 제35대 미국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행복의 조건은 ‘인생의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 금연, 금주, 운동 등이라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 고민, 갈등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남아공월드컵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무릇 축구선수라면 예외 없이 이 꿈의 무대를 향해 질주했을 것입니다. 드디어 예비엔트리 32명이 선정돼 선의의 경쟁을 했습니다. 그 결과 최종 23명이 남아공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끝이 아닙니다. 베스트는 11명, 나머지는 벤치를 지킬 것입니다. 베스트에 드는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영광의 잔디를 밟는 요인은 누가 직면한 불안과 공포를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느냐?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를 산뜻하게 넘었습니다. 더 큰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행복의 조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 5가지를 말했습니다.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입니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찾고 있습니다. 사실 100% 만족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나보다 많이 가진 자를 바라본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 그것이라도 있음을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라고 말씀합니다. 행복은 스스로 얻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며 감사할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욕심과 불만이 인간에게서 행복을 앗아갑니다.


행복의 조건
옛날 희랍의 전제국가의 한 왕이 24시간 여색과 주지육림에 탐닉하면서, 자기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하여 쾌락도와 행복도를 더 높이는 수단과 방법을 상금을 걸고 천하에 널리 구하게 하였다. 별별 기발한 새 아이디어들이 실험되었으나 그의 불만도와 갈증은 날로 가중되기만 했다. 새 아이디어의 제공자들은 그를 실망시킨 벌로 사형을 받았다. 어느 날 왕 앞에 행복의 새로운 제안자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소녀였다. 소녀는 왕 앞에 나타나서 꾸짖는 눈빛으로, “왕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쁨을 단념하십시오.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쁨과 행복을 원하신다면 남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왕의 표정은 숙연해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히며, “딸아 그대의 말이 옳도다.”하고 상을 내렸다 한다. 행복이나 기쁨은 주관적이어서 그 내용이 다양하지만 분명히 쾌락과는 다른 정신적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소박하고 가난한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한 가요 가운데“행복 하고 싶어라. 그러나 그대를 행복하게 못하면 나는 행복해 질수 없네.”라는 것이 있다. 이 가요는 한 여인에게 속삭인 말이지만 행복의 본질을 꿰뚫은 말이다. 참 행복은 '같이 누리고 나누어 갖는'것이다. 미국의 사망율의 54%는 비만증 고혈압계통의 병 때문이라고 한다. 사해는 하구는 있어도 유출구가 없어 죽음의 호수가 됐다. 나만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정신의 사해요. 그러한 사람은 정신의 비만증 환자다. 남을 기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하여 냉수 한 잔, 티 없는 미소 하나일지라도 정성된 마음의 소모와 아픔을 가지고 나누어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정신의 비만증 환자요, 사해 인생이다. 얼마나 소중하고 비밀한 행복의 교훈인가? 남을 사랑할 때 내가 행복해 진다는 것을 나는 예수에게서 배웠다.



진정한 행복의 조건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성균관대와 함께 조사한 “한국인이 생각하는 행복 조건”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1. 젊어야 한다.
2. 남보다 잘 산다고 느껴야 한다.
3. 많이 배워야 한다.
4. 사회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야 한다.
5. 종교행사에 자주 가야 한다.
6. 가족과의 여가를 중시해야 한다.
7. 결혼유무는 행복과 무관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물질, 명예, 지식 모두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때 비로소 큰 행복을 느끼며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진정한 행복을 느껴 보지 못했다면, 바로 지금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느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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