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아브라함의 재혼과 죽음
페이지 정보

본문
* 본문/ 창25:1-11
* 제목/ 아브라함의 재혼과 죽음
“마라나타~ !” 다같이 인사하시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와~”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옆에 앉으신 분들과도 인사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가족’이라 하면, 어디까지가 가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주간에 나온 뉴스를 보면, 가족의 개념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뉴스에서는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가족은 어디까지가 가족입니까?” 그러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 아내, 우리 아들, 딸, 그리고 우리 손자, 손녀..." 거기까지가 가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똑 같은 질문을 손자 손녀들에게 해보았습니다. “가족은 누구까지라고 생각하니?” 그러자 손자 손녀들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따로 사시니까 가족이 아닙니다."
대답이 좀 다르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세대차이라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세대차이라기보다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가족의 개념이 달라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설문 조사를 해 보았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자녀는 ‘10명 가운데 2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부부 10쌍 가운데서 절반가량은 “시부모나 장인, 장모가 자기 가족이 아니다.”라고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혈연관계를 따라서 가족이냐 아니냐를 결정했는데, 요즘에는 함께 사는 관계, 즉 거주개념으로 가족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가족 개념이 있는데, 요즘은 소위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들을 단순히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하면서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울에 사는 27세 된 어떤 여자’는 아침마다 개를 유치원에 맡기고 출근을 합니다. 그러면 그 개는 개유치원에서 훈련도 받고, 다른 개들과 어울리는 법도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한 달에 거의 45만 원정도가 드는데도, 개도 가족이기 때문에 그게 전혀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것 뿐이겠습니까? 개 용품에, 개 먹이에, 개 미용비, 개 병원비를 합치면 자식 키우는 것보다 돈이 더 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각이 “개도 가족이다” 이렇게 바뀌어지니까, 그것을 감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이러다가 세상이 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됩니다.
어쨌든 이처럼 가족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바뀌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맨 처음에 아브라함의 가족은 아브라함과 그의 부인 사라, 그리고 조카 롯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조카 롯의 가족이 분가해 나가고, 아브라함과 사라와 하갈과 이스마엘이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삭이 태어난 후에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가고 나니까, 아브라함의 가족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라가 죽자 아브라함의 가족은 아브라함과 이삭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자, 그럴 때, 지난 시간에 공부한 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장가들여서 가족은 셋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리브가지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 오면 또 한번 아브라함의 가족 구성원이 바뀌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새 장가를 든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다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여러분, 아브라함의 자녀가 모두 몇 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삭과 이스마엘... 거기까지는 다들 잘 압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잘 모르지요?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후처를 얻어서 또 다시 자녀를 낳았다”라고 했습니다. 몇 명 더 낳았다고 했습니까? “6명을 더 낳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모두 몇 명이 되는 것입니까? 모두 “8명”이 되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아내가 한명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한번만 보면 뿅~ 갈 정도로 아주 예쁜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라가 죽었습니다. 언제 죽었습니까? 사라의 나이 “127세”에 죽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나이는 37세”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죽으면 재혼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혼자 살아야 합니까?” “저 같으면 혼자 살겠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혼자 살지 않고 재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이 재혼을 하였겠습니까?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 혼자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재혼을 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후에 몇 년 더 살았습니까? 아브라함이 137세에 사라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라가 죽은 후에 38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38년이라는 긴 세월을 어떻게 혼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재혼을 해야지요.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통계가 나왔는데, 여자들은 남편이 죽으면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아내가 죽으면 오래 사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여자들은 혼자서도 잘 삽니다. 그런데 남자라는 존재는 혼자 살기가 어려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자들이 오래 살려면 재혼을 해야 한다.” 믿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반드시 아내가 죽었을 경우에, 즉 사별을 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데 재혼을 하면, 그런 사람은 오래 살기는커녕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오래 살기 위해서 재혼을 했고, 또 재혼을 했기 때문에 오래 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또 이런 생각이 들지요? “오래 살아서 뭘 하려고... 사랑하는 아내도 죽었는데 그냥 빨리 죽지” 하지만, 아브라함은 빨리 죽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왜?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두 번째로)
②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재혼을 하였을 것이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작만 있고, 나중이 없으면, 그 시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당시에 아브라함은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 이삭은 아직 아버지에게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자, 보십시오. 부모가 늦게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니 좀 응석받이로 크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아들이다 보니까 부모가 다 해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브라함 기업’이라고 하는 그 기업을 이을 경영자가 되기에는 아직도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가 더 그렇습니다. 리브가는 타향에서 시집을 왔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자, 그런 상태에서 아브라함이 죽어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평생에 이룬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을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장가들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아들에게 튼튼한 기업을 물려주자” 그래서 재혼을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해석이? 공감이 가십니까?
그래도 그런 상황이 되면, 새 장가를 드는 남자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여자들은 안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자식들도 별로 안 좋아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들도 재혼을 한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은 주로 목사님들인데, ‘제 동기 목사님 한분’은 60세가 넘었는데,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재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성도들이 별로 안 좋아해서 다른 교회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분 목사님’도 한 65세 정도 되었는데, 저 거제도에서 목회를 합니다. 그런데 그분도 재혼을 하였습니다. 우리 지방 한누리교회 전도사님으로 있던 45세 정도 되는 처녀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미국으로 다녀왔는데, 신혼 생활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만 불상하지 뭐...”
여러분, 우리 남자 성도님들은 절대로 그런 꿈은 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있는 아내와 오래오래 사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에이, 무슨 그런 악몽을...” 그런 생각 마시고, 그 꿈이 ‘악몽이 아니라 복된 꿈’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재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재혼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문제로 전혀 잡음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새 아내를 보는 시각이 달랐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재혼을 하면 전처는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재혼과 동시에 전처의 소생들은 찬밥신세가 됩니다.
역사적으로도 한번 보십시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된 후에 누구를 태로 세우려고 했습니까? 후처의 아들인 방석이를 태자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극적인 왕자의 난이 일어나 계모를 죽이고, 계모에게서 태어난 두 동생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재혼을 하고서 그 부인을 분명하게 ‘후처’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새 부인을 얻었다’ 그러면, 사라는 이미 잊어버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후처를 얻었다’라고 하면, ‘전처인 사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이게 바로 집안의 질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질서를 따라서 후처를 대우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재산 상속에서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아브라함의 재산을 누가 상속 받았습니까? (5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아브라함은 본 부인 사라의 소생인 이삭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물려주었습니다.
① 우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물려주었습니다.
② 또한 그 가나안 땅의 모든 소유권을 이삭에게 물려주었습니다.
③ 그리고 그의 전 재산까지도 다 이삭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니 재혼을 하고서도 아무런 잡음이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다른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했습니까?
(6절)입니다.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여러분, 아브라함이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아브라함은 후처인 그두라의 소생인 다른 아들들에게도 섭섭지 않게 재산을 떼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을 다 떠나보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삭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자기 생전에 다 떠나보냈다는 것입니다. 이게 지혜인 것입니다.
재산은 요, 정신이 있을 때, 그리고 영향력이 살아 있을 때, 분배를 해야 합니다. 그것도 명분과 질서에 따라서 지혜롭게 분배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뒷탈이 없습니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부모가 힘이 떨어지고,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때 가서는 재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는 가족이 가족이 아니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월이 가면 가족의 개념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도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원칙 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간다면 늘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아브라함처럼 ① 하나님께서 주신 수명을 다 누리고, ②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도 다 누리고, 행복하고 평안하게 주님 앞으로 갈 수 있는 인생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제목/ 아브라함의 재혼과 죽음
“마라나타~ !” 다같이 인사하시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와~”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옆에 앉으신 분들과도 인사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가족’이라 하면, 어디까지가 가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주간에 나온 뉴스를 보면, 가족의 개념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뉴스에서는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가족은 어디까지가 가족입니까?” 그러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 아내, 우리 아들, 딸, 그리고 우리 손자, 손녀..." 거기까지가 가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똑 같은 질문을 손자 손녀들에게 해보았습니다. “가족은 누구까지라고 생각하니?” 그러자 손자 손녀들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따로 사시니까 가족이 아닙니다."
대답이 좀 다르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세대차이라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세대차이라기보다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가족의 개념이 달라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설문 조사를 해 보았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자녀는 ‘10명 가운데 2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부부 10쌍 가운데서 절반가량은 “시부모나 장인, 장모가 자기 가족이 아니다.”라고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혈연관계를 따라서 가족이냐 아니냐를 결정했는데, 요즘에는 함께 사는 관계, 즉 거주개념으로 가족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가족 개념이 있는데, 요즘은 소위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들을 단순히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하면서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울에 사는 27세 된 어떤 여자’는 아침마다 개를 유치원에 맡기고 출근을 합니다. 그러면 그 개는 개유치원에서 훈련도 받고, 다른 개들과 어울리는 법도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한 달에 거의 45만 원정도가 드는데도, 개도 가족이기 때문에 그게 전혀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것 뿐이겠습니까? 개 용품에, 개 먹이에, 개 미용비, 개 병원비를 합치면 자식 키우는 것보다 돈이 더 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각이 “개도 가족이다” 이렇게 바뀌어지니까, 그것을 감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이러다가 세상이 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됩니다.
어쨌든 이처럼 가족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바뀌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맨 처음에 아브라함의 가족은 아브라함과 그의 부인 사라, 그리고 조카 롯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조카 롯의 가족이 분가해 나가고, 아브라함과 사라와 하갈과 이스마엘이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삭이 태어난 후에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가고 나니까, 아브라함의 가족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라가 죽자 아브라함의 가족은 아브라함과 이삭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자, 그럴 때, 지난 시간에 공부한 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장가들여서 가족은 셋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리브가지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 오면 또 한번 아브라함의 가족 구성원이 바뀌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새 장가를 든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다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여러분, 아브라함의 자녀가 모두 몇 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삭과 이스마엘... 거기까지는 다들 잘 압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잘 모르지요?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후처를 얻어서 또 다시 자녀를 낳았다”라고 했습니다. 몇 명 더 낳았다고 했습니까? “6명을 더 낳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모두 몇 명이 되는 것입니까? 모두 “8명”이 되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아내가 한명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한번만 보면 뿅~ 갈 정도로 아주 예쁜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라가 죽었습니다. 언제 죽었습니까? 사라의 나이 “127세”에 죽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나이는 37세”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죽으면 재혼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혼자 살아야 합니까?” “저 같으면 혼자 살겠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혼자 살지 않고 재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이 재혼을 하였겠습니까?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 혼자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재혼을 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후에 몇 년 더 살았습니까? 아브라함이 137세에 사라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라가 죽은 후에 38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38년이라는 긴 세월을 어떻게 혼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재혼을 해야지요.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통계가 나왔는데, 여자들은 남편이 죽으면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아내가 죽으면 오래 사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여자들은 혼자서도 잘 삽니다. 그런데 남자라는 존재는 혼자 살기가 어려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자들이 오래 살려면 재혼을 해야 한다.” 믿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반드시 아내가 죽었을 경우에, 즉 사별을 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데 재혼을 하면, 그런 사람은 오래 살기는커녕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오래 살기 위해서 재혼을 했고, 또 재혼을 했기 때문에 오래 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또 이런 생각이 들지요? “오래 살아서 뭘 하려고... 사랑하는 아내도 죽었는데 그냥 빨리 죽지” 하지만, 아브라함은 빨리 죽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왜?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두 번째로)
②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재혼을 하였을 것이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작만 있고, 나중이 없으면, 그 시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당시에 아브라함은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 이삭은 아직 아버지에게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자, 보십시오. 부모가 늦게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니 좀 응석받이로 크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아들이다 보니까 부모가 다 해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브라함 기업’이라고 하는 그 기업을 이을 경영자가 되기에는 아직도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가 더 그렇습니다. 리브가는 타향에서 시집을 왔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자, 그런 상태에서 아브라함이 죽어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평생에 이룬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을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장가들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아들에게 튼튼한 기업을 물려주자” 그래서 재혼을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해석이? 공감이 가십니까?
그래도 그런 상황이 되면, 새 장가를 드는 남자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여자들은 안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자식들도 별로 안 좋아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들도 재혼을 한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은 주로 목사님들인데, ‘제 동기 목사님 한분’은 60세가 넘었는데,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재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성도들이 별로 안 좋아해서 다른 교회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분 목사님’도 한 65세 정도 되었는데, 저 거제도에서 목회를 합니다. 그런데 그분도 재혼을 하였습니다. 우리 지방 한누리교회 전도사님으로 있던 45세 정도 되는 처녀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미국으로 다녀왔는데, 신혼 생활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만 불상하지 뭐...”
여러분, 우리 남자 성도님들은 절대로 그런 꿈은 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있는 아내와 오래오래 사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에이, 무슨 그런 악몽을...” 그런 생각 마시고, 그 꿈이 ‘악몽이 아니라 복된 꿈’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재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재혼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문제로 전혀 잡음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새 아내를 보는 시각이 달랐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재혼을 하면 전처는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재혼과 동시에 전처의 소생들은 찬밥신세가 됩니다.
역사적으로도 한번 보십시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된 후에 누구를 태로 세우려고 했습니까? 후처의 아들인 방석이를 태자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극적인 왕자의 난이 일어나 계모를 죽이고, 계모에게서 태어난 두 동생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재혼을 하고서 그 부인을 분명하게 ‘후처’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새 부인을 얻었다’ 그러면, 사라는 이미 잊어버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후처를 얻었다’라고 하면, ‘전처인 사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이게 바로 집안의 질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질서를 따라서 후처를 대우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재산 상속에서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아브라함의 재산을 누가 상속 받았습니까? (5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아브라함은 본 부인 사라의 소생인 이삭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물려주었습니다.
① 우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물려주었습니다.
② 또한 그 가나안 땅의 모든 소유권을 이삭에게 물려주었습니다.
③ 그리고 그의 전 재산까지도 다 이삭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니 재혼을 하고서도 아무런 잡음이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다른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했습니까?
(6절)입니다.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여러분, 아브라함이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아브라함은 후처인 그두라의 소생인 다른 아들들에게도 섭섭지 않게 재산을 떼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을 다 떠나보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삭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자기 생전에 다 떠나보냈다는 것입니다. 이게 지혜인 것입니다.
재산은 요, 정신이 있을 때, 그리고 영향력이 살아 있을 때, 분배를 해야 합니다. 그것도 명분과 질서에 따라서 지혜롭게 분배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뒷탈이 없습니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부모가 힘이 떨어지고,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때 가서는 재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는 가족이 가족이 아니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월이 가면 가족의 개념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도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원칙 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간다면 늘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아브라함처럼 ① 하나님께서 주신 수명을 다 누리고, ②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도 다 누리고, 행복하고 평안하게 주님 앞으로 갈 수 있는 인생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이전글일 못하는 사람이 불평은 많다 18.11.10
- 다음글가정의 행복 엡 5:22-23 6월 27일. 18.06.27
댓글목록

마른곰님의 댓글
마른곰 작성일
아브라함의 자녀 총 수는?
하갈의소생-이스마엘 . 사라의 소생-이삭. 후처 그두라의 소생- 시므란,욕산,므단,미디안,이스박,수아,(모두 8명).창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