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문화선교

초대교회

청년대학부

제목: “나를 부인하는 순종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4-11-23 23:46

본문

제목: “나를 부인하는 순종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라. 
교독문: 67. 잠언 3장. 말씀: 살전 2:13~20.  찬송가: 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나의 생각과 내 인생의 범죄 - 내 과거는 유대인이며, 지금은 성도요, 미래는 주님의 신부라.>
▮이 세상에 살아온 수많은 인생들은 과연 무엇을 경험하면서 살아왔을까요?
▮송현이라는? 사람이 쓴 <어느 쥐의 유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말 귀담아 듣거라.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은 저마다 다른  무서움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 무서움의 형식을 감추고 있지 않는 무서움이 가장 무서운 무서움이다. 내 말 잘 알아 듣거라. 고양이와 쥐덫이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니다. 고양이는 언제나 고양이로 있고, 쥐덫은 언제나 쥐덫으로 있으니, 내 나이가 되면 고양이쯤이야 차라리 같이 늙어가는 이웃일 수도 있고, 쥐덫쯤이야 내 슬기의 시험대 정도로 그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고양이도 아니고 쥐덫도 아니고, 무서움을 모르도록 다채롭게 위장한 쥐약이다. 쥐약의 외형은 탐욕의 혀끝과 코끝을 유혹하기 위해 자연스럽고, 믿음직스럽고, 우호적이고, 헌신적이며 지혜로워 보인다. 그러나 쥐약의 외형이 어떻거나 간에 쥐약은 쥐약이다. 이 바보들아.”<내 인생에 내 생각이 최고의 나의 걸림돌이더라.>
▮우리 인생도 우호적인 유혹에 이끌려 육체를 따라 보이는 일들을 찾다가 세상에 마귀가 주는 ‘쥐약’을 먹게 되고, 결국 영생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가치를 따라 사랑하심으로 지으신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스스로 신과 같은 인간이 되려고 한 데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는 불순종을, 그리고 인간에게는 탐욕의 노예로 남게 되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하늘의 사람이었는데, 땅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이었는데, 육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끊임없이 생존의 씨름을 하면서 살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는 존재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그 병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사망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인간은, 사랑과 생명과 진리를 주신 하나님을 다시 경험하지 않으면 그 사망선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곧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불순종의 머리 사탄 곧 마귀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말씀을 떠나 사망선고를 받은 인생을 불쌍히 여기셨고, 이에 친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사망을 감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을 선고하신 것입니다. 이에 이 죄와 사망이라는 감옥에서 건짐을 받고, 다시금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 죽은 자와 같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오늘과 내일, 그리고 영원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이야기! 바로 믿음의 증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린 이 사실에 증인으로 선 것입니다. 그 주님을 만남은 즉 역사(HIS STORY)를 만드는 인생을 가진 자가 된 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있어야 할 요소들을 찾아보겠습니다.

1. 과거의 생각이 지배하는 경험이 아니라, 믿음으로 미래를 앞당겨 경험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헬라적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생각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히브리적 사고방식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나 일반적인 사고방식은 헬라인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인 하나님의 사람들은 히브리인의 사고방식을 따라야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순종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했을 때 불신자가 되듯. 우린 순종의 자녀가 되어야 함.
▮하루는 예수님께서 강력한 바람과 풍랑이 이는 갈릴리 호수 위를 걸어오실 때, 베드로 그에게 물 위로 걸어서 자기에게 오라고 명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마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그러나 말씀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려고 할 때, 베드로 자신의 생각이 먼저 그를 흔들었습니다.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주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의 의심은 불안한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지적인 생각에서 온 것입니다. “과연 내가 물 위를 그냥 있을 수 있을까? 걷고 있네? 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역자가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음은? 사람의 생각, 곧 자신의 머리로 생각이 먼저 개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하늘의 믿음으로 영, 혼, 육이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게 되는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시작은 신의 자녀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경험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다같이) “나의 과거의 지식과 이해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말슴을 믿음으로 인한 미래를 경험하게 하라” 하나님을 경험기 위해서 따르는 두 번째 요소입니다.

2.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라 하십니다. 창세기 22장의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명을 내리십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과 함께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땅(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산.(대하 3:1))에 당도합니다. 아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이 아들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을 잡고 아들을 잡으려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리하지 아니 하실 지라도” 의 다니엘과 세친구의 믿음!>
●창 22:12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아들 대신에 수풀에 한 숫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거듭 임합니다.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그렇습니다.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장차 어린 양으로 오실 메시아의 예표를 경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열려진 천하 만민이 받을 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보이십니다. ●히 5장 8~9절의 말씀입니다.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온전한 순종은?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순종에는 낮아짐이 있었습니다. 비우심이 있었습니다. 욕을 받으심이 있었습니다. 심한 고통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신분으로서의 죽으심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이 같은 순종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죽음에 이른 세상을 살려주시는 구원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인생을 붙잡고 가게 됩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말한 것이 왜 귀합니까? 그것은 단순히 귀로 듣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대로 움직이겠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붙잡을 때, 곧 말씀을 경험할 때 시원한 아이스콘을 붙잡듯이 그렇게 달콤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고통과 강력한 갈등과 시험이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여름에 꽃이 피는 쐐기풀은 줄기나 잎사귀에 연한 가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시는 살짝 대면 찔려도 꽉 잡으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합니다.
한 아이가 이 쐐기풀의 가시에 찔려 울면서 엄마에게 아픔을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슬기로운 이 엄마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말합니다. “애야, 다음부터 쐐기풀을 만질 때는 두려움을 갖고 살짝 만지지 말고 담대하게 꽉 잡으려므나. 그러면 가시는 부드러워지지.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옳은 일이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담대하게 나서야 해.” 영어의 숙어 중 “쐐기풀을 잡다”라는 말인 “Grasp the nettle”은 “곤경에 선뜻 맞선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사랑하는 선교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삶이, 곧 하나님의 이야기가 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어져야 하고, 경험되기 위해서 말씀에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3.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을 방해하는 요소를 막아야 합니다.
1) 마귀의 속임수와 유혹이라는 ‘쥐약’이 놓여있는 세상으로부터 깨어있어야 합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이 정도 일이야 뭐 내가 해도 되겠지?” 그리고 “크고 어려운 일 이나 주님을 부르지?” 라고 내가 신이 되고, 주는 나를 도와주시는 분으로 철저하게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아닙니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0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사소한 일에도 무시로 수시로 그분을 경험해야 합니다.

2)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물리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무시하고 머리로만 지식을 경험하려 했을 때 주님을 죽이고, 자기의 뜻을 살리려는 교만과 함께 하나님에게서 또 멀어지는 제 이의 아담과 하와인 불신자가 된 것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3)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고난 위에 올라서야 합니다. 마치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풍랑 위를 걸어서 오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벧전 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불신자나 성도나 모두 주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물위를 걸어야 합니다.

4) 어떠한 시험 중에서도 기도를 즉 믿음을 중단하지 말고, 순종인 감사함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골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려오는 것을 열어서 도와줍니다. *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기도 응답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성도 여러분! 때때로 나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있지는 않았는지요?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잠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아브라함의 순종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더욱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어린 양이신 초림과 재림 메시야를 미리 맛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큰 사명,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첫 건축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희생하기까지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세상에 구원을 이루시고, 하나님을 경험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를 만드시는 영원하신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은 나를 더욱 신뢰하실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나에게 더욱 놀라운 사명을 이루게 하는 말씀으로부터의 능력을 입히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만큼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를 신뢰하시도록 나를 내어 드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어 하나님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무엇인가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경험하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깨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믿음입니다. “네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순종하기 시작할 때, 너는 나 여호와가 준비한 삶을 경험하리라!”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신학교
CCS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대한민국전자정부
행복발전소
Prayer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