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즐거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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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즐거운 삶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굶기라는 말은 아니다. 노약자나 환자, 실업자나 죄수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데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애를 쓰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도 없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될 뿐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짐승들의 생존은 본능이나 보호색 등 주로 자연적인 것에 의하여 유지되지만, 사람의 생존은 사람 자신이 의식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때에 유지될 수 있다. 사람은 나무와 풀에 저절로 열리는 열매를 따 먹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굴을 파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연장을 사용하여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기후와 환경에 맞추어 옷을 입고 집을 짓고 사는 것이다.
사람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더 맛있게 먹고, 더 멋있게 입으며, 더 안락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하여 계속해서 연구하고 실험함으로써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나아가, 사람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학문 활동을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여 즐기기도 하며, 서로의 관계를 조정하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하기도 한다. 사람의 이런 활동들은 모두 넓은 의미의 문화 활동이다. 문화 활동이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사람이 의식적으로 변형시키거나, 전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을 일컫는다. 이런 의식적인 변형이나 창조는, 일을 하는 활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사람에 의하여 이룩된 문화는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끼친다. 한국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한국인이 되고, 일본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자란 사람은 일본인이 된다. 사람의 혈통과 얼굴 생김이 그 사람의 어떠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은 문화적 영향이 그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고, 그 사람의 인격적 특성을 결정한다. 사람만이 일을 통하여 문화를 창조하고, 사람 자신이 창조한 문화에 의하여 사상과 인격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일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사람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우리의 몸은 움직여야 건강하고, 우리의 두뇌는 써야 민첩해진다. 태아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박동하는 심장도, 운동을 하여 더 많이 뛰게 하면 더욱 튼튼해진다고 한다. 과로하지 않는 한, 우리 몸의 모든 기관과 두뇌는 사용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튼튼해지고 민첩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중요한 일을 귀찮아하고,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일을 노동이라 하기도 한다. 우리말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언어에서, 일이란 말은 괴롭고 힘든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을 뜻하는 프랑스어 트라바이란 말은‘세 마리의 말’이란 뜻을 가진 라틴 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세 마리의 말을 한데 묶는 것만큼 힘들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독일어의‘아르바이트’란 말도‘갈아 놓은 밭’이란 뜻을 가진 라틴 어에서 유래된 것인데, 이 말 역시 일이란 힘들고 괴로운 것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괴롭게 생각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왜 괴롭고 싫은지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물리적인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이 괴로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놀이를 하는 것이 이웃집에 심부름을 가는 것보다 힘이 더 들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공놀이를 하는 것이 심부름을 가는 것보다 더 괴롭거나 싫은 것은 아니다. 공놀이가 오히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정신 집중이 더 필요한데도 공놀이가 심부름보다 즐거운 것이다.
일이 괴로운 이유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제도에서 찾으려 하였다. 자본주의 생산 체제에서는 일의 대가가 일하는 사람에게 모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생산 수단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분업이 불가피하게 되므로, 일이 단조로워지고 괴로워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모든 사람들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일은 역시 괴로운 것이며,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농사일도 괴롭고 하기 싫은 것은 매한가지다.
성경에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괴롭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벌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설명일 뿐, 과학적 사고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일의 괴로움은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은 놀이와 대조된다. 심부름을 가는 것은 비록 힘이 적게 들더라도 그것은 일이고, 공놀이를 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힘이 들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놀이다. 놀이도 일 못지않게 심각할 수 있고, 많은 생각과 물리적인 힘을 요구하며, 문화 창조에도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지만, 놀이는 그 목적이 놀이 그 자체에 있으므로, 그 밖의 아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은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는 것은 놀이지만, 돈을 받기 위하여 공을 차는 것은 일이다. 다 같이 몸을 움직이고 생각도 골똘히 하지만,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하나는 놀이여서 재미있고, 다른 하나는 일이라서 괴로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일생 동안 어떤 종류의 일이든 해야 하고, 또 일을 함으로써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일들이 괴롭고 하기 싫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이 가진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다. 일이 놀이처럼 즐거웠다면, 인간의 삶과 문화는 지금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도 일을 놀이하듯 그렇게 즐겁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좀더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사람 자체가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일을 함으로써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때문에,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일의 괴로움을 어느 정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일의 결과보다는 일 그 자체에서의 의의를 발견하게 되므로, 일을 놀이하는 것과 같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불량 식품을 만들거나 화학 무기를 생산하는 것도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은 결과적으로 일하는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그리고 모든 일이 다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한 일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일에서 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을 택하고,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고상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요, 일의 괴로움도 한결 더 덜어 줄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고 긴장되어 있는 시간, 즉 하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그런데 이 시간을 괴롭고 의미 없게 보낸다면, 우리의 일생이 괴롭고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은, 일이 아무리 괴롭고 가치 없는 것일지라도 그 일을 통하여 돈만 많이 벌면, 그 돈으로 즐겁고 뜻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옳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못하다. 삶의 덜 중요한 시간, 즉 일하지 않는 시간을 즐겁고 뜻있게 보내기 위하여 삶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치 없는 일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을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하는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뜻있고 행복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의의를 가지고 즐겁게 일할 때, 그 일은 능률적이 될 것이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람 자체가 본래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일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면, 재미가 있고 의미 있게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굶기라는 말은 아니다. 노약자나 환자, 실업자나 죄수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데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애를 쓰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도 없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될 뿐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짐승들의 생존은 본능이나 보호색 등 주로 자연적인 것에 의하여 유지되지만, 사람의 생존은 사람 자신이 의식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때에 유지될 수 있다. 사람은 나무와 풀에 저절로 열리는 열매를 따 먹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굴을 파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연장을 사용하여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기후와 환경에 맞추어 옷을 입고 집을 짓고 사는 것이다.
사람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더 맛있게 먹고, 더 멋있게 입으며, 더 안락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하여 계속해서 연구하고 실험함으로써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나아가, 사람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학문 활동을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여 즐기기도 하며, 서로의 관계를 조정하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하기도 한다. 사람의 이런 활동들은 모두 넓은 의미의 문화 활동이다. 문화 활동이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사람이 의식적으로 변형시키거나, 전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을 일컫는다. 이런 의식적인 변형이나 창조는, 일을 하는 활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사람에 의하여 이룩된 문화는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끼친다. 한국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한국인이 되고, 일본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자란 사람은 일본인이 된다. 사람의 혈통과 얼굴 생김이 그 사람의 어떠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은 문화적 영향이 그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고, 그 사람의 인격적 특성을 결정한다. 사람만이 일을 통하여 문화를 창조하고, 사람 자신이 창조한 문화에 의하여 사상과 인격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일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사람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우리의 몸은 움직여야 건강하고, 우리의 두뇌는 써야 민첩해진다. 태아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박동하는 심장도, 운동을 하여 더 많이 뛰게 하면 더욱 튼튼해진다고 한다. 과로하지 않는 한, 우리 몸의 모든 기관과 두뇌는 사용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튼튼해지고 민첩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중요한 일을 귀찮아하고,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일을 노동이라 하기도 한다. 우리말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언어에서, 일이란 말은 괴롭고 힘든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을 뜻하는 프랑스어 트라바이란 말은‘세 마리의 말’이란 뜻을 가진 라틴 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세 마리의 말을 한데 묶는 것만큼 힘들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독일어의‘아르바이트’란 말도‘갈아 놓은 밭’이란 뜻을 가진 라틴 어에서 유래된 것인데, 이 말 역시 일이란 힘들고 괴로운 것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괴롭게 생각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왜 괴롭고 싫은지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물리적인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이 괴로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놀이를 하는 것이 이웃집에 심부름을 가는 것보다 힘이 더 들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공놀이를 하는 것이 심부름을 가는 것보다 더 괴롭거나 싫은 것은 아니다. 공놀이가 오히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정신 집중이 더 필요한데도 공놀이가 심부름보다 즐거운 것이다.
일이 괴로운 이유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제도에서 찾으려 하였다. 자본주의 생산 체제에서는 일의 대가가 일하는 사람에게 모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생산 수단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분업이 불가피하게 되므로, 일이 단조로워지고 괴로워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모든 사람들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일은 역시 괴로운 것이며,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농사일도 괴롭고 하기 싫은 것은 매한가지다.
성경에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괴롭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벌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설명일 뿐, 과학적 사고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일의 괴로움은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은 놀이와 대조된다. 심부름을 가는 것은 비록 힘이 적게 들더라도 그것은 일이고, 공놀이를 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힘이 들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놀이다. 놀이도 일 못지않게 심각할 수 있고, 많은 생각과 물리적인 힘을 요구하며, 문화 창조에도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지만, 놀이는 그 목적이 놀이 그 자체에 있으므로, 그 밖의 아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은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는 것은 놀이지만, 돈을 받기 위하여 공을 차는 것은 일이다. 다 같이 몸을 움직이고 생각도 골똘히 하지만,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하나는 놀이여서 재미있고, 다른 하나는 일이라서 괴로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일생 동안 어떤 종류의 일이든 해야 하고, 또 일을 함으로써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일들이 괴롭고 하기 싫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이 가진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다. 일이 놀이처럼 즐거웠다면, 인간의 삶과 문화는 지금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도 일을 놀이하듯 그렇게 즐겁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좀더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사람 자체가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일을 함으로써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때문에,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일의 괴로움을 어느 정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일의 결과보다는 일 그 자체에서의 의의를 발견하게 되므로, 일을 놀이하는 것과 같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불량 식품을 만들거나 화학 무기를 생산하는 것도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은 결과적으로 일하는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그리고 모든 일이 다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한 일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일에서 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을 택하고,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고상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요, 일의 괴로움도 한결 더 덜어 줄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고 긴장되어 있는 시간, 즉 하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그런데 이 시간을 괴롭고 의미 없게 보낸다면, 우리의 일생이 괴롭고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은, 일이 아무리 괴롭고 가치 없는 것일지라도 그 일을 통하여 돈만 많이 벌면, 그 돈으로 즐겁고 뜻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옳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못하다. 삶의 덜 중요한 시간, 즉 일하지 않는 시간을 즐겁고 뜻있게 보내기 위하여 삶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치 없는 일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을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하는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뜻있고 행복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의의를 가지고 즐겁게 일할 때, 그 일은 능률적이 될 것이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람 자체가 본래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일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면, 재미가 있고 의미 있게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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