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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만남이 있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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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18-01-20 08:37

본문

하나님과 만남이 있는 예배

(시 95:1-7)




[본문 분석]




  1. 어떻게(1-2)      - 노래하며, 즐거이 부르며, 감사함으로, 시로

  2. 왜(3-5)  - 모든 신 위에 크신 왕, 만물을 지으신 분

  3. 어떻게(6)        - 무릎 꿇고

  4. 왜(7)            - 우리 하나님,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 백성




[본문 강해]




  하나님을 만났느냐는 질문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인지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왜 만나야 하는지, 그 다음에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할 필요성이 전혀 없는데 왜 만나고 싶어 하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할 이유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묵상할 것입니다. 본문은 두 번 반복해서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1-2, 6)를 먼저 말하고 왜 만나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3-5, 7).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과 하나님을 만나는 이유를 동시에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왜 만나야 하는가?(3-5, 7)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시 95:3).”




  예배할 때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 때 우리는 예배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지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여호와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시각이 달라집니다. 크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능력과 경험으로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우리의 관점과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사물을 보는 관점, 사건을 보는 관점,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크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결국 내 한계 속에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고 싶고, 내가 할 수 있고, 나에게 되어지는 일들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크신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능력을 내 능력으로 삼는 법을 배운 사람은 인간의 한계를 정복하고 위대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시 95:4-5).”




  두 번째 이유는 우리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게 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일까요?




  어떤 학생과 상담을 하면서 자기 부모님도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데,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친절하게 고민을 나누는 어떤 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학생은 어떤 힘든 문제가 발생하면 반드시 그 형을 먼저 찾아가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귀 기울여 들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자기를 아는 형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고민했고, 함께 걱정했고, 함께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것을 다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던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진정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시 95:7).”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양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풀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사막과 같은 민둥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풀이 있는 유일한 곳이 있습니다. 중동의 뜨거운 태양이 동에서 떠서, 남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지면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이 어디입니까? 북쪽입니다. 이 북쪽이 가파른 곳이 풀이 많을까요? 평평한 곳이 풀이 많을까요? 가파른 곳입니다.




  시편 23편에 “푸른 초장 맑은 물가”라는 말이 바로 이런 곳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먹을 수 있는 풀이 많은 곳은 가파른 골짜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곳에서 동작이 둔한 양들이 풀을 먹고 있으니 얼마나 위태롭겠습니까? 그런데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괜찮은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염소는 굉장히 동작이 민첩합니다. 그래서 가끔씩 절벽 밑에 떨어져 죽은 짐승들을 보면 양들이 많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염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염소는 목자를 따르지 않습니다. 혼자 잘 다닙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에도 어떻게 저런 곳에 올라갔을까 싶은 곳에 염소 한 마리가 딱 올라가서 폼 잡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자기 실력을 믿고 혼자 개인 행동하다가 떨어져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시는 목자되신 주님을 예배를 통해 만나고 동행할 때 우리의 삶은 안전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을 지은 다윗이 유명한 예배자였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다윗은 예배의 능력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나의 목자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예배라는 사실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바로 예배를 통해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우리를 안전한 길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1-2, 6)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 95:1-2).”




  가장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으로 “경배와 찬양”을 말씀합니다. 경배와 찬양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경배와 찬양의 네 가지 방법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노래하며, 즐거이 외치며, 감사하며, 시로 찬양할 때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려면 “경배와 찬양”의 시간에 성공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배와 찬양 시간에 성공하려면 성경에 기록된 방법대로 찬양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찬양의 방법은 그냥 앉아서 찬송가를 보며 입만 나불거리는 찬양이 아닙니다. 성경의 찬양은 온 몸으로, 뜨거운 열정으로 찬양하는 찬양입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6).”




  두 번째는 “어떻게”라는 방법의 차원보다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예배하는 우리의 마음이 정말 하나님만 높이기를 원하는 그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만 높이기를 원하는 마음만 있다면 예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00년도 “두란노 경배와 찬양”이 부산 사직운동장에 와서 집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대학부 학생들과 함께 참여했었는데, 바로 제 옆에 있던 어떤 여고생 두 사람이 예배하는 자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찬양할 때 시종일관 손을 들고 있었고, 말씀이 선포될 때에는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듣고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 뿐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친구도 거의 비슷한 자세로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경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여학생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니까 그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예배의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배의 자세가 달라지니까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을 만나니까 회개가 터지고, 눈물이 터지고, 기도가 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제 하정완 목사님의 강의 중에 어떤 학생이 수능성적을 비관해서 자살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그 아버지가 그 아들 방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조선일보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첫째 아들의 인터뷰 내용이었는데, 주일 아침에 시무룩해 있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아버지께서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셨고, 나중에 어머니와 함께 돌아와 보니 아버지께서 이렇게 자살을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못 만난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못 받은 거예요. 그러니 그 문제 속에서 갈등하다 결국 자살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




  예배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나의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를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까?




  크신 하나님, 나의 창조자가 되신 하나님, 나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경배와 찬양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주님만을 높이기를 원하는 그 마음 중심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에 성공할 때 예배의 이유가 더 분명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렸을 때 정말 하나님이 크신 하나님이심이 분명해지고, 나의 창조자가 되심이 분명해지고, 나의 목자 나의 하나님이 되심이 분명해진다는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린 후에 하나님이 정말 크신 하나님이시며, 나의 창조자이시며, 나의 목자가 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나의 시각이 달라지고, 나의 마음이 달라지고, 나의 결심이 달라지고, 나의 삶이 달라졌다면 하나님을 만난 예배에 성공한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그 사람이 예배의 성공자입니다. 그냥 왔다가 시간만 때우고 가는 사람이 예배의 실패자입니다. 오늘 우리 한밭교회 중고등부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 모두가 예배의 성공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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