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새 출발 - 창세기 8: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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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새 출발. 찬: 277. 285. 304. 309.
(창세기 8:13~19)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는 라멕의 아들로 인간의 시조 아담의 10대 손입니다. 노아의 나이 601세 되던 정월 초하루는 하나님의 진노의 손이 멈추고 홍수가 물려가고 지면이 회복되던 새해 새아침입니다. 이 행복 된 정월 초하루 날 아침 암담한 죽음과 음침한 세계는 지나가고 힘차고 희망과 행복의 새아침이었습니다. 옛 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희망찬 삶의 자세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방주 뚜껑을 제치고
13절에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위기에 직면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 이웃들은 코웃음만 쳤습니다(마 24:38-39). 아모스는 박두한 앗수르의 침략을 보지 못하는 민중들을 탄식했고(창 6:1), 예레미야는 문 밖까지 다다른 바벨론의 침범을 경고했으나 사람들이 듣지 않았습니다(렘 6:17). 호세아는 백성들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호 4:6)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족하여 지식을 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어찌하여 종을 괴롭히시나이까? 나 혼자 어쩔 수 없나이다.”라고 하소연 했습니다. 하박국도 “여호와께서 내가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니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으며, 다윗 시인도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시 44:24)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단 한사람 노아와 가족들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홍수로 인한 물을 다 감하시고 노아를 방주에서 나오게끔 하신 것입니다.
2. 방주에서 나오고
15-16절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이제 새 세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1) 낡은 질서가 걷히는 초하루.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실 때 위의 물과 아래 물을 분리시켜 자연의 질서를 세웠으나 인간들은 네피림의 죄악 세상에 있었기에 위와 아래 물의 혼합으로 홍수의 심판을 행하셨고 이로써 낡은 질서를 멸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사회는 의식주가 풍성하여 평안한 것 같이 보였지만 그들의 날이 마지막이란 한정되는 심판이 임박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앞으로 다가올 심판을 위해 방주를 만들어 올 심판을 대비하였습니다. 흥겹던 노래도, 즐겁던 향락도 홍수가 내리던 그 날 다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물 심판이 끝나고 초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 시작하는 희망의 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새 질서가 시작되는 초하루입니다.
가인족이 건설한 강포한 문화는 홍수의 심판으로 무너졌으나 물이 걷히는 초하루 날 새 질서의 세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고 산봉우리와 수평선을 바라보는 순간은 고통과 근심과 죽음의 낡은 질서가 물러가고 희망과 새 질서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네피림의 음탕한 노래도 끊기고 홍수의 밑바닥에 깔려 침묵만 지키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기쁨에 넘치는 함성과 희망에 벅찬 감격으로 새 세계를 노래하게 되었으니 이는 홍수 후 새 질서가 시작된 것입니다.
(마지막 때 즉 불의 심판은 언제일까? 하루를 백년으로, 하루를 천년으로)
1. (민 14: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2.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0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 (눅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인간에게는 동물과 같은 육의 세계가 있는 동시에, 동물에게는 없는 영의 세계가 있어 때로는 육의 정욕을 따르지만, 영의 차원이서 선과 진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르던 낡은 시대의 죄악성은 홍수 심판과 함께 다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끝나고 새날이 시작되며 새 질서가 시작되었으니 이것이 인간의 희망입니다.
(3) 사회 질서가 회복되는 초하루입니다.
물이 걷히는 날 홍수로 정지되었던 사회적 질서가 회복되었으니 첫째, 하나님 제단의 제사 질서의 회복이요, 둘째, 인간 권위의 회복이요, 셋째, 인간 통치의 질서 회복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네피림 시대에 파괴되었던 제사의 질서가 회복된 것입니다. 물질의 풍요를 자랑하며 정욕을 따르는 시대는 언제나 종교가 그 빛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의 윤리와 정의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에 두어야 합니다. 새 시대와 함께 인간생활에 변화가 있었으니 육식의 제정입니다. 육식은 인간이 동물에 비하여 우위성을 인정하는 제도요, 인간 권위의 회복입니다. 폭력과 압제와 투쟁의 인권 무시의 시대는 물러가고 인권 존중, 생명 존중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인간을 동물과 같이 취급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 오늘 새아침에 늘 새롭게 하나님께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새 질서 안에서 좋은 결실을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실을 거두고 행실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품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장엄한 새해 새아침에 희망의 상징인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수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은 착각에 빠져서 삽니다.
좋은 것 잘 먹으면 잘사는 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은 죽음도 병도 안 걸리고 사고도 안당하나요?
지식이 많으면 잘 사는 줄 알고 학벌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비행기 사고 안당하나?
경험이 많고 권력이 많고 높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죽음과 병과 사고를 피하나?
노아를 통해서 우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자하심과 참되신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나아가서 노아의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배워야겠습니다. 바로 영성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에서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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