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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주는 자 - 창 2: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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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1회 작성일 19-09-03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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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주는 자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영을 다스리는 존재들과 대표성을 누립니다.

(창 2:18~20)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겔 28: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짐승들을 아담에게 이끌어 내고 그로 하여금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일의 시작을 짐승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으로부터 한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동물들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담이 동물에게 이름을 어떻게 주었습니까? 아담은 동물들을 분류하고 그들이 해야 할 사명에 맞게 이름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이름은 그 존재를 알게 하는 표상이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이름은 부모가 짓습니다. 그 이름은 평생 그 사람을 성격 지워 줍니다. 내 이름은 내 교회와 나를 아는 분에게 나를 기억나게 해줍니다. 그러나 한국 어디를 가든지 내 이름을 아는 자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어디서나 다 압니다. 전국 아니, 세계 어디서나 다 압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기도가 하나님에게 상달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찬미해야 하나님 얼굴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육신의 병, 영혼의 병을 고침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영생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그래서 먹든지 마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만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처럼 이름은 중요합니다. 사람은 얼굴을 기억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성만 기억합니다. 이씨, 박씨, 김씨 등으로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명예가 높을수록 그 이름이 높아집니다. 부하면 부할수록 그 이름이 높아집니다. 권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집니다. 힘이 세면 셀수록 그 이름이 빛이 납니다. 내 이름은 지방에 가면 잘 모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면 백성 중에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그 이름은 그 사람의 권력의 상징, 힘의 상징, 지배권을 상징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세계 어느 곳에든지 다 압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과 권력 모두를 소유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할 때 다 이루어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응답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어떤 죄든지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 어느 이름보다 예수의 이름은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믿는 성도들에게 죄인 된 모습을 다 제거하시고 새 이름을 주시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영세를 받을 때 실지로 새 이름을 줍니다. 우리들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응용하고 여기에서 새 생활의 원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실지로 새 이름을 받는 경우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 .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개명한 사실입니다

아브람은 높은 아버지(창 17:5)라는 뜻이요, 아브라함은 만백성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개명은 아브라함의 생의 중대한 전환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 아버지라는 아브람이 만백성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된 것입니다. 하여튼 아브라함이란 새 이름이 그로 하여금 믿음의 새 생활을 하게 하는 축복이 된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이름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령 주님께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아너게 즉 우뢰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아마 그들의 급하고 불같은 성격을 가리켰을 것입니다(막 3:17).

세례 요한이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가 “요한”이라 부르니(눅 1:61) 이웃 사람들이 “너희 친척 중에 이런 이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이름은 가문을 표시했던 것입니다.

2.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부른 일입니다

그것은 새 승리를 약속한 것입니다. 때는 야곱이 20년이 넘는 객지생활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였고 그곳은 얍복강 나룻가였습니다. 그곳은 야곱에게 있어서 생의 분수령이었습니다. 그의 고백처럼(창 32:10) 이 나루를 건널 때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나왔더니 이제 건널 때는 두 떼로 나누는 제물과 네 명의 아내와 열 두 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는 이같이 큰 축복을 받았고 큰 성공을 하였으나, 내적으로는 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제 얍복강을 건너려는 순간 소문에 들리기를 사백 명의 군사(창 33:1)를 이끌고 형 에서가 자기를 쫓아온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20년간 얻은 재물이 일순간에 잃어버리고 자신의 생명마저도 위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입니다. 자기 식구와 양떼를 두 패로 나누어 우선 얍복강을 건너게 했으며 밤을 새워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날 밤 천사가 나타나 함께 씨름을 하는데 밤새도록 씨름하다가 날이 밝아오자 천사는 야곱의 환도뼈를 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천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에 천사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새 이름을 준 것입니다. 이런 이름을 부여받은 야곱은 형에게 이기고, 아버지에게 이기고, 아내들에게 이기고, 처남에게 이겼습니다. 야곱은 그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항상 이겼던 것입니다.

엡 6:12에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요 정세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싸움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기까지 싸워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사울은 바울이라 하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새 사명 받은 이름입니다. 사울의 뜻은 “큰 자”라는 뜻입니다. 즉 무덤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극히 작은 종이라는 뜻입니다. 일꾼이라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바울이라는 개명은 과거보다 현재 해야 할 그의 사명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늘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명 맡은 자는 늘 어려운 고비를 오래오래 잘 견딥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새 이름을 받아 새로운 생활을 하며 나아가 새 승리를 목표하고, 새 사명감에서 일하는 새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능력 있는 이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아담에게 일을 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영적인 삶과 이름으로 자신을 돌보고, 이웃을 돌보고, 새롭게 하는 놀라운 복음으로 새 하늘 새 땅을 보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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