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최초의 인류 대화 - 창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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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최초의 인류 대화. 찬 183. 151.
(창세기 3:1~5)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우리는 본문에서 에덴동산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에덴동산, 평화의 에덴동산, 자유와 행복의 에덴동산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아담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최초의 사람인 아담의 아내 하와를 유혹하는 간교한 사탄도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사탄은 무엇입니까? 사탄은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타락한 천사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사탄이라는 말은 시기, 반역, 대적이라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이런 사탄이 본문에는 뱀으로 나타나 아담을 시험했습니다.
이 뱀이라는 원어 “나하쉬”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이것은 사탄의 간교한 술책과 유혹의 전술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속삭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정의와 진리는 백주에 천하에 외쳐져 나타납니다. 그러나 악령의 사탄은 골방에서 속삭이며 유혹합니다. 또 변색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진리는 영원불변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루에 일곱 번으로 칠면조가 아니라 칠십 번이라도 변하는 악령입니다. 어떤 때는 명예로, 어떤 때는 권세로, 어떤 때는 미녀로 유혹합니다. 그리고 점친다는 뜻도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명석한 두뇌와 선한 양심으로 어떤 일에 판단하며 살지 못하도록 점쟁이의 말을 따라 맹종하고 미신과 광신으로 어리석을 인간이 되게 합니다. 도박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사람은 선을 따라 살아야 하도록 창조함 받았으나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선과 악, 사망과 생명, 둘 사이에서 요행수를 바라며 도박행위를 강행케 합니다. 도박하여 잘되면 부자, 못되면 거지가 되지만 너는 틀림없이 부자가 된다고 유혹합니다. 잘되면 왕이 되고, 못되면 역적이 되지만 너는 틀림없이 왕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하여 육욕에 빠진 자들이 타락하게 합니다. 이런 속성을 가진 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창세기 3장은 사탄이 최초로 생령인 인간을 유혹하는 기록인데 인류가 계속되는 한 사탄의 유혹은 계속될 것입니다. 여기 사탄은 먼저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너희가 이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되 확실한 냥 가르치고 시험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듯한 말로 사람으로 교만케 만들어 참람한 행동까지 하도록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지 말라”, 사탄은 “먹어라”입니다. 아담이 사랑하는 하와는 이 두 사이에서 먹어야 하느냐, 안 먹어야 하느냐, 하나님과 같이 되느냐, 안 되느냐, 성공이냐, 실패냐, 사느냐, 죽느냐의 마음의 싸움을 하다가 마침내 따 먹었습니다. 무서운 도박행위였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과 같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죄인이 되었습니다. 정말 슬픈 대화였습니다. 언어라는 특수한 기능을 부여받은 인간의 대화가 이런 사탄과의 대화였다는 것입니다. 대화의 상대가 너무 잘못되었습니다. 부부간의 대화였다면 인류사가 좀 더 사랑으로 넘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조물주와의 대화가 있었다면 인류사는 더 밝아졌을 것입니다. 하필이면 인간의 대화 상대가 뱀이였단 말입니까? 그리고 대화의 내용도 잘못되었습니다. 비록 뱀과의 대화라도 그 내용이 조물주에 대한 피조물로서의 감사라든가, 피조물들의 대동단결과 책임 수행을 위한 의견 교환이라든가, 에덴동산의 원상보존을 위한 방안 제시 같은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은 대화였겠습니까? 그러나 사단은 그럴 리가 없지요? 결국 그들의 대화 내용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을 자극하는 대화였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큰 불행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명심하여 올바른 대화 내용을 전개해야 하겠습니다. 뱀과의 대화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결과적으로 죄의 심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화평이 죄로 가로 막히게 되었으며, 아담과 하와 사이는 서로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투쟁의 대상이지 대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선교초대교회는 대화의 대상과 투쟁의 대상을 혼돈해서 안 될 것입니다.
사탄과 대화 결과 아담 하와는 선악과를 먹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1. 어떤 심판을 받았습니까?
(1)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는 부끄러운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낯 대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사람의 낯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죄인은 숨습니다. 그래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넓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죄인에게는 너무 좁아서 숨을 곳이 없습니다.
(2) 두려움이라는 심판입니다. 여기 본문을 보니 아담이 하와를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주님 재림 시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 외치기를 “바위야 내 위에 무너지라 산아 나를 덮어다오”라고 비탄한다고 했습니다. (3) 추방이라는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했다고 했습니다. (4) 사망이라는 심판입니다. 창 2:17에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롬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2. 어떤 사망입니까?
(1) 양심의 사망입니다. 죄를 거듭 지으면 그 양심이 마비되고 맙니다. 그 마비된 양심을 성서는 말하기를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했습니다. 양심이 마비되고 파손된 자는 살았으나 실상 죽은 자입니다. (2) 인격적 사망입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맛, 곧 정직과 진실의 맛을 잃어버리면 후에는 사회여론의 발에 짓밟히는 매장을 당하게 되고 맙니다. 범죄하면 황금보다 귀한 명성, 천하보다 귀한 인격이 매장되고 맙니다. (3) 심령의 사망입니다. 하나님을 이미 떠난 영적 죽음입니다.
(4) 심신의 사망입니다. 죄인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그 육체가 죽을 육체로 태어나 삽니다. 그런데 성서에 보면 제2의 사망이 있습니다. 제2의 사망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만왕의 왕으로 대 심판을 하실 때의 죄인이 받는 사망의 형벌을 제2의 사망이라 하였습니다. 죄는 무덤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덤 건너편에까지 따라가는 죄입니다.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인데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이는 죽은 다음에 죽음보다 더 엄숙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받게 될 이 죄의 짐, 치욕의 죄 짐, 공포의 죄 짐을 지고 애타는 인간에게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 구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해 주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에덴동산이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 모시고 살 때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항상 주님을 모시고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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