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시작. 빛이 있으라. (창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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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시작. 빛이 있으라. (창 1:1~5)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 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는 신·구약 66권 중 첫 번째 있는 책으로 성경 전체의 기초가 되는 책입니다.
창세기란 세상 창시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으로 히브리 성경의 첫 단어인 “브레쉬트”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의 첫 구절로써 성도들이 암송할만한 가치도 있습니다. 이제 창세기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창세기는 “태초에”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태초라는 말은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역사 속으로 들어온 시간의 사점을 말합니다. 즉 이전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지속되어 왔지만 이 시점을 시작으로 해서 인간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하나님
하나님은 태초에 이전부터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을 몇 가지로 말씀드리면
(1)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신 말씀은 태초에 비로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영원부터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 40:28에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했으며, 시 90:2에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는 그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주관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창조자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편재하십니다.
시 139:7-10에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게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4)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십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변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영원토록 변함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제도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편벽됨이 없이 취급하시고 그 행사는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의와 타협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인간의 행위를 측량하시는 저울은 정확합니다.
(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 4:8-16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평하시기 때문에 우리들의 죄에 대하여 죽음의 형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사랑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은 아름답게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에 있어서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입 맞추었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마땅합니다.
성서에 기록된 천지를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창 1:2에 천지는 천사 천지를 말하며, 이 천지에 대한 기록은 겔 28:13-14의 말씀이며, 창 1:3-31에 나오는 천지는 인간천지를 말하며, 그 다음은 계 21:1-7에 나오는 천지는 하나님과 인간과 천사가 함께 거하는 곳을 가르킵니다.
본문 창 1:1은 이 세 가지 천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천지를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여 각각 특색 있게 하셨습니다.
화려한 봄은 색깔의 계절입니다. 아름다운 색깔들이 조화를 이루는 하모니의 계절입니다. 풍성한 여름은 생동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산도, 들도 나무도 싱싱합니다. 여름 동산에서 풍겨오는 그 신선한 내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활기를 주고 순박하고 깨끗하고 성실하고 시들 줄 모르는 녹음방초는 푸른 정신을 일깨워 줍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나뭇잎들은 불과 5-6개월의 짧은 일생을 마치고 자신을 아름답게 불태움으로 자연을 단풍으로 울긋불긋하게 물들이며 열매가 무르익게 합니다. 이를 바라보더라도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그리고 겨울은 휴식의 계절입니다. 겨울이 되면 대자연은 고요히 잠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새 출발을 위해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새 태동을 위한 휴식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계를 구분하여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의 광대하고, 산과 바다의 장엄함과 위대한 현상은 하늘을 나는 자나, 해상을 항해하는 자나, 세계 정상인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자들을 통해서 한결같이 감탄하게 합니다. 여기 창 1:1의 “창조”라고 하는 말은 “바다”라고 하는데 이는 처음으로 지었다는 말입니다. 있는 것을 가지고 새것을 지은 것이 아니고, 없는 가운데서 처음으로 지었다는 말입니다. 혹 우리가 말할 때 사람도 무엇을 창조한다고 하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있는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만 사용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단어에서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조물주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창조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합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따라 지어진 존재들이요, 따라서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창조란 하나님만이 가지신 권능으로써 발전이 아니라, 무에서 시작하는 역사입니다.
● 메튜 헨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특성을 몇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다양하다. 둘째, 아름답다. 셋째, 정밀하다. 넷째, 능력이 있다. 다섯째, 질서가 있다. 여섯째, 신비하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정교하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다 해도 하나님의 창조에는 비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공원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다 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작품은 곧 싫증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품은 싫증이 나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음악이라도 1년, 365일, 24시간을 그것만 듣고 있다면 싫증이 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품은 수많은 시간을 보내도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맨 처음하신 말씀은 “빛이 있으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창조 이전의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였으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혼돈과 적막과 무질서 위를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을 운행하실 때 비로서 질서의 세계가 생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첫 날 빛과 넷째 날 해와 달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해와 달과 별은 빛 자체가 아니라 빛을 지니고 있는 물체입니다. 빛은 해의 빛보다 더 밝은 것입니다. 행 26:13에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에게 부르심을 받을 때 “하늘에서 해보다 밝은 빛이 나를 비추었다”고 했습니다. 즉 흑암을 완전히 깨뜨리는 광채를 의미한 것입니다.
1. 빛을 만드신 교훈
요일 1:5에 하나님은 빛이라고 합니다.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도 하나님은 빛 자체로 스스로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 빛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약 1:17에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라고 했으며, 고후 4:6에 “어두움에 빛이 비치라 하시던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이빛을 만드신 분이 우리 마음에 이 빛을 비추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빛이 되시고, 빛을 창조하시고,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게 하여 마귀의 역사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를 구별할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통하여 은혜 받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시 51:10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했으며, 엡 21:24에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요 1:1-3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거니와, 서두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최초에 발하신 음성이 “빛이 있으라.”였습니다. 첫 날에 창조하신 분은 광채가 아닌 광휘로서 암흑을 상대하여 무한한 빛을 드러내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창 1:4에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2. 첫날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셨으나 아직 그 땅에는 생물이 살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있었기 때문에 제일먼저 있어야 할 것이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빛을 먼저 창조하신 것입니다. 빛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혼돈도, 공허도, 흑암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빛이 없다면 제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라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금강산, 설악산을 옆에 두어도 소경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는 사람에게는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보화가 무슨 소영이 있겠습니까? 그 뿐입니까? 마음의 빛이 꺼진 사람들은 인생의 참 가치와 목적을 모른 채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 자체가 의미 있고, 가치 있으려면 빛이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진리의 빛과 얌심의 빛과 생명의 빛이 꺼지면 온 세상이 어두워 질 것입니다. 온통 세상이 어두워지면 세상은 무질서가 판을 치고 혼돈과 죄악이 날뛰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막고 참 질서를 부여하고자 이렇게 귀한 빛을 첫 날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3.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말씀으로 빛을 창조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저절로 빛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빛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인격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이 창세기 1장만해도 아홉 번이나 반복되고 있으며, 성경 전체 속에서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아무나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실제적이라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지체됨 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시 절대적으로 실제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능력의 말씀을 가지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빛 가운데 거하여야 하겠습니다.
4. 하나님은 우리가 빛 가운데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1) 빛 가운데 거하는 생활은 자기를 살피는 생활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자기를 바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요1서 1:8에 “만일 우리가 되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나올 때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랑은 가장 궁극적인 원리요, 가장 고차원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이것을 터득하고 실천하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능히 이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만 될 수 있습니다. 빛 안에서 생활은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3) 빛 가운데 행함은 떳떳한 삶을 살게 합니다. 요1서 2:10에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 24:16에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 했습니다. 이런 마음 자세를 성도들은 지녀야 할 것임.
5.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빛 가운데서 살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빛을 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적극적인 면에서 빛이 있으라 하시는 말씀은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마 5:16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재창조함을 받아 우리의 심령과 인격이 새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며 빛이 있으라 하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우리 모두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한해가 되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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