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 창세기 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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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창세기 2:10~15)
(창 2: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창 2: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 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 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한국에는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섬진강 등 여러 강이 있어서 한국의 벌판을 기름지게 하며 윤택하게 하는 것 같이 에덴동산에는 비손, 기혼, 힛데겔, 유프라데 등 4대 강이 있어서 아름다운 에덴을 더욱 빛냈으니 에덴은 곧 우리의 심령을 뜻함이요, 강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에덴의 4대 강
에덴의 풍성함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에덴이 풍성할 수 있는 이유는 강이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강이 되어 흐르는 것입니다. 그 처음이 비손강입니다. 그리고 기혼과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 에덴에서 시작되니 온 세상을 적시는 강들입니다. 비손은 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혼은 은혜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힛데겔은 결실의 뜻을 그리고 유브라데는 능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 한해 비손의 뛰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기혼의 은혜가 넘치는 한해, 힛데겔의 결실이 있는 한해, 유브라데의 능력이 있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에덴에서 시작된 강들이 흘러 흘러 성도들의 가정에 사업체 그리고 자녀들에 그리고 우리교회에 조국강산에 넘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1) 비손강 비손의 뛴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뛴다에는 적극적, 왕성함, 그리고 열심의 뜻이 있습니다. 누워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것이 더 왕성합니다. 앉아있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활발합니다.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이 더 왕성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삶의 목적을 편하게 눕는데 두고 있습니다. 더 편해지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 편하기 위해 더 게을러지기 위해 목표를 둔 것 같습니다. 제 아내가 진공청소기대신에 이젠 혼자 알아서 구석구석 청소하는 로봇청소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누울 려 하지 말고 더 뛸 려 노력해야 합니다. 뛴다는 것은 활동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부지런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열심히 뛰며 일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에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축복의 에덴 안에는 비손강이 있습니다. 하나님부터가 열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사 9:7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들 이루리라 열심이 특심이신 하나님이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능력을 가지고 있으시면서도 절대로 게으르지 않으셨습니다. 학생들도 일하는 사람들도 뛰고 싶어서 뛰는 것처럼 뛰어야 생산적입니다. 억지로 하는 사람은 뛰는 것 자체가 불행합니다. 신앙 안에서도 비손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히11: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상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 뜁니다. 여기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갔노라 하였습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은 뛰지 않을 뿐 아니라 뛰며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시계적 삶보다는 나침반 적 삶이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부지런한 물레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내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보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심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비손의 은혜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사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뛴다는 것은 높이보다는 앞으로 달려가기 위함입니다. 뒤엣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메이게 합니다. 주님은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미래입니다. 비손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미래에서 해답을 찾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2) 기혼강
이 강은 주위로 흘러넘친다는 뜻이니 충만한 자는 또한 흘러넘치게 됩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충만한 성령은 예루살렘으로 흘러넘쳤고, 예루살렘에 충만했던 성령은 다시 온 유대에 흘러넘쳤고, 온 유대에 충만했던 성령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흘러넘친 것입니다.
갈보리 산을 적신 그리스도의 보혈은 온 유대를 적시고, 또 다시 넘쳐 구라파를 물들이고 더욱 넘쳐 전 세계에 흘렀을 뿐 아니라 우리들의 심령에까지 흘러넘치고 있는 것입니다.
백향목이 우거진 레바론산과 주님께서 변화하신 헬몬산으로부터 내리는 물을 받아가지고 넘쳐흐르는 갈릴리와 요단강은 언제든지 깨끗하고 산 물 이지만 요단강으로 내려오는 물을 받아가지고 흘러넘치지 못하는 사해는 고기도 살지 못하는 죽은 바다입니다. 우리의 심령도 흘러넘치지 못 하면 사해와 같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심령도 흘러넘침이 있어야겠습니다. 기쁨이 넘쳐 찬미가 되고, 간증이 넘쳐 전도가 되고, 간절함이 넘쳐 기도가 되고, 감사가 넘쳐 눈물이 되고, 생명이 넘쳐 활동이 되어야겠습니다.
(3) 힛데겔강
이 강은 급히 흐른다는 뜻이니 충만한 자는 넘쳐흐를 뿐만 아니라 신속하게 넘쳐흐르게 해야 합니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를 때 급히 흐르는 것입니다. 유대 백성들은 주님을 높여 왕 위에 앉히려고 했으나 주님은 그 자리를 사양하시고 종의 자리에 처하였으며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도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눅 14:8)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높은 자리를I버리고 낮은 자리에 처하기 위하여 급히 흐르시기 원합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가기를 좋아하지만 높은 꼭대기에 있는 한 포기 풀이나 나무까지 생명을 공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도들은 주님을 본받아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잘 돌봐주는 자리에까지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큰 강이라도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바위틈에서 졸졸 흐르는 적은 물입니다. 이 물이 대해를 목적하고 흘러갈 때 굴곡을 돌 때도 있고, 폭포로 떨어질 때도 있고, 바위에 부딪칠 때도 있고, 여울에서 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장애를 만날 적마다 더 큰 소리를 치며 돌진하여 분산에서 통일을 이루며 시냇물이 강을 이루고, 강은 다시 바다를 향하여 급히 흐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의 사랑도 세상을 향해 흘러 온통 뒤엎고도 남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4) 유브라데강
이 강은 진선진미하다는 뜻이니 강물이 한 번 흐른 곳에는 아름답지 않는 것이 없고 좋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유브라데강이 흐르는 곳에는 사막이 변하여 옥토가 되듯이 성도들이 있는 곳은 언제나 천국이 되는 곳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옥중에서 찬송할 때 옥문이 열린 것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의 찬양은 모든 닫힌 것을 열어 자유케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의 삶은 항상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에덴의 4대 강처럼 참된 능력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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