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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 주간 주일 대 예배 -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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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68회 작성일 25-10-05 00:57

본문

[] 제목: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교독문: 58. 시편 133편. 말씀: 시 133:1-3. 찬송가: 338.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오늘 우리는 추석 명절 시작 주일을 맞아 가족 간의 화목을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의 소망은 가족들 간에, 그리고 형제, 자매들 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하고, 성경을 봐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 가정을 평안하리라 봅니다. 단지 성경과 세상을 통해서 좀 더 우리가 선한 모습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가정인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형제지간에 살인이 있었습니다. 형 가인은 자신의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 되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사가 열납 되자 시기하여 동생을 쳐 죽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세상의 아들인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인 동생 이삭을 희롱하고 괴롭혔습니다. 야곱은 형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습니다. 야곱의 가정 이야기는 애증관계로 복잡한 드라마 한편과도 같습니다. 야곱의 부인이 넷이다 보니 그 부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아주 심했습니다. 자식들도 서로 연합해서 동거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요셉을 미워해서 죽이려다가 결국 종으로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이 물어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야곱은 정말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가서 죽은 줄 알고 평생을 그 자식을 가슴에 묻고 슬픔으로 살았습니다. 분쟁은 뭐가 좀 있는 집에서 더 많이 발생합니다. 없는 집은 싸울 일이 별로 없어요. 쉽게 말해서 뭐가 있어야 욕심을 내고 싸우지요? ^^

▮사사 기드온은 아내가 많았고 아들이 칠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동네 사람들을 부축이고,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기드온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다 죽여 버렸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133편다윗 왕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1절에서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없으면 최소한 형제가 못 싸우죠.▮고대의 왕들이 그렇듯이 다윗도 정략적으로 많은 여인들과 결혼하여 많은 자식들을 두었습니다. 다윗은 화목하고 다복한 가정을 소원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식들 간에 근친상간과 보복 살인이 있었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자식들 간의 팽팽한 긴장이 있었고, 결국에는 자식의 반란을 경험하고 피 흘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 명절에 다들 모인다면 얼마나 마음 조리게 될까요?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하나님은 화목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고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을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쁨을 다윗의 입을 통해서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가족, 형제 관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첫째로, 화목의 가치를 알고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잠언 17장 1절을 보면 화목의 가치에 대해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아도 가정이 화목한 것이 풍부하면서 가족 식구끼리 서로 다투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화목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화목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즐거운 명절을 보낼 때 명절 분위기를 깨는 것 중의 하나가입니다. 형제들이 맨 정신일 때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사랑을 주고받고 잘하다가도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그동안 서운했던 말들이 조금씩 나오면서 할 말 안할 말 구분을 못하고 하다가 결국 형제간이나 동서 간에 싸움이 벌어집니다.

▮또 사람들은 모이면 흉보는 일을 재미로 삼습니다. 그러나 잠언 17장 9절을 보면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잠 10장 12절을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덮어주고 가려주는 것입니다. 흉보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당사자는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며 드러내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화목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 화목이 있고 웃음이 넘쳐야 합니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절만 되면 우울해지고 소화가 잘 안되고 머리가 아픈 사람들이 많아져서 생긴 말입니다. ▮명절을 가장 잘 보내는 방법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서로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좋은 말만 하고, 주안에서 경건하게 보내며 화목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서로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배려의 모범은 보아스에게 베푼 배려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식사할 때 룻에게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룻 2:14)고 했습니다. 떡을 먹되 시장기에 그냥 먹으면 입에 침이 부족해서 얹힐 염려가 있으니 조청에 찍어 천천히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삭을 줍는 룻을 위하여 일꾼들에게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룻 2:16)고 했습니다.

오늘날은 너 나 없이 모든 가족들이 힘든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에 대다수 피곤에 지쳐 있습니다. 서로 편안함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밖에서는 아주 예절이 바르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집안에서는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배려하는 일은 가정에서부터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부모형제라도 서로 존중하고 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내려오는 추석만 되면 병이 난답니다. 도시에서 사는 며느리가 시골집에 오면 집안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난다고 인상 쓸까봐서 마당부터 마루까지, 그리고 주방, 화장실은 물론이요 냉장고까지 다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명절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는 특효약은 배려입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서로 거들어 주려고 하는 배려,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대화는 피하고 서로 덕담을 나누며 헤어지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권력은 사람의 몸을 움직이지만 존중과 배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존중과 배려의 법칙을 지키면 우리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서로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목자들 간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화평을 위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고 조카 롯에게 조건 없이 선택권을 양보했습니다. 성도는 이방인들의 관계에서 우선권을 상대에게 줍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런 싸움이나 분쟁이 없이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부모 재산 문제로 가족들 간에 대립하며, 형제들 간에 싸우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평입니다. 양보하는 사람만이 화평할 수 있습니다. 양보 없이는 화평은 없습니다. “늘 제가 양보해야 하나요?” 하늘에서 보는 양보는 가진 자의 권위와 권력입니다. 그 권위와 권력을 다른 이에게 주고자 함도 선하겠지만 우선권을 항상 베푸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중에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형제가 추수한 볏단을 밤중에 서로 날라다 주다가 딱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실제 배경은 충남 예산군 대흥면이고, 1956년부터 2000년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양보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믿음과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현실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보기 때문에 사소한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양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넷째로, 서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추석은 우리나라 고유의 감사절입니다. 우리민족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조상들의 공로로 알고 제사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와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인 것을 알고, 우상숭배가 잘못인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 간에도 서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형제와 형제가 서로 감사해야 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에겐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지만 “감사는 벽을 향해 공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하면 마귀가 틈을 탈 수 없습니다. 서로 감사하면 화목할 수 있습니다.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칭찬을 받는 사람에게는 어떤 복이 임할까요? ●본문 2-3절을 보면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이 여기에 두 가지 비유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아론의 수염에 흘러내리는 기름이고, 또 하나는 헐몬 산에서 흘러내리는 이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서에는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너무너무 귀한 것입니다. 기름은 제사장을 세울 때 부어지는 것으로 여기서 그것은 기쁨의 상징입니다. 머리에 부어진 기름이 흘러내려 옷깃을 적실만큼 넘쳐 나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헐몬의 이슬은 유대의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귀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물이 귀한 줄 모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물이 너무 귀합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비가 귀하기 때문에 헐몬산의 이슬이 비와 같이 마른 땅에 내릴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형제가 연합한 모습을 무한히 기쁘게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쁨의 장소에서 복을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복은 영생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복을 다 모아도 영생 하나만 못합니다. 영생의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을 너무너무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영생의 복을 받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영생의 복을 주신 하나님이 그 어떤 복이 아까우시겠습니까? 천국에서 살아갈 사람들은 화목을 위해 서로 노력하고, 서로 배려하며, 서로 양보하고, 서로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33편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삼고 날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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